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대강절의 메아리
본문
1993년 12월 버지니아(Virginia)주 어느 고속도로에서 한 대학생이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경찰이 와서 사고의 원인을 조사했습니다. 알콜중독, 마약, 학교 공부로 인한 과로, 건강문제 모든 것을 조사했으나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후에 알게 된 것은 이 젊은이는 밤새 컴퓨터 인터넷 사이트인 'Amber MUSH'를 켜놓고 게임을 하면서 밤을 샌 것입니다. 'AmberMUSH' site는 role-play game을 하는 사이트인데, 자기가 그 안에서 가명의 사람이 되어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곧 실제 세상에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삶을 그 컴퓨터 게임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그는 평상시 겁이 많고, 수줍고, 늘 놀림만을 당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따돌림을 당하였는데, 컴퓨터 게임 안에서는 교활하고, 화려한, 그리고 사교적인 사람이 됩니다. 낮에 세상살이에서 늘 소외되고 피해자로서 살다가 밤에는 컴퓨터 세계 안에서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 컴퓨터의 삶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곧 밤마다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곤 합니다. 결국 그 전날밤 내내 컴퓨터 앞에서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 있다가 다음날 대낮에 실제의 삶에서는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비봉사몽 간에 교통사고를 일으키게 되어서 세상을 떠납니다.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입니다. T. S. Eliot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은 현실세계를 접할 능력이 없다" 이 젊은이는 현실세계를 접할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번엔 한 여자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45살난 여인이 있습니다. 성형수술에 대해 상담을 해주는 분이었는데 이 분이 10년간 자신의 얼굴을 성형수술을 했습니다. 10년간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런던 신문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이것이 참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나는 나의 옛 얼굴을 볼 때마다 미칠것만 같았습니다. 결코 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모습이 바로 내가 살고 싶은 모습입니다. 전의 나의 모습은 이제 죽었습니다. 나의 전 모습은 이제 나의 삶에서 짤려졌습니다. " 참 현실을 접할 능력이 없어서 이 여인은 몸에 많은 칼질을 합니다. 자기가 만든 거짓 세계를 참 자신에 모습으로 받아드립니다.
교우여러분, 우리가 사실 Virginia주의 대학생처럼 컴퓨터 게임 안에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진 않을지라도 우리 모두에겐 우리가 자주 들어가곤 하는 가상의 세계가 있지 않을까요 이 여인처럼 10년간 몸에 대성형수술을 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과거 우리의 모습을 짤라내지 않습니까 거짓으로 우리의 삶을 꾸며가지 않습니까 체스테르톤(Chesterton)이라는 영국의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할 때 첫 번째 그의 입에서 나와야 할 진실은 '자신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이다. " 체스테르톤의 깊은 내용은 곧 인간은 현실세계를 접할 능력이 없기에 거짓의 삶은 살고 있다는 뜻일 줄로 압니다. 오늘은 대강절 세 번째 주일예배로 드립니다. 오늘 세 번째 촛불이 켜졌습니다. 특히 세 번째 초는 분홍색초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분홍색 초는 세례요한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6개월 전에 선포하고 그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을 생각하면서 예배드리는 주일입니다. 이 예배 시간을 통하여 참된 삶을 살았던 세례 요한의 삶을 생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례 요한이 살았던 참된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오늘 본문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세례 요한이 오기 전 수백년 전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포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3절에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 이 말씀은 이사야가 앞으로 700년 후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 메시야의 오실 길을 평탄케 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 메시야의 오심과 함께 골짜기가 돋우어지고 산이 낮아지며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 후 수백년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세례 요한이 유대 땅에 나타났습니다. 세례 요한은 곧바로 이 이사야가 예언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자기인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광야에 나가서 로마제국 밑에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그가 광야에서 외칠 때마다 그는 오시는 메시야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아니 앞으로 나타날 메시야의 왕국을 바라보며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곧이어 세례요한의 외침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야의 영광스러운 오심을 목격하며 진실한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세례 요한은 6개월 후 나타나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진실한 삶을 살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실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세례 요한이 바라보았던 메시야의 오심의 사건은 우리와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우리도 세례 요한의 메시야 오심 사건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신학적인 말씀을 드립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것은 메시야의 오심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야의 오심은 한 사건이 아닙니다. 몇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양상은 인간의 몸으로 오시는 메시야입니다. 2,000년 전에 오셨습니다. 두 번째 양상은 부활하신 후 성령으로 오시는 메시야입니다.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세 번째 양상은 재림주로 오시는 메시야입니다. 구름 타고 영광 중에 오시는 메시야입니다. 이사야는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합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오심은 한가지 오심입니다. 2,000년전에는 초림으로 나타나셨고 언젠가는 재림으로 나타나십니다. 오늘날에는 성령의 임재로 나타나고 계십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먼저 와서 준비한 것은 이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세례요한이 준비한 메시야의 오심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영광의 주로 다시 오시는 날 메시야에 오심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은 오늘 우리에게도 합당한 예언이 됩니다. 이 예언은 세례 요한을 위한 예언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한 예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진실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예언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말씀을 선포합니다. 바벨론 압제 하에 비참한 현실 속에서 참 자신의 모습을 발견치 못하고 가상의 세계로 빠져들려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참된 세계, 진실된 세계를 선포합니다.
