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기다리는 자의 노래
본문
스바냐는 유다의 요시야 왕 때 활동하던 예언자였습니다. 요시야가 왕이 되던 때, 유다는 종교적으로 타락이 극에 달해서, 성전은 군데군데 허물어져서 황폐해졌는데도 아무도 손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성전의 수는 날로 늘어갔고, 심지어는 야훼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 안에다가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을 쌓아서, 거기서 이방신을 섬기는 예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율법은 무시되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정과 부패가 극심해서, 백성들의 고통은 극에 달했고, 외적의 침략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던 때였습니다.
다행히 요시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어서,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고, 다윗왕을 본받아서 곁길로 빠지지 않았다고 성경은 요시야를 평가하고 있지만, 요시야가 왕이 된 것은 그가 겨우 여덟 살 때였고, 그가 올바른 정치를 한 것은 왕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다음, 그가 어른이 된 후였습니다. 그러니까, 요시야가 왕이 된 후에도 유다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었는데, 그 때 스바냐가 등장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스바냐서는 예언자 스바냐가 한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책인데, 모두 3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입니다. 1장과 2장은 유다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을 치겠다고 하십니다. 바로 우상 숭배 때문이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요시야 이전까지 유다의 왕들은 심지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서조차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단을 쌓고, 또 하늘의 별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어서 거기서 자기의 아들들을 불살라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게도 하고, 마술사를 불러 마법을 부리게도 하고, 악령과 귀신을 불러내어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서는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악한 일을 한 것이었습니다. 왕이 그러니다른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누가 더 악하고 누가 더 우상을 열심히 섬기나 내기라도 하는 듯이 경쟁적으로 우상숭배를 했고, 악한 일들을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 백성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이제 그들을 심판해서 멸망하기로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말끔히 쓸어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을 치시고, 바알신상과 이방 제사장도 뿌리 뽑겠다고 하십니다. 특히 주를 등지고 돌아선 자들, 주를 찾지도 않고 아무것도 여쭙지 않는 자들을 없애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은과 금이 그들을 건질 수 없을 것이라고 스바냐는 경고합니다. 유다의 왕과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이방의 우상들을 섬긴 이유는 그것들이 자기들을 풍요하게, 부자로 만들어 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들은 풍요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만을 가져다줄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우상이 무슨 수로 풍요를 가져다주겠으며, 무슨 수로 사람들을 지켜주겠습니까 말도 하지 못하고, 불에 타도 뜨거운 줄도 모르고, 눈이 와도 추운 줄도 모르는 나무토막이 무슨 재주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해주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그것들은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했고, 그들이 주겠다고 한 은이나 금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재물이나 권력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스바냐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 동시에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온 유다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주님을 찾고, 이제부터라도 올바로 살도록 힘쓰고, 겸손하게 살도록 애쓰라고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노하시는 날에 혹시라도 화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항상 사람들의 문제는 교만이었습니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 악한 길로 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니 여호와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들 앞에서 교만하니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도 함부로 빼앗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도 보면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이 교만 때문입니다. 내가 너보다는 낫다, 내가 너보다는 똑똑하고 잘났다, 그러니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내가 네 말을 들을 것 같으냐, 이런 생각이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갈등을 만들고 결국은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만 옳다고 믿는 것은 교만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도 따지고 보면 교만 때문입니다. 남의 흉을 보고 남의 험담을 하는 것도 교만이고,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고 하면서 남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교만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물리치는 것도 교만입니다.
유다 백성들의 교만도 문제였지만, 한국 교회의 교만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자기중심주의, 교회가, 우리 교인들이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결코 아름다운 일일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은 유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바냐는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유다와 이스라엘을 노략질한 주변 나라에 대해서도 똑같이 심판을 선포합니다. 그들 역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힘도 없는 허수아비들이고, 유다가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봐야 아무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의 초점은 역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스바냐는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심정을 설명합니다.
“너만은 나를 두려워하고, 내가 가르치는 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러면 내가 벌하기로 작정하였다가도 네가 살 곳을 없애지는 않겠다고 하였는데도 너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못된 일만 골라 가면서 하였다. ”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은 항상 우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사는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살피시고, 지키시고, 언제나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악한 길로 가고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에 휩쓸려 사는 것을 보시면 안타까워하시고, 실망하시고, 그리고 진노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표시입니다. 사랑하니까 안타까워하시고, 사랑하니까 화도 내시고, 사랑하니까 야단도 치고 벌도 주시는 거지요.
