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다니엘의 감사
본문
감사의 계절입니다.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입니다.
감사는 바로 겸손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를 꺼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말에 그치지 않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언제나 예쁘게 무릎을 꿇고 또 두 손을 모으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여호와 하나님, 오늘밤에 우리 가족 모두를 지켜 주셔서 잠 잘 자게 해 주세요. 우리 아빠 하시는 사업도 잘 되게 해 주시고, 우리 가족들의 건강도 지켜 주세요. ”
그리고는 일어나서 그 날 유치원에서 배운 율동과 노래를 멋있게 한 번 하고는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기도가 다 끝났으면 잠자리에 들어야지, 왜 자기 전에 꼭 그렇게 율동을 하고 노래를 부르냐”
그 때 아이는 “엄마, 나는 늘 여호와 하나님께 내 부탁만 드렸잖아요. 그래서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와 율동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잠시라도 기쁘게 해 드릴려고 한것이예요”얼마나 예쁜 행동입니까
감사와 원망은 점점 강화됩니다. 한쪽으로 치닫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망하면 원망할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니라”(잠17:22) 행복 호르몬인 ‘엔돌핀’과 ‘사이토카인’이라는 물질이 흘러나오면 몸을 건강하게 하고 독소까지도 없애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노는 사망을 낳습니다. 어떤 정신과학 의학자는 계속 화를 내면 80명을 죽일 수 있는 독소가 사람의 몸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있습니다. 사소한 것에 감동하는 것이 작은 행복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좋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는데 언제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다니니 ‘감사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한번은 거리에 나가서 고기 한 근을 사 가지고 돌아오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서 고기를 손에서 놓쳐 버렸습니다. 때마침 개 한 마리가 곁을 지나다가 고기를 물고 달아납니다.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보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개는 사라졌습니다. 이때 할아버지는 “감사합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어떤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묻기를 무슨 감사한 일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 때 할아버지 하는 말이 “아 이 사람아, 고기는 잃어버렸으나 내 입의 입맛은 그냥 있잖은가”하는 것이었습니다.
헬라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인 크산티페는 소문난 악처였습니다. 하루는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함께 이런저런 토론을 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크산티페는 그를 향하여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남자가 되어서 처자식이 굶는지 안굶는지도 모르고 밖으로만 쏘다니면 다예요 들어오기는 왜 들어와! 차라리 나가서 살지!” 그러면서 바가지에 찬물을 담아서 물벼락을 씌웠습니다. 그러니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쓴웃음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 전에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결국 물벼락이 떨어지는구먼. ”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크라테스의 친구는 참다못해 그를 밖으로 불러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여보게! 어떻게 저런 여자하고 일평생을 같이 살 수 있겠나 그러니 지금이라도 갈라서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 때 소크라테스는 이런 명언을 했습니다. “아닐세! 나는 늘 내 아내로 인해서 감사한다네. 생각해 보게나. 만일 내게 저런 악처가 없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철학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모든 일을 생각해 보면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나를 향해 핍박을 가하는 일들로 인해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깨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1-12)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사의 수준을 높여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인 감사는 누구나 합니다.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을 해서 감사하고, 졸업을 해서 감사하고, 취업을 해서 감사하고, 주택을 구입해서 감사하고, 사업이 잘 되어서 감사하는 이것은 불신자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고작 그런 정도를 가지고 감사한다면 수준이 아직 낮은 성도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갈 때 함께 끌려간 포로였습니다. 바벨론 시대에도 다니엘은 왕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시대가 바뀌고 유대를 지배하던 바벨론이 메대에게 망하게 되었습니다. 메대 왕 다리오왕은 전국에 120명의 방백을 세웠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위에 총리 셋을 세웠습니다. 방백들을 감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총리 셋 중 한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었습니다.
어느 세상이나 다 그런 것처럼 다른 두 총리와 또 그들을 지지하는 방백들 가운데 일부가 다니엘을 시기했습니다. 다니엘을 올가미에 덮어씌우기 위해서 한 가지 음모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왕을 부추겨서 하나의 법령을 만들었습니다. 왕의 권위를 실어주겠다는 명분으로 앞으로 30일 동안 왕 이외에 누구에게든지 무엇을 구하거나 또는 어떤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사자 굴에 집어던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니엘도 왕의 법령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평소처럼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있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뒤 무릎을 꿇고 하루에 세 번씩 변함없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불평하고 원망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밤에 예루살렘을 향해서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절)
1. 다니엘은 고난 중에도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지금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할 무서운 핍박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기도는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범사에 감사”는 다른 말로 말하면 무조건적인 감사입니다. 어떤 고난의 상황에서도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조만간 붙잡혀서 사자 굴에 던짐을 받게 될 것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역경 중에서 드리는 감사, 위기 상황에서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미하며 감사했습니다.
