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파수꾼의 추수
본문
저희 교회에서는 매년 11월 첫째 주일을 그 해의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데 부활절에는 부활절 얼굴을 하고 추수감사절에는 감사절 얼굴을 합니다.
부활절 얼굴, 감사절 얼굴, 특별한 것이 아니고 기쁜 얼굴을 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얼굴을 찡그리고 "감사합니다" 하는 분은 없지요.
여러분, 감사절 얼굴을 하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을 보고 "내 얼굴이 감사절 얼굴 맞습니까" 물어 보세요.
1999년 감사절을 맞이하여 실제적인 감사에 능한 성도들이 되고 파수꾼의 추수를 드리는 성도들이 될 것을 부탁드립니다.
먼저 우리는 실제적인 감사에 능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전에 야구 중계방송 해설에 아주 능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해설하는 대로하기만 하면 백전백승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명 해설가였습니다. 어느 프로 야구팀에서 이 분을 감독으로 청빙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했던 것의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해설·이론과 실제는 다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무엇을 지도할 때 이론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학교의 교육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신학교를 졸업한 분들이 목회현장에 나가면 많은 실수를 하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시 배워나가야 하는 실정입니다.
오늘은 1999년 추수감사주일인데 감사를 주제로 한 설교를 하고 듣고 감사를 주제로 한 아름다운 찬양을 듣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꼭 필요한 것은 실제로 감사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식사를 앞에 놓고 감사 기도를 한 다음에 수저를 들고서는 반찬이 빈약하네, 국이 짜네 불평을 한다면 그것은 모순입니다. 감사기도가 무효가 됩니다.
감사절 예배를 드리면서 감사란 무엇인가, 왜 감사해야 하는가, 성경에는 감사에 대해 어떤 말씀들이 있는가, 예수님은 감사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나, 감사의 예화들을 열심히 전하고 들었습니다.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교회 문을 나설 때 목사와 악수를 하면서 "목사님,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했습니다.
교회 밖을 나서자 말자 하늘을 보면서 "이거 오늘, 날이 왜 이렇게 흐려!", 주차장에 이르러서는 "이거 차들이 왜 이렇게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우리 교회에는 초보운전자들만 모였나!" 불평한다면 그 설교와 찬양, 무익한 것이 됩니다.
작년에는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두 주일 동안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합니다" 하자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입니다. 좋은 일을 만날 때만 감사하는 것은 평범한 감사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는 것이 비범한 감사입니다.
올해는 감사의 안경을 쓰고 일상생활 속에서 감사의 제목들을 풍성하게 발견하면서 보내자는 것이 강조되었습니다. 모두 실제적인 감사에 강한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감사의 안경을 쓰셨습니까
추수감사주일이라고 해서 오늘은 감사의 안경을 꼭 끼고, 오늘이 지나면 감사의 안경을 얼른 벗으시면 안됩니다.
11월과 12월, 지나온 일들을 돌아 볼 때인데 꼭 감사의 안경을 쓰고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1999년의 모두가 흐뭇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나의 삶에서 부족했던 것, 허물, 얼룩진 것들이 감사라는 좋은 세제(洗劑)로 깨끗하게 닦여집니다.
상처가 감사라는 치료제 덕분에 아물고 새살이 돋습니다. 흉터도 사라질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1999년이 이렇게 된다는 것은 1990년 대의 10년이 모두 아름답고 흐뭇해지고 즐거운 추억이 되고 나가서 1900년 대가 아름다워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1월과 12월, 내년 설계를 하는데 감사의 안경을 꼭 쓰고서 내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야 2000년의 모습이 과장되지 않고 축소되지도 않고 제대로 보이고 그 가운데 에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요즘 새 해 설계, 새 세기의 일들 예측, 새 천년에 대한 소망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천 년, 새 세기, 새 해를 주신 것을 먼저 감사하고서 그 다음에 설계하고 예측하고 이야기를 나눠야합니다.
