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성탄을 기다리며
본문
해마다 12월이 되면 이상스럽게 마음이 설렌다. 무언가 행복한 일이 풍성 하게 기다리는 것 같다. 거리에 집안에 온통 성탄의 음악이 들린다. 외로운 사람은 다정한 애인을 기대한다. 가족이 있는 사람은 그들의 행복을 생각한 다. 신자가 아니라도 다 성탄절에는 행복이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불탄절은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성탄은 행복이 함박눈처럼 내리는 기간이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 님의 아들이 나신 것이다. 성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무슨 수를 내서라도 얻어야 할 것이다. 또한 조금 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더욱 더 얻어서 깊은 경지를 맛보아야 한다. 그냥 되풀이 되는 성탄절마다 잠시 뜰뜨고 말아서는 않된다.
성탄절이전 사람들에게는 오직 기다림만 있었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장래 의 행복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저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다. 언젠가 잘 되 겠지… 좋은 날이 오겠지... 차차 나아지겠지. 그렇게 기다렸지만 좋은 날은 은 없었다. 수천년을 그렇게 지나 내려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냥 막연히 돈 벌고 진급하고 유명해지면 행복해지고 그것이 구원이겠지 생각할뿐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달랐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을 약속해 주셨다. 구약의 구절마다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다렸다. 그렇게 여러 천 년이 지났다. 그들이 이방인과 다른 점은 이 약속을 가졌다는 것이다. 언젠가 구원을 받는 다는 점에서 분명히 세상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다. 기다릴 목표가 분명히 있다 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택한 백성의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구원을 받지 못했다. 그냥 약속만 가지고 있을뿐 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아직 실천되지 않았다. 분명히 실현되었지만 이스 라엘에게는 실현이 되지 않았다. 지금도 온천하가 다 성탄을 축하한다. 불신 자들도 모두 아기 예수 구세주의 탄생을 축하한다. 축하 파티를 위해서 얼마 나 많은 돈이 사용되고 있는가! 하지만 단지 이스라엘에게만은 성탄이 없다. 그들은 자기 생각에 맞는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 주는 구세주가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구세주이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행복, 감동,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려는 것에는 관심 이 없다. 자기들이 요구하는 선물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구원 이 아닌데 그들은 모르고 있다. 세상적인 왕 권력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신자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 과 같다. 그들은 분명히 성탄 이후의 사람들이다. 즉 구원자가 오신 이후의 신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별로 다른 점이 없 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려는 구원의 모든 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상태이다. 여전히 성탄 이전일뿐이다. 그리고 막연히 축복이 내리기를 기다릴뿐이다.
성탄의 음악을 듣고 설교를 들어도 그들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다. 보아도 못보고 들어도 못듣는다. 이미 구세주를 가지고 있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은 상태이다. 구세주는 삶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마구간 의 아기 예수요 옛날 이야기다. 그리고 성탄의 신비는 이해되지 않는다.
이방인들 즉 불신자들은 성탄을 죄악을 위해 사용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오셨지만 그들에게는 하찮은 아기 하나일뿐이다. 수천억의 재산이 낭비되며 얼마나 많 은 술이 소비되고 얼마나 많은 사생아가 나오는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쾌락이 구세주요, 사랑이 구세주다. 성탄에 그들은 그런 구세주를 찾을뿐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아직 원하는 구세주가 오지 않은 상태요, 아직도 성탄이전 이다. 성탄의 소식을 거부하고 있다. 아무런 즐거움도 없다. 그냥 율법적인 사고로 살아간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선행을 하면 좋은 일이 오리라 생각한다. 양 을 잡아서 드리면 용서하고 은혜 주시리라 생각한다. 언제인가 좋은 일이 오 리라 구세주를 기다린다. 그들은 여전히 구약의 삶을 살고 있다.
자.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불신자인가 유대인인가 아니면 성탄의 이 별 축복이 않되는 교인인가 구세주는 이미 오셨다. 그리고 그분의 구원도 왔다. 축복도 왔다. 누구든 원하면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누릴 수 있다. 성탄 의 노래는 이미 온세상에 가득차고 있다. 태양이 온 세상에 비쳐도 눈이 있는 사람만 본다. 아무리 아름다운 세상이라도 느낄 수 있어야 소유한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라.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믿음은 이렇게 나타난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되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 간단히 말하보자. 우리의 삶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이요 축복에 대한 반응이다. 모든 만물이 태양을 향해 나가듯, 우리의 심령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반응하는 것이다.
