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감사하고 찬양하나이다
본문
인디언들이나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쓰는 언어들은 아직도 원시 언어에 가깝습니다. 명사와 동사가 구분이 안되어 있고, 특정한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들이 아직 없습니다. 그 가운데 서부 아프리카의 마치이 부족들이 쓰는 '감사'라는 말은 "내 머리가 흙 속에 있습니다"라는 어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엎드려 머리가 땅에 닿았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상세한 언어 구사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어떤 뜻을 담아서 말하시겠습니까 마치이족들처럼 "내 머리가 땅에 닿아 있습니다. 내 머리가 흙 속에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부족들은 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을 "주둥아리를 닦는 사람"이라고 한답니다. 왜 그러냐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병아리가 곡식의 작은 껍질을 까먹기도 하고, 그 속에서 알맹이를 빼먹기도 합니다. 실컷 쪼아먹고 나서는 혀로 입술을 싸악 씻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행동하는 것처럼, 먹고는 주둥아리를 싹 닦고는 먹지 않은 듯이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입을 싹 씻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실컷 먹어놓고는 먹은 일 없는 것처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광 성도 여러분 !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는데, 주신 은혜가 감사해서 "내 머리가 흙 속에 있습니다. " 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은혜를 받아놓고는 "난 모릅니다"하고 입을 싹 씻을 수 있습니까
6월 2일 주일부터 생명의 경기장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린 후부터 오늘까지 영적인 기초를 다지기 위한 설교를 해 오고 있습니다. 영적인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어제 축구 경기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꿈에도 생각지도 않았던 4강에 우리나라가 올랐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불릴 정도로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었던 잉글랜드와 브라질의 21일 8강전을 앞두고 영국의 한 목사가 브라질의 불운과 혼란을 기원하는 이색적인 기도문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더 타임즈"에 따르면 제레미 플레처 목사라는 사람이 인터켓을 통해 배포한 기도문에서 "여호와 하나님! 브라질이 우리를 이기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하소서"또 "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디뉴가 당황하게 해주소서"라며 노골적으로 브라질의 불운을 바랐고 "잉글랜드가 최후의 순간에 심판을 속이는 오프사이드 골이라도 넣어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세상에 알리소서"라며 유머 섞인 기도도 했습니다.
심한 것은 "이번 대회 열리는 일요일(6월30일)에 아무도 교회에 오지 않아도 좋으니 잉글랜드가 역경을 극복하고 결승까지 오르게 해주소서"라며 성직자라기 보다는 열렬한 축구팬이 돼 기도했습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던지 플레처 목사는 덧붙인 다른 기도문에서 "승부차기까지해야 한다면 브라질 골키퍼가 엉뚱한 방향으로 몸을 날리고 우리 선수는 강한 슛으로 골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해주소서"라며 잉글랜드의 필승을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4강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페인과 승부차기에서 이기고 생각지도 않게 4강에 올랐습니다. 저는 너무 좋아서인지, 16강에 올랐을 때와 8강에 올랐을 때와는 달리 덤덤하기까지 했습니다. 자 아무튼 좋은 일이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감사와 찬양'입니다. 영적인 기초 체력을 다지기 위해 꼭 필요한 것, 바로 감사와 찬양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부터 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B. C 605년 갈그미스라는 유프라테스 강 근처의 전투에서 애굽의 왕 느고의 연합군과 함께 바벨론에게 대패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바벨론은 괴뢰왕 시드기야를 왕으로 옹립합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의해 왕이 된 시드기야는 모반을 꾀합니다.
결국 느부갓네살 2세가 B. C 597년에 다시 이스라엘에 침공했고 결국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침공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었고, 시드기야왕이 보는 앞에서 왕세자들은 죽이고, 시드기야왕은 눈을 뽑히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당합니다. 멸망직전 약 18개월 간에 예루살렘 성 포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초토화되고 백성들은 아사직전까지 몰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귀족들과 기술자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때 다니엘과 그 친구들도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것은 제1차 바벨론 유수라고 합니다.
