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여러분 감사하며 삽시다
본문
미국의 한 부흥사가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뚱뚱한 흑인 여자가 아이를 다섯이나 데리고 올라와서 옆에 앉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부흥사를 자꾸 밀어내는데 거기에다 아이들은 떠들고 냄새는 나고 흑인 여인의 고함소리는 어찌나 크든지 견디기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폭발 직전이었는데 갑자기 그의 마음에 하나의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이럴 때에도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부흥사가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감사의 조건을 찾아 표현하기를 여호와 하나님 이런 여자가 내 마누라가 아니라서 감사합니다.
잠 17:0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존 헨리 조엣.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예방주사와 같고 항생제와 같고 방부제와 같다.
우리에게 찾아드는 모든 질병이나 불행 고통 슬픔 괴로움 등 이런 것들을 예방하는 것은 현실의 생활에 잘 순응하면서 늘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금년 한 해를 돌아보니 누가 뭐라 해도 우리 김해삼일교회가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크게 축복을 받은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보다 더 좋은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순간순간마다 축복을 심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축복의 열매를 거두기를 축원합니다.
1.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때부터 나타납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신앙인의 특징은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신앙인으로 성숙하지 못한 무기력한 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감사라는 단어가 대단히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 동사로 쓰인 것만 해도 무려 142번이나 됩니다.
그리고 감사라는 단어의 의미가 신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 기뻐한다는 말로 표현되는데 이는 감사와 기쁨이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동시에 기독교는 감사를 신앙생활의 중요한 강조점으로 여기는 종교라는 뜻입니다. 감사를 생활화하지 못한다면 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는 상태이고 자녀들이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모르는 때는 아직도 부모님을 잘 모르는 때입니다.
반면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할 때는 부모님을 바로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다면 이는 진정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또한 감사의 표현은 예배와 찬양과 예물로 나타나며 은혜를 깨달으면 깨달은 그때로부터 믿음의 눈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 즐거이 감사하는 마음은 찬양과 경배 그리고 예물을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는 기쁨으로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타락한 자녀는 부모님의 생신 일을 잊어버리고 살며 또 명절이 되어도 부모님을 찾지 않으나 바른 자녀는 부모님의 생신이나 명절이 되면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서 고생스런 여행을 준비하면서 고향으로 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깨닫고 나면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주일날 여호와 하나님께 나와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나 깨닫지 못하면 주일날 육신의 일을 위해서 세상으로 열심히 나가게 됩니다.
이 시간 주님 앞에서 신령으로 진정으로 예배를 드림이 정녕 감사의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일본의 어느 무신론 교수가 성경은 거짓말이라고 몹시 비난을 해왔는데 한번은 학교의 총장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총장은 그 교수에게 성경을 몇 번이나 읽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무신론 교수는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고 솔직히 대답을 하자 총장은 남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비판하는 것은 학자의 자세가 아니다 라고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이 교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에다 오기(傲氣)가 나서 성경을 한번 차근차근히 읽어보리라 결심을 하고 먼저 복음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서를 읽는 중 예수님께서 눈 먼 자를 보게 해주고 벙어리를 말하게 해주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민중들을 위해 많은 놀라운 일들 행하심을 감명 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마운 예수님을 재판하는 현장에서 예수님께 은혜를 입은 바로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아우성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수는 이 사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처참하게 피 흘려 죽어가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이다(눅 23:34) 라고 기도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무신론 교수는 그 부분을 며칠을 반복하여 읽다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어야 했던 것은 인간들의 죄를 도말하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었음을 깨닫고 감사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는 이렇게 예수님을 잘 믿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를 누리며 살지만 한편으로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며 살아가는 인간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성경에는 감사하라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인생은 모든 일 즉 작은 일이나 큰일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감사를 헤아리고 살아야 하며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의 생활이 왜 나타나지 못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의 생활하기를 원하시는데 비해 우리는 그렇게 감사가 뒷받침되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실 인생이 존귀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고 또한 잘못 된 일에 대하여는 회개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감사의 생활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이는 구원의 은혜를 등한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히 02:0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깨달음이 있는 인생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인생이라면 이는 대단히 존귀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보석도 그 진가를 모르면 의미가 없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그 큰 구원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면 이 또한 인생의 가치를 상실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난 이후부터 나타나는 감사야말로 성도의 참된 믿음의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인생의 삶을 살면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내가 잘나고 능력이 있어서 그 많은 질병과 사고와 어려움을 당치 않고 사는 것이 아님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이며 이것을 온전히 깨달을 때 믿음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롬 01:21 여호와 하나님을 알되 여호와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5 이는 저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이 자신과 교회와 이웃에게 얼마나 유익이 되는지를 알고 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계속 감사가 있는 사람에게 은혜와 축복을 더 많이 주십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열 명의 나병 환자 중 이방인 한 사람이 고침을 받고 주님께 사례할 때에 어떤 은혜와 축복이 임했습니까(눅 17:11~19)