내년을 내다볼 때 기대되는 것들도 많지만 불안한 것들이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국가적으로,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얼마나 불안합니까
교회는 내년이 교육관이 준공되어 새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소망의 해입니다. 가슴이 두근거려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함으로 내년을 내다보면 불안이 사라지고 소망이 마음을 채우는 것을 체험할 수 있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것입니다. 내년에는 주님이 더 가까이에서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담임목사는 이번 주간에 교회의 올 일년을 돌아보고 내년 목회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갖는데 감사의 원칙 하에서 이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이제 수능고사를 꼭 열흘 앞두고 있는 수험생들과 그 부모님들,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하십니까
그런데 감사함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자녀가 이렇게 성장해서 시험을 치게 된 것 대견하게 여기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재수하시는 분들, 다시 한 번 도전하는 마음을 주시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감사하면 불안한 것, 초조한 것이 가라앉습니다. 실수를 하지 않게 됩니다.
다음에는 파수꾼의 추수에 대해 살펴봅니다.
오늘 본문의 6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파수꾼을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작은 파수꾼들이 되어야합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 신약시대의 사도들, 이 시대의 교역자들은 전방에 나가 있는 파수꾼, 넓은 곳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성도 한 분 한 분은 내 신앙의 파수꾼, 자기 삶의 파수꾼, 가정의 파수꾼, 직장의 파수꾼, 지역사회의 파수꾼입니다.
파수꾼은 주야로 잠잠해서는 안됩니다. 외쳐야합니다.
오늘 새벽 남선교회 월례조찬기도회에서 사도행전 5장 20절의 말씀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하니" 한 말을 본문으로 해서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외쳐야 할 사람이 보고들은 것, 체험한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외치지 않는 것은 죄악이고 직무유기이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직무유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세 많은 분들은 예전에 야경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야경꾼들이 밤을 새우며 골목골목을 돌면서 지켰습니다.
이 야경꾼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딱딱이라고 막대기 둘을 가지고 딱, 딱, 치면서 야경을 돌았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도적은 숨거나 도망가느라고 도적질을 하지 못했고, 선량한 사람들은 안심을 했습니다.
그 딱딱이 소리는 밤늦게 수험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 나만 밤새고 있는 것이 아니로구나!'
파수꾼 된 우리가 외치는 소리, 기도하는 소리는 세상 악은 숨게 하고 사람들은 안심을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일을 합니다.
특별히 기도하는 파수꾼이 되어야합니다.
6절 하반절의 "너희 여호와를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 저희와 이런 약속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추수한 곡식을 그들 자신이 먹고 마시게 하겠다고 8절과 9절에서 약속하십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인데 이제는 농경사회가 아니니까 "추수"자를 빼고 그냥 감사절로 지켜야 한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추수"라는 말은 농작물의 수확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지난 1년 내가 거둔 모든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했는데 거둔 것을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면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가져간다는 속담이 있는데 우리는 그저 재주 부리는 곰이 되고 맙니다.
요즘 농촌에 농작물 도적이 많습니다. 차량과 인부들까지 동원해서 밭의 농작물을 하루밤 사이에 거둬가 버리는 기업형 도적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특히 인삼 도적들이 많은데 인삼은 5, 6년 길러야 상품 가치가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 나오던 중국동포 한 분이 인삼밭 경비원으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심방을 가니까 "목사님, 이 인삼이 심은 지 5년이 되었거든요. 이제 도적들이 노릴 때가 되어서 주인이 신신당부를 하고 저도 매우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여러 해 애써 기른 인삼을 도적 맞으면 농부는 아예 농사 지을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농작물 도적은 아무 엄하게 다뤄야 한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파수꾼의 사명을 받은 것을 감사해야합니다.
사명을 받았다는 것이 감사한 일인데 그 가운데서도 기도하는 파수꾼의 사명을 받은 것은
더욱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파수꾼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벌을 주겠다고 에스겔서 3:18에서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
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겔 3:18)
우리를 기도하는 파수꾼으로 삼은 것을 감사하면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개인이 추수한 것을 지켜 주시고 교회가 애쓴 것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이 보람있게 하십니다.
각자가 기도하는 파수꾼이 될 때 1999년에 애써 가꾼 우리의 모든 것들을 지켜 주십니다.