이 말씀은, 지금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다 타락하고 악해져도, 예수를 믿는 우리만큼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해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세상을 두려워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기보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면서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며칠 전에 어떤 목사님에게 들은 얘기인데요, 요즘 강남에 있는 교회에서는 설교 시간에 부동산 얘기하고 자녀 교육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부동산 투기 하지 말라는 얘기나, 자녀 교육 시킨다고 여기 저기 이사 다니고, 외국에 조기 유학 보내고, 그러지 말라는 얘기 하면 교인들이 싫어한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그런 설교를 못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는 게 더 문제겠지요. 세상이 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세상이 주는 것에 의지해서,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서, 그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죽어라고 따라가느라 여호와 하나님은 잊고 산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나 교육 문제가 잘되고 있다면 뭐가 문제겠습니까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가장 앞장서서 그 방향으로 달려가는 사람조차도 지금 우리나라가 잘하고 있다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뻔히 잘못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죽어라고 달려가는 건 도대체 왜일까요 더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그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토로하십니다.
“너만은 나를 두려워하고, 내가 가르치는 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러면 내가 벌하기로 작정하였다가도 네가 살 곳을 없애지는 않겠다고 하였는데도 너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못된 일만 골라 가면서 하였다. ”
사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어려움들은 대부분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어서, 믿음을 지키려다 보니까 겪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따라가면서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에 복종하니까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우리도 그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과 전혀 구별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셨다면, 지금 한국 교회를 심판하시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악해도, 그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따르는 사람은 언제나 있어왔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잊으시거나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고통 속에서도 평안하게 하시고, 환난을 당하더라도 넉넉히 견뎌내고 이겨내게 해주십니다.
스바냐는 이 도성 예루살렘 안에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남아있게 될 것인데, 그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 간사한 혀로 입을 놀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잘 먹고 편히 쉴 것이니,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도, 그래서 유다와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가고 극심한 고난을 당할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도 잘 먹고 편히 쉴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이들이라고 해서 전쟁에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외국이 침략할 때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사하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을 때 그들 역시 굶어야 하고, 전쟁이 나면 그들 역시 죽을 수 있고, 그들 역시 약탈당하고 고난당할 수 있습니다. 9·11테러가 났을 때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져서 죽은 사람들 중에 여호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위험이나 고난이 그들을 위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환난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시니 그들은 고난 중에서도 평안을 누리고, 전쟁 중에서도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스바냐는 참으로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평안을 누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오늘 스바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선포하기를, 심판 이후에는 구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지 않으면서 제 멋대로 세상을 따라 살고 자기 좋은 일만 하면서 살았던 사람들까지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이지, 심판해서 멸망시키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판은 끝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은 회개하게 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한 것이지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끝내 회개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최종적인 것이지만 말입니다.
오늘 스바냐의 말씀도, 유다 백성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할 사람들의 타락과 죄악에 대해 고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지만,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스바냐 3:14-20 말씀이 그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의 길에 빠져서 우상을 섬기고 세상이 주는 것들을 의지하고 그것들을 여호와 하나님 대신 섬기기 때문에,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유다와 이스라엘이 멸망당해서 강대국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 텐데, 그게 끝이 아니라고 오늘 스바냐는 말합니다. 그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심판이 끝나는 날, 여호와 하나님의 징벌이 끝나는 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원수를 물리치시며 그들을 지키시고 돌보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다고, 그래서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고 자꾸만 여호와 하나님을 어려워하고,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하고, 도망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으로, 혹은 내 죄의 결과로, 혹은 악한 세상 때문에, 지금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혹시 지금 환난을 당하고 고난 중에 있다고 해서 믿음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심판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할 일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막막하고 한심한 현실 속에서 살지만, 이제 앞으로도 우리의 잘못 때문에, 혹은 어떤 이유로든 간에, 무슨 어려움을 겪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어떤 순간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계획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때로는 벌을 주시고, 때로는 고난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러나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스바냐는 말합니다. 