그것은 아홉 사람이 전혀 모르는 영혼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감사한 자의 결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축복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벽에 공을 던지면 돌아오듯이 산에서 외치면 메아리가 돌아오듯이 여호와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는 사람에게는 그 감사가 은혜와 축복으로 변하여 되돌아옵니다.
이웃에 대한 감사는 친절과 사랑으로 돌아오며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은혜와 축복으로 돌아오되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면 마음속에 있는 모든 짜증과 원망과 불평불만이 사라지고, 감사하면 환난 날에 건짐을 받고, 소산물에 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고, 자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기까지 도와주신 에벤에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왔으며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은총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구원의 은혜를 등한히 여기지 말고 정성을 기울여 믿음의 생활을 하십시다.
3.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신앙 자세와 감사의 표현을 살펴보겠습니다.
①무엇보다 나의 나 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인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나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믿음으로 충성하며 감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을 하라고 나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고 교회에서 각종 사명의 직분을 맡겨 주셨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내가 건강하기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님의 일을 하라고 건강을 주신 것이고 또 주님의 일을 하라고 내게 지혜와 재능과 물질을 주신 것이지 내게 지혜와 재능과 물질이 있어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②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으면 그 후에 보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병에 걸리면 신경이 죽어서 감각이 사라지기 때문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듯이 영적 질병에 걸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한없이 큰 은혜와 사랑을 역시 느낄 줄 모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내게 베풀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으로 느끼고 영으로 느끼면서 보답할 줄 아는 믿음의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시 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이 시간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를 묻는 말씀 앞에 나는 진정으로 어떠한 감사의 표현을 할 것인지를 헤아려 봅시다.
①먼저 정성으로 내 몸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입니다.
롬 0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라.
②다음으로 정성으로 내 입술을 열어 찬송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골 0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히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③마지막으로 정성으로 예물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시 50:0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레 01:0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시 116: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명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늘 배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만족은 감사를 낳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산다면 우리의 삶이 이토록 메마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무 큰일에만 감사하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 속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빌 04:0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
살전 0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영국 트랜취 감독이 쓴 불평과 감사라는 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나아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나아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만 빛만 비춰도 여호와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운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다지 피곤하고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는지 하면서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나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나를 지켜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물을 보는 차원에 따라 평가하는 방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탉이 물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자칭 인도주의자가 말하기를 저렇게 고개를 올렸다 숙였다 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측은한 일이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현실주의자가 이를 받아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 아니겠소. 목을 쳐들지 않으면 그나마 한 방울 물이라도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습니까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가만히 듣고 있던 크리스챤이 두 분의 말씀이 맞기는 하지만 저 수탉은 한 모금 물을 마실 때마다 하늘 쳐다보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행복의 가치 기준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질적인 것, 명예적인 것, 또는 정신적인 것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 어떤 다른 무엇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나름대로 생각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처한 현실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그 생활에 적응하면서,
나보다 더 낮은 사람의 환경을 비교하여 여호와 하나님! 이만큼이라도 인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질 때 여러분의 행복에 대한 평가 기준이 또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부흥사를 자꾸 밀어내는데 거기에다 아이들은 떠들고 냄새는 나고 흑인 여인의 고함소리는 어찌나 크든지 견디기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폭발 직전이었는데 갑자기 그의 마음에 하나의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이럴 때에도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부흥사가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감사의 조건을 찾아 표현하기를 여호와 하나님 이런 여자가 내 마누라가 아니라서 감사합니다.