욥은 자녀들과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극한 재난 중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했습니다. 욥은 그 많던 재산을 다 약탈당해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열 자녀가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1:21) 감사하는 사람은 말이 다릅니다.
청교도들은 고향과 집과 재산과 모든 것을 잃어버린 황무지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1621년 가을 첫 추수 감사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떤 고난은 우리의 신앙과 인격을 단련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고난도 있고, 어떤 역경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어지는 역경도 있습니다.
2. 다니엘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였습니다.
인생은 방향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왜! 방황합니까 방향을 잡지 못해서입니다.
설운도의 나침반 ♬ 종로로 갈까요 영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스펄젼이라는 유명한 설교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스펄젼이 자기의 생애에 깊은 회의에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인생의 길을 다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영혼이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에 시골 길을 가다가 이름 없는 감리 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사람이 대 여섯 명밖에 안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목사도 없어서 구두를 깁기도 하고, 수선을 하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는 구두 직공이 일어나서 설교를 하는 데 설교도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예수를 바라보십니다. ” 그 소리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스펄젼을 보고는 큰소리로 설교단에서 “저 청년 방황하고 있습니까 길을 모르십니까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 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때에 스펄젼은 ‘아, 나는 길을 잃은 사람이구나!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생각하고 예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영국의 거성 같은 위대한 설교자인 스펄젼이 탄생한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여호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기독교는 철학의 종교도 아니요, 사색의 종교도 명상의 종교도 아닙니다. 내 얼굴을 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의 도움을 받는 종교입니다.
♬ 괴로울 때 주님을 얼굴을 보라 평화의 주님을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을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라 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를 힘주시며 늘 지켜주시리
다니엘은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기도하며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옥중에 있든지 황무지에 있든지 우리의 얼굴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다면, 그 때는 복된 때입니다. 사람이 범죄하면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날마다 예루살렘을 향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은 “나의 영혼아 잠잠히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시62:5).
또 “너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영혼을 도우시는 내 여호와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42:11)
다니엘은 그의 인생에서 힘들 때 방향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늘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마음이 힘드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회복될 줄 믿습니다. 감사가 회복되어야 예배의 진정한 회복도 이루어집니다. 예배의 본질은 감사입니다.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사, 한 주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 ... 올한해 동안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그렇게 감사를 드렸더니 단6:28 “이 다니엘이 다리오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 시대가 바뀌어도 감사하는 사람은 복이 됩니다. 1)바벨론시대(느부갓네살, 벨사살) 2)메대시대(다리오) 3) 바사시대(고레스)
사자 굴에 던지움을 당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사자들의 입을 봉하게 하셨습니다. 그 몸이 하나도 상치 아니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다니엘의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 다니엘을 모함했던 자들은 다니엘을 대신해서 사자의 밥들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왕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었지만 다니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복 가운데 사는 날 동안에 형통했다고 했습니다.
옆 사람과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
감사가 회복되면 기쁨도 회복됩니다. 복도, 재물도, 건강도, 의욕도..
3. 다니엘은 항상 감사했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간헐적으로 생각나면 한번씩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규칙적으로 항상 감사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마음에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 있을 찌라도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참 믿음의 사람은 기도와 감사의 사람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 밤중쯤 되어 일어나서 기도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빌4:6)고 했습니다.
감사로 기도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고 성숙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믿음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별은 간단합니다. 믿음있는 사람은 항상감사하는 사람,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 믿음없는 사람은 언제나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찬송가 20장 “다 감사드리세”를 지은 마르틴 린카르트(Martin Rinkart(1586-1649)목사님은 17세기 독일교회를 담임했던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당시 독일을 비롯해서 전 유럽에는 아주 무서운 흑사병이 나돌고 있었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심지어 린카르트 목사님의 아들조차도 흑사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린카르트 목사님의 교회에서만 50명의 장례식을 한꺼번에 치를 정도였습니다. 그 때 린카르트 목사님이 작사한 찬송이 “다 감사드리세”였습니다.