성탄을 마지하면서 우리가 할 일은 이것이다. 구세주는 이미 태어나셨다. 어디에 태어났는가 마구간이다. 그 누추한 곳이 바로 내 마음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확인해 보라. 아기 예수가 그 속에 있지 않은가! 신자는 성탄 이후의 사람들이다. 이제 그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이 스라엘은 양을 들고 나아갔다. 그러나 양의 축복은 단지 그림자였을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아기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너무 작 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아직 교회 나와서도 별로 받은게 없다고 생각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작은 신앙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를 내리신다. 너무 작아 서 아기처럼 보인다. 이렇게 작아서 무얼할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아기로 오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마구간에 오셔도 그는 세상의 왕이시다.
자 모두들 확인해 보라. 내 마음은 마구간인가 가난하고 더러운 곳인가 거기에 그리스도를 모셔들였는가 그래서 그로 하여금 거기 좌정하시게 했는 가 그렇다면 이제 들어보라. 천사들의 노래를. 온 천지에 가득찬 그 신비한 빛을. 비록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고, 비록 아무 축복이 없는 것 같아도 여호와 하나님은 확실히 내 안에 계신다. 우리는 성탄 이후의 사람들이다.
이번 집회에 갔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덟번 집회중 진주노회 전체 여전도회원들을 위한 집회가 일곱번이었다. 매번 끝까지 감사헌금을 바 치는 이름이 있었다. 김희애권사. 처음에는 몰랐지만 서너번쯤 지나니 이름을 외우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고 반드시 예 물을 가지고 오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목사님들에게 물었다. 누구인가 모두가 말했다. "아 그분이요. 복받은 분입니다. " 바빠서 모든 식사대접을 거절했지만 그분 내외의 것은 그럴 수 없었다. 참으로 겸손하게 평생을 섬겨 온 나이 60쯤 된 분들이었다. 남편이 장로로 약사일뿐 특별한 건 없었다. 그 러나 그 지방에서 가장 알려진 유지요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늘 교 회를 섬기며 전도하며 여호와 하나님 향해 해바라기처럼 일어나는 사람들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인가! 그들도 어려움을 겪었다. 때로는 같은 교우 들에게, 목사님에게 오해도 받고 미움도 받았다. 한 번은 장로님이 실명을 한 다. 그렇게 일년 이상을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께 최선의 반응을 보였 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봉사했다.
누구나 다 겪는 고통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반응을 하고 있었다. 항상 무겁게 건 축헌금을 하고 늘 봉사할 것을 생각했다. 그들은 복에 반응하고 있었다. 자기 속의 아기 예수는 어른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비쳐 나오고 있었 다. 어느 누구도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성탄에 대한 반응이다. 이미 구원은 왔다. 그가 내 속에서 커 지도록 그래서 그의 아름다움이 온통 지배하도록 반응하라. 찬양으로 반응하 라. 앉은뱅이는 기어야 한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뛰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뛰어야 한다. 옛날 기던 생각을 해서는 않된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반응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구세주가 주신 것이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은 쾌락을 제일로 원한다. 돈과 명예와 사랑을 우선으로 요구한다. 유대인들은 외형적인 축복을 요구한다. 정 치적인 메시아를 원한다. 그리고 대부분 신자들도 이 둘중 어디엔가 속한다. 그러나 성탄은 무엇보다도 마음 속 깊은 곳에 오신다. 겉으로는 잘 알 수도 없다. 죄사함이요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요 그의 자녀로 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외형적인 질서도 외형적인 축복도 자연스럽게 온다. 참된 쾌 락도 저절로 따라온다. 무엇보다 영원한 생명을 얻지 않는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로 당당하게 만들어져간다. 이 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잘 들어보라. 축복과 능력은 지금 내 속에 있다. 그에게 반응하라.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 응을 지금 마구간 안에 누이셨다. 거기 나를 구원할 모든 것이 있다.
여기 반응해 삶을 만들어 보라. 여호와 하나님은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상 을 주시는 분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반응할수록 커진다. 크게 반응하면 크게 작게 반응하면 작게 경험된다. 크게 찬양하라. 크게 기뻐하라. 크게 바 치라. 크게 봉사하라. 여호와 하나님을 내 속에서 최대한이 되게 하라. 그 분은 하나 님이시다. 그를 느껴라. 반응하라. 성탄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노래하자.
