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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우리도 안나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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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전나무 숲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숲은 함박눈에 덮였고 전나무 잎새마다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달빛은 눈 덮힌 전나무를 비추었고, 전나무들은 영롱한 광채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멋진 전나무를 보면서 루터는 중요한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전나무들은 영롱한 달빛을 받을 때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모두 외롭고 힘든 인생길을 걷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을 때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답다. ”
루터는 전나무 숲에 엎드려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가족과 동료들에게 이 진리를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나무 한 그루를 베어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전나무 가지에 소복한 눈송이를 생각하며 솜을 얹었습니다.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던 모습을 그리며 촛불과 형형색색의 종이별을 매달았습니다. 루터는 경건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 첫 트리입니다.
달빛에 전나무와 그 나무 위에 덮힌 눈이 영롱한 빛을 발한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생명의 빛을 받아 영롱한 빛을 발하는 주의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여자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안나’라고 불리는 여자 선지자입니다.
그녀는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입니다. 그녀의 인생은 역경의 세월이었습니다. 결혼하여 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사별하였습니다. 요즘도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후 재혼하지 않고 어린 아이들을 혼자 키운다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안나 선지자가 살아 있을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적어도 2, 3명의 아이들을 혼자 키우며 살았을 것인데 그 세월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부가 된 후로 팔십 사년을 더 살았습니다. 안나 선지자의 나이가 많다고 한 것을 보면 대충 그녀의 나이는 100세 이상 되었을 것입니다. 이 당시 평균 연령이 50세 정도였다고 본다면 두 배 이상을 생존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평균 연령이 70에 가깝다 하여도 약 1. 5배 많은 100세를 사시는 분은 드물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나 선지자가 평균 50세 보다 두 배가 많은 100세 이상을 살았다면 분명 무슨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날도 안나 선지자는 성전에 갔습니다. 그 때 성전 안에서는 할례예식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안나는 처음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녀의 마음에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38절에 의하면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침 이때에 나아와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안나는 다른 시간에도 성전에 와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마침 이때에 나아와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섭리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침 예수 그리스도께서 할례를 받으시고 계실 때 인도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나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로 성전에 와서 할례받는 주님을 보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하기 시작하였는데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
안나 선지자는 태어난지 팔일 만에 할례 받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인류의 구속자가 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안나 선지자가 100세가 넘도록 살아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안나를 이 상황에서 쓰시려고 살려두신 것입니다. 그리고 안나 선지자는 기다리던 메시야를 직접 만났고 그 분이 구세주이심을 선포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안나 선지자를 쓰시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안나처럼 되어 이 시간에도 우리 마음에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주님을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찾아오셔서 만나주십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안나 선지자는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남달랐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그녀의 모습은 본문에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도 안나처럼 신앙생활을 하면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첫째로 안나 선지자는 성전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37절에 “과부된 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하였습니다.
성전중심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성전중심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까 성전은 주님의 몸입니다. 성전중심으로 사는 것이 주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둑놈 소굴에 살아보십시오. 배우는 것은 도둑질이요, 생각나는 것은 남의 물건 훔치는 것입니다. 매일 나이트클럽에 가서 살아보십시오. 배우는 것이 춤바람이요, 생각나는 것이 춤입니다. 하루 종일 그리고 매일 컴퓨터 게임이나 음란 사이트와 살아보십시오. 배우는 것이 나쁜 짓이요, 생각나는 것이 게임과 음란한 사진들입니다.
그러나 성전중심으로 살아보십시오. 배우는 것이 예수님이요, 생각나는 것이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성전중심으로 살면 그 사람의 영과 혼과 육체는 예수님의 정신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은혜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충만히 임하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안나 선지자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여호와 하나님은 그녀의 생명을 100세로 연장시켜서라도 메시야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영광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신앙생활이란 죄인을 찾아와 만나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성전중심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안나 선지자는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였다는 것입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침과 저녁에 금식하였습니다.
