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본문
올해 추수감사절은 20세기 마지막 추수감사절이자, 2천년대의 첫 번째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나도 바쁜 일상으로 인해 감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 성도가 감사를 잃어가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간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우리가 누구에게, 무엇을, 왜 감사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이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두 번 나옵니다. 첫 번째 감사는 고라신과 벳새다 마을에서였습니다(마 11:20). 그곳에서 예수님은 가장 많은 권능을 베푸셨지만,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실패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기에 예수님은 감사하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두 번째 감사는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있을 때였습니다(요 11:41). 깊은 슬픔과 절망이 사람들을 감싸고 있을 때, 예수님은 오히려 감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가 낙담하고 좌절할 때도, 여호와 하나님은 일하시고 그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사실을 아셨기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 11:40-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때문에" 감사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으로 감사하는 존재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돌보심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고 순종할 말씀을 주신 것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산 예배, 산 제물 되는 것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것은,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드려 "예배의 산제사"를 드리고, 시간과 물질을 드려 "봉사의 산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로 드려지는 예배와 봉사의 산 제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은 두 종류의 감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나 남긴 기적은, 한 소년의 정성어린 "감사의 드림"과 예수님의 축사, 즉 "감사의 기도"(요 6:11)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메마른 펌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 바가지의 물을 부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여는 키입니다. 성경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고 약속하십니다.
둘째,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는 것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골로새서 3장 21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골 3:21). 여호와 하나님은 부모와 어른들을 통해 생명을 탄생시키고, 유지 보존하십니다. 그러므로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것은 생명창조의 질서를 깨는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가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분명 가인과 아벨에게 예배에 대해서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불순종과 불공경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잘못된 예배를 드리고, 형제를 살인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며 사는 길입니다. 성경은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고 선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효"정신과 가족제도는 우리의 소중한 유산인 것입니다.
셋째, 같이 사는 이웃에게 감사하며 사는 것
이웃에게 감사하는 것은 그 이웃을 통해 역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주셔서 구원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불신 이웃이 있다면, 이는 전도의 상급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이 붙여주신 것입니다.
또한 나를 괴롭히는 이웃이 있다면, 그는 나의 인격과 삶을 연단하는 "가시"(고후 12:7)인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다윗의 풍성한 시편이 왕궁이 아니라 광야에서 연단받을 때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이웃을 향한 원망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원망입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출 16:8)라고 말합니다.
넷째, 어려움 당하는 이들을 돕는 것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제의 특징은 모든 이들이 함께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은 감사절기 때 어려움 당하는 이들과 함께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신 16:11).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은 약한 자들을 위로하고 도우라는 뜻입니다. 도움은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할 때 해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어려운 중에서도 자원하여 참된 도움과 사랑을 전하였습니다(고후 8:2-3). 우리도 이처럼 현재 우리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 주변의 수많은 실업자와 소년 소녀 가장 그리고 독거 노인들에게 참된 도움과 사랑을 전해야겠습니다.
다섯째, 자연을 잘 돌보는 것
자연은 인간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은혜의 증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난 일년간 자연을 통해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며 돌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연을 파괴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면 자연을 보존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도록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잠 12:10)고 말합니다.
감사는 은혜를 받는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마음과 뜻과 힘을 모아 감사와 존귀와 찬양을 돌려드립시다. 뿐만 아니라 이웃 사람들과 자연들에게도 감사합시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 "감사"가 넘치므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마음껏 누리면서 복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예수님의 감사는 우리가 누구에게, 무엇을, 왜 감사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이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두 번 나옵니다. 첫 번째 감사는 고라신과 벳새다 마을에서였습니다(마 11:20). 그곳에서 예수님은 가장 많은 권능을 베푸셨지만,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실패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기에 예수님은 감사하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두 번째 감사는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있을 때였습니다(요 11:41). 깊은 슬픔과 절망이 사람들을 감싸고 있을 때, 예수님은 오히려 감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가 낙담하고 좌절할 때도, 여호와 하나님은 일하시고 그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사실을 아셨기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 11:40-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때문에" 감사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으로 감사하는 존재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돌보심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고 순종할 말씀을 주신 것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산 예배, 산 제물 되는 것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것은,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드려 "예배의 산제사"를 드리고, 시간과 물질을 드려 "봉사의 산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로 드려지는 예배와 봉사의 산 제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은 두 종류의 감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나 남긴 기적은, 한 소년의 정성어린 "감사의 드림"과 예수님의 축사, 즉 "감사의 기도"(요 6:11)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메마른 펌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 바가지의 물을 부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여는 키입니다. 성경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고 약속하십니다.
둘째,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는 것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골로새서 3장 21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골 3:21). 여호와 하나님은 부모와 어른들을 통해 생명을 탄생시키고, 유지 보존하십니다. 그러므로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것은 생명창조의 질서를 깨는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가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분명 가인과 아벨에게 예배에 대해서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불순종과 불공경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잘못된 예배를 드리고, 형제를 살인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며 사는 길입니다. 성경은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고 선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효"정신과 가족제도는 우리의 소중한 유산인 것입니다.
셋째, 같이 사는 이웃에게 감사하며 사는 것
이웃에게 감사하는 것은 그 이웃을 통해 역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주셔서 구원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불신 이웃이 있다면, 이는 전도의 상급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이 붙여주신 것입니다.
또한 나를 괴롭히는 이웃이 있다면, 그는 나의 인격과 삶을 연단하는 "가시"(고후 12:7)인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다윗의 풍성한 시편이 왕궁이 아니라 광야에서 연단받을 때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이웃을 향한 원망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원망입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출 16:8)라고 말합니다.
넷째, 어려움 당하는 이들을 돕는 것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제의 특징은 모든 이들이 함께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은 감사절기 때 어려움 당하는 이들과 함께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신 16:11).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은 약한 자들을 위로하고 도우라는 뜻입니다. 도움은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할 때 해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어려운 중에서도 자원하여 참된 도움과 사랑을 전하였습니다(고후 8:2-3). 우리도 이처럼 현재 우리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 주변의 수많은 실업자와 소년 소녀 가장 그리고 독거 노인들에게 참된 도움과 사랑을 전해야겠습니다.
다섯째, 자연을 잘 돌보는 것
자연은 인간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은혜의 증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난 일년간 자연을 통해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며 돌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연을 파괴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면 자연을 보존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도록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잠 12:10)고 말합니다.
감사는 은혜를 받는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마음과 뜻과 힘을 모아 감사와 존귀와 찬양을 돌려드립시다. 뿐만 아니라 이웃 사람들과 자연들에게도 감사합시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 "감사"가 넘치므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마음껏 누리면서 복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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