“다 감사 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와 온 세상 기뻐하네 예부터 주신 복 한 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잘못하면 오해하기 쉬운 찬송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죽었는데 뭐가 감사하단 말입니까 잘못하면 몰매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목사님, 우리 사정은 이해도 하지 않고 감사 .... ’ 그러나 목사님의 아들도 죽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도는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입으로 하는 감사입니다. 입으로 감사는 누구나,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밑천도 안 듭니다.
그냥 입을 벌려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따라서 합시다.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
불평할 일이 있습니까 그 때도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속에서 일하실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 물론 마음에는 원망이 있고, 불평이 있고,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도리어 입으로 감사를 해 버리십시오. 그러면 내 속에 자리 잡은 원망, 불평, 짜증, 신경질이 진짜 감사할 일로 바뀌어져 버립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우리가 입으로 내 뱉는 말에는 만드는 능력, 창조력이 있습니다.
끌어당기는 견인력이 있습니다. 새겨지게 하는 각인력이 있습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잠12:14)
조금 더 한 차원을 높이면 마음을 다하여 감사하는 것은 드려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내가 시간을 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 내가 물질을 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 내가 내 몸을 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에 어떤 것에 더 애착이 가겠습니까
역경 중에서 감사했던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건짐을 받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었고 다시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재난 중에서 감사했던 욥은 모년에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옥중에서 감사했던 바울과 실라는 옥에서 건짐을 받았고 간수가 자기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빌립보와 마게도냐에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황무지에서 감사했던 청교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늘 감사하는 사람은 너그럽습니다. 미국을 보면 어려움을 당하는 세계의 모든 민족에게 너그럽게 후원을 합니다. 그러나 불평 많고 데모 많은 나라는 그렇지 못합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님이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답니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 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이 선배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목사님께서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목사님은 자기의 형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이 선배 목사님이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노트를 한 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습니다. 그러자 이 사모님은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하고 내 팽개쳤지만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써보기로 했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이럴게 아니라 내가 이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니 그동안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들을 찾아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해야 하겠다. ’ 마음을 먹고 사모님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유는 암세포가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능력입니다. 감사에는 힘이 있습니다.
변함없이 감사하는 삶을 살았던 다니엘이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도 변함없이 늘 그와 함께 하면서 그의 삶을 형통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결과입니다. 오늘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이런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는 바로 겸손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를 꺼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말에 그치지 않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언제나 예쁘게 무릎을 꿇고 또 두 손을 모으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여호와 하나님, 오늘밤에 우리 가족 모두를 지켜 주셔서 잠 잘 자게 해 주세요. 우리 아빠 하시는 사업도 잘 되게 해 주시고, 우리 가족들의 건강도 지켜 주세요. ”
그리고는 일어나서 그 날 유치원에서 배운 율동과 노래를 멋있게 한 번 하고는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기도가 다 끝났으면 잠자리에 들어야지, 왜 자기 전에 꼭 그렇게 율동을 하고 노래를 부르냐”
그 때 아이는 “엄마, 나는 늘 여호와 하나님께 내 부탁만 드렸잖아요. 그래서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와 율동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잠시라도 기쁘게 해 드릴려고 한것이예요”얼마나 예쁜 행동입니까
감사와 원망은 점점 강화됩니다. 한쪽으로 치닫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망하면 원망할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니라”(잠17:22) 행복 호르몬인 ‘엔돌핀’과 ‘사이토카인’이라는 물질이 흘러나오면 몸을 건강하게 하고 독소까지도 없애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노는 사망을 낳습니다. 어떤 정신과학 의학자는 계속 화를 내면 80명을 죽일 수 있는 독소가 사람의 몸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있습니다. 사소한 것에 감동하는 것이 작은 행복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좋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는데 언제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다니니 ‘감사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한번은 거리에 나가서 고기 한 근을 사 가지고 돌아오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서 고기를 손에서 놓쳐 버렸습니다. 때마침 개 한 마리가 곁을 지나다가 고기를 물고 달아납니다.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보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개는 사라졌습니다. 이때 할아버지는 “감사합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어떤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묻기를 무슨 감사한 일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 때 할아버지 하는 말이 “아 이 사람아, 고기는 잃어버렸으나 내 입의 입맛은 그냥 있잖은가”하는 것이었습니다.
