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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예수 재림을 기다려라

본문

대림절(대강절)은 교회력의 시작으로 'Advent' 라고 하는데 라틴어 'ad'와 'venire'로 이루어져 '오다'(to come to)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대림절의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로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의미입니다. 대림절은 그리스도의 오심(성육신 already)과 다시 오심(재림 not yet)을 맞이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오셨고' '오시고 있고' '오실 것'으로 풀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교인간의 분쟁문제, 근친간의 상간문제, 소송문제, 음행문제, 우상의 제물의 식사문제, 예배와 부활 그리고 연보문제 같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여러 가지 현안들에 대해서 답변을 주고자 이 고린도書를 쓰게되었습니다. 즉 고린도서는 초대교회당시 교회와 교인들이 처해 있던 삶의 현장에서 발생했던 구체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타락한 세속 사회 안에서 성도와 교회가 가져야할 바른 신앙의 모습과 자세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교회와 성도의 신분까지 상실할 위기에 처해있던 성도들에게 성도의 신분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의 이 지적은 대단히 감동 적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고린도 교인들을 바라볼 때 문제 있는 사람들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마음과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오히려 감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을 바라볼 때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아래 결국은 바뀌게될 참 성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믿음으로 바라보는 성도의 참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1)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케 되어야 합니다. 4-5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고린도교인들은 문제가 많습니다. 그들이 저지르는 잘못과 죄를 보아서는 당장에 버림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고린도교인들의 잘못보다는 그들을 사랑하시고 구속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놀라와 그들이 구원받는데는 아무지장이 없습니다. 그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 앞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질 존재들임에 바울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노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항상'은 '판토테'와 '감사하노니' 의 '유카리스토'라는 헬라어는 현재형으로 쓰여 바울의 계속적이고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시사합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전도하여 나온 그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그들 교회를 위해 정규적으로 中保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엡1:6,빌1:3)
어떠한 죄인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하지 못할 자는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보더라도 믿음 안에서 그들의 내일을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과 변화될 모습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5절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함으로" 이 말은 고린도교회에 내려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각 방면에서 풍족하게 드러났음을 의미합니다. 가능성 있는 모든 측면에서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6절의 '그리스도의 증거'는, 일차적으로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예수님 자신과, 자신으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된 구원의 진리를 말합니다. 원문에 보면 '카도스 토 말투리온 투 크리스투'로서 '그리스도의 그 증거와 같이'(as the testimony of Christ)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 자신이 自證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들은 제자들이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하고 다시 이방인들에게 전한 복음의 내용을 말합니다. 특히 그 복음의 내용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당시에 고린도에서 가르친 복음의 내용을 지칭합니다. N4는 이것을 'Because our testimony about Christ' '그리스도에 관한 우리의 증거 때문에' 라고 번역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는 복음에 빚진 자 되어 주님 앞에 가는 순간까지 목숨을 걸고 고린도를 포함해 수많은 이방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토록 생명을 아끼지 않고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주신 구변과 지식의 은사로 말미암아(5절) 더욱더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속에서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이 확증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케 된 例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음의 진리 가운데 굳게 서 있는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2)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7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초대 교회 신앙의 가장 중요하고도 분명한 모습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라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변화산상 사건(마17:1-8)을 말씀한 것이기도 합니다. 변화산상에서 세 제자는 예수님의 놀라우신 모습을 바로 보았습니다. 천상에서 가지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왕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중성이 있습니다. 미래에 다가올 예수님의 재림의 광경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재림을 기다림은 성실한 신앙 생활과 전도 활동, 그리고 풍성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행해져야 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곧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전도와 신앙 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로 서로 섬기며 봉사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은사에 부족함 없이 행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통해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며 봉사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다양한 성령의 열매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면서 기다리는 성도들의 바른 모습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성도로서의 모든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도,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항상 바라보면서, 또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라고 기다리고 있습니까 이 땅에서 주어진 교회와 사회와 가정의 일을 성실하게 함이 있어야합니다. 국가와 사회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주님을 기다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가정생활을 등한히 하는 것도 재림 주를 만나는 소망을 가진 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교회 일도 등한하고 세상일도 포기하고 그렇게 산다면 주님이 오셨을 때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요
(1) 세상부귀 안일함과 세상 근심하다가 주님 나를 찾으시면 어떻게 만날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근심 버리고 두손들고 눈물로써 주만 따라 가오리다.
(2)세상일에 얽매여서 세상 일 만 하다가 주님 나를 부르시면 어떻게 만날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권세버리고 오직 주만 바라보며 주만 따라 가오리다.
(3)지금까지 내가 한일 주님께서 보시고 훗날에 나를 보며 무어라 말할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영광버리고 십자가를 내가지고 주만 따라 가오리다.
3)성도들은 그날에 책망 받을 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은 어떤 날입니까 그날은 '주의 날'(고전5:5, 살전1:10)이요, '그리스도의 날'(빌1:10), 역사의 종말이 임할 바로 '그날'(살후1:10)입니다. 이날을 가리켜 구약 성경은 '여호와의 날'(욜2:31)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은 곧 이 세상이 끝나는 종말의 날이요, 심판의 날이요, 모든 성도들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요, 영원한 여호와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바로 이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완벽하고 흠이 없어 나무랄 데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점 없이 흠 없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죄로 인한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은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인간들 중에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성화되는 과정 중에 지내다가 마침내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에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는 성화의 과정을 이루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힘입어 깨끗하고 정결케 되어 끝까지 견고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8절)라는 말씀은 세상 끝까지, 즉 '그리스도의 날'까지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심으로 성결케 되어 우리가 세상 끝 날까지 견고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는 누구입니까 그들은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하게 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그날에 결단코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나타날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신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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