여러분, 이 한 해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수고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그 수고의 결과를 남이 가져간다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내가 성실한 기도하는 파수꾼이 되면 그 수고가 헛된 것이 되지 않습니다.
저희 교회가 기도하는 좋은 파수꾼이 될 때 1990년 대에 저희 교회가 겪은 일들이 양질의 밑거름이 되어 목양교회가 물가의 나무처럼 싱싱하게 자라게 하십니다.
목양교회는 1960년 대 초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38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가운데 1990년대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음을 누구도 이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1990년대에 우리 교회가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2000년대에 힘차게 비상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영적인 파수꾼이라는 각성을 가지고 있으면 1900년대에 우리 민족이 겪은 많은 고난을 보람있게 하시며 수고한 것들의 열매를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우리 나라의 1900년대는 참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은 시기였습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가 모두가 현대에 들어와서는 격변과 진통을 겪고 있지만 한국만큼 1900년대에, 20세기에 다사다난한 일을 겪은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1910년에 반만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라를 이민족에게 빼앗기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1919년에는 우리 민족의 가장 자랑스러운 정신 유산이 되고 있는 삼일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1945년에는 해방과 분단 -, 환희와 비통을 동시에 겪었습니다.
1950년에는 동족상쟁의 가슴 아픈 일을 겪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4·19, 5·16, 얼마나 숨가쁘게 살아 왔습니까
우리 민족이 파수꾼, 특히 영적인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한다면 이 모든 체험이 합해서 새 세기의 선두에 서서 세계를 이끌어 갈 에너지가 됩니다.
파수꾼이라는 인식이 없거나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이런 일들은 약소민족이기 때문에 겪은 의미 없는 슬픈 일들이 됩니다.
우리를 파수꾼으로 세워 주신 것을 감사 드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해 우리의 수고가 헛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지난 10년 우리 교회가 겪은 것을 헛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지난 100년 간 우리 민족이 겪은 일들이 무서운 추진력이 되게 하십니다.
파수꾼으로 세워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사명을 잘 감당할 것을 다시 한 번 서원해서 이와 같은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절 얼굴, 감사절 얼굴, 특별한 것이 아니고 기쁜 얼굴을 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얼굴을 찡그리고 "감사합니다" 하는 분은 없지요.
여러분, 감사절 얼굴을 하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을 보고 "내 얼굴이 감사절 얼굴 맞습니까" 물어 보세요.
1999년 감사절을 맞이하여 실제적인 감사에 능한 성도들이 되고 파수꾼의 추수를 드리는 성도들이 될 것을 부탁드립니다.
먼저 우리는 실제적인 감사에 능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전에 야구 중계방송 해설에 아주 능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해설하는 대로하기만 하면 백전백승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명 해설가였습니다. 어느 프로 야구팀에서 이 분을 감독으로 청빙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했던 것의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해설·이론과 실제는 다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무엇을 지도할 때 이론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학교의 교육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신학교를 졸업한 분들이 목회현장에 나가면 많은 실수를 하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시 배워나가야 하는 실정입니다.
오늘은 1999년 추수감사주일인데 감사를 주제로 한 설교를 하고 듣고 감사를 주제로 한 아름다운 찬양을 듣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꼭 필요한 것은 실제로 감사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식사를 앞에 놓고 감사 기도를 한 다음에 수저를 들고서는 반찬이 빈약하네, 국이 짜네 불평을 한다면 그것은 모순입니다. 감사기도가 무효가 됩니다.
감사절 예배를 드리면서 감사란 무엇인가, 왜 감사해야 하는가, 성경에는 감사에 대해 어떤 말씀들이 있는가, 예수님은 감사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나, 감사의 예화들을 열심히 전하고 들었습니다.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교회 문을 나설 때 목사와 악수를 하면서 "목사님,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했습니다.
교회 밖을 나서자 말자 하늘을 보면서 "이거 오늘, 날이 왜 이렇게 흐려!", 주차장에 이르러서는 "이거 차들이 왜 이렇게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우리 교회에는 초보운전자들만 모였나!" 불평한다면 그 설교와 찬양, 무익한 것이 됩니다.