37절을 계속해서 보면 “주야에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섬기더니”하였습니다. 안나 선지자는 성전에서 매일 금식하였습니다. 아마도 하루 한 끼 정도 식사만 하고 조석으로 금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난번 TV에 101세가 되신 할머님이 소개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된장찌개에 김치를 놓고 하루 세끼 식사를 하시는데도 101세를 사시고 계시며 건강하셔서 일도 하십니다. 연세가 드셔도 먹는 게 힘으로 가서 활동하실 수 있을 텐데 안나 선지자는 하루 한 끼 정도만 식사를 하시고 기도에 전념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금식을 하였을까요 안나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이유는 금식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고 성결하기 위해 금식합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에 금식 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삼상7:6)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얻기 위해 금식합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시58:6)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기 위해 금식합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4:2).
여호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위해 금식합니다.
모세도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에 올라가 금식하였습니다. 이 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안나 선지자의 금식은 위의 네 가지를 위해 하였지만 특히 그녀의 금식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깊이 있게 만들어 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영적교제를 위해 왜 금식이 필요합니까 금식하면 사람의 혈기가 죽고 대신 부드러운 사람이 됩니다. 고집이 죽고 대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 됩니다. 죄가 죽고 대신 성결해 집니다. 교만이 죽고 대신 겸손해 집니다. 금식하면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나는 죽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만 살아계시게 합니다. ”
안나 선지자는 금식을 통해 자신이 철저히 죽어지고 대신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사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녀의 생명을 100세 이상으로 연장시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게 하셨고, 음성을 들려 주셔서 메시야이심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크리스마스 때 주님의 은혜를 받기 원하십니까 그러시면 안나 선지자처럼 금식도 마다하지 마십시오. 금식은 내가 죽는 방법이고, 내가 죽으면 주님의 은혜는 더 크게 임합니다.
 셋째는 안나 선지자는 매일 성전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일 새벽 6시와 매일 밤 9시에 기도회가 있습니다. 일주일간 지켜보면 어떤 분은 한 번, 어떤 분은 두 번, 어떤 분은 세 번, 어떤 분은 네 번, 어떤 분은 다섯 번, 어떤 분은 여섯 번, 어떤 분은 일곱 번, 매일 나오셔서 기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가 하면 일주일에 단 한 번도 안나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요.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려면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오죽하면 기도는 노동이라고 하였을까요
이렇게 기도가 힘들지만 그래도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기도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숨을 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가 보니까 산소호흡기를 의존해서 목숨을 유지하는 환자가 있습니다. 몇 해 전에 심장수술을 받다가 잘못되어서 3일간 개복을 한 분의 임종예배를 드리러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그 분은 산소호흡기로 목숨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도 산소호흡기만 끼고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병원에 가 보니까 어떤 분은 천식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그 분은 호흡기를 옆에 두고 급하면 그것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기도도 마음에 내키면 하고, 내키지 않으면 안하고 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 천식에 걸려 호흡기를 달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급할 때만 기도하고 평소에는 기도와 거리를 멀리합니다.
여러분, 숨을 마음껏 쉴 수 있다는 것이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건강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안나 선지자는 10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기도하였습니다. 그녀의 영혼은 물론이고 육체까지도 건강하게 지켜주셨습니다. 그 뿐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그녀에게 메시야를 만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역사하십니다.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찾아오셔서 만나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탄생하셔서 어디에 뉘이셨나요 나귀 죽통입니다. 나귀의 죽통에는 나귀가 음식을 먹다 침을 흘리고, 입에서 토해내고, 먹던 나귀음식이 더럽게 여기저기 붙어 때가 많이 낀 것입니다. 그런 죽통 위에 건초를 깔고 얇은 옷자락을 펴놓고 그 위에 아기 예수님을 눕혀놓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바로 나귀 죽통입니다. 우리는 더러운 죄인들입니다. 그런 죄인인 내 안에 거하시려고 주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나를 찾아오시고 내 안에 거하시기 원하시는 주님을 모시려면 우리도 준비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안나처럼 매일 성전중심으로 살고, 성전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번 크리스마스 때에는 주님이 내안에 영원토록 거하시는 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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