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십자가의 도
본문
성탄절을 얼마 앞두지 않은 오늘은 대강절 첫째주입니다. 대강절이라함은 교회력의 시작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전통적으로 대강절은 2천년전 아기로 탄생하셨던 예수님의 초림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약속대로 다시 오실, 예수의 재림을 기원하면서 긴장과 절제, 그리고 설레임이 교차하는 계절이다. 그러므로 아무 생각없이 그저 대강대강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금년 대강절은 11월 28일부터 12월 24일까지이다. 대강적 4주간동안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속에서 몇가지 기다림의 모범을 찾아 실천해 보자.
아기 예수를 기다리며 안나와 시므온처럼(눅 2:22~38) 기도와 말씀 묵상하기
동방박사들처럼(마 2:1~12) 세계평화를 위하여 기원하기
깊은 밤에도 자기 직무에 충실했던 목자들처럼(눅 2:8~20) 열심히 일하기
냄새나는 외양간(눅 2:7) 여물통같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가기
어머니 마리아처럼 멋진 찬양 하나 지어 부르기 (눅 1:46~55)
대강절의 색깔은 보라색이다. 우리 태극기 문양인 음과 양을 상징하는 빨강과 파랑을 합한 색깔, 이른바 하늘땅 하나되는 색깔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시는 역사적 순간을 준비하는 계절에 참 잘 어울리는 색깔이라 하겠다. 보라색은 설레임과 동시에 겸손과 근신을 상징한다. 과거에는 금식기도까지 했었다.
대강절 행사 가운데 하나로 성탄절장식이 있는데, 올해에도 청년들이 정성들여 아름답게 장식을 했다. 대개 우리나라의 상징나무 중 하나인 소나무를 중심으로 장식하는데, 대나무를 장식으로 사용해도 좋다. 대나무는 아시아의 상징나무이며, 특히 성탄의 신화적 의미인 ’케노시스(자기 비움, 빌 2:6~7)’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나무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송죽(松竹)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배실 앞 양쪽에 소나무와 대나무 화분을 차려놓으면 어떨까
대강절에는 대설이 포함된다. 이날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들고 겨울이 푸근할 것이라고 한다. 풍성한 눈, 하얀 눈을 기다리는 순결한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강절에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과 그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이 대강절을 보내는 의미와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오늘의 본문은 십자가에 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여 바울이 편지를 보낸 것이 바로 이 고린도전서입니다. 고린도의 문제중에 하나는 1-4장까지 다루고 있던 문제인 교회의분열의 문제 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울이 끄집어 낸 것이 바로 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여러분은 이 십자가의 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 십자가의 도가 멸망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 후에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이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지혜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지혜를 구하는 방법으로 유대인의 표적과 헬라인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로운 것보다 낫다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에서 3가지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과연 사도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도는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말입니다.
1. 우선 십자가에 도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미련하고 거리끼는 것으로 보인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표현을 통해서 유대인과 헬라인의 비교를 끊임없이 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선 바울의 성장 배경에는 유대인의 배경과 헬라인의 배경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사상도 유대적인 여호와 하나님과 헬라적인 요소가 합쳐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어떻게 보여지고 있습니까
신명기 21:23절에 보면 나무에 달린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에 대상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이렇게 십자가에 죽은 것은 저주에 상징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의도가 거리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2절에서 유대인들이 구하는 것이 ’표적’이라고 한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들의 끊임없는 요구는 ”당신은 무슨 표적을 보이시겠습니까”(마12:39; 막 8:11; 요6:30)라고 질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유대인의 메시아 사상 속에서 그 근거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대망해 오던 메시아 사상은 오랜 기간 동안 유대인의 사상 속에 존재해 왔다.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의 시대가 임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구원의 때가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적인 행위로 드러날 것을 소망했다. 또한 메시아가 오셔서 그 일들을 행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표적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구원의 시대에 대한 견해는 공동체 집단 사이에 일치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언젠가 메시아가 오셔서 이스라엘의 치욕을 씻으시고, 이방인을 몰아내시고 영광스런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데에는 일치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어느 누구도 고난받는 메시아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는 그들에게 있어서 거리끼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번주에 제가 말씀드린데로 고린도는 그리스지방에 있습니다. 