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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새해에로 평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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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대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이 금년의 끝 주일로서 성탄절입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송년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 깊다고 생각합니다.
금년 초에 2005년도를 맞이하면서 많은 기대를 걸었고 큰 희망도 가졌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꼭 해보리라 하던 일도 있었고 꼭 성취하고 싶은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해를 꼭 두 주간을 남기고 그 많은 시간들을 거의 모두 지내보내고 난 지금 허전한 마음이 들것입니다.
뭐하나 뚜렷하게 남긴 흔적도 없이 허송세월한 마음입니다. 한 해를 무의미하게 지나가게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봅니다.
2005년도를 속된 말로 “재수 없는” 해로 여기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가정적으로나, 사업에서나, 또는 인간 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받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실로 금년도를 쉽게 잊을 수 없는 아픔의 해가 된 가정들과 개인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연말을 당한 우리들은 어딘가 우울하고 슬픈 기분이 듭니다. 대체로 연말은 “끝은 반드시 온다”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에 우울해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살던 고장을 떠나갈 때, 직장이나 학교생활을 끝일 때,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 이별할 때, 가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우리들은 서글픈 감정을 갖게됩니다. 연말이 되면 끝을 알려주기에 연말은 쓸쓸하고 서글퍼지는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묻고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작이 있다는 것과 끝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성 어거스틴이 오래 전에 비슷한 물음을 했습니다. “주여!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 없는 것이 아닙니까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역시 없는 것이 아닙니까! 있는 것이란 현재입니다. 그런데 현재도 ”현재“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과거로 흘러갑니다. 결국 있는 것이란 ”순간“에 볼과 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순간의 존재입니까” 이렇게 묻는 어거스틴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하셨는 가는 뒤에 듣기로 하고 먼저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을 통해서 지난날을 아름답게 청산하는 비결을 배워보십시다.
시므온의 기도를 들어보세요: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십니다. ”(29절) 나이가 많도록 메시아를 대망하던 의로운 시므온이 한해 한해를 불안과 초조 속에서 지내던 중 아기 예수님을 만나 품에 안고 찬송하며 외친 기도입니다: “평안히 놓아주시니 감사합니다. ” 시므온에게는 지나간 일생이 큰 의미와 보람이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70세나 80세 혹은 90세 정도의 시므온의 그 긴 연륜은 그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평안치가 않았습니다. 그는 초조하고 불안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그 아기를 자기의 품에 안음에서 그의 삶은 충만 되었습니다. 이젠 평안히 미래에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던 나이 많은 시므온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위로와 구속을 기다리던 경건한 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다가 지쳐버렸습니다. 혹시 올해엔 메시아가 오는가 하고 기다리다가 한 해가 다 가면 혹시 새해에는 오시는가 하면서 여러 해를 속고 속으면서 지나다가 결국엔 희망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시므온은 지치거나 좌절하지 않고 인내하면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는 성전에 올라가서 메시아를 대망하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태어난지 8일 째되는 아기 예수가 할례를 받으러 마리아의 품에 안기어 성전 안에 들어오는 것을 시므온이 보게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기뻐서 마리아의 품에서 아기를 받아 안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젠 평안히 눈을 감겠습니다.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내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만민 앞에 예비 된 이방을 비추는 빛, 이스라엘의 영광을 이제는 내가 보았습니다. 이젠 마음놓고 눈을 감습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들도 금년의 대림절과 성탄절에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시므온처럼 평안한 마음으로 새해에로 들어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구원과 위로가 되시는 예수님을 맞이함에서 새해에로 평안히 떠나가야 합니다. 한 해의 끝에 성탄절이 있는 것은 다행입니다. 한 해를 엿새 앞두고 성탄절을 맞이함에서 어두움과 죄악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맑고 밝게 우리들의 마음이 청소되어서 묵은해를 청산하고 새해를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요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묵은해를 은혜로 마감하고 새해를 평안히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시므온처럼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고 그래서 그 메시아를 품에 안아 보았는가에 있습니다. 시므온처럼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경건하게 살아왔는가를 각자가 스스로 물어야합니다. “이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시므온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일생동안에 눈물과 땀과 피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지금 얻은 평안은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살았습니까 얼마나 간절히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오셨습니까 시므온처럼 메시아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습니까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분들은 시므온처럼 평안히 새해에 들어 설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은 시간 시간을 결코 허송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의 정황이 불리하더라도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의 섭리과정으로 보고 기다리는 자세를 갖습니다. 내게 당장 유익하다고 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지도 않고, 반대로 불리하다고 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속단하지도 않으면서 어떤 경우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큰 약속이 이뤄지는 계기와 과정으로 사건사건, 순간 순간을 처리해 가는 사람들이 의롭게 그리고 경건하게 사는 자들입니다.