이 세계가 참된 현실세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서의 진실된 세계는 포로 생활 속의 비참한 삶이 아니라 메시야의 오심이라는 세계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로 생활이 거짓된 세계라는 말은 아닙니다. 포로 생활이 현실세계입니다. 그런데 메시야의 오심이라는 진실된 세계를 접하지 않고 현실세계를 접하는 것이 바로 거짓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바벨론 생활을 광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사막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례 요한은 메시야의 오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이라는 세계 속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짓이 많은 세상에서 진실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도 세상살이 가운데 비참한 현실세계를 체험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자체는 진실한 세계가 아닙니다. 이 안에서 참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의 오심이라는 진실된 세계를 바라본다면 참된 삶을 살게 됩니다. 처음 말씀드린 청년대학생과 여인은 현실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너무도 비참한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그 현실세계를 가상의 세계로 거짓으로 바꾸어 갔습니다. 왜냐하면 참 진실된 세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진실된 세계는 메시야의 오심이라는 세계입니다. 다시 오실 메시야의 세계를 바라보는 자만이 참 현실세계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진실한 삶을 살게 됩니다.
프리모 레비(Primo Levi)라는 과학자이자 저술가인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레비도 나찌(Nazi) 정권아래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수용소에서 밖을 내다보니 고드름이 창밖에 열려 있었습니다. 목이 말라 고드름을 땄습니다. 곧이어 독일군이 와서 고드름을 빼앗아 짓밟아 버렸습니다. 레비는 독일군에게 묻습니다. "Why" "Here there is no why. " 이것이 바로 레비의 수용소 생활을 대변하는 한 사건입니다. 다행히 레비는 살아서 아우슈비츠를 나옵니다. 그후 작가가 되어 많은 책을 씁니다.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의 사명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삶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많은 일을 합니다. 그동안 아우슈비츠를 살아 나온 친구들이 과거의 고통을 못이겨 자살하는 것을 봅니다. 그때마다 안타까와 합니다. 그러던중 1987년 11월 동포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레비도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레비는 진실을 증거하는 고통과 함께 자기만 살아 남았다는 죄의식,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을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레비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기를 예언자라고 부르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습니다. "예언자는 오늘의 암과 같은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예언자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나는 예언자를 믿지 않습니다. " 레비가 아우슈비츠를 살아 나와 큰 공헌을 하다가 왜 이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까요 레비는 다시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자기 눈앞에 비춰진 현실세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은 진리를 밝힌다 했지만 참 진리를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참 진실된 세계는 메시야의 오심을 바라볼 때만 우리가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한편 같은 과학자로서 참 진실된 세계를 바라보면서 산 사람이 있습니다. 제롬 레쥬네(Lejeune)라는 불란서 의사이자 과학자가 있습니다. Down's Syndrom으로 알려진 유전학적 병을 잘 아실 줄 압니다. 이 Down's syndrom이 유전에 의한 것인 줄 몰랐을 때에는 모두 매독으로 인하여 생긴 병으로 믿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Down's syndrom 아이를 낳으면 오해와 경멸, 수치를 각오했어야 했습니다. Lejeune은 유전학자로서 Down's syndrom 환자를 연구한 끝에 염색체 중 하나가 두 개 있는 것이 정상인데 3개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21번째 염색체가 세 개인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trisomy 21이라고 병명을 붙였습니다. Lejeune이 그것을 발견한 후 이 병을 지닌 자녀의 부모들이 온갖 수치와 굴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과학자들이 자기가 병을 발견하면 자기 이름으로 병명을 정하는데 Lejeune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곧 보통은 Lejeune syndrom 이라고 말하는데 그는 그냥 trisomy 21이라고 붙입니다. Lejeune은 이 병은 매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염색체의 이상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trisomy21로 명명합니다. Lejeune의 영향을 받아서 아이의 부모들은 용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He is not finished. " 그 후에 밝혀지기를 어떤 아이는 21 염색체가 세 개가 있는데도 병이 생기지 않은 경우가 발견됩니다. 그 염색체가 셋이 있어도 그 병에서 언젠가 나올 수 있는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하여튼 독실한 크리스챤이자 유전학자인 Lejeune은 Down's syndrom 아이들을 향하여 말을 합니다. "He isn't finished. " 그가 "He isn't finished. "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것은 그는 온 세상을 다시 오실 메시야를 통하여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의 진실된 세계였기 때문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바라보며 세상을 관찰하는 자들은 모두 고백합니다. "It isn't finished. " 세계 역사도 매한가지입니다.