그리스로마세계에 신들은 무엇입니까.. 제우스,,등등.. 이런신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무엇이든지 이루어 줄수 있는 신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습니까.. 그들의 생각 속에는 신이 나무에 달려 죽었다는 것을 이해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나무에 달려 죽은 신 이야기는 한마디로 미친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바울의 헬라적 배경이 되는 근원은 바울의 출생부터 살펴보면 그가 태어난 곳은 헬라철학들이 난무하고,, 그곳에는 대학도 많았다고 합니다. 바로 길리기아 다소의 출생입니다. 이것을 그가 그 철학적인 세계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는 것이고 헬라인이라는 것은 바로 지혜를 찾는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라는 것이 바울의 생각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뭐라고 합니까.. 네 자신을 알라…다 지혜의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과 헬라인은 지금의 누구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유대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 나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 말하는 사람들... 헬라인은 세상의 지혜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 ”어리석은 자들은 그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없다고 한답니다. ”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세상의 지혜로운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2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유대인이건 헬라인이건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있어서는 모두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깨닫게 되면 유대인이 되었건 헬라인이 되었건 다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지금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분열의 문제입니다. 나는 게바파니.. 나는 그리스도파니 나는 아볼로 파니 나는 바울파니 하는 그러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분파주의를 없애기 위하여서는 바로 십자가의 도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으며,,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이 아닌데 왜 너희는 분파를 하느냐 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교회들에서는 어떻습니까.. 분파주의... 심각하다는 생각이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요,,형제요,,그러면서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보면 서로 나뉘어져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보면 그것은 거의 확연하게 보입니다. 중3들 중2들 남자, 여자 또 여자애들 중애도 서로 갈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바울은 갈라디아서 3:28절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말해 줍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에 있는 벽을 허물어 버리십시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십자가의 도를 깨닫게 될 때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셨고 섬김을 보여주셨고 용서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를 섬기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생각되어질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요...
철강업계의 대표적 인물인 찰스 스왑이 어느 날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제련소를 순찰할 때의 일이다. 그는 가끔씩 공장의 기계들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직원들은 일을 잘하고 있는지 돌아보곤 했는데, 그날 공장을 돌다가 한쪽 공터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직원을 발견했다.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고 있는 직원들 곁으로 발을 옮기다 보니 빨간 글씨로 쓰여진 ’금연’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순간 그는 화가 치밀었다. 금연 표지판 아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직원들이 괘씸해 당장 달려가서 ”글자도 못 읽는가”하고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진정한 뒤 천천히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쉬왑이 다가서자 담배를 피우고 있던 직원들은 잠시 몸을 움찔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 그가 먼저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군. 그래, 요즘 일은 할 만한가 혹 불편함은 없는지”
그러나 직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는 금연 표지판 아래서 담배를 피운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참 뒤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쉬왑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앞으로 어려움이나 고충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내게 말해 주게나. ”
그리곤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는 것이었다. 담배를 받아 든 직원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그가 눈을 한번 씽긋하면서 덧붙였다.
”앞으로는 이 시가를 금연 표지판이 없는 곳에서 피워 주면 고맙겠네. ”
빙긋 웃으며 자리를 뜨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직원들은 부끄럽고 무안한 마음에 얼굴이 벌개졌다.
예수님은 얼마나 많이 참으셨는지 아십니까 그걸 생각해 보십시오...