헬라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인 크산티페는 소문난 악처였습니다. 하루는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함께 이런저런 토론을 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크산티페는 그를 향하여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남자가 되어서 처자식이 굶는지 안굶는지도 모르고 밖으로만 쏘다니면 다예요 들어오기는 왜 들어와! 차라리 나가서 살지!” 그러면서 바가지에 찬물을 담아서 물벼락을 씌웠습니다. 그러니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쓴웃음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 전에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결국 물벼락이 떨어지는구먼. ”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크라테스의 친구는 참다못해 그를 밖으로 불러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여보게! 어떻게 저런 여자하고 일평생을 같이 살 수 있겠나 그러니 지금이라도 갈라서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 때 소크라테스는 이런 명언을 했습니다. “아닐세! 나는 늘 내 아내로 인해서 감사한다네. 생각해 보게나. 만일 내게 저런 악처가 없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철학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모든 일을 생각해 보면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나를 향해 핍박을 가하는 일들로 인해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깨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1-12)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사의 수준을 높여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인 감사는 누구나 합니다.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을 해서 감사하고, 졸업을 해서 감사하고, 취업을 해서 감사하고, 주택을 구입해서 감사하고, 사업이 잘 되어서 감사하는 이것은 불신자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고작 그런 정도를 가지고 감사한다면 수준이 아직 낮은 성도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갈 때 함께 끌려간 포로였습니다. 바벨론 시대에도 다니엘은 왕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시대가 바뀌고 유대를 지배하던 바벨론이 메대에게 망하게 되었습니다. 메대 왕 다리오왕은 전국에 120명의 방백을 세웠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위에 총리 셋을 세웠습니다. 방백들을 감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총리 셋 중 한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었습니다.
어느 세상이나 다 그런 것처럼 다른 두 총리와 또 그들을 지지하는 방백들 가운데 일부가 다니엘을 시기했습니다. 다니엘을 올가미에 덮어씌우기 위해서 한 가지 음모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왕을 부추겨서 하나의 법령을 만들었습니다. 왕의 권위를 실어주겠다는 명분으로 앞으로 30일 동안 왕 이외에 누구에게든지 무엇을 구하거나 또는 어떤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사자 굴에 집어던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니엘도 왕의 법령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평소처럼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있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뒤 무릎을 꿇고 하루에 세 번씩 변함없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불평하고 원망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밤에 예루살렘을 향해서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절)
1. 다니엘은 고난 중에도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지금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할 무서운 핍박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기도는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범사에 감사”는 다른 말로 말하면 무조건적인 감사입니다. 어떤 고난의 상황에서도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조만간 붙잡혀서 사자 굴에 던짐을 받게 될 것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역경 중에서 드리는 감사, 위기 상황에서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미하며 감사했습니다.
욥은 자녀들과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극한 재난 중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했습니다. 욥은 그 많던 재산을 다 약탈당해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열 자녀가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1:21) 감사하는 사람은 말이 다릅니다.
청교도들은 고향과 집과 재산과 모든 것을 잃어버린 황무지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1621년 가을 첫 추수 감사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떤 고난은 우리의 신앙과 인격을 단련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고난도 있고, 어떤 역경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어지는 역경도 있습니다.
2. 다니엘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였습니다.
인생은 방향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왜! 방황합니까 방향을 잡지 못해서입니다.
설운도의 나침반 ♬ 종로로 갈까요 영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스펄젼이라는 유명한 설교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스펄젼이 자기의 생애에 깊은 회의에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인생의 길을 다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영혼이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에 시골 길을 가다가 이름 없는 감리 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사람이 대 여섯 명밖에 안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목사도 없어서 구두를 깁기도 하고, 수선을 하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는 구두 직공이 일어나서 설교를 하는 데 설교도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예수를 바라보십니다. ” 그 소리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스펄젼을 보고는 큰소리로 설교단에서 “저 청년 방황하고 있습니까 길을 모르십니까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 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때에 스펄젼은 ‘아, 나는 길을 잃은 사람이구나!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생각하고 예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영국의 거성 같은 위대한 설교자인 스펄젼이 탄생한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여호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기독교는 철학의 종교도 아니요, 사색의 종교도 명상의 종교도 아닙니다. 내 얼굴을 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의 도움을 받는 종교입니다.
♬ 괴로울 때 주님을 얼굴을 보라 평화의 주님을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을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라 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를 힘주시며 늘 지켜주시리
다니엘은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기도하며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옥중에 있든지 황무지에 있든지 우리의 얼굴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다면, 그 때는 복된 때입니다. 사람이 범죄하면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날마다 예루살렘을 향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은 “나의 영혼아 잠잠히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시62:5).
