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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대강절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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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가지신 분들은 모두가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오늘 어땠니(How was your day)" 대개의 자녀들은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좋게 대답합니다. "나쁘지 않았어요(Not bad). " "좋았어요(Good). "
저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저의 아들에게 늘 묻습니다. "How was your day" 늘 저의 아들은 대답합니다. "Good. "
얼마 전 어느 책에서 보통 부모님과는 다르게 자녀에게 묻는 어머니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자녀들이 잠자리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묻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오늘 어디서 만났니(Where did you meet God today)"
자녀들은 하나 하나 대답합니다.
"선생님이 오늘 나를 도와 주셨어요. 그때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때에요. "
"공원에서 집없는 사람(homeless)을 만났어요. 그때가 오늘 제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때에요. "
"꽃나무에 꽃이 활짝 핀 것을 보았어요. 그때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때에요. "
자녀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어머니는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때를 말해줍니다. 그리고는 오늘 만난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자녀들은 내일 또다시 만날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단잠을 잡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오늘 어디서 만났니(Where did you meet God today)"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까지 저에게 가장 큰 도전을 준 사람이 헨리 나우엔이라고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도전을 준 그의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선물이다(Life is not problem-solving, but a gift). "
6. 25때 태어나 4. 19, 5. 16, 유신정권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시대에 자라면서 어린 저의 마음속에 깊이 박힌 생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라는 인생관이었습니다. 인생에는 많은 문제가 있고 이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이 바로 성공자임을 믿으면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이 많은 문제 가운데서 저는 신앙의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청년시절부터 신앙에 눈을 띄게되고 남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목회자로 소명을 받게 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안에 깊숙이 박혀있는 저의 인생관은 아직 변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의 인생관은 "Life is problem-solving"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바로 문제의 해결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헨리 나우엔의 글을 접합니다.
"인생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선물이다. "
약 4-5년 전에 접한 글입니다. 저에게는 인생이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보게 되는 놀라운 계시적 말씀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종종 이 말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특히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면 저는 모든 문제를 훌훌 털어 버리고는 혼자 되뇌이곤 했습니다. "인생은 문제해결이 아니라 선물이다. "라고.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여러분의 인생관은 어떠하십니까 우리 함께 '인생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인생관을 소유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인생은 선물이라'라고 믿는 자들은 삶의 곳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을 발견합니다.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질문을 합니다. "Where did you meet God today" 아니 자녀뿐만 아니라 그 누구를 만나도 이처럼 인사할 것입니다. "Where did you meet God today"
먼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이런 질문을 아직 저의 아들에게 하고 있지 못합니다. 단지 이번 대강절(Advent)을 준비하면서 이 어머니의 글을 접하게 되었고 이번 대강절을 맞이하여 저의 간절한 기대와 소원은 저도 이 어머니처럼 이러한 질문을 자연스럽게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째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대강절 촛대(Advent Wreath)에 한 개의 촛불이 켜졌습니다. 다음 주일은 두 개의 촛불, 그 다음 주일은 세 개, 마지막으로 네 개의 촛불이 켜지면 주님 오심을 축하하며 성탄주일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번 대강절을 맞아 저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 모두 촛불이 네 개가 다 켜질 때쯤에는 이 어머니와 같은 신앙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 자녀에게, 아니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오늘 여호와 하나님을 어디서 만나셨습니까" 질문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의 소원은 우리 모두 진정 인생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선물임을 믿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인생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선물임을 알고 그처럼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이에 관해 오늘 본문말씀이 주는 귀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살던 시대는 많은 문제가 얽혀 있었던 시대입니다. 몇가지 문제를 말씀 드리면 첫 번째로는 우리 한국처럼 나라가 남북으로 갈려져 있었습니다. 늘 남. 북간이 긴장 가운데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종교적으로 크게 타락한 때였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바로 앞 구절인 8장 19-22절까지는 거짓 종교에 대해서 이사야가 경고하고 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마도 요즘 한국교회가 세습제 때문에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것과도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로는 늘 강대국의 위협 가운데 있었습니다. 앗수리아와 애굽이 늘 호시탐탐 연약한 이스라엘 나라를 엿보고 있었을 때입니다. 이것도 우리 한국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겼던 남왕국의 웃시야 왕이 죽고 그의 아들과 손자가 대를 이어서 왕이 되었습니다. 남왕국은 대지도자를 잃고 혼미한 정국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모든 것이 문제 투성이의 정국이었습니다. 문제 속에서 고민하고 고민하는 이사야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놀라운 이상을 보여 주십니다. 한 아기를 보여주십니다. 이에 이사야는 고백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묘사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이사야는 언젠가 한 아기가 이스라엘을 위해 태어날 것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아기는 바로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요 평강의 왕인 것을 바라봅니다.