3. 전도의 미련한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전도에 미련한 방법을 통하여 십자가의 도를 전한다고 말합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바울이 전한 복음은 저주스럽고, 미련하게 짝이 없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2:2절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십자가에 못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안기로 작정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다보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됩니까 참 왜 이런 방법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일까.. 저들은 듣지도 않는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다른 것을 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만을 전한 것입니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돌아옵니다. 교회들은 성탄절 준비로 분주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 성탄절에 주님이 오신날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네 전도입니다. 행사도 중요하고,,예수나심 축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쉬지 말하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네.. 전도입니다. 바울은 2: 5절에 전도하는데 있어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안된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 아닙니까
기독교신문에 보니까.. 최근 5년간 전도실태를 볼 때에.. 어떻게 전도한 경우가 젤 많은 줄 아십니까.. 노방전도,,방문전도,,이런 것 들로 예수를 믿은 사람은 5%에 불과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전도 하였습니까 다수가 전도된 방법은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고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그 삶 속에서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변화가 되고 그를 통해서 전도되는 사례가 더 많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모습에 있습니까 우리는 교회에서만 성도가 되는 그런 사람들은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도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전도의 미련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삶 그것은 세상사람들이 볼때.. 미련하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힘의 논리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도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한번 살펴봅시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졌다.
병력이 부족하고 또 졸지에 일어난 전쟁이기 때문에 각 지방의 젊은 청년들은 영장을 받은 후 큰 도시로 집결해서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갔다.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장정들을 태운 기차는 주로 밤늦게 떠났다.
그러므로 워싱톤에도 밤마다 유니온 기차 역에는 수백명의 장정들이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나와서 그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때 시민들 가운데 밤마다, 밤늦게까지 다리를 절면서 뜨거운 코코아잔을 쟁반에 들고 젊은 장정들에게 봉사를 한 사람이 있었다.
어떤 때는 임시로 마련된 주방에서 친히 코코아를 끓이기도 했다.
어느 장정 하나가 그 노인을 자세히 보니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대통령이었다. ”각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은 육체적으로 자유스런 사람이 아니었다.
육체의 불편을 무릅쓰고 밤마다 기차 역에 나와 기차로 떠나는 청년들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들고 다니며 봉사했다.
대통령이 친히 기차 정거장에 나와서 따라 주는 코코아를 마신 청년들의 사기는 대단했다.
이처럼 섬기는 일에는 위아래가 없는 법이다.
성경말씀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했다.
종이 되는 길이 으뜸이 되는 지름길인 것이다.
바로 섬김이 십자가에 도이며... 이것이 바로 전도의 미련한 방법입니다.
오늘 고린도교회의 분열속에서 바울이 말하는 이 십자가의 도를 깨달아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정말로 섬기는 모습,,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금년 대강절은 11월 28일부터 12월 24일까지이다. 대강적 4주간동안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속에서 몇가지 기다림의 모범을 찾아 실천해 보자.
아기 예수를 기다리며 안나와 시므온처럼(눅 2:22~38) 기도와 말씀 묵상하기
동방박사들처럼(마 2:1~12) 세계평화를 위하여 기원하기
깊은 밤에도 자기 직무에 충실했던 목자들처럼(눅 2:8~20) 열심히 일하기
냄새나는 외양간(눅 2:7) 여물통같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가기
어머니 마리아처럼 멋진 찬양 하나 지어 부르기 (눅 1:46~55)
대강절의 색깔은 보라색이다. 우리 태극기 문양인 음과 양을 상징하는 빨강과 파랑을 합한 색깔, 이른바 하늘땅 하나되는 색깔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시는 역사적 순간을 준비하는 계절에 참 잘 어울리는 색깔이라 하겠다. 보라색은 설레임과 동시에 겸손과 근신을 상징한다. 과거에는 금식기도까지 했었다.
대강절 행사 가운데 하나로 성탄절장식이 있는데, 올해에도 청년들이 정성들여 아름답게 장식을 했다. 대개 우리나라의 상징나무 중 하나인 소나무를 중심으로 장식하는데, 대나무를 장식으로 사용해도 좋다. 대나무는 아시아의 상징나무이며, 특히 성탄의 신화적 의미인 ’케노시스(자기 비움, 빌 2:6~7)’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나무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송죽(松竹)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배실 앞 양쪽에 소나무와 대나무 화분을 차려놓으면 어떨까
대강절에는 대설이 포함된다. 이날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들고 겨울이 푸근할 것이라고 한다. 풍성한 눈, 하얀 눈을 기다리는 순결한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강절에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과 그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이 대강절을 보내는 의미와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오늘의 본문은 십자가에 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여 바울이 편지를 보낸 것이 바로 이 고린도전서입니다. 고린도의 문제중에 하나는 1-4장까지 다루고 있던 문제인 교회의분열의 문제 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울이 끄집어 낸 것이 바로 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여러분은 이 십자가의 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 십자가의 도가 멸망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 후에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이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지혜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지혜를 구하는 방법으로 유대인의 표적과 헬라인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로운 것보다 낫다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에서 3가지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과연 사도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도는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말입니다.