그 후 다니엘은 약 69년간 바벨론의 궁정에 머물면서 지내게 됩니다. 궁정에 머물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결정적인 동기가 된 사건이 바로 오늘의 이 사건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꿈이 범상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 꿈의 내용이 일절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골똘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더더욱 꿈의 내용이 오리무중입니다. 그래서 왕은 신하들에게 바벨론에 있는 지혜 있는 사람들과 무당들에게 그 꿈의 내용을 알아내도록 지시하고, 해석토록 합니다. 그러나 무당과 지혜 있는 사람들이 남이 꾼 꿈을 무슨 수로 알아내고, 게다가 해석까지 합니까
만약 그 꿈을 알아내지 못하면 박사들과 박수무당들은 다 죽여 버리겠다는 것이 왕의 의지였습니다. 그러면서 바벨론과 그 친구들에게 똑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다니엘이라고 별 수 있습니까 무슨 수로 알아냅니까 남이 꾼 꿈을 말입니다. 그래도 느부갓네살의 꿈을 알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다니엘뿐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간절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꿈의 내용을 다니엘에게 일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월드컵 4강에 오른 것처럼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일러 주신 것입니다.
그 꿈의 내용이란 머리는 '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의 일부분은 진흙으로 되어 있는 신상이었습니다. 그 꿈은 세계 제국들의 흥망에 관한 꿈이었습니다. 끔을 해석한 다니엘은 다니엘 2장 48절에 보면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의 모든 박사의 어른으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요청으로 다니엘과 세 친구가 왕궁에서 살게 됩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배경에는 다니엘의 한 가지 특이한 행동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장 23절의 말씀을 보니까 다니엘은 그 꿈의 내용과 해석을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면서 "감사하고 주를 찬양했다"고 합니다. 꿈의 내용과 해석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알게된 배경에는 다니엘의 감사와 찬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무도 알아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아 낼 수도 없는 일을 감사와 찬양을 통해서 그 비밀한 일을 알아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감사와 찬양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했습니다. 감사와 찬양이 능력의 원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있었기에 바벨론의 모든 박사와 술객들이 알아내지 못하는 꿈의 내용과 해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감사와 찬양은 능력의 원천입니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바로 감사와 찬양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죽게 되었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말을 해야 한다면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가장 신앙적인 말을 한다면 뒤를 돌아보면 미련이 남는 일도 있겠지만, 아쉬운 일도 있겠지만, 그리고 남겨두고 가는 자식들 걱정도 되겠지만 그러나 얼른 앞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열린 천국문을 바라보며 "믿음 갖고 살게 하시고 천국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2002년이 시작된 지 벌써 반년이 지나갑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지나는지 세월이 야속하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또 이렇게 반년이 지나면 2002년도 저물게 됩니다. 여러분 ! 이렇게 반년을 결산하고 정리하는 시간에 여러분들이 해야 할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라는 이 감사가 여러분의 입에서 터져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도 있으실 수 있습니다. 올해 "장사가 잘 안되었는데... "
"올해는 우리 아이가 취직을 못했는데.. ", "올해는 이상하게 아프기만 했는데... "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는 우리의 처지보다 더 형편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포로의 처지입니다. 꿈의 내용을 알아내지 못하면 죽을 처지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지혜로는 남이 꾼 꿈을 알아낼 재간도 없습니다.
13절을 보면 "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그런 가운데 16절을 보면 "시간을 주시면"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잠시 시간을 벌어 놓은 상태입니다.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렇게 위험 천만한 상태에서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런데 꿈의 내용과 해석을 알고보니 이것 도리어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나을뻔 한 그런 내용입니다. 그 내용인즉 바벨론은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용을 모를 때보다 더 화를 낼 가능성이 있는 꿈의 내용입니다. 차라리 왕의 나라를 잘 다스리고 이 나라가 흥왕한다는 내용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말 사면초가의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다니엘은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주를 찬양합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 성도들 가운데 이렇게 절박하게 생명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 분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이 감사, 감사가 넘쳐나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제가 왜 감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지혜와 능력을 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으로" 찬양한다고 했습니다. 지혜와 권능, 참으로 소중한 우리의 자산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이 지혜와 권능을 물려 주셔야 합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감사해야 합니다.