이사야는 이 아기를 통해 이스라엘의 큰 문제들이 해결될 것을 내다봅니다. 이 당시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먼저 이사야는 1절과 2절을 통해 북왕국에 빛이 비추일 것을 바라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 특별히 늘 남왕국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아왔던 북왕국에 먼저 빛이 비추고 있는 것을 이사야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갈등이 한 아기를 통해 해결되어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3-5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강대국 사이에 껴있는 연약한 나라가 아닌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
끝으로 7절을 통하여 평강과 정의의 나라가 임할 것을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사야는 문제 많은 시대에 살면서 장차 이스라엘을 찾아오실 한 아기를 보았습니다. 그 아기를 통하여 온 이스라엘이, 아니 온 세계가 평강과 은혜의 세계로 변화되는 것을 바라봅니다.
이사야는 이 한 아기를 통해 이스라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 아기를 기다리는 삶 가운데서 이사야나 이스라엘 민족은 어떠한 체험을 하였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그냥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때까지 막연하게 기다리게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은 시간의 흐름만을 애처롭게 기다려야만 했을까요
우리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문제 속에서 살아갑니다. 한편 문제를 안고서 살면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릴 때 우리에게는 어떠한 경험이 주어질까요 그저 막연한 기다림 외에 다른 무엇은 없을까요
기다림과 연관해서 꼭 생각해야할 것은 시간입니다.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시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불현듯 하게 됩니다.
시간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분이 성 어거스틴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만일 아무도 나에게 시간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는다면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묻는 자가 있어 그에게 시간을 설명하려고 하면 나는 모릅니다"라고 말합니다.
교우여러분, 사실 우리는 시간 안에서 삽니다. 시간과 친밀하게 삽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대해서 설명하려하면 우리는 입이 딱 막혀버립니다.
성 어거스틴은 시간에 대한 오랜 고민 끝에 시간은 인간의 내면세계 안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과거는 오늘 우리의 기억 속에 현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과거를 '과거지사의 현재', 미래를 '미래 지사의 현재'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현재를 '현재지사의 현재'라고 부릅니다. 과거, 미래, 현재가 모두 현재 내 마음의 세계 안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시간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요약합니다.
"이제야 명확히 드러나 밝혀진 것은 미래의 시간이나 과거의 시간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의 시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적당치 않습니다. 아마 과거지사의 현재, 현재지사의 현재, 미래지사의 현재라는 세 가지 시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어떤 면에서 우리 영혼(마음)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
곧 성 어거스틴은 과거, 현재, 미래는 현재의 시간의 세 가지 모습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성 어거스틴은 시간을 마음의 팽창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에게는 시간과 그것을 체험하는 마음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이 보는 관점에서 구약의 예언을 접하면 새로운 각도로 예언자의 삶을 접하게 됩니다. 예언자들은 미래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미래지사의 현재로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오늘 현재의 시간 안에서 벌써 맛을 보고 체험 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혼과 마음속에서 사건화되고 있습니다. 미래의 기대가 예언자들의 현재의 삶을 만들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본문말씀에 나오는 이사야의 삶을 새롭게 관찰하게 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그려보았습니다. 이사야는 많은 문제 가운데 살았습니다.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안고 여호와 하나님과 씨름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느날 미래의 태어날 한 아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사야는 한 아기와 함께 이룩될 평화의 나라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래를 바라보면 볼수록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미래에 두었던 기대가 현재의 사건 안에 체험됨을 느낍니다. 미래에 태어날 한 아기가 현재의 문제 속에 아름답게 태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한 아기의 태어남은 미래의 한가닥 기대가 아니라 바로 오늘의 삶 속에 매일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축복의 선물임을 체험하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더욱 뚜렷하게 현재의 삶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을 체험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사야는 자기 혼자서 이 축복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알립니다. 이사야는 온 이스라엘 민족이 한 아기를 바라보면서 미래의 축복을 오늘의 선물로 받아드리는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는 외칩니다.