1. 우선 십자가에 도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미련하고 거리끼는 것으로 보인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표현을 통해서 유대인과 헬라인의 비교를 끊임없이 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선 바울의 성장 배경에는 유대인의 배경과 헬라인의 배경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사상도 유대적인 여호와 하나님과 헬라적인 요소가 합쳐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어떻게 보여지고 있습니까
신명기 21:23절에 보면 나무에 달린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에 대상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이렇게 십자가에 죽은 것은 저주에 상징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의도가 거리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2절에서 유대인들이 구하는 것이 ’표적’이라고 한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들의 끊임없는 요구는 ”당신은 무슨 표적을 보이시겠습니까”(마12:39; 막 8:11; 요6:30)라고 질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유대인의 메시아 사상 속에서 그 근거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대망해 오던 메시아 사상은 오랜 기간 동안 유대인의 사상 속에 존재해 왔다.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의 시대가 임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구원의 때가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적인 행위로 드러날 것을 소망했다. 또한 메시아가 오셔서 그 일들을 행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표적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구원의 시대에 대한 견해는 공동체 집단 사이에 일치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언젠가 메시아가 오셔서 이스라엘의 치욕을 씻으시고, 이방인을 몰아내시고 영광스런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데에는 일치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어느 누구도 고난받는 메시아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는 그들에게 있어서 거리끼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번주에 제가 말씀드린데로 고린도는 그리스지방에 있습니다. 그리스로마세계에 신들은 무엇입니까.. 제우스,,등등.. 이런신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무엇이든지 이루어 줄수 있는 신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습니까.. 그들의 생각 속에는 신이 나무에 달려 죽었다는 것을 이해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나무에 달려 죽은 신 이야기는 한마디로 미친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바울의 헬라적 배경이 되는 근원은 바울의 출생부터 살펴보면 그가 태어난 곳은 헬라철학들이 난무하고,, 그곳에는 대학도 많았다고 합니다. 바로 길리기아 다소의 출생입니다. 이것을 그가 그 철학적인 세계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는 것이고 헬라인이라는 것은 바로 지혜를 찾는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라는 것이 바울의 생각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뭐라고 합니까.. 네 자신을 알라…다 지혜의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과 헬라인은 지금의 누구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유대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 나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 말하는 사람들... 헬라인은 세상의 지혜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 ”어리석은 자들은 그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없다고 한답니다. ”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세상의 지혜로운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2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유대인이건 헬라인이건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있어서는 모두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깨닫게 되면 유대인이 되었건 헬라인이 되었건 다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지금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분열의 문제입니다. 나는 게바파니.. 나는 그리스도파니 나는 아볼로 파니 나는 바울파니 하는 그러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분파주의를 없애기 위하여서는 바로 십자가의 도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으며,,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이 아닌데 왜 너희는 분파를 하느냐 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교회들에서는 어떻습니까.. 분파주의... 심각하다는 생각이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요,,형제요,,그러면서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보면 서로 나뉘어져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보면 그것은 거의 확연하게 보입니다. 중3들 중2들 남자, 여자 또 여자애들 중애도 서로 갈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바울은 갈라디아서 3:28절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말해 줍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에 있는 벽을 허물어 버리십시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십자가의 도를 깨닫게 될 때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셨고 섬김을 보여주셨고 용서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를 섬기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생각되어질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요...