시므온은 기쁜 일에도 슬픈 일에도 메시아 출현을 위한 약속 수행의 때를 믿고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멀리 그리고 길게 내다보면서 살았습니다. 몇 년 혹은 10년 혹은 20년이 아닙니다. 일생 전체를 걸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순간에 좌우되는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때로 주변의 친구들이 메시아를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숨져 가는 것을 보면서도 결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거나 멸시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분 당대에 메시아가 아니 왔어도 약속을 믿고 눈을 감았을 어른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다고 해서 안 믿고 아니 기다린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들의 나라가 희랍에 정복되어 200년을 지나더니 또 다시 로마에 정복당하게되자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로마의 학정이 흉폭해지자 메시아기대는 아주 포기되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희망이 없고 미래가 없을 때 사람들은 찰라주의와 이기주의로 빠져버리고 방탕에 빠져버립니다. 그런 가운데 시므온만은 달랐습니다. 로마의 학정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아 약속을 믿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로마의 학정을 이용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 쓰디쓴 비참한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그는 의롭게 살수 있었습니다. 이런 메시아 대망 자에게 메시아는 안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품에 안은 자에게 놀라운 평안과 위로가 주어졌습니다.
여러 성도님들은 지나간 한 해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직장에서나 사업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어떻게 평가하면서 묵은해를 정리하고 새해에로 넘어가려고 하시나요 잘된 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평가하고, 잘 안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 내지는 여호와 하나님 밖의 재수 없는 일로 여기면서 새해에로 성큼 뛰어 넘으려고 하시나요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묵은해에서 평안히 놓임을 받지 못합니다. 시간 속에서 메시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2005년도의 쓰디쓴 시간들과 사건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과정이라고 믿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고통의 시간 속에서 메시아의 탄생이 준비되었다고 믿으면 금년도가 새롭게 해석될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질 때 아픔의 시간 속에서도 의롭게 사는 길을 발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재수 없는 시간을 통하여 메시아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음을 믿을 때 그 삶은 경건해집니다. 순간 순간이 영원과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무의미하게 살아져버리는 순간이 아니고 영원한 시간으로 지난 시간들이 의미를 갖습니다.
여기서 성 어거스틴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 하셨는지가 자명해집니다. "순간이 곧 영원"이라는 대답입니다. 이 대답을 얻은 어거스틴은 역사의 흐르는 시간의 순간 순간은 결코 꺼져버리고 없어져버리는 허무가 아니고 영원과 통하는 어떤 것임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과거란 그것이 쓰던 달던 흘러가 버려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2005년도의 시간들이 2006년도에 영향을 주면서 살아 있을 것입니다. 고로 흘러간 시간들 속에서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았던 분들은 뜨거운 참회가 있어야합니다. 참회란 지나간 사건들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제외시켰던 태도를 180도 바꾸는 일입니다. 아픔의 순간, 고통의 순간에서 원망하고 불평했고, 심한 경우에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잘못들을 철저하게 자복하고 참회해야합니다. 그래야 새해에 평안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기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던 사고의 틀을 버려야 2006년도에 평안히 들어갑니다. 이제는 달라져야합니다. 다람쥐 쳇 바퀴 돌듯 똑같은 틀에 만족하면서 나이를 하나 더 먹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달라져야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수송교회는 새 로운 해를 준비하느라고 많이 노력들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희생적인 헌신으로 이룩된 교육선교관이 준비되어 외모로 달라지긴 했지만 내용적으로 교육선교관을 통한 이웃 봉사활동으로 인하여 우리들의 이웃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고 있습니다. 전에는 우리에게 거부감을 가졌던 이웃들이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들려 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옛날 식이 좋다고 안주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성수주일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웃을 향한 봉사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일은 다하고, 세상의 재미는 다보면서도 교회활동은 뒷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태도를 수송교회 교인들의 과거 전통이니 봐주라는 식으로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은 아니 됩니다. 특히 새로운 교우들에게 본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구역을 거의 돌보지 않으면서 구역장이나 권찰 이름을 가지고 있는 분들, 집사 이름만 가지고 교회일에 참여하지 않는 제직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평안히 새해를 맞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참회해야합니다. 달라져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지 못한 제직들과 성도들은 참회하고 새 해에로 들어서시기 바랍니다. 새 해에는 젊은 목회자가 오셔서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교역자 팀도 모두 달라집니다. 고로 여러 성도님들도 새로운 각오와 결단으로 새 해를 맞이하셔야 합니다. 잘못된 지난날의 낡은 관습을 모두 털어 버리고 새 해에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금년도에 시므온처럼 경건하게 산 분들은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평안히 2006년도를 맞이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성도님들은 아무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메시아 예수께서 여러분들의 한해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힘있게 밀어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아름답게 섬기는 자에게 가정, 사업, 직장에 크게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 평안히 새해에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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