"이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이름은 기묘자라 묘사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한 달이 지나면 2002년도 1월 1일을 맞이합니다. 새해가 시작됩니다. 전세계가 1월 1일을 기준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9월 1일을 한해의 시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한해는 언제 시작할까요 신학자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대강절(Advent)이 한 해의 시작임을 강조합니다. 대강절, 크리스마스, 사순절, 성금요일, 부활절, 오순절로 이어지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일년의 삶입니다.
대강절을 일년의 시작으로 생각하는데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강절 기간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서 빛을 바라봅니다. 하나의 촛불을 바라봅니다. 두 개의 촛불, 세 개의 촛불을 바라봅니다. 네 개의 촛불로 함께 주님 오심을 축하합니다. 어두움 가운데서 빛을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보노라면 우리는 어느덧 어두운 현실 가운데 임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문제들 사이에 임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How was your day"에서 "Where did you meet God today"로 우리들의 질문이 바뀌어진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가지고 우리는 그 다음 대강절이 올 때까지 주님을 기다리면서 은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이번 대강절 기간 촛불이 하나, 둘 켜질수록 주님의 오심을 바라보고 바라보십니다. 먼저 2,000년 전 한 아기로 태어나신 아름다운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아울러 다시 오실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십시다. 놀라운 선물을 안고 온 세계를 평화와 정의로 다스리시기 위하여 오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촛불 네 개가 켜졌을 때에는 우리 모두 마음속에는 다음과 같은 확신이 가득할 것입니다. "Life is not problem-solving, but a gift. "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들의 배려로 저는 지난 두달간을 제1차 안식년으로 지냈습니다. 사실 첫 주에는 두 번식이나 설교 준비를 하다가 깨어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저뿐만이 아닙니다. 헨리 나우엔이 자기의 안식년 동안 쓴 일기를 읽어보았는데, 헨리 나우엔도 첫 주에는 밀린 일들을 해결하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곤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글을 일고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두 달간 저는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울러 나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주어진 두 달이 지나가는 무렵이었습니다. 보통 휴가 때는 휴가가 끝날 때쯤 되면 휴가 첫날이 그리워지곤 했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두달이 지루했던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이때 불쑥 저의 마음을 휘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두 달의 시간은 교우님들로부터 받은 선물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선물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었습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도리어 안식년을 잘 보내야지하는 책임감을 느꼈었습니다. 그런데 두달이 지나가는 무렵 어느날 책임감은 다 사라지고 그냥 저의 마음에 울리는 생각은 '이 두 달은 교우님들의 선물이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저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불현듯 이런 귀한 생각이 들었나 이 귀한 깨달음은 어디서 왔는가 헨리 나우엔의 일기에서 읽은 것도 아닌데...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사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여러분으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은 자로 서있습니다. 그러나 두 달전 이 자리에 섰을 때는 그 깨달음을 미쳐 소유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얼마후 저는 저에게 이 깨달음이 온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안식년이 끝나면 대강절이 올 것이기에 사실 저는 두 달 동안 시간이 주어지면 매일 대강절 글을 읽었습니다. 날짜별로 된 책이 두권이 있어서 두권을 교대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책자가 있는데 그것도 대강절에 관련이 있는 책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세 책을 번갈아 읽어 가면서 대강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오심에 관한 글들을 매일 읽어가던 중 한순간 저의 마음의 눈이 떠진 체험을 한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과 다시 오심을 생각하고 기다리다보니 저에게 먼저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 온 것을 느꼈습니다. 두달간의 시간이 귀함 선물이었음을 마음 속 깊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한 아기를 바라보는 자들은 삶 속에서 미쳐 몰랐던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을 보게됩니다. 아니 매일 매일을 선물로 받아드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들의 삶 속에 여호와 하나님은 많은 선물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선물이신 주님을 바라보노라면, 기다리고 기다리노라면, 우리는 오늘 현재의 삶 속에 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들을 발견케 될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선물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고백할 것입니다. 인생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선물인 것을...
우리 모두 한 아기를 바라보십시다. 한 아기를 바라보면서 Advent Wreath의 촛불을 하나 하나 켜가십시다. 우리 안에 주어진 놀라운 선물들을 하나 하나 발견하십시다.
우리 안에 주어진 선물을 발견할 때마다 이사야의 말씀을 생각하십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기에...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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