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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복된 인생

본문

성경은 두 가지의 복, 곧 육체적인 복과 영적인 복을 말씀합니다. 질병에서 구원함을 받은 복이 육적인 복이라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부활에 소망을 두게 된 복을 영적인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된 사람은 이 두 가지를 다 누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특별히 시편 1편은 전체 150편으로 이루어진 전 시편의 서사시와도 같습니다. 여기서 인생은 의인과 악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 의인과 악인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말씀은 단지 인생이 우연에 내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주님 편에 있는 자와 사탄 편에 있는 자로 구분되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인생이 오늘도 행복을 찾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 행복의 귀중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팥죽 한 그릇에 양심을 팔아 먹고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는 사람들도 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성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에 행복을 찾고자 했으나, 참 행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절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들어 알았으나, 주님 안에 행복이 있는 줄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행복이신 주님을 발견하고 나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으로 즐거워하는 것, 주님에 대하여 즐거워하는 것, 주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복된 인생이나이다’(고백록 10,22) 그래서 그는 이 행복이 이 세상의 재물에 있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때에만 있게 된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었고, 자기 자신의 능력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을 통하여 오게 되는 것임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시편 1편에서 구원을 갖다 주시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이 행복을 우리도 오늘 찾아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 4편 7절)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 이 기쁨의 마음을 갖고 주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라. ”(시 4편 8절)
1. 첫째로, 복된 인생은 말씀을 가까이 합니다.
진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가까이 해야 내 의지가 죽고 이성이 죽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자기 의지로 사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른다 하거니와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느껴보지 못했던 까닭에, 자기 힘만 의지하고 살아 나갑니다. 그에게는 세상의 자랑거리가 무기요 은신처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읽고 깨달은 후에 무슨 생각이 드냐 하면은, 이 세상의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 세상 일로 걱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냐 하면은,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세상을 우선적으로 찾은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심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기도 하고, 자기 고집 때문에, 자기 지식 때문에, 물질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세상에서 영적으로 방황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게 될 때에, 영적으로 혼미하게 되고 헛소리를 하게 되고 내 자신의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 옳습니다. 내 인생이 과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가 하는 것은 내가 말씀을 대하는 가운데 대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시 119편 97절) 성도는 묵상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나의 모습을 다시 정돈할 수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제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 19편 14절)
이렇게 말씀을 묵상한 결과는 첫째로 악인의 삶을 저버리고 둘째로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셋째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묵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족장 이삭의 인생도 저녁 조용한 시간에 묵상을 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시 145편 5절) 이렇게 묵상함으로써 얻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인을 제대로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여 말씀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게 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시는 시간을 많이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2. 둘째로, 복된 인생은 결실을 맺습니다.
결실을 맺는 인생은 첫째로, 항상 샘솟는 감격과 기쁨이 있습니다. 어떤 주인이 종들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씩을 주고 떠났습니다. 주인이 타국 여행을 끝내고 와서 이 종들과 회계할 때에,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과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은 기쁨으로 주인을 대하였습니다. “주여 내게 다서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마 25장 20절)두 번째 종도 마찬가지로 기쁨으로 주인을 대했습니다. 그런데 셋째 종은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을 대하였는데, 기쁨이 없이 주인을 대하였습니다. 두려움만 있었습니다. 첫째와 둘째 종은 감격과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주인을 대하였건만 이 셋째 종의 관심은 아예 엉뚱한데 가 있었습니다. 첫째와 둘째 종은 주인이 주신 그 재물을 가지고 늘이는 사업에만 관심을 두고 열심히 살았는데, 이 셋째 종은 엉뚱하게도 주인의 인격을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또 이 셋째 종의 대답은 첫째와 둘째 종과는 달리 변명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인 앞에서 말이 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에게는 다섯 달란트냐 두 달란트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며 내 재능을 가지고 주님께 영광을 돌렸느냐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성도에게도 이 기쁨과 감격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결실을 맺는 인생은 둘째로, 주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요셉의 운명은 기구했습니다. 형들이 그를 팔아서 외국 땅 애굽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그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 때문에 감옥까지 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창 39장 23절) 비록 감옥에 있는 죄수였건만, 간수가 요셉을 믿고 모든 감옥의 일을 그에게 맡기는 놀라운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제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힘들다 하여도, 주님을 믿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이 결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부분적으로 들어주시기 보다는, 전폭적으로 들어 주십니다. 성경은 우리의 행사가 부분적으로 형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에, 우리는 분명히 결실을 맺고 사는 신앙인이 됩니다. 인생의 졸장부는 어려움이 닥칠 때에, 이 어려움 자체를 놓고 고민하며 안절부절못하지만, 인생의 승리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다 내어 맡기고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평온을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날 갈릴리 바다를 건너실 때에, 폭풍이 불었습니다. 제자들은 두렵고 떨려 죽었다 생각하였지만, 주님은 고물에서 주무셨다 했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장 40절) 이 주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믿음이 없으면 두려움이 있으나, 믿음이 있으면,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케 하는 놀라운 일을 행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결실이 풍성합니다. 어려움 중에도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3. 셋째로, 복된 인생은 여호와의 인정을 받습니다.
누가 여호와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자입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는 자니라. ”(고후 10장 17절) 자화자찬하는 사람은 이 자기 칭찬을 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자기 고독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사람은 영적인 기쁨을 누리는 고로, 그 삶이 활력이 있습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 의인은 항상 여호와를 구주로 고백하며 그를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장 6절) 이렇게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이상으로 갚아 주시는데, 이 관계는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인정 받기 보다는 상대방을 인정하게 될 때에, 내가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가 썼다고 전해 내려오는 ‘평화의 기도’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여,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게 하시고,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하게 하시고,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 이 ‘평화의 기도’에는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 하여도, 사람들에게서 인정 받기 보다는 인정하며 살라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이 복된 인생입니까 오늘 시편을 통해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복된 사람은 세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요, 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요, 세상에서 열심히 사는 삶이요, 의인의 길을 걷는 삶입니다. 그러할 때에 여호와께서 그 삶을 인정해 주십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 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찌어다. ”(마 25장 21절) 작은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사람은 큰 것에 넘어지지 아니하고 아주 자그마한 것에 걸려 넘어지곤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크고도 놀라운 일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달란트를 제대로 쓰고 있느냐에 따라서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본문은 역사의 두 계층을 말씀합니다. 하나는 의인이요, 다른 하나는 악인입니다. 의인은 회중을 이룹니다. 여기에는 악이 조금도 엿보지를 못합니다. 오직 이곳은 의인만이 모인 나라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영원토록 찬송과 기도를 드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무리를 짓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 여러분의 인생길이 계속하여 이 의인의 길을 걸어나갈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두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평화의 항구에 이를 때까지 동행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을 체험하여 주님의 인정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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