언젠가 대 기업의 창업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 벌었지만 믿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자손들은 재산 때문에 서로 다투는 일이 많았고 집안이 화목하지를 못했습니다. 작은 아들이 지방 도시에서 그를 모시고 살았고, 맏아들은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맏아들은 부친의 죽음을 듣고 즉시 차를 몰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부친의 죽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동생을 보자마자 아버지의 재산을 얼마나 물려받았는지를 물었습니다. 동생이 800억 정도의 유산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서 그는 다짜고짜 동생의 멱살을 쥐고서 얼굴을 쥐어박았습니다. 그런데 얼굴을 잘못 때렸는지 그만 동생의 눈이 다치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동생의 아들들이 "큰아버지고 뭐고 다 때려죽이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겁이 난 맏아들은 밤중에 차를 몰고서 서울로 도주를 했습니다. 그러다 차를 잘못 몰아서 그만 저수지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전해들은 맏아들의 가족들은 그가 죽게된 원인이 둘째 아들의 가족에게 있다고 생각하고서 복수하기로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큰아들 자식들과 둘째 아들 자식들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고 죽은 사람들의 장례식은 남들이 다 치러 주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겠습니까
잠언 17장 1절 말씀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와 권능을 우리가 물려 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평생을 돌봐 줄 수 있는 것이 재산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혜와 권능을 주신 여호와께 감사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감사해야 합니다. 21절의 말씀을 보니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라고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도 주시고, 단풍이 물든 가을, 청명한 하늘도 주시며, 부산에는 잘 내리지는 않지만 흰눈 내리는 겨울도 주시고, 그런 가운데 풍년의 수확도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왕조를 바꾸고 나라를 바꾼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역사를 그의 뜻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역사는 여호와 하나님 그 분의 이야기, 히스 스토리(His Story), 줄여서 히스토리(History)입니다. 시편 136장 9절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했습니다.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달아 올라서 하나됨을 확인하고 그야말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던 응어리를 풀어 버리는 카타르시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대통령이 재계 회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유수의 그룹 회장이 아직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전을 위해서 여러 가지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나라의 앞날이 꼭 분홍빛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믿기로는 이 가운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새로운 질서를 주실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것을 알았고, 또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감사하시겠습니까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23절 중간 부분에 보면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이 꾼 꿈을 알아 맞춰야 했는데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남이 꾸고서 잊어버린 꿈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아 맞춥니까
그러나 다니엘이 구한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왜입니까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50장 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 감사는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능력의 비결입니다. 열렬한 신앙인이라면 매일 감사하고 매주 감사하고 매월 감사하고, 매년 감사해야 합니다. 그 감사를 제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 전국 여전도회 회장이신 종로 교회 모 권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의 신앙생활 가운데 목사들 입에 회자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분은 매년 송구 영신예배 때 일년치 십일조를 한꺼번에 드리는 것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송구영신 예배가 드려지기 전 만원 권으로 바꾼 일년치 십일조를 강대상 앞에 갖다 놓는 것입니다. 남대문에서 의류 도매상을 하시는 그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업을 책임질 것을 믿기 때문에 믿음으로 일년치 십일조를 송구영신 예배 때 아예 먼저 드리는 것입니다. 보통 2천만원에서 3천만원을 드리는데 하얀색 종이로 싼 만 원짜리로 네모지게 싸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의 감사의 표현입니다. 우리 동광 성도들도 감사의 표현에 강해지길 바랍니다. 감사는 아무리 표현해도 물리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는 표현해야 합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입니다. 아무리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도 표현해야 합니다. 말로 표현하고 정성으로 표현하는 감사! 그 감사로 여러분의 신앙 체질을 강화시키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신앙이 성장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헌금을 드리는 것이 일종의 상리적 축복관념으로 드리는 헌금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여호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데 뇌물을 드리는 심정으로, 십일조를 복받는 통로로 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상거래가 아니고 기복적인 공로행위가 아닙니다.