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불란서 혁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그는 대답합니다. "It's too early to tell. " 이 분이 어떠한 관점에서 이렇게 말했는지 몰라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메시야의 오심이 완성될 때까지 모든 것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It's too early to tell. " 어떤 분이 사진사는 크리스챤이 되기 어렵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진사는 옛날에 찍은 사진 그대로의 모습만을 간직하길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웃은 6개월 전에 보고 머리에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그냥 보관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그 사진을 보면서 말합니다. "이 모습이 당신 모습니다. You are finished. " 그러나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You are unfinished. We are unfinished. " 메시야의 오심을 통하여서만 우리의 참 모습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거짓과 허구의 현실 세계에 사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세례 요한이 나타나 외쳤습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 이 외침의 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지 않습니까 2,0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도 우리의 광야와 우리의 사막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광야와 사막을 울리는 메아리가 있습니다. 대강절의 메아리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외침입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 어제 저녁은 저희 교회에 대강절의 메아리가 울리는 밤이었습니다. 유년/초등부로 시작해서 한국학교, 부부청년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위원회 부서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이 그냥 보였습니다. 아울러 선교팀들의 보고가 전체 프로그램과 조화를 이루며 멋진 성탄 축하제를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선교회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셨습니다. 하여튼 한마디로 'wonderful'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집에 가서 잠이 오지 않아 늦게까지 성탄축하제를 생각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무엇이 이처럼 모둔 순서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하였는가 저는 인간의 노력을 넘은 새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이었습니다. 우리의 성탄축하제 프로그램 안에 또다른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이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되는 그리스도의 오심의 사건이 우리들의 삶의 현실 속에 나타나는 체험을 우리는 함께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눈을 들어오시는 메시야를 바라보십시다. 대강절의 메아리를 들으십시다. 온 세계를 향하여 말하십시다. "It is unfinished. " 말씀을 거둡니다. 대강절의 메아리를 들으며 사셨던 분이 있습니다.
존 베케트(John Beckett)라는 Oil burner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시는 분입니다. 이분이 기독교적 원리로 회사를 운영해서 크게 성공한 분입니다. 그 소식을 알고 ABC News앵커인 Peter Jennings가 이 회사를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에 실업율이 높아갈 때 이 회사는 특이한 계획을 세웁니다. Advent industries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실업자들 중에서 전과가 있는 실업자들을 훈련시키는 사업이었습니다. 이들은 이곳에 와서 기술도 배우고 삶의 가치도 익히게 됩니다. 수천명이 Advent industries를 통해 혜택을 받았습니다. 베케트가 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현실세계를 바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강절의 메아리를 늘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전과자들을 볼 때 "They are unfinished. "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참 대강절의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세상의 역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은 대강절의 메아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도 세례 요한의 외침이 우리 귀에 메아리쳐 들려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
교우여러분, 우리가 사실 Virginia주의 대학생처럼 컴퓨터 게임 안에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진 않을지라도 우리 모두에겐 우리가 자주 들어가곤 하는 가상의 세계가 있지 않을까요 이 여인처럼 10년간 몸에 대성형수술을 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과거 우리의 모습을 짤라내지 않습니까 거짓으로 우리의 삶을 꾸며가지 않습니까 체스테르톤(Chesterton)이라는 영국의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할 때 첫 번째 그의 입에서 나와야 할 진실은 '자신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이다. " 체스테르톤의 깊은 내용은 곧 인간은 현실세계를 접할 능력이 없기에 거짓의 삶은 살고 있다는 뜻일 줄로 압니다. 오늘은 대강절 세 번째 주일예배로 드립니다. 오늘 세 번째 촛불이 켜졌습니다. 특히 세 번째 초는 분홍색초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분홍색 초는 세례요한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6개월 전에 선포하고 그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을 생각하면서 예배드리는 주일입니다. 이 예배 시간을 통하여 참된 삶을 살았던 세례 요한의 삶을 생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례 요한이 살았던 참된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오늘 본문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세례 요한이 오기 전 수백년 전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포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3절에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 이 말씀은 이사야가 앞으로 700년 후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 메시야의 오실 길을 평탄케 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 메시야의 오심과 함께 골짜기가 돋우어지고 산이 낮아지며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 후 수백년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세례 요한이 유대 땅에 나타났습니다. 