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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주의 길을 예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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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림절 첫주일에 드리는 기도와 말씀과 찬양이 우리가 켠 촛불처럼 하늘의 빛이 되어 우리 마음속을 전류처럼 흐르기를 축원합니다. 이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 모두는 서로 즐거이 화답할 수 있는 산 제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단에 켜져 있는 촛불 하나는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두운 세상의 빛이라고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기다리는 빛의 첫날입니다. 성탄은 빛입니다. 성탄은 밝음이고 또한 맑음입니다. 맑고 밝고 환한 것이 오늘부터 우리 속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림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여러분, 세월 좀 아끼십시오, 때 좀 아끼십시오, 너무 지금 때가 악합니다, 너무 어둡습니다, 노래가 없습니다, 찬양도 없습니다, 기도도 없습니다, 너무 답답합니다, 때가 악하니 빛을 들고 주님의 재림을 오늘부터 준비하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빛은 큰 빛입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림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직 안 오셨지만 사람들은 메시야의 오실 날을 수 천년동안 기다렸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늘 약속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가 오시면 그 빛으로 인해 모두가 밝게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대림절을 맞을 때마다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합니다. 미래는 내일입니다. 내일이 어서 와야 지금의 괴로움이 끝나고 기쁜 날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일 얘기가 항상 사람들의 관심이었습니다.
미래라는 것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현재의 시간 뒤에 놓여 있는 다음시간인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살았고 지금은 현재라 이름하는 오늘에 살고 있고 오늘 자고 나면 내일이라는 미래가 펼쳐집니다. 항상 미래 설계의 바탕은 과거의 경험입니다. 그래서 내일을 설계하고 내일을 기다립니다.
그런 미래를 희랍 사람들은 'futurum'이라고 했습니다. 이 라틴말은 과거에서 출발해서 오늘을 거쳐 내일로 가는 미래를 의미하며 영어의 'future'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이 미래가 얼마나 장구하게 펼쳐질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미래는 오는 미래는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할 미래입니다. 그 미래를 우리는 기다리며 살아왔습니다. 두 번째 미래는 'futurum'와는 달리 사람이 만들고 우리가 계획하는 미래가 아니라, 이미 약속된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이미 계획된 미래가 있습니다. 이미 설정된 미래가 있습니다.
그 미래는 사람의 미래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설정해 주신 미래이며, 그 미래를 여호와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니고 그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미래가 있고 우리에게 오는 미래가 있습니다. 그 미래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장래에 이루어지지만 그 미래는 이미 시작된 여호와 하나님 나라이고 우리가 모를 뿐입니다.
그 미래는 옵니다. 우리에게 강림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그런 미래를 'Adventus"라고 이름합니다. 라틴 말로 이 뜻은 오는 미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대림절을 'Advent'라고 합니다. 이 미래는 우리가 설계하는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 미래를 여러분이 맞이하십시오. 오늘부터 시작합시다.
희랍 사람들이 생각하는 Futurum의 미래와 히브리 사고 속에 있는 Advent는 사고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습니다. 차이점은 주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포함해서 죽음 이후의 삶까지 모든 미래는 여호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이 오늘 오십니다. 불빛을 통하여 오십니다. 오는 미래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미래로부터 오신 메시야이지만 현재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장차 이루어질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그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사는 미래의 화신인 분이 지금 현재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을 믿으면 여러분은 미래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내일 있을 일을 미리 맛볼 수 있다는 것, 종말에 있을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축복입니다. 미래의 현재화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의 피와 살이 되었던 종말 신앙이기도 합니다. 종말을 지금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미래가 오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대림절의 시작입니다. 미래를 향해서 가는 길,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래는 여호와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오십니다. 성경 어디에도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오시니까 그분을 맞으러 간다고만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십니다. 여기 이 경동교회에 오십니다, 이 땅에 오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미래의 신앙이고 대림의 신앙입니다.
이사야서 40장 3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에 "여호와께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지금 오신다. 여러분의 할 일은 길을 좀 닦는 것이다. " 는 말씀이 있습니다. 대림절 첫 주일에 우리가 할 일은 길을 닦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오십니다. 여러분 속에 들어가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가슴을 열고 길을 좀 닦으십시오. 언덕을 너무 높아서 여호와께서 오실 수 없으니 언덕은 좀 깎으십시오. 깎은 흙으로는 계곡이 너무 깊으니 계곡을 좀 메우십시오. 그러면 산과 계곡은 깎인 흙이 채워져서 평지가 됩니다.
그 길로 여호와께서 오십니다. 우리 마음에 교만이라는 산이 있으면 그것을 좀 깎고 절망이라는 계곡이 있으며 그것으로 메우십시오. 그래서 평원을 좀 회복합시다. 평원을 가지십시다. 평화와 정의와 자유와 신앙과 이 모든 것이 평정되어서 평평한 길이 되면 그 곳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십니다. 미래는 평평한 것을 좋아합니다. 미래는 언덕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언덕이 있으면 반드시 계곡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된 사람은 조금 깎아서 가난한 사람을 좀 도와주십시오. 힘이 있는 사람은 권력을 남용하지 말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봉사하십시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게 하십시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른다고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평지입니다. 그래야 여호와께서 오십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깨어진 약속은 약속된 범죄에 다름 아니다는 말입니다. 깨어진 약속은 범죄와 같습니다. 좀 풀어보자면 약속을 깨는 것은 범죄를 저지르겠다고 약속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 선거 때마다 엄청난 정치적 약속이 있습니다. 경제계에도 약속이 있습니다. 장미빛 미래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지켜진 약속도 있지만 깨어진 약속이 너무나 많습니다.
공권력도 약속을 하면서 지키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불안해서 약속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약속은 지금에서 미래를 약속하는 것입니다. 공권력의 약속을 파괴하면 범죄가 됩니다. 그것은 범죄를 약속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번도 약속을 깨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서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지키지 못할 맹세는 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면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집니다. 지키시는 확증이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졌습니다. 십자가에서 세상을 구원하시겠다고 한 약속을 자기 몸을 희생하사면서 지키셨습니다. 그 지킨 약속을 여호와 하나님이 보증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부활시키셔서 새로운 생명체로 주셨습니다. 어두움에 흑암을 이기고 빛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흑암을 이기고 부활의 빛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십니다. 이 약속된 미래를 받으십시오.
조류 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기거리가 함께 떼지어 화살촉 모양으로 날아가면 항해 거리를 71퍼센트나 증가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혼자 날아가면 지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러기가 떼지어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화살촉 모양의 제일 가운데 가는 기러기는 왕이 되는 기러기가 아니고, 제일 힘이 없는 기러기를 가운데 세우고 가다가 힘이 들면 또 바꾸고 힘이 있는 것은 중간 뒤에서 기러기가 날면 파닥파닥, 깍깍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이것은 피곤하다는 뜻이 아니라, 같이 가자, 힘 내자하고 부르는 찬송이랍니다.
 그 기러기가 찬송을 부르면 같이 가던 기러기가 힘이 없어도 그 힘에 밀려 같이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기러기 공동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라도 실족하면 기러기 공동체는 탈락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오신 미래를 받으십시오, 그러나 가장 약한 형제 자매를 기준으로 같이 받으십시오라고 하십니다.
혼자 받지 말고 같이 받으십시오. 거친 길은 평탄하게, 험한 곳은 평지로, 언덕은 깎고 계곡은 메우는 이유는 같이 받기 위해서입니다. 혼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같이 오십니다. 교회는 이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대림절 첫 주일에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이 우리 모두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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