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지고하신 명령에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기쁘게 해 드리는 영광의 수단으로 드리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사상입니다. 고전 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드리안 로저스(A. Rogers)는,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통로이다. 왜냐하면 십일조 생활을 통하여 당신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윌리엄 C. 번즈(W. C. Burns)가 중국선교를 위하여 떠날 때 누군가 그를 비꼬듯이 "중국인 모두를 개종시킬 모양이죠"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단호히 대답하기를 "아니오. 나는 단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중국으로 갑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백성들의 예배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기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음은 예배를 온전히 이루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동광 성도들 모두가 감사의 삶을 사셔서 능력을 배가가 받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어떤 뜻을 담아서 말하시겠습니까 마치이족들처럼 "내 머리가 땅에 닿아 있습니다. 내 머리가 흙 속에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부족들은 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을 "주둥아리를 닦는 사람"이라고 한답니다. 왜 그러냐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병아리가 곡식의 작은 껍질을 까먹기도 하고, 그 속에서 알맹이를 빼먹기도 합니다. 실컷 쪼아먹고 나서는 혀로 입술을 싸악 씻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행동하는 것처럼, 먹고는 주둥아리를 싹 닦고는 먹지 않은 듯이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입을 싹 씻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실컷 먹어놓고는 먹은 일 없는 것처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광 성도 여러분 !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는데, 주신 은혜가 감사해서 "내 머리가 흙 속에 있습니다. " 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은혜를 받아놓고는 "난 모릅니다"하고 입을 싹 씻을 수 있습니까
6월 2일 주일부터 생명의 경기장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린 후부터 오늘까지 영적인 기초를 다지기 위한 설교를 해 오고 있습니다. 영적인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어제 축구 경기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꿈에도 생각지도 않았던 4강에 우리나라가 올랐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불릴 정도로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었던 잉글랜드와 브라질의 21일 8강전을 앞두고 영국의 한 목사가 브라질의 불운과 혼란을 기원하는 이색적인 기도문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더 타임즈"에 따르면 제레미 플레처 목사라는 사람이 인터켓을 통해 배포한 기도문에서 "여호와 하나님! 브라질이 우리를 이기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하소서"또 "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디뉴가 당황하게 해주소서"라며 노골적으로 브라질의 불운을 바랐고 "잉글랜드가 최후의 순간에 심판을 속이는 오프사이드 골이라도 넣어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세상에 알리소서"라며 유머 섞인 기도도 했습니다.
심한 것은 "이번 대회 열리는 일요일(6월30일)에 아무도 교회에 오지 않아도 좋으니 잉글랜드가 역경을 극복하고 결승까지 오르게 해주소서"라며 성직자라기 보다는 열렬한 축구팬이 돼 기도했습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던지 플레처 목사는 덧붙인 다른 기도문에서 "승부차기까지해야 한다면 브라질 골키퍼가 엉뚱한 방향으로 몸을 날리고 우리 선수는 강한 슛으로 골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해주소서"라며 잉글랜드의 필승을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4강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페인과 승부차기에서 이기고 생각지도 않게 4강에 올랐습니다. 저는 너무 좋아서인지, 16강에 올랐을 때와 8강에 올랐을 때와는 달리 덤덤하기까지 했습니다. 자 아무튼 좋은 일이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감사와 찬양'입니다. 영적인 기초 체력을 다지기 위해 꼭 필요한 것, 바로 감사와 찬양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부터 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B. C 605년 갈그미스라는 유프라테스 강 근처의 전투에서 애굽의 왕 느고의 연합군과 함께 바벨론에게 대패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바벨론은 괴뢰왕 시드기야를 왕으로 옹립합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의해 왕이 된 시드기야는 모반을 꾀합니다.
결국 느부갓네살 2세가 B. C 597년에 다시 이스라엘에 침공했고 결국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침공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었고, 시드기야왕이 보는 앞에서 왕세자들은 죽이고, 시드기야왕은 눈을 뽑히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당합니다. 멸망직전 약 18개월 간에 예루살렘 성 포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초토화되고 백성들은 아사직전까지 몰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귀족들과 기술자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때 다니엘과 그 친구들도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것은 제1차 바벨론 유수라고 합니다.