세례 요한은 곧바로 이 이사야가 예언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자기인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광야에 나가서 로마제국 밑에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그가 광야에서 외칠 때마다 그는 오시는 메시야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아니 앞으로 나타날 메시야의 왕국을 바라보며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곧이어 세례요한의 외침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야의 영광스러운 오심을 목격하며 진실한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세례 요한은 6개월 후 나타나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진실한 삶을 살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실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세례 요한이 바라보았던 메시야의 오심의 사건은 우리와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우리도 세례 요한의 메시야 오심 사건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신학적인 말씀을 드립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것은 메시야의 오심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야의 오심은 한 사건이 아닙니다. 몇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양상은 인간의 몸으로 오시는 메시야입니다. 2,000년 전에 오셨습니다. 두 번째 양상은 부활하신 후 성령으로 오시는 메시야입니다.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세 번째 양상은 재림주로 오시는 메시야입니다. 구름 타고 영광 중에 오시는 메시야입니다. 이사야는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합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오심은 한가지 오심입니다. 2,000년전에는 초림으로 나타나셨고 언젠가는 재림으로 나타나십니다. 오늘날에는 성령의 임재로 나타나고 계십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먼저 와서 준비한 것은 이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세례요한이 준비한 메시야의 오심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영광의 주로 다시 오시는 날 메시야에 오심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은 오늘 우리에게도 합당한 예언이 됩니다. 이 예언은 세례 요한을 위한 예언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한 예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진실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예언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말씀을 선포합니다. 바벨론 압제 하에 비참한 현실 속에서 참 자신의 모습을 발견치 못하고 가상의 세계로 빠져들려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참된 세계, 진실된 세계를 선포합니다.
이 세계가 참된 현실세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서의 진실된 세계는 포로 생활 속의 비참한 삶이 아니라 메시야의 오심이라는 세계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로 생활이 거짓된 세계라는 말은 아닙니다. 포로 생활이 현실세계입니다. 그런데 메시야의 오심이라는 진실된 세계를 접하지 않고 현실세계를 접하는 것이 바로 거짓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바벨론 생활을 광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사막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례 요한은 메시야의 오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이라는 세계 속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짓이 많은 세상에서 진실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도 세상살이 가운데 비참한 현실세계를 체험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자체는 진실한 세계가 아닙니다. 이 안에서 참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의 오심이라는 진실된 세계를 바라본다면 참된 삶을 살게 됩니다. 처음 말씀드린 청년대학생과 여인은 현실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너무도 비참한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그 현실세계를 가상의 세계로 거짓으로 바꾸어 갔습니다. 왜냐하면 참 진실된 세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진실된 세계는 메시야의 오심이라는 세계입니다. 다시 오실 메시야의 세계를 바라보는 자만이 참 현실세계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진실한 삶을 살게 됩니다.
프리모 레비(Primo Levi)라는 과학자이자 저술가인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레비도 나찌(Nazi) 정권아래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수용소에서 밖을 내다보니 고드름이 창밖에 열려 있었습니다. 목이 말라 고드름을 땄습니다. 곧이어 독일군이 와서 고드름을 빼앗아 짓밟아 버렸습니다. 레비는 독일군에게 묻습니다. "Why" "Here there is no why. " 이것이 바로 레비의 수용소 생활을 대변하는 한 사건입니다. 다행히 레비는 살아서 아우슈비츠를 나옵니다. 그후 작가가 되어 많은 책을 씁니다.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의 사명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삶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많은 일을 합니다. 그동안 아우슈비츠를 살아 나온 친구들이 과거의 고통을 못이겨 자살하는 것을 봅니다. 그때마다 안타까와 합니다. 그러던중 1987년 11월 동포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레비도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레비는 진실을 증거하는 고통과 함께 자기만 살아 남았다는 죄의식,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을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레비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기를 예언자라고 부르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습니다. "예언자는 오늘의 암과 같은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예언자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나는 예언자를 믿지 않습니다. " 레비가 아우슈비츠를 살아 나와 큰 공헌을 하다가 왜 이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까요 레비는 다시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자기 눈앞에 비춰진 현실세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은 진리를 밝힌다 했지만 참 진리를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참 진실된 세계는 메시야의 오심을 바라볼 때만 우리가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한편 같은 과학자로서 참 진실된 세계를 바라보면서 산 사람이 있습니다. 제롬 레쥬네(Lejeune)라는 불란서 의사이자 과학자가 있습니다. Down's Syndrom으로 알려진 유전학적 병을 잘 아실 줄 압니다. 