잠 17:0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존 헨리 조엣.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예방주사와 같고 항생제와 같고 방부제와 같다.
우리에게 찾아드는 모든 질병이나 불행 고통 슬픔 괴로움 등 이런 것들을 예방하는 것은 현실의 생활에 잘 순응하면서 늘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금년 한 해를 돌아보니 누가 뭐라 해도 우리 김해삼일교회가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크게 축복을 받은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보다 더 좋은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순간순간마다 축복을 심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축복의 열매를 거두기를 축원합니다.
1.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때부터 나타납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신앙인의 특징은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신앙인으로 성숙하지 못한 무기력한 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감사라는 단어가 대단히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 동사로 쓰인 것만 해도 무려 142번이나 됩니다.
그리고 감사라는 단어의 의미가 신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 기뻐한다는 말로 표현되는데 이는 감사와 기쁨이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동시에 기독교는 감사를 신앙생활의 중요한 강조점으로 여기는 종교라는 뜻입니다. 감사를 생활화하지 못한다면 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는 상태이고 자녀들이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모르는 때는 아직도 부모님을 잘 모르는 때입니다.
반면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할 때는 부모님을 바로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다면 이는 진정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또한 감사의 표현은 예배와 찬양과 예물로 나타나며 은혜를 깨달으면 깨달은 그때로부터 믿음의 눈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 즐거이 감사하는 마음은 찬양과 경배 그리고 예물을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는 기쁨으로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타락한 자녀는 부모님의 생신 일을 잊어버리고 살며 또 명절이 되어도 부모님을 찾지 않으나 바른 자녀는 부모님의 생신이나 명절이 되면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서 고생스런 여행을 준비하면서 고향으로 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깨닫고 나면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주일날 여호와 하나님께 나와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나 깨닫지 못하면 주일날 육신의 일을 위해서 세상으로 열심히 나가게 됩니다.
이 시간 주님 앞에서 신령으로 진정으로 예배를 드림이 정녕 감사의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일본의 어느 무신론 교수가 성경은 거짓말이라고 몹시 비난을 해왔는데 한번은 학교의 총장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총장은 그 교수에게 성경을 몇 번이나 읽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무신론 교수는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고 솔직히 대답을 하자 총장은 남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비판하는 것은 학자의 자세가 아니다 라고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이 교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에다 오기(傲氣)가 나서 성경을 한번 차근차근히 읽어보리라 결심을 하고 먼저 복음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서를 읽는 중 예수님께서 눈 먼 자를 보게 해주고 벙어리를 말하게 해주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민중들을 위해 많은 놀라운 일들 행하심을 감명 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마운 예수님을 재판하는 현장에서 예수님께 은혜를 입은 바로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아우성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수는 이 사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처참하게 피 흘려 죽어가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이다(눅 23:34) 라고 기도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무신론 교수는 그 부분을 며칠을 반복하여 읽다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어야 했던 것은 인간들의 죄를 도말하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었음을 깨닫고 감사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는 이렇게 예수님을 잘 믿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를 누리며 살지만 한편으로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며 살아가는 인간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성경에는 감사하라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인생은 모든 일 즉 작은 일이나 큰일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감사를 헤아리고 살아야 하며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의 생활이 왜 나타나지 못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의 생활하기를 원하시는데 비해 우리는 그렇게 감사가 뒷받침되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실 인생이 존귀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고 또한 잘못 된 일에 대하여는 회개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감사의 생활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이는 구원의 은혜를 등한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히 02:0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깨달음이 있는 인생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인생이라면 이는 대단히 존귀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보석도 그 진가를 모르면 의미가 없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그 큰 구원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면 이 또한 인생의 가치를 상실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난 이후부터 나타나는 감사야말로 성도의 참된 믿음의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인생의 삶을 살면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내가 잘나고 능력이 있어서 그 많은 질병과 사고와 어려움을 당치 않고 사는 것이 아님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이며 이것을 온전히 깨달을 때 믿음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롬 01:21 여호와 하나님을 알되 여호와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5 이는 저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이 자신과 교회와 이웃에게 얼마나 유익이 되는지를 알고 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계속 감사가 있는 사람에게 은혜와 축복을 더 많이 주십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열 명의 나병 환자 중 이방인 한 사람이 고침을 받고 주님께 사례할 때에 어떤 은혜와 축복이 임했습니까(눅 17:11~19)