그렇다. 성탄은 행복이 함박눈처럼 내리는 기간이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 님의 아들이 나신 것이다. 성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무슨 수를 내서라도 얻어야 할 것이다. 또한 조금 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더욱 더 얻어서 깊은 경지를 맛보아야 한다. 그냥 되풀이 되는 성탄절마다 잠시 뜰뜨고 말아서는 않된다.
성탄절이전 사람들에게는 오직 기다림만 있었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장래 의 행복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저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다. 언젠가 잘 되 겠지… 좋은 날이 오겠지... 차차 나아지겠지. 그렇게 기다렸지만 좋은 날은 은 없었다. 수천년을 그렇게 지나 내려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냥 막연히 돈 벌고 진급하고 유명해지면 행복해지고 그것이 구원이겠지 생각할뿐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달랐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을 약속해 주셨다. 구약의 구절마다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다렸다. 그렇게 여러 천 년이 지났다. 그들이 이방인과 다른 점은 이 약속을 가졌다는 것이다. 언젠가 구원을 받는 다는 점에서 분명히 세상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다. 기다릴 목표가 분명히 있다 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택한 백성의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구원을 받지 못했다. 그냥 약속만 가지고 있을뿐 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아직 실천되지 않았다. 분명히 실현되었지만 이스 라엘에게는 실현이 되지 않았다. 지금도 온천하가 다 성탄을 축하한다. 불신 자들도 모두 아기 예수 구세주의 탄생을 축하한다. 축하 파티를 위해서 얼마 나 많은 돈이 사용되고 있는가! 하지만 단지 이스라엘에게만은 성탄이 없다. 그들은 자기 생각에 맞는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 주는 구세주가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구세주이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행복, 감동,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려는 것에는 관심 이 없다. 자기들이 요구하는 선물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구원 이 아닌데 그들은 모르고 있다. 세상적인 왕 권력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신자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 과 같다. 그들은 분명히 성탄 이후의 사람들이다. 즉 구원자가 오신 이후의 신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별로 다른 점이 없 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려는 구원의 모든 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상태이다. 여전히 성탄 이전일뿐이다. 그리고 막연히 축복이 내리기를 기다릴뿐이다.
성탄의 음악을 듣고 설교를 들어도 그들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다. 보아도 못보고 들어도 못듣는다. 이미 구세주를 가지고 있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은 상태이다. 구세주는 삶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마구간 의 아기 예수요 옛날 이야기다. 그리고 성탄의 신비는 이해되지 않는다.
이방인들 즉 불신자들은 성탄을 죄악을 위해 사용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오셨지만 그들에게는 하찮은 아기 하나일뿐이다. 수천억의 재산이 낭비되며 얼마나 많 은 술이 소비되고 얼마나 많은 사생아가 나오는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쾌락이 구세주요, 사랑이 구세주다. 성탄에 그들은 그런 구세주를 찾을뿐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아직 원하는 구세주가 오지 않은 상태요, 아직도 성탄이전 이다. 성탄의 소식을 거부하고 있다. 아무런 즐거움도 없다. 그냥 율법적인 사고로 살아간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선행을 하면 좋은 일이 오리라 생각한다. 양 을 잡아서 드리면 용서하고 은혜 주시리라 생각한다. 언제인가 좋은 일이 오 리라 구세주를 기다린다. 그들은 여전히 구약의 삶을 살고 있다.
자.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불신자인가 유대인인가 아니면 성탄의 이 별 축복이 않되는 교인인가 구세주는 이미 오셨다. 그리고 그분의 구원도 왔다. 축복도 왔다. 누구든 원하면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누릴 수 있다. 성탄 의 노래는 이미 온세상에 가득차고 있다. 태양이 온 세상에 비쳐도 눈이 있는 사람만 본다. 아무리 아름다운 세상이라도 느낄 수 있어야 소유한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라.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믿음은 이렇게 나타난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되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 간단히 말하보자. 우리의 삶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이요 축복에 대한 반응이다. 모든 만물이 태양을 향해 나가듯, 우리의 심령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반응하는 것이다.