그 날이 오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그 날이 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대신 다른 것들을 섬기고 따랐지만,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죄를 다 잊으신 것처럼, 우리를 보고서 기뻐하시고 반기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우리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잔치를 벌여놓고 즐거워하시듯이 우리를 반기시고 우리 때문에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하고 두렵지만, 지금은 우리가 세상살이에 지쳐서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만, 그러나 그 날이 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고 우리의 능력이 되시며 우리의 기쁨이 되실 것입니다. 성경에 여호와 하나님이 노래하신다는 표현은 잘 안 나오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그 날이 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좋아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두려움과 슬픔을 없애주시고, 다시는 모욕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두려운 일이 참 많습니다. 늘 불안하고 두렵고 겁이 나고 그렇지요. 무슨 사고가 나지 않을까 두렵고, 나쁜 사람을 만나 험한 일 당하지 않을까 두렵고, 미래가 두렵고, 그럽니다. 우리는 때때로 눈물을 흘립니다. 소리 내어 울면 남들이 알아나 주지, 아무런 위로도 받지 못하고, 그냥 가슴 속에 담아두어야만 하는 슬픔을 안고 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눈물 흘리는 이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모욕을 당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할 때가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지위가 낮아서 험한 꼴 당하고 모욕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살아가는 동안, 원하지 않는 일들, 답답하고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들 참 많이 겪으면서 삽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 그런 일들을 다 물리쳐주시고, 다시는 그런 억울한 일 당하지 않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 날이 오면, 우리를 억누르는 자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벌하신다고 합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고, 우리를 슬프게 하고, 우리 눈에서 눈물 나게 하고, 우리를 억울하게 하는 이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벌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고, 이제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게 해주신다고 합니다. 때가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없어진 이들을 찾아주시고, 흩어진 이들을 불러 모으신다고 합니다. 흩어져서 사는 그 모든 땅에서, 부끄러움을 겪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칭송과 영예를 받게 하신다고 합니다. 스바냐의 말씀이 선포되던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유다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종살이하며 살게 될 터인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의 날에 구원의 손길을 뻗으셔서 그들을 다시 고향에 돌아오게 하고, 그리운 땅, 그리운 가족들과 다시 함께 살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지금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 그리워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금방 떠오는 것이 남북 분단으로 말미암아 생긴 이산가족들이지요. 이제는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나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자꾸만 늘어 가는데, 그동안에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아직도 서로 소식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소식을 알지만 같이 있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산가족이 어디 그 사람들뿐이겠습니까 부모가 이혼해서 갈라지는 바람에 엄마 없이, 혹은 아빠 없이, 보고 싶어도, 그리워도 함께 살 수 없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엄마 아빠 다 집나가고 어린 아이들끼리 힘겨운 세상을 견뎌내야 하는 소년소녀가장들, 어디론가 사라져서 생사조차 확인이 안 되는 가족을 둔 가정들…
몇 년 전에 대구지하철 화재사건이 났을 때, 눈물겨운 사연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여대생이 갑자기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엄마, 나 없이도 살 수 있어” 그러더랍니다. 엄마는 장난으로, “그럼, 난 우리 딸 없어도 잘 살 수 있지” 그랬다지요. 그랬더니 딸이, “엄마, 난 엄마 없이는 못살아. 그래서 먼저 가나봐” 그러더랍니다. 엄마는 가슴이 철렁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겠지요. 그랬더니, “여기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 그래서 갇혀 있는데, 엄마 밖에 생각이 안나고... 사랑해 사랑해”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전화가 끊어졌답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정말 애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런 모든 사연들을 다 헤아리시고, 없어진 이들을 찾아주시고, 흩어진 이들을 불러 모으신다고 합니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가족들과 헤어져서 고생하며 힘겹게 살던 사람들이 이제 행복하게 살도록 하신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 눈에서 눈물 닦아주시고, 다시는 눈물 흘리지 않도록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 때가 되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모으시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살도록 하신다고 합니다. 고향을 잃어버렸던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고향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고향을 잃어버리고 세상에서 헤매며 사는 우리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인정받지 못하고 대접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고 살았지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허물 많은 죄인입니다. 우리는 전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들일 뿐입니다. 자기 자신조차 구원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거기서 거기인,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끝내 버려두지 않으시고, 이제 모든 고난과 슬픔에서 구해주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합니다. 단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믿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아픔과 눈물을 끝내시고, 우리를 높이시고, 영광스럽게 하실 그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 잡은 손을 놓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일만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고 우리에게 벌을 주셔야 마땅하지만, 그러나 끝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품어주심을 감사하며,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던 걸음을 멈추고, 세상을 의지하던 우리 마음을 돌이켜서,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기다리는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십니다.
