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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예수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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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으로는 오늘부터 새로운 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대강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의 소망과 믿음을 확인하는 계절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우리가 평소에도 늘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여 왔지만 대강절을 통하여 그 소망과 믿음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여 흐트러지려는 우리의 자세를 바로 잡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대강절의 색은 참회와 근신을 나타내는 보라색입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4주부터 시작되는데 네 개의 초를 준비하여 한 주에 하나씩 불을 밝히면서 기다림의 의미를 새기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히브리서 말씀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한 마디로 우리 인생의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그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며, 진리이며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천년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희망을 이야기하고 많은 기대를 말합니다. 하지만 새 천년이 지난 20세기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는 근거 없는 희망을 가졌다가 막상 그 희망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날 더 큰 절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거는 새 천년에 대한 기대는 과학의 발전에 의한 새 세계의 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변함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천년을 맞이하는 이 대강절에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더 크게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만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예수를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그분이 힘들고 어려운 긴 구원의 길을 끝까지 참고 견디므로 마침내 그 구원을 완성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2절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여호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참았다"라는 짤막한 말속에는 길고 어려운 고난의 길을 끝까지 견디며 참아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볼 때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당하신 기간은 30여 년, 더 짧게 보면 3년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사건은 오래 전부터 예정되었던 일이오, 때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의 길은 예루살렘의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에 이르는 짧은 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정된 태초로부터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의 긴 고난의 여정을 뜻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구약성경에 나타난 많은 고난 당한 예언자와 신앙의 선조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그 시대의 풍조에 따르지 않고 끝까지 의를 지켜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한결 같이 미래의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그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을 헤쳐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걸은 사람들로서 우리를 위한 증인들입니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난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지만, 그것은 결코 헛되지 않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고난의 열매를 딴 것입니다. 즉 그 모든 구약의 증인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까닭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길고 힘든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참고 견디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향한 행진 역시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과 같이 장거리 경주이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쉽게 포기하거나 물러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참아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므로 우리도 긴 십자가의 길에서 낙심하지 아니하고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서서 달려간 구름 같이 많은 증인들과 더불어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으신 예수를 바라볼 때 우리가 잃었던 용기를 다시 찾을 수 있으며, 포기하려던 마음에 다시 한 번 힘을 북돋우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의 싸움은 단순히 나 자신의 욕망과 죄를 넘어서는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 가득 찬 악의 세력과 맞서서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의와 평화를 실현시키는 데까지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길고 지루한 십자가의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포기하고 쉽게 이 십자가를 벗어 던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벗어 던지려던 십자가를 다시 메고 인내로 끝까지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새 천년을 맞는다 해도 우리는 결코 이 십자가를 벗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굳게 붙잡고 우리의 목표가 이루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그에게서 그가 어떻게 끝까지 참고 나가므로 승리할 수 있었는가를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존귀와 모든 것을 가지신 부요한 분이셨으나 그 모든 것을 비우고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자가 되셨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빈손으로 오셔서 오직 십자가만을 붙잡으셨던 것입니다. 그는 구원의 완성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한 가지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나가셨던 것입니다. 전력투구(全力投球) 하신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이 이것저것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하면서 승리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가 오직 연습에만 몰두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는 오직 뛰는 일에만 몰두하여 연습할 때 승리하고, 야구의 투수도 오직 공을 효과적으로 잘 던지는 일에만 몰두하여 연습할 때 승리 투수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이것저것 걸치고 뛸 수는 없습니다. 가능하면 가볍게 입고 뛰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단순히 걸치는 옷에 비유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목표를 바라보는 일과는 상관이 없는 이런저런 일에 신경을 쓰지 말고 오직 목표를 바라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연습하고 전력을 다해 뛰어가야 함을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어진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인내를 배울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비우고 오로지 그 십자가만을 향하여 가신 그 가난, 그 집중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가진 것이 많고, 그래서 신경을 써야 할 곳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전념하여 예수를 믿기에는 너무도 거치적거리는 것이 많습니다. 세상일이 우선 분주합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을 최소한도로 줄여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먹고사는 일에 바치는 시간을 줄여야 할 것입니다. 출세 지향적인 가치관도 우리를 분주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그러므로 출세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섬기는 자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버리고 그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이것저것 하느라 정작 몰두해야 할 신앙의 경주에는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래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다 보면 참으로 쓸데없는 것들을 그렇게도 많이 껴안고 살았음을 발견하고 많은 것을 버리게 됩니다. 이제 새 천년을 맞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그래서 쓸데없이 우리를 분주하게 하는 것들, 공연히 욕심부려서 쌓아놓은 것들을 훌훌 털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좀더 단순하게, 좀더 가난하게, 좀더 검소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위에 있는 목표를 바라보고 나갈 수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이르러 승리의 면류관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그가 우리의 미래이며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그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 되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모든 구원의 역사의 처음과 그 완성이 되신 분임을 뜻합니다. 골로새서에서는 만물의 으뜸이 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안에 모든 충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를 떠나서는 우리가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안에 모든 구원과 진리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삶이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시작이 그 안에 있고, 그 믿음의 완성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우리가 예수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살 때는 예수를 믿는 일은 한가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며, 오늘날의 정치 경제 문화 각 방면에서도 전혀 예수님의 도움을 청하거나 그 말씀과 그 복음을 정치 경제 문화의 바탕으로 받아드릴 생각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종교는 그 나름대로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역할 할뿐, 우리 삶의 기본이며, 그 바탕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만의 구세주일 뿐이지 모든 세상의 구세주가 되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구호는 단순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만의 구호가 된다면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표어가 되고 우리 나라 정치의 목표가 되어야 하며, 각 기업체 입구에 크게 써 붙여놓고 모든 사람이 들어가며 나가며 한 번씩 외쳐야할 구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대강절은 우리의 희망을 이 땅의 것에 두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두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절기에 우리가 얽매어 살던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훌훌 벗어 던지고 가난한 자리로 내려가기를 힘쓰며,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굳게 붙잡고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참고 견디면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 고정시켰던 눈을 들어 높이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그날 그날의 삶에 얽매었던 우리의 관심을 이제는 좀더 높은 곳에 두며, 오늘에 만족하던 삶에서 미래를 바라보며 준비하는 삶으로 변화를 이룩해야 할 때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에게 외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 사 55:6-7
우리가 걸어가던 악의 길에서 돌이켜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살고 이 민족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교회는 좀더 힘있게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외치며,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쳐야 하겠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확신을 갖지 못하여 외치지 못하였으며, 신념 있게 이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속에 파고들지 못하였는데, 새 천년에는 교회가 확고한 믿음 가운데 서서 저돌적으로 이 사회 속에 진리를 선포하며,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외쳐야 하겠습니다.
대강절 첫 주일 우리의 신앙과 소망을 분명히 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힘있게 선포하며 세워 가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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