또 “너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영혼을 도우시는 내 여호와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42:11)
다니엘은 그의 인생에서 힘들 때 방향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늘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마음이 힘드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회복될 줄 믿습니다. 감사가 회복되어야 예배의 진정한 회복도 이루어집니다. 예배의 본질은 감사입니다.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사, 한 주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 ... 올한해 동안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그렇게 감사를 드렸더니 단6:28 “이 다니엘이 다리오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 시대가 바뀌어도 감사하는 사람은 복이 됩니다. 1)바벨론시대(느부갓네살, 벨사살) 2)메대시대(다리오) 3) 바사시대(고레스)
사자 굴에 던지움을 당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사자들의 입을 봉하게 하셨습니다. 그 몸이 하나도 상치 아니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다니엘의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 다니엘을 모함했던 자들은 다니엘을 대신해서 사자의 밥들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왕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었지만 다니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복 가운데 사는 날 동안에 형통했다고 했습니다.
옆 사람과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
감사가 회복되면 기쁨도 회복됩니다. 복도, 재물도, 건강도, 의욕도..
3. 다니엘은 항상 감사했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간헐적으로 생각나면 한번씩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규칙적으로 항상 감사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마음에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 있을 찌라도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참 믿음의 사람은 기도와 감사의 사람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 밤중쯤 되어 일어나서 기도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빌4:6)고 했습니다.
감사로 기도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고 성숙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믿음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별은 간단합니다. 믿음있는 사람은 항상감사하는 사람,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 믿음없는 사람은 언제나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찬송가 20장 “다 감사드리세”를 지은 마르틴 린카르트(Martin Rinkart(1586-1649)목사님은 17세기 독일교회를 담임했던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당시 독일을 비롯해서 전 유럽에는 아주 무서운 흑사병이 나돌고 있었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심지어 린카르트 목사님의 아들조차도 흑사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린카르트 목사님의 교회에서만 50명의 장례식을 한꺼번에 치를 정도였습니다. 그 때 린카르트 목사님이 작사한 찬송이 “다 감사드리세”였습니다.
“다 감사 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와 온 세상 기뻐하네 예부터 주신 복 한 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잘못하면 오해하기 쉬운 찬송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죽었는데 뭐가 감사하단 말입니까 잘못하면 몰매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목사님, 우리 사정은 이해도 하지 않고 감사 .... ’ 그러나 목사님의 아들도 죽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도는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입으로 하는 감사입니다. 입으로 감사는 누구나,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밑천도 안 듭니다.
그냥 입을 벌려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따라서 합시다.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
불평할 일이 있습니까 그 때도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속에서 일하실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 물론 마음에는 원망이 있고, 불평이 있고,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도리어 입으로 감사를 해 버리십시오. 그러면 내 속에 자리 잡은 원망, 불평, 짜증, 신경질이 진짜 감사할 일로 바뀌어져 버립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우리가 입으로 내 뱉는 말에는 만드는 능력, 창조력이 있습니다.
끌어당기는 견인력이 있습니다. 새겨지게 하는 각인력이 있습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잠12:14)
조금 더 한 차원을 높이면 마음을 다하여 감사하는 것은 드려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내가 시간을 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 내가 물질을 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 내가 내 몸을 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에 어떤 것에 더 애착이 가겠습니까
역경 중에서 감사했던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건짐을 받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었고 다시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재난 중에서 감사했던 욥은 모년에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옥중에서 감사했던 바울과 실라는 옥에서 건짐을 받았고 간수가 자기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빌립보와 마게도냐에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황무지에서 감사했던 청교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늘 감사하는 사람은 너그럽습니다. 미국을 보면 어려움을 당하는 세계의 모든 민족에게 너그럽게 후원을 합니다. 그러나 불평 많고 데모 많은 나라는 그렇지 못합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님이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답니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 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이 선배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목사님께서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목사님은 자기의 형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이 선배 목사님이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노트를 한 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습니다. 그러자 이 사모님은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하고 내 팽개쳤지만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써보기로 했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이럴게 아니라 내가 이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니 그동안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들을 찾아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해야 하겠다. ’ 마음을 먹고 사모님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유는 암세포가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능력입니다. 감사에는 힘이 있습니다.
변함없이 감사하는 삶을 살았던 다니엘이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도 변함없이 늘 그와 함께 하면서 그의 삶을 형통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결과입니다. 오늘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이런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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