대강절 셋째주일입니다. 대강절은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우리의 기다림 가운데 주님께서 오십니다. 구원의 날, 여호와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릴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끝까지 견뎌내고 참아낼 수 있도록, 구원의 그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대강절을 은혜 가운데 보내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행히 요시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어서,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고, 다윗왕을 본받아서 곁길로 빠지지 않았다고 성경은 요시야를 평가하고 있지만, 요시야가 왕이 된 것은 그가 겨우 여덟 살 때였고, 그가 올바른 정치를 한 것은 왕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다음, 그가 어른이 된 후였습니다. 그러니까, 요시야가 왕이 된 후에도 유다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었는데, 그 때 스바냐가 등장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스바냐서는 예언자 스바냐가 한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책인데, 모두 3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입니다. 1장과 2장은 유다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을 치겠다고 하십니다. 바로 우상 숭배 때문이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요시야 이전까지 유다의 왕들은 심지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서조차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단을 쌓고, 또 하늘의 별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어서 거기서 자기의 아들들을 불살라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게도 하고, 마술사를 불러 마법을 부리게도 하고, 악령과 귀신을 불러내어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서는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악한 일을 한 것이었습니다. 왕이 그러니다른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누가 더 악하고 누가 더 우상을 열심히 섬기나 내기라도 하는 듯이 경쟁적으로 우상숭배를 했고, 악한 일들을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 백성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이제 그들을 심판해서 멸망하기로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말끔히 쓸어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을 치시고, 바알신상과 이방 제사장도 뿌리 뽑겠다고 하십니다. 특히 주를 등지고 돌아선 자들, 주를 찾지도 않고 아무것도 여쭙지 않는 자들을 없애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은과 금이 그들을 건질 수 없을 것이라고 스바냐는 경고합니다. 유다의 왕과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이방의 우상들을 섬긴 이유는 그것들이 자기들을 풍요하게, 부자로 만들어 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들은 풍요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만을 가져다줄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우상이 무슨 수로 풍요를 가져다주겠으며, 무슨 수로 사람들을 지켜주겠습니까 말도 하지 못하고, 불에 타도 뜨거운 줄도 모르고, 눈이 와도 추운 줄도 모르는 나무토막이 무슨 재주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해주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그것들은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했고, 그들이 주겠다고 한 은이나 금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재물이나 권력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스바냐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 동시에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온 유다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주님을 찾고, 이제부터라도 올바로 살도록 힘쓰고, 겸손하게 살도록 애쓰라고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노하시는 날에 혹시라도 화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항상 사람들의 문제는 교만이었습니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 악한 길로 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니 여호와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들 앞에서 교만하니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도 함부로 빼앗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도 보면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이 교만 때문입니다. 내가 너보다는 낫다, 내가 너보다는 똑똑하고 잘났다, 그러니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내가 네 말을 들을 것 같으냐, 이런 생각이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갈등을 만들고 결국은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만 옳다고 믿는 것은 교만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도 따지고 보면 교만 때문입니다. 남의 흉을 보고 남의 험담을 하는 것도 교만이고,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고 하면서 남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교만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물리치는 것도 교만입니다.
유다 백성들의 교만도 문제였지만, 한국 교회의 교만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자기중심주의, 교회가, 우리 교인들이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결코 아름다운 일일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은 유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바냐는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유다와 이스라엘을 노략질한 주변 나라에 대해서도 똑같이 심판을 선포합니다. 그들 역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힘도 없는 허수아비들이고, 유다가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봐야 아무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의 초점은 역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스바냐는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심정을 설명합니다.
“너만은 나를 두려워하고, 내가 가르치는 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러면 내가 벌하기로 작정하였다가도 네가 살 곳을 없애지는 않겠다고 하였는데도 너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못된 일만 골라 가면서 하였다. ”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은 항상 우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사는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살피시고, 지키시고, 언제나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악한 길로 가고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에 휩쓸려 사는 것을 보시면 안타까워하시고, 실망하시고, 그리고 진노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표시입니다. 사랑하니까 안타까워하시고, 사랑하니까 화도 내시고, 사랑하니까 야단도 치고 벌도 주시는 거지요.