이 Down's syndrom이 유전에 의한 것인 줄 몰랐을 때에는 모두 매독으로 인하여 생긴 병으로 믿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Down's syndrom 아이를 낳으면 오해와 경멸, 수치를 각오했어야 했습니다. Lejeune은 유전학자로서 Down's syndrom 환자를 연구한 끝에 염색체 중 하나가 두 개 있는 것이 정상인데 3개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21번째 염색체가 세 개인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trisomy 21이라고 병명을 붙였습니다. Lejeune이 그것을 발견한 후 이 병을 지닌 자녀의 부모들이 온갖 수치와 굴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과학자들이 자기가 병을 발견하면 자기 이름으로 병명을 정하는데 Lejeune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곧 보통은 Lejeune syndrom 이라고 말하는데 그는 그냥 trisomy 21이라고 붙입니다. Lejeune은 이 병은 매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염색체의 이상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trisomy21로 명명합니다. Lejeune의 영향을 받아서 아이의 부모들은 용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He is not finished. " 그 후에 밝혀지기를 어떤 아이는 21 염색체가 세 개가 있는데도 병이 생기지 않은 경우가 발견됩니다. 그 염색체가 셋이 있어도 그 병에서 언젠가 나올 수 있는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하여튼 독실한 크리스챤이자 유전학자인 Lejeune은 Down's syndrom 아이들을 향하여 말을 합니다. "He isn't finished. " 그가 "He isn't finished. "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것은 그는 온 세상을 다시 오실 메시야를 통하여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의 진실된 세계였기 때문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바라보며 세상을 관찰하는 자들은 모두 고백합니다. "It isn't finished. " 세계 역사도 매한가지입니다.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불란서 혁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그는 대답합니다. "It's too early to tell. " 이 분이 어떠한 관점에서 이렇게 말했는지 몰라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메시야의 오심이 완성될 때까지 모든 것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It's too early to tell. " 어떤 분이 사진사는 크리스챤이 되기 어렵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진사는 옛날에 찍은 사진 그대로의 모습만을 간직하길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웃은 6개월 전에 보고 머리에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그냥 보관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그 사진을 보면서 말합니다. "이 모습이 당신 모습니다. You are finished. " 그러나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You are unfinished. We are unfinished. " 메시야의 오심을 통하여서만 우리의 참 모습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거짓과 허구의 현실 세계에 사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세례 요한이 나타나 외쳤습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 이 외침의 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지 않습니까 2,0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도 우리의 광야와 우리의 사막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광야와 사막을 울리는 메아리가 있습니다. 대강절의 메아리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외침입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 어제 저녁은 저희 교회에 대강절의 메아리가 울리는 밤이었습니다. 유년/초등부로 시작해서 한국학교, 부부청년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위원회 부서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이 그냥 보였습니다. 아울러 선교팀들의 보고가 전체 프로그램과 조화를 이루며 멋진 성탄 축하제를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선교회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셨습니다. 하여튼 한마디로 'wonderful'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집에 가서 잠이 오지 않아 늦게까지 성탄축하제를 생각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무엇이 이처럼 모둔 순서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하였는가 저는 인간의 노력을 넘은 새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이었습니다. 우리의 성탄축하제 프로그램 안에 또다른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이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되는 그리스도의 오심의 사건이 우리들의 삶의 현실 속에 나타나는 체험을 우리는 함께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눈을 들어오시는 메시야를 바라보십시다. 대강절의 메아리를 들으십시다. 온 세계를 향하여 말하십시다. "It is unfinished. " 말씀을 거둡니다. 대강절의 메아리를 들으며 사셨던 분이 있습니다.
존 베케트(John Beckett)라는 Oil burner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시는 분입니다. 이분이 기독교적 원리로 회사를 운영해서 크게 성공한 분입니다. 그 소식을 알고 ABC News앵커인 Peter Jennings가 이 회사를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에 실업율이 높아갈 때 이 회사는 특이한 계획을 세웁니다. Advent industries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실업자들 중에서 전과가 있는 실업자들을 훈련시키는 사업이었습니다. 이들은 이곳에 와서 기술도 배우고 삶의 가치도 익히게 됩니다. 수천명이 Advent industries를 통해 혜택을 받았습니다. 베케트가 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현실세계를 바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강절의 메아리를 늘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전과자들을 볼 때 "They are unfinished. "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참 대강절의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세상의 역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은 대강절의 메아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도 세례 요한의 외침이 우리 귀에 메아리쳐 들려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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