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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쉬지 않고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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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8월이 가장 더운 달입니다. 요사이 무척 더워서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날씨가 더우면 짜증을 내고 불평하기가 쉬습니다. 그러나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삽시다. 이틀 전 외국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를 만날 기회에 선교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 나라는 1년 내내 지금 우리나라 7-8월 기온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감사할 일입니다
5대 독자의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3가지를 항상 교훈 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밥투정하지 말아라 음식이 얼마나 귀한 것인데 밥투정을 하느냐 이 아버지는 밥투정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아니했습니다. 음식을 남기지 말아라 네가 남긴 음식을 먹을 사람이 없고 음식을 버리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가 되기 때문에 남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름에 더웁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 밥을 먹고사는 사람은 더웁다는 말을 못하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더웁지 않고는 농사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워야 농사가 됩니다. 더위가 물러가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면 식물의 성장이 멈춥니다. 더위가 며칠 간 더 계속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서 흉년이 들기도 하고 풍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농사는 날씨가 더울수록 좋은 것이고 더위가 길수록 좋은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날씨가 덥다가 말복이 지나면 점점 서늘해집니다. 서늘해지면 식물의 성장은 멈추고 맙니다. 그때까지 벼가 많이 성장했으면 풍년이 들고 그때까지 성장을 못했으면 흉년이 듭니다. 그러므로 밥을 먹고사는 사람은 덥다고 불평을 안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리 더워도 더웁다고 불평을 안 한답니다. 더위는 괴롭습니다. 그러나 이 더위와 함께 식물은 성장합니다. 이런 더위가 없으면 식물과 곡식이 자라지 못합니다. 논바닥의 물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만큼 따끈 따끈 해야 벼가 잘 자랍니다. 그러므로 더웁다고 너무 불평하지 맙시다. 금년 여름에는 불평하지 말고, 쉬지 않고 감사하면서 여름을 지냅시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어느 목사가 이발을 하려고 이발소에 갔습니다. 이발사는 목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아주 정성껏 이발을 해 드렸습니다. 이발이 끝나고 목사는 감사합니다. 얼마지요 하고 이발료를 내려고 했더니 이발사가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일하시는 목사님을 이발해 드렸으니 여호와 하나님께 봉사했다고 생각하고 목사님에게 이발료는 절대로 받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주겠다고 해도 극구 사양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나왔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감사편지와 함께 꽃다발 하나가 이 이발소에 배달되었습니다. 목사는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며칠후 한 순경이 와서 이발을 했습니다. 이발을 한 다음에 얼마 드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이발사는 말하기를 저는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시는 분을 이발해 드렸으니 지역사회에 봉사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발료는 받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순경은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감사편지와 함께 도너츠 몇 개가 이 이발소에 전달되었습니다.
며칠 뒤 이번에는 주의원 한 분이 이발을 하러 왔습니다. 이발을 끝낸 후 얼마 드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올시다 저는 국가를 위해서 일하시는 분을 이발해 드렸으니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고 생각하고 이발료는 안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이발사는 문을 열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 명의 주의원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사람의 사람된 품격을 말해주는 척도입니다. 어떤 일에 감사하고 얼마나 감사하며 얼마나 진실하게 감사하는가 그것이 그 사람의 품격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이나 실제로 감사하면서 사십니까 지난번 신안회보에서 정정자 집사님이 쓴 "주님 적어도 하루에 5번은 감사하게 하소서. 기쁜 일이 있을 때 기뻐서 감사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슬픔 중에 감사하고 아직도 용서를 못해 미움으로 남아있는 자를 사랑하게 하소서"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기뻐서 감사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슬픔 중에 감사하는 사람은 하루에 여러 번 감사할 수 있습니다.
무슨 굉장한 것을 받아야 고마운 것이 아닙니다. 작은 일에도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는 그 마음이 바로 신앙이요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세상이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교인이고,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입니다. 모든 일이 생각할수록 감사합니다. 할 수 있는 데로 추상적인 감사보다는 구체적인 감사를 하는 것이 옳습니다. 처세적 감사는 심리학적으로 볼 때 아첨하는 일입니다 감사는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러해서 감사합니다. 이러이러하니 감사합니다. 확실해야 좋습니다.
오늘 읽은 신약의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가진 바 감사의 마음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쉬지 않니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울의 마음 속에 있는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께 하는 감사였습니다. 더욱이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하는 감사였습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저녁에 잠을 자려고 할 때 어머니가 이 아이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잠자리기도를 드리는데,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공부 잘하게 해주시고, 건강하게 해주시고, 지혜롭게 해주시고, 순종하게 해주시고, 믿음을 강하게 해주시고, 성령 충만하게 해주시고, 무엇도 해주시고 해주시고, 그리고 나서 잠 잘 자게 해주시고, 꿈자리고 좋게 해주시고 - 아멘
기도가 끝난 다음에 이 아이가 교회학교에서 배운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너 왜 기도한 다음에 노래를 부르느냐 하고 물었더니 이 아이가 잠자리 기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너무 많은 숙제를 드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걱정을 끼친 게 죄송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감사의 노래를 불렀어요.