작년에는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두 주일 동안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합니다" 하자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입니다. 좋은 일을 만날 때만 감사하는 것은 평범한 감사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는 것이 비범한 감사입니다.
올해는 감사의 안경을 쓰고 일상생활 속에서 감사의 제목들을 풍성하게 발견하면서 보내자는 것이 강조되었습니다. 모두 실제적인 감사에 강한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감사의 안경을 쓰셨습니까
추수감사주일이라고 해서 오늘은 감사의 안경을 꼭 끼고, 오늘이 지나면 감사의 안경을 얼른 벗으시면 안됩니다.
11월과 12월, 지나온 일들을 돌아 볼 때인데 꼭 감사의 안경을 쓰고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1999년의 모두가 흐뭇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나의 삶에서 부족했던 것, 허물, 얼룩진 것들이 감사라는 좋은 세제(洗劑)로 깨끗하게 닦여집니다.
상처가 감사라는 치료제 덕분에 아물고 새살이 돋습니다. 흉터도 사라질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1999년이 이렇게 된다는 것은 1990년 대의 10년이 모두 아름답고 흐뭇해지고 즐거운 추억이 되고 나가서 1900년 대가 아름다워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1월과 12월, 내년 설계를 하는데 감사의 안경을 꼭 쓰고서 내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야 2000년의 모습이 과장되지 않고 축소되지도 않고 제대로 보이고 그 가운데 에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요즘 새 해 설계, 새 세기의 일들 예측, 새 천년에 대한 소망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천 년, 새 세기, 새 해를 주신 것을 먼저 감사하고서 그 다음에 설계하고 예측하고 이야기를 나눠야합니다.
내년을 내다볼 때 기대되는 것들도 많지만 불안한 것들이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국가적으로,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얼마나 불안합니까
교회는 내년이 교육관이 준공되어 새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소망의 해입니다. 가슴이 두근거려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함으로 내년을 내다보면 불안이 사라지고 소망이 마음을 채우는 것을 체험할 수 있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것입니다. 내년에는 주님이 더 가까이에서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담임목사는 이번 주간에 교회의 올 일년을 돌아보고 내년 목회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갖는데 감사의 원칙 하에서 이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이제 수능고사를 꼭 열흘 앞두고 있는 수험생들과 그 부모님들,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하십니까
그런데 감사함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자녀가 이렇게 성장해서 시험을 치게 된 것 대견하게 여기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재수하시는 분들, 다시 한 번 도전하는 마음을 주시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감사하면 불안한 것, 초조한 것이 가라앉습니다. 실수를 하지 않게 됩니다.
다음에는 파수꾼의 추수에 대해 살펴봅니다.
오늘 본문의 6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파수꾼을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작은 파수꾼들이 되어야합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 신약시대의 사도들, 이 시대의 교역자들은 전방에 나가 있는 파수꾼, 넓은 곳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성도 한 분 한 분은 내 신앙의 파수꾼, 자기 삶의 파수꾼, 가정의 파수꾼, 직장의 파수꾼, 지역사회의 파수꾼입니다.
파수꾼은 주야로 잠잠해서는 안됩니다. 외쳐야합니다.
오늘 새벽 남선교회 월례조찬기도회에서 사도행전 5장 20절의 말씀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하니" 한 말을 본문으로 해서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외쳐야 할 사람이 보고들은 것, 체험한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외치지 않는 것은 죄악이고 직무유기이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직무유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세 많은 분들은 예전에 야경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야경꾼들이 밤을 새우며 골목골목을 돌면서 지켰습니다.
이 야경꾼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딱딱이라고 막대기 둘을 가지고 딱, 딱, 치면서 야경을 돌았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도적은 숨거나 도망가느라고 도적질을 하지 못했고, 선량한 사람들은 안심을 했습니다.
그 딱딱이 소리는 밤늦게 수험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 나만 밤새고 있는 것이 아니로구나!'