그것은 아홉 사람이 전혀 모르는 영혼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감사한 자의 결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축복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벽에 공을 던지면 돌아오듯이 산에서 외치면 메아리가 돌아오듯이 여호와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는 사람에게는 그 감사가 은혜와 축복으로 변하여 되돌아옵니다.
이웃에 대한 감사는 친절과 사랑으로 돌아오며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은혜와 축복으로 돌아오되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면 마음속에 있는 모든 짜증과 원망과 불평불만이 사라지고, 감사하면 환난 날에 건짐을 받고, 소산물에 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고, 자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기까지 도와주신 에벤에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왔으며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은총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구원의 은혜를 등한히 여기지 말고 정성을 기울여 믿음의 생활을 하십시다.
3.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신앙 자세와 감사의 표현을 살펴보겠습니다.
①무엇보다 나의 나 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인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나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믿음으로 충성하며 감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을 하라고 나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고 교회에서 각종 사명의 직분을 맡겨 주셨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내가 건강하기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님의 일을 하라고 건강을 주신 것이고 또 주님의 일을 하라고 내게 지혜와 재능과 물질을 주신 것이지 내게 지혜와 재능과 물질이 있어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②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으면 그 후에 보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병에 걸리면 신경이 죽어서 감각이 사라지기 때문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듯이 영적 질병에 걸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한없이 큰 은혜와 사랑을 역시 느낄 줄 모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내게 베풀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으로 느끼고 영으로 느끼면서 보답할 줄 아는 믿음의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시 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이 시간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를 묻는 말씀 앞에 나는 진정으로 어떠한 감사의 표현을 할 것인지를 헤아려 봅시다.
①먼저 정성으로 내 몸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입니다.
롬 0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라.
②다음으로 정성으로 내 입술을 열어 찬송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골 0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히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③마지막으로 정성으로 예물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시 50:0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레 01:0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시 116: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명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늘 배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만족은 감사를 낳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산다면 우리의 삶이 이토록 메마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무 큰일에만 감사하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 속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빌 04:0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
살전 0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영국 트랜취 감독이 쓴 불평과 감사라는 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나아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나아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만 빛만 비춰도 여호와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운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다지 피곤하고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는지 하면서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나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나를 지켜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물을 보는 차원에 따라 평가하는 방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탉이 물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자칭 인도주의자가 말하기를 저렇게 고개를 올렸다 숙였다 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측은한 일이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현실주의자가 이를 받아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 아니겠소. 목을 쳐들지 않으면 그나마 한 방울 물이라도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습니까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가만히 듣고 있던 크리스챤이 두 분의 말씀이 맞기는 하지만 저 수탉은 한 모금 물을 마실 때마다 하늘 쳐다보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행복의 가치 기준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질적인 것, 명예적인 것, 또는 정신적인 것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 어떤 다른 무엇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나름대로 생각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처한 현실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그 생활에 적응하면서,
나보다 더 낮은 사람의 환경을 비교하여 여호와 하나님! 이만큼이라도 인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질 때 여러분의 행복에 대한 평가 기준이 또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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