참으로 깨끗한 마음입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잔뜩 걱정거리만 안겨드리는 것이 되기 쉽습니다. 알고 보면 소원이라는 것은 사실 내 마음속에 있는 근심이지 감사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쉬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쉬지 않고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는 곧 행복한 마음이고 기쁨입니다. 사도바울의 마음 속에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바울만이 가지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아주 비밀한 기쁨이 있어서 쉬지 않고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13절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 하느니라"
감사의 가장 핵심 되는 이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 시간이 목회자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은 모든 성도들에게 중요한 시간인데 목회자에게는 더욱 중요합니다. 목회자에게는 예배시간에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가장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분명히 저는 지금 사람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식을 말하기도 하고 사람이 말하는 유머도 구사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저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강단에 설 때 어떻게 하면 교인들의 마음을 열게할까를 생각합니다. 지금 성도들의 마음이 모두 닫혀있습니다. 근심과 걱정과 세상일 때문에 닫혀 있는데 닫혀있는 마음들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흩어져 있는 것을 모아야 합니다. 세속으로 기울어진 마음들을 신령한 마음으로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활짝 열고 깨끗한 마음을 갖게 한 후에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할까 순수하게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이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람의 말로 들어서는 안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지식이 있느니 없느니, 책을 봤느니 안 봤느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설교를 강연이나 교양강좌를 듣는 것쯤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너희가 우리의 말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쉬지 않고 감사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쉽게 바르게 분명하게 전할 수 있을까가 간절한 열망입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아니하고 사람의 말로 듣는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듣는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설교자는 이보다 더 즐겁고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에 되어진 일을 보면 베드로는 분명히 베드로의 말로 설교했습니다. 자기 말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중간에 통역을 해줌으로 해서 거기에 모여든 15개 나라 이상의 각 나라 사람들이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다들 자기 나라의 말로 들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방언은 엄격하게 말하면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사이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통역을 해 주셔서 뜻을 알게 해주시고 마음 문을 열어 주시고 고정관념을 버리게 해 주시고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다 물리쳐 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전달되도록 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일단 사람을 통하여, 사람의 입을 통하여 사람의 언어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로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설교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분명히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고 사람의 말을 하시고 사람의 모양을 가지셨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고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인간적으로 볼 때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사람들 앞에 3년 동안 병 고치는 사람이요 핍박받는 사람이요 빌라도의 법정에 서서 재판 받는 사람이요 십자가에 달려 죽는 사람이셨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생애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제가 여러분 앞에 설교하는 것처럼 사람의 말로 하셨습니다. 많은 비유를 쓰셨습니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전부가 이야기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이야기, 집 나간 아들의 이야기, 악한 농부이야기, 강도이야기, 세리에 관한 이야기, 음란한 여자 이야기, 천국에 관한 이야기,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그 예수님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4절에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인간 예수님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인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말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바로 이런 관계, 이런 은총적 관계를 바울은 쉬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미국에서 어느 돈 많은 부자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양조장을 건축했습니다. 술 만드는 큰 공장을 지어놓고 준공식을 할 때,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를 초청했습니다. 와서 설교해 주시고 축복 기도해주세요 했습니다. 온다고는 했지만 너무나 바쁜 분이어서 참으로 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무디가 이 양조장 준공식에 왔습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이 양조장 당장 망하게 해 주세요. 이곳이 술을 만들어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장소가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집이 되게 해 주옵소서 - 아멘" 했습니다. 그런데 양조장 주인이 무디의 기도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서 당장 양조장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예배당을 건축했습니다. 그 부자가 무디의 기도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인간 무디의 말로 들은 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전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종의 말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때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도들께서도 설교를 들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십시오 그리고 쉬지 않고 감사하세요. 여호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진실로 진실로 감사한 일입니다. 감사 하십시요. 그리고 세상에 나가 살면서 더워도 쉬지 않고 감사하십시오. 더위를 즐기세요. 불평하지 마십시오.
14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예수님 안에서 유대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은 것과 같이 자기나라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았습니다. 고난은 핍박과 환난을 말합니다. 15절에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였고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유대사람들은 이방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그런 핍박을 바울과 전도자들이 받고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도 받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가 받은 핍박,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 행하던 그 핍박을 우리가 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고난과 핍박을 당한다는 것은 그들이 그 만큼 질 높은 신앙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심한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잘 믿고 섬기는 것을 생각할 때, 쉬지 않고 바울은 감사했습니다.
80여년 전 이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믿으면 어려운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4대 독자인 사람이 어느 도시에 장사하려고 갔다가 거기서 선교사를 만나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믿으면 달라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상투를 자릅니다. 상투는 고유의 문화이지만 유교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상투를 잘랐습니다. 4대 독자가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상투를 딱 자르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버지가 화가 나 가지고 조상을 배반했다고 인정 사정없이 두들겨 팼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쫓아 내버렸습니다. 그래 한 달 동안을 집에 못 들어 왔습니다. 그래도 4대 독자인데 받아드려야지 아주 못 들어오게 할 수는 없어 들어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예수님을 잘 믿고, 차차 가족이 다 예수님을 믿고 감사했습니다. 그 손자가 현재 세계적인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2:7절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고, 골로새서 4:2절에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20절에 범사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항상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고, 빌립보서 1:3절에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3절에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후서 1:3절에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빌레몬서 1:4절에 내가 항상 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고린도전서 1:4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바울이 기록한 성경에 보면 이렇게 항상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쉬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오늘 읽은 구약의 말씀 시편 136편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이 26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감사의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감사는 그 만큼 소중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감사하면서 사는 감사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 더운 여름에 날마다 직장과 일터에서 수고하는 남편에게 감사합시다. 더운 여름에 날마다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서 수고하는 아내에게 감사합시다. 덥다고 짜증을 부리면 몸도 마음도 상합니다. 사람들은 피서 길에서도 신경질을 마구 발산해서 모처럼의 기분을 망치기도 합니다.
모든 일에 항상 감사합시다. 쉬지 않고 감사합시다.
사도바울처럼 실제로 쉬지 않고 감사하면서 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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