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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복되도다, 감사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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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명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사람의 됨됨이가 좋다는 말을 듣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인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머리 좋은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놀랍게도 응답자 중의 94%의 어머니가 사람의 됨됨이는 좀 떨어지더라도 머리 좋은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녀를 지식인간, 기술인간으로 만들어도 사랑과 감사의 따스한 가슴을 잃어버린 인간이 된다면 이 세상은 황폐하게 될 것이다.
김현승 시인은 그의 시 '눈물'에서 '눈물이 보석'이라고 노래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담긴 눈물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울컥 솟아오르는 눈물 한방울이 주님앞에는 물방울 다이몬드 보다 더욱 값진 것입니다.
본문은 유다 13대 왕이었던 히스기야가 그의 일생 중 가장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기를 원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히스기야의 거울 앞에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고 주님앞에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다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왕은 몸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병이 듭니다. 왕이라도 이 질병과 죽음의 고통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 땅의 어느 누구도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자 죤 칼빈은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 할만큼 그의 몸은 병약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일평생 여호와 하나님앞에 감사하는 자로 살아갔습니다. 평안함 가운데 드리는 감사도 귀하지만 고통가운데 드리는 감사는 더 복됩니다.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에 향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3절). 전심으로 기도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선하게 행한 것들을 기억하시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4절). 여호와 하나님께 응답받은 히스기야는 이제 남은 생애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살아갈 것인지를 여호와 하나님앞에 고백합니다.
1. 생명이 주의 손에 달려있다고 고백합니다(16절).
16절에는 히스기야의 생명관이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의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람을 살리고 일으키시는 능력이 주의 손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누가복음에 한 부자가 등장합니다. 지방의 토호세력이요, 실력있는 자였습니다. 농사가 잘되어 큰 창고를 짓고 "이제 아무 걱정 없이 내 인생을 경영해야지" 생각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너의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눅12:20).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지혜로운 이유는 이 생명의 주권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주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지식과 신앙의 여부에 따라 그 인생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종말관이 확실해야 합니다. "언제 나를 부르셔도 나는 기쁘게 주님께 가리라"는 고백은 믿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낳은 자녀들일지라도 그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살든지 죽든지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생사관(生死觀)이 분명할 때 우리는 어떤 환경가운데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세를 가진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계신 생사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겸손히 인정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환란 때에 우리의 가정과 자녀들이 주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고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생명과 가문과 더 나아가 이 나라의 흥망성쇠가 주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고백할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과 인생의 견고한 기초를 놓을 수가 있습니다.
2. 고통과 평안이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백합니다(17a절).
고통과 평안은 충돌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믿음안에서 이를 조화롭게 보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인생에서 뛰어넘을 수 없는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하심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한다는 제목으로 헌금을 드립니다. 범사(凡事/Always)는 고난과 평안, 성공과 실패 그 모두를 다 포함합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능력이 주님께 있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궁극적으로 평안을 주실 줄 믿고 감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업그레이드(Up-Grade)되어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직면한 고통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깊은 육신의 병이었습니다. 병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을까요 병든자는 고통에 잠못 이루면서 병에서 놓여 자유하기를 얼마나 갈구합니까 히스기야는 이 육신의 고통의 문제를 여호와 하나님께 의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응답하십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너의 눈물을 보았다. 너에게 15년의 수한을 더하리라"(5절).
 둘째,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략과 위협으로부터 늘 백성과 나라를 지켜야 하는 마음의 부담과 고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마음의 고통에도 응답하십니다. 히스기야왕의 지략과 책사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를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히스기야에게 평안을 주십니다(6절). 히스기야는 육신과 마음의 고통속에서도 평안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3. 사죄의 은총이 주께 있음을 고백합니다(17b절).
히스기야는 자신의 모든 죄를 주님이 등뒤로 던지셨다고 고백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주님의 등뒤로 던져버리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전능하신 주님앞에 드러나면 수치와 부끄러움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죄의 은총이 임하기만 하면 어떤 죄라 할지라도 주님은 등뒤로 던져버리시고 우리를 용서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바라보십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아버지는 실패한 후 돌아오는 아들을 향해 맨발로 뛰어가 품에 안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아들의 모든 실수, 실패, 불효를 등 뒤로 던져버리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죄인의 모습이 아닌 의인의 모습으로 받아 주십니다. 주님은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와 악행을 옮겨버리셨습니다(시103:12).
히스기야는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주님을 신뢰했습니다.
생(生)과 사(死), 고통과 평안, 죄사함의 주관자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고백한 히스기야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오직 산 자는 오늘날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한다"라고 말합니다(19절).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감사하는 인생이 되십시오. 살아있는 신앙인은 감사의 표현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면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감사한다면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우리가 살아있음에 사랑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의 호흡이 끊어지면 사랑할 수도,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감사는 산자의 것입니다. 사랑할 말이 있거든 지금 하십시오. 감사할 일이 있거든 지금 감사하십시오. 신앙의 성숙은 지금해야 할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는 것입니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우리 인생의 주관자 되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과거의 잘못을 등뒤로 던져버리시는 주님의 은혜를 바라봅시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 충만하여 감사로 터져 나오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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