그 후 다니엘은 약 69년간 바벨론의 궁정에 머물면서 지내게 됩니다. 궁정에 머물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결정적인 동기가 된 사건이 바로 오늘의 이 사건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꿈이 범상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 꿈의 내용이 일절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골똘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더더욱 꿈의 내용이 오리무중입니다. 그래서 왕은 신하들에게 바벨론에 있는 지혜 있는 사람들과 무당들에게 그 꿈의 내용을 알아내도록 지시하고, 해석토록 합니다. 그러나 무당과 지혜 있는 사람들이 남이 꾼 꿈을 무슨 수로 알아내고, 게다가 해석까지 합니까
만약 그 꿈을 알아내지 못하면 박사들과 박수무당들은 다 죽여 버리겠다는 것이 왕의 의지였습니다. 그러면서 바벨론과 그 친구들에게 똑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다니엘이라고 별 수 있습니까 무슨 수로 알아냅니까 남이 꾼 꿈을 말입니다. 그래도 느부갓네살의 꿈을 알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다니엘뿐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간절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꿈의 내용을 다니엘에게 일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월드컵 4강에 오른 것처럼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일러 주신 것입니다.
그 꿈의 내용이란 머리는 '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의 일부분은 진흙으로 되어 있는 신상이었습니다. 그 꿈은 세계 제국들의 흥망에 관한 꿈이었습니다. 끔을 해석한 다니엘은 다니엘 2장 48절에 보면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의 모든 박사의 어른으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요청으로 다니엘과 세 친구가 왕궁에서 살게 됩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배경에는 다니엘의 한 가지 특이한 행동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장 23절의 말씀을 보니까 다니엘은 그 꿈의 내용과 해석을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면서 "감사하고 주를 찬양했다"고 합니다. 꿈의 내용과 해석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알게된 배경에는 다니엘의 감사와 찬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무도 알아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아 낼 수도 없는 일을 감사와 찬양을 통해서 그 비밀한 일을 알아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감사와 찬양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했습니다. 감사와 찬양이 능력의 원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있었기에 바벨론의 모든 박사와 술객들이 알아내지 못하는 꿈의 내용과 해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감사와 찬양은 능력의 원천입니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바로 감사와 찬양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죽게 되었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말을 해야 한다면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가장 신앙적인 말을 한다면 뒤를 돌아보면 미련이 남는 일도 있겠지만, 아쉬운 일도 있겠지만, 그리고 남겨두고 가는 자식들 걱정도 되겠지만 그러나 얼른 앞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열린 천국문을 바라보며 "믿음 갖고 살게 하시고 천국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2002년이 시작된 지 벌써 반년이 지나갑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지나는지 세월이 야속하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또 이렇게 반년이 지나면 2002년도 저물게 됩니다. 여러분 ! 이렇게 반년을 결산하고 정리하는 시간에 여러분들이 해야 할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라는 이 감사가 여러분의 입에서 터져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도 있으실 수 있습니다. 올해 "장사가 잘 안되었는데... "
"올해는 우리 아이가 취직을 못했는데.. ", "올해는 이상하게 아프기만 했는데... "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는 우리의 처지보다 더 형편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포로의 처지입니다. 꿈의 내용을 알아내지 못하면 죽을 처지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지혜로는 남이 꾼 꿈을 알아낼 재간도 없습니다.
13절을 보면 "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그런 가운데 16절을 보면 "시간을 주시면"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잠시 시간을 벌어 놓은 상태입니다.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렇게 위험 천만한 상태에서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런데 꿈의 내용과 해석을 알고보니 이것 도리어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나을뻔 한 그런 내용입니다. 그 내용인즉 바벨론은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용을 모를 때보다 더 화를 낼 가능성이 있는 꿈의 내용입니다. 차라리 왕의 나라를 잘 다스리고 이 나라가 흥왕한다는 내용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말 사면초가의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다니엘은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주를 찬양합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 성도들 가운데 이렇게 절박하게 생명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 분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이 감사, 감사가 넘쳐나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제가 왜 감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지혜와 능력을 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으로" 찬양한다고 했습니다. 지혜와 권능, 참으로 소중한 우리의 자산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이 지혜와 권능을 물려 주셔야 합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감사해야 합니다.