성탄을 마지하면서 우리가 할 일은 이것이다. 구세주는 이미 태어나셨다. 어디에 태어났는가 마구간이다. 그 누추한 곳이 바로 내 마음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확인해 보라. 아기 예수가 그 속에 있지 않은가! 신자는 성탄 이후의 사람들이다. 이제 그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이 스라엘은 양을 들고 나아갔다. 그러나 양의 축복은 단지 그림자였을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아기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너무 작 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아직 교회 나와서도 별로 받은게 없다고 생각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작은 신앙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를 내리신다. 너무 작아 서 아기처럼 보인다. 이렇게 작아서 무얼할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아기로 오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마구간에 오셔도 그는 세상의 왕이시다.
자 모두들 확인해 보라. 내 마음은 마구간인가 가난하고 더러운 곳인가 거기에 그리스도를 모셔들였는가 그래서 그로 하여금 거기 좌정하시게 했는 가 그렇다면 이제 들어보라. 천사들의 노래를. 온 천지에 가득찬 그 신비한 빛을. 비록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고, 비록 아무 축복이 없는 것 같아도 여호와 하나님은 확실히 내 안에 계신다. 우리는 성탄 이후의 사람들이다.
이번 집회에 갔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덟번 집회중 진주노회 전체 여전도회원들을 위한 집회가 일곱번이었다. 매번 끝까지 감사헌금을 바 치는 이름이 있었다. 김희애권사. 처음에는 몰랐지만 서너번쯤 지나니 이름을 외우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고 반드시 예 물을 가지고 오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목사님들에게 물었다. 누구인가 모두가 말했다. "아 그분이요. 복받은 분입니다. " 바빠서 모든 식사대접을 거절했지만 그분 내외의 것은 그럴 수 없었다. 참으로 겸손하게 평생을 섬겨 온 나이 60쯤 된 분들이었다. 남편이 장로로 약사일뿐 특별한 건 없었다. 그 러나 그 지방에서 가장 알려진 유지요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늘 교 회를 섬기며 전도하며 여호와 하나님 향해 해바라기처럼 일어나는 사람들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인가! 그들도 어려움을 겪었다. 때로는 같은 교우 들에게, 목사님에게 오해도 받고 미움도 받았다. 한 번은 장로님이 실명을 한 다. 그렇게 일년 이상을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께 최선의 반응을 보였 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봉사했다.
누구나 다 겪는 고통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반응을 하고 있었다. 항상 무겁게 건 축헌금을 하고 늘 봉사할 것을 생각했다. 그들은 복에 반응하고 있었다. 자기 속의 아기 예수는 어른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비쳐 나오고 있었 다. 어느 누구도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성탄에 대한 반응이다. 이미 구원은 왔다. 그가 내 속에서 커 지도록 그래서 그의 아름다움이 온통 지배하도록 반응하라. 찬양으로 반응하 라. 앉은뱅이는 기어야 한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뛰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뛰어야 한다. 옛날 기던 생각을 해서는 않된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반응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구세주가 주신 것이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은 쾌락을 제일로 원한다. 돈과 명예와 사랑을 우선으로 요구한다. 유대인들은 외형적인 축복을 요구한다. 정 치적인 메시아를 원한다. 그리고 대부분 신자들도 이 둘중 어디엔가 속한다. 그러나 성탄은 무엇보다도 마음 속 깊은 곳에 오신다. 겉으로는 잘 알 수도 없다. 죄사함이요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요 그의 자녀로 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외형적인 질서도 외형적인 축복도 자연스럽게 온다. 참된 쾌 락도 저절로 따라온다. 무엇보다 영원한 생명을 얻지 않는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로 당당하게 만들어져간다. 이 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잘 들어보라. 축복과 능력은 지금 내 속에 있다. 그에게 반응하라.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 응을 지금 마구간 안에 누이셨다. 거기 나를 구원할 모든 것이 있다.
여기 반응해 삶을 만들어 보라. 여호와 하나님은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상 을 주시는 분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반응할수록 커진다. 크게 반응하면 크게 작게 반응하면 작게 경험된다. 크게 찬양하라. 크게 기뻐하라. 크게 바 치라. 크게 봉사하라. 여호와 하나님을 내 속에서 최대한이 되게 하라. 그 분은 하나 님이시다. 그를 느껴라. 반응하라. 성탄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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