이 말씀은, 지금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다 타락하고 악해져도, 예수를 믿는 우리만큼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해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세상을 두려워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기보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면서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며칠 전에 어떤 목사님에게 들은 얘기인데요, 요즘 강남에 있는 교회에서는 설교 시간에 부동산 얘기하고 자녀 교육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부동산 투기 하지 말라는 얘기나, 자녀 교육 시킨다고 여기 저기 이사 다니고, 외국에 조기 유학 보내고, 그러지 말라는 얘기 하면 교인들이 싫어한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그런 설교를 못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는 게 더 문제겠지요. 세상이 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세상이 주는 것에 의지해서,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서, 그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죽어라고 따라가느라 여호와 하나님은 잊고 산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나 교육 문제가 잘되고 있다면 뭐가 문제겠습니까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가장 앞장서서 그 방향으로 달려가는 사람조차도 지금 우리나라가 잘하고 있다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뻔히 잘못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죽어라고 달려가는 건 도대체 왜일까요 더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그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토로하십니다.
“너만은 나를 두려워하고, 내가 가르치는 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러면 내가 벌하기로 작정하였다가도 네가 살 곳을 없애지는 않겠다고 하였는데도 너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못된 일만 골라 가면서 하였다. ”
사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어려움들은 대부분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어서, 믿음을 지키려다 보니까 겪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따라가면서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에 복종하니까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우리도 그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과 전혀 구별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셨다면, 지금 한국 교회를 심판하시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악해도, 그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따르는 사람은 언제나 있어왔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잊으시거나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고통 속에서도 평안하게 하시고, 환난을 당하더라도 넉넉히 견뎌내고 이겨내게 해주십니다.
스바냐는 이 도성 예루살렘 안에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남아있게 될 것인데, 그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 간사한 혀로 입을 놀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잘 먹고 편히 쉴 것이니,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도, 그래서 유다와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가고 극심한 고난을 당할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도 잘 먹고 편히 쉴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이들이라고 해서 전쟁에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외국이 침략할 때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사하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을 때 그들 역시 굶어야 하고, 전쟁이 나면 그들 역시 죽을 수 있고, 그들 역시 약탈당하고 고난당할 수 있습니다. 9·11테러가 났을 때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져서 죽은 사람들 중에 여호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위험이나 고난이 그들을 위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환난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시니 그들은 고난 중에서도 평안을 누리고, 전쟁 중에서도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스바냐는 참으로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평안을 누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오늘 스바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선포하기를, 심판 이후에는 구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지 않으면서 제 멋대로 세상을 따라 살고 자기 좋은 일만 하면서 살았던 사람들까지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이지, 심판해서 멸망시키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판은 끝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은 회개하게 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한 것이지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끝내 회개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최종적인 것이지만 말입니다.
오늘 스바냐의 말씀도, 유다 백성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할 사람들의 타락과 죄악에 대해 고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지만,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스바냐 3:14-20 말씀이 그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의 길에 빠져서 우상을 섬기고 세상이 주는 것들을 의지하고 그것들을 여호와 하나님 대신 섬기기 때문에,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유다와 이스라엘이 멸망당해서 강대국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 텐데, 그게 끝이 아니라고 오늘 스바냐는 말합니다. 그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심판이 끝나는 날, 여호와 하나님의 징벌이 끝나는 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원수를 물리치시며 그들을 지키시고 돌보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다고, 그래서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고 자꾸만 여호와 하나님을 어려워하고,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하고, 도망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으로, 혹은 내 죄의 결과로, 혹은 악한 세상 때문에, 지금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혹시 지금 환난을 당하고 고난 중에 있다고 해서 믿음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심판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할 일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막막하고 한심한 현실 속에서 살지만, 이제 앞으로도 우리의 잘못 때문에, 혹은 어떤 이유로든 간에, 무슨 어려움을 겪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어떤 순간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계획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때로는 벌을 주시고, 때로는 고난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러나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스바냐는 말합니다. 