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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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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진영복지타운이 있다.
그 곳을 운영하시는 원로장로님은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에 내려가서 6. 25전쟁고아들, 오 갈데 없