언젠가 대 기업의 창업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 벌었지만 믿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자손들은 재산 때문에 서로 다투는 일이 많았고 집안이 화목하지를 못했습니다. 작은 아들이 지방 도시에서 그를 모시고 살았고, 맏아들은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맏아들은 부친의 죽음을 듣고 즉시 차를 몰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부친의 죽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동생을 보자마자 아버지의 재산을 얼마나 물려받았는지를 물었습니다. 동생이 800억 정도의 유산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서 그는 다짜고짜 동생의 멱살을 쥐고서 얼굴을 쥐어박았습니다. 그런데 얼굴을 잘못 때렸는지 그만 동생의 눈이 다치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동생의 아들들이 "큰아버지고 뭐고 다 때려죽이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겁이 난 맏아들은 밤중에 차를 몰고서 서울로 도주를 했습니다. 그러다 차를 잘못 몰아서 그만 저수지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전해들은 맏아들의 가족들은 그가 죽게된 원인이 둘째 아들의 가족에게 있다고 생각하고서 복수하기로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큰아들 자식들과 둘째 아들 자식들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고 죽은 사람들의 장례식은 남들이 다 치러 주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겠습니까
잠언 17장 1절 말씀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와 권능을 우리가 물려 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평생을 돌봐 줄 수 있는 것이 재산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혜와 권능을 주신 여호와께 감사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감사해야 합니다. 21절의 말씀을 보니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라고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도 주시고, 단풍이 물든 가을, 청명한 하늘도 주시며, 부산에는 잘 내리지는 않지만 흰눈 내리는 겨울도 주시고, 그런 가운데 풍년의 수확도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왕조를 바꾸고 나라를 바꾼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역사를 그의 뜻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역사는 여호와 하나님 그 분의 이야기, 히스 스토리(His Story), 줄여서 히스토리(History)입니다. 시편 136장 9절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했습니다.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달아 올라서 하나됨을 확인하고 그야말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던 응어리를 풀어 버리는 카타르시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대통령이 재계 회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유수의 그룹 회장이 아직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전을 위해서 여러 가지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나라의 앞날이 꼭 분홍빛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믿기로는 이 가운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새로운 질서를 주실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것을 알았고, 또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감사하시겠습니까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23절 중간 부분에 보면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이 꾼 꿈을 알아 맞춰야 했는데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남이 꾸고서 잊어버린 꿈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아 맞춥니까
그러나 다니엘이 구한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왜입니까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50장 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 감사는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능력의 비결입니다. 열렬한 신앙인이라면 매일 감사하고 매주 감사하고 매월 감사하고, 매년 감사해야 합니다. 그 감사를 제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 전국 여전도회 회장이신 종로 교회 모 권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의 신앙생활 가운데 목사들 입에 회자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분은 매년 송구 영신예배 때 일년치 십일조를 한꺼번에 드리는 것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송구영신 예배가 드려지기 전 만원 권으로 바꾼 일년치 십일조를 강대상 앞에 갖다 놓는 것입니다. 남대문에서 의류 도매상을 하시는 그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업을 책임질 것을 믿기 때문에 믿음으로 일년치 십일조를 송구영신 예배 때 아예 먼저 드리는 것입니다. 보통 2천만원에서 3천만원을 드리는데 하얀색 종이로 싼 만 원짜리로 네모지게 싸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의 감사의 표현입니다. 우리 동광 성도들도 감사의 표현에 강해지길 바랍니다. 감사는 아무리 표현해도 물리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는 표현해야 합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입니다. 아무리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도 표현해야 합니다. 말로 표현하고 정성으로 표현하는 감사! 그 감사로 여러분의 신앙 체질을 강화시키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신앙이 성장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헌금을 드리는 것이 일종의 상리적 축복관념으로 드리는 헌금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여호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데 뇌물을 드리는 심정으로, 십일조를 복받는 통로로 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상거래가 아니고 기복적인 공로행위가 아닙니다.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지고하신 명령에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기쁘게 해 드리는 영광의 수단으로 드리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사상입니다. 고전 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드리안 로저스(A. Rogers)는,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통로이다. 왜냐하면 십일조 생활을 통하여 당신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윌리엄 C. 번즈(W. C. Burns)가 중국선교를 위하여 떠날 때 누군가 그를 비꼬듯이 "중국인 모두를 개종시킬 모양이죠"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단호히 대답하기를 "아니오. 나는 단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중국으로 갑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백성들의 예배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기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음은 예배를 온전히 이루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동광 성도들 모두가 감사의 삶을 사셔서 능력을 배가가 받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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