파수꾼 된 우리가 외치는 소리, 기도하는 소리는 세상 악은 숨게 하고 사람들은 안심을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일을 합니다.
특별히 기도하는 파수꾼이 되어야합니다.
6절 하반절의 "너희 여호와를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 저희와 이런 약속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추수한 곡식을 그들 자신이 먹고 마시게 하겠다고 8절과 9절에서 약속하십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인데 이제는 농경사회가 아니니까 "추수"자를 빼고 그냥 감사절로 지켜야 한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추수"라는 말은 농작물의 수확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지난 1년 내가 거둔 모든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했는데 거둔 것을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면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가져간다는 속담이 있는데 우리는 그저 재주 부리는 곰이 되고 맙니다.
요즘 농촌에 농작물 도적이 많습니다. 차량과 인부들까지 동원해서 밭의 농작물을 하루밤 사이에 거둬가 버리는 기업형 도적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특히 인삼 도적들이 많은데 인삼은 5, 6년 길러야 상품 가치가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 나오던 중국동포 한 분이 인삼밭 경비원으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심방을 가니까 "목사님, 이 인삼이 심은 지 5년이 되었거든요. 이제 도적들이 노릴 때가 되어서 주인이 신신당부를 하고 저도 매우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여러 해 애써 기른 인삼을 도적 맞으면 농부는 아예 농사 지을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농작물 도적은 아무 엄하게 다뤄야 한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파수꾼의 사명을 받은 것을 감사해야합니다.
사명을 받았다는 것이 감사한 일인데 그 가운데서도 기도하는 파수꾼의 사명을 받은 것은
더욱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파수꾼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벌을 주겠다고 에스겔서 3:18에서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
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겔 3:18)
우리를 기도하는 파수꾼으로 삼은 것을 감사하면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개인이 추수한 것을 지켜 주시고 교회가 애쓴 것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이 보람있게 하십니다.
각자가 기도하는 파수꾼이 될 때 1999년에 애써 가꾼 우리의 모든 것들을 지켜 주십니다.
여러분, 이 한 해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수고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그 수고의 결과를 남이 가져간다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내가 성실한 기도하는 파수꾼이 되면 그 수고가 헛된 것이 되지 않습니다.
저희 교회가 기도하는 좋은 파수꾼이 될 때 1990년 대에 저희 교회가 겪은 일들이 양질의 밑거름이 되어 목양교회가 물가의 나무처럼 싱싱하게 자라게 하십니다.
목양교회는 1960년 대 초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38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가운데 1990년대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음을 누구도 이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1990년대에 우리 교회가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2000년대에 힘차게 비상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영적인 파수꾼이라는 각성을 가지고 있으면 1900년대에 우리 민족이 겪은 많은 고난을 보람있게 하시며 수고한 것들의 열매를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우리 나라의 1900년대는 참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은 시기였습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가 모두가 현대에 들어와서는 격변과 진통을 겪고 있지만 한국만큼 1900년대에, 20세기에 다사다난한 일을 겪은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1910년에 반만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라를 이민족에게 빼앗기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1919년에는 우리 민족의 가장 자랑스러운 정신 유산이 되고 있는 삼일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1945년에는 해방과 분단 -, 환희와 비통을 동시에 겪었습니다.
1950년에는 동족상쟁의 가슴 아픈 일을 겪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4·19, 5·16, 얼마나 숨가쁘게 살아 왔습니까
우리 민족이 파수꾼, 특히 영적인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한다면 이 모든 체험이 합해서 새 세기의 선두에 서서 세계를 이끌어 갈 에너지가 됩니다.
파수꾼이라는 인식이 없거나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이런 일들은 약소민족이기 때문에 겪은 의미 없는 슬픈 일들이 됩니다.
우리를 파수꾼으로 세워 주신 것을 감사 드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해 우리의 수고가 헛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지난 10년 우리 교회가 겪은 것을 헛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지난 100년 간 우리 민족이 겪은 일들이 무서운 추진력이 되게 하십니다.
파수꾼으로 세워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사명을 잘 감당할 것을 다시 한 번 서원해서 이와 같은 축복을 받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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