철강업계의 대표적 인물인 찰스 스왑이 어느 날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제련소를 순찰할 때의 일이다. 그는 가끔씩 공장의 기계들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직원들은 일을 잘하고 있는지 돌아보곤 했는데, 그날 공장을 돌다가 한쪽 공터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직원을 발견했다.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고 있는 직원들 곁으로 발을 옮기다 보니 빨간 글씨로 쓰여진 ’금연’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순간 그는 화가 치밀었다. 금연 표지판 아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직원들이 괘씸해 당장 달려가서 ”글자도 못 읽는가”하고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진정한 뒤 천천히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쉬왑이 다가서자 담배를 피우고 있던 직원들은 잠시 몸을 움찔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 그가 먼저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군. 그래, 요즘 일은 할 만한가 혹 불편함은 없는지”
그러나 직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는 금연 표지판 아래서 담배를 피운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참 뒤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쉬왑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앞으로 어려움이나 고충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내게 말해 주게나. ”
그리곤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는 것이었다. 담배를 받아 든 직원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그가 눈을 한번 씽긋하면서 덧붙였다.
”앞으로는 이 시가를 금연 표지판이 없는 곳에서 피워 주면 고맙겠네. ”
빙긋 웃으며 자리를 뜨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직원들은 부끄럽고 무안한 마음에 얼굴이 벌개졌다.
예수님은 얼마나 많이 참으셨는지 아십니까 그걸 생각해 보십시오...
3. 전도의 미련한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전도에 미련한 방법을 통하여 십자가의 도를 전한다고 말합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바울이 전한 복음은 저주스럽고, 미련하게 짝이 없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2:2절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십자가에 못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안기로 작정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다보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됩니까 참 왜 이런 방법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일까.. 저들은 듣지도 않는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다른 것을 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만을 전한 것입니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돌아옵니다. 교회들은 성탄절 준비로 분주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 성탄절에 주님이 오신날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네 전도입니다. 행사도 중요하고,,예수나심 축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쉬지 말하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네.. 전도입니다. 바울은 2: 5절에 전도하는데 있어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안된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 아닙니까
기독교신문에 보니까.. 최근 5년간 전도실태를 볼 때에.. 어떻게 전도한 경우가 젤 많은 줄 아십니까.. 노방전도,,방문전도,,이런 것 들로 예수를 믿은 사람은 5%에 불과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전도 하였습니까 다수가 전도된 방법은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고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그 삶 속에서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변화가 되고 그를 통해서 전도되는 사례가 더 많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모습에 있습니까 우리는 교회에서만 성도가 되는 그런 사람들은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도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전도의 미련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삶 그것은 세상사람들이 볼때.. 미련하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힘의 논리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도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한번 살펴봅시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졌다.
병력이 부족하고 또 졸지에 일어난 전쟁이기 때문에 각 지방의 젊은 청년들은 영장을 받은 후 큰 도시로 집결해서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갔다.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장정들을 태운 기차는 주로 밤늦게 떠났다.
그러므로 워싱톤에도 밤마다 유니온 기차 역에는 수백명의 장정들이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나와서 그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때 시민들 가운데 밤마다, 밤늦게까지 다리를 절면서 뜨거운 코코아잔을 쟁반에 들고 젊은 장정들에게 봉사를 한 사람이 있었다.
어떤 때는 임시로 마련된 주방에서 친히 코코아를 끓이기도 했다.
어느 장정 하나가 그 노인을 자세히 보니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대통령이었다. ”각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은 육체적으로 자유스런 사람이 아니었다.
육체의 불편을 무릅쓰고 밤마다 기차 역에 나와 기차로 떠나는 청년들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들고 다니며 봉사했다.
대통령이 친히 기차 정거장에 나와서 따라 주는 코코아를 마신 청년들의 사기는 대단했다.
이처럼 섬기는 일에는 위아래가 없는 법이다.
성경말씀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했다.
종이 되는 길이 으뜸이 되는 지름길인 것이다.
바로 섬김이 십자가에 도이며... 이것이 바로 전도의 미련한 방법입니다.
오늘 고린도교회의 분열속에서 바울이 말하는 이 십자가의 도를 깨달아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정말로 섬기는 모습,,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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