그 날이 오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그 날이 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대신 다른 것들을 섬기고 따랐지만,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죄를 다 잊으신 것처럼, 우리를 보고서 기뻐하시고 반기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우리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잔치를 벌여놓고 즐거워하시듯이 우리를 반기시고 우리 때문에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하고 두렵지만, 지금은 우리가 세상살이에 지쳐서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만, 그러나 그 날이 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고 우리의 능력이 되시며 우리의 기쁨이 되실 것입니다. 성경에 여호와 하나님이 노래하신다는 표현은 잘 안 나오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그 날이 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좋아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두려움과 슬픔을 없애주시고, 다시는 모욕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두려운 일이 참 많습니다. 늘 불안하고 두렵고 겁이 나고 그렇지요. 무슨 사고가 나지 않을까 두렵고, 나쁜 사람을 만나 험한 일 당하지 않을까 두렵고, 미래가 두렵고, 그럽니다. 우리는 때때로 눈물을 흘립니다. 소리 내어 울면 남들이 알아나 주지, 아무런 위로도 받지 못하고, 그냥 가슴 속에 담아두어야만 하는 슬픔을 안고 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눈물 흘리는 이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모욕을 당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할 때가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지위가 낮아서 험한 꼴 당하고 모욕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살아가는 동안, 원하지 않는 일들, 답답하고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들 참 많이 겪으면서 삽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 그런 일들을 다 물리쳐주시고, 다시는 그런 억울한 일 당하지 않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 날이 오면, 우리를 억누르는 자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벌하신다고 합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고, 우리를 슬프게 하고, 우리 눈에서 눈물 나게 하고, 우리를 억울하게 하는 이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벌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고, 이제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게 해주신다고 합니다. 때가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없어진 이들을 찾아주시고, 흩어진 이들을 불러 모으신다고 합니다. 흩어져서 사는 그 모든 땅에서, 부끄러움을 겪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칭송과 영예를 받게 하신다고 합니다. 스바냐의 말씀이 선포되던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유다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종살이하며 살게 될 터인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의 날에 구원의 손길을 뻗으셔서 그들을 다시 고향에 돌아오게 하고, 그리운 땅, 그리운 가족들과 다시 함께 살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지금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 그리워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금방 떠오는 것이 남북 분단으로 말미암아 생긴 이산가족들이지요. 이제는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나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자꾸만 늘어 가는데, 그동안에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아직도 서로 소식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소식을 알지만 같이 있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산가족이 어디 그 사람들뿐이겠습니까 부모가 이혼해서 갈라지는 바람에 엄마 없이, 혹은 아빠 없이, 보고 싶어도, 그리워도 함께 살 수 없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엄마 아빠 다 집나가고 어린 아이들끼리 힘겨운 세상을 견뎌내야 하는 소년소녀가장들, 어디론가 사라져서 생사조차 확인이 안 되는 가족을 둔 가정들…
몇 년 전에 대구지하철 화재사건이 났을 때, 눈물겨운 사연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여대생이 갑자기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엄마, 나 없이도 살 수 있어” 그러더랍니다. 엄마는 장난으로, “그럼, 난 우리 딸 없어도 잘 살 수 있지” 그랬다지요. 그랬더니 딸이, “엄마, 난 엄마 없이는 못살아. 그래서 먼저 가나봐” 그러더랍니다. 엄마는 가슴이 철렁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겠지요. 그랬더니, “여기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 그래서 갇혀 있는데, 엄마 밖에 생각이 안나고... 사랑해 사랑해”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전화가 끊어졌답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정말 애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런 모든 사연들을 다 헤아리시고, 없어진 이들을 찾아주시고, 흩어진 이들을 불러 모으신다고 합니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가족들과 헤어져서 고생하며 힘겹게 살던 사람들이 이제 행복하게 살도록 하신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 눈에서 눈물 닦아주시고, 다시는 눈물 흘리지 않도록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 때가 되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모으시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살도록 하신다고 합니다. 고향을 잃어버렸던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고향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고향을 잃어버리고 세상에서 헤매며 사는 우리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인정받지 못하고 대접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고 살았지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허물 많은 죄인입니다. 우리는 전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들일 뿐입니다. 자기 자신조차 구원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거기서 거기인,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끝내 버려두지 않으시고, 이제 모든 고난과 슬픔에서 구해주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합니다. 단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믿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아픔과 눈물을 끝내시고, 우리를 높이시고, 영광스럽게 하실 그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 잡은 손을 놓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일만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고 우리에게 벌을 주셔야 마땅하지만, 그러나 끝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품어주심을 감사하며,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던 걸음을 멈추고, 세상을 의지하던 우리 마음을 돌이켜서,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기다리는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십니다.
대강절 셋째주일입니다. 대강절은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우리의 기다림 가운데 주님께서 오십니다. 구원의 날, 여호와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릴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끝까지 견뎌내고 참아낼 수 있도록, 구원의 그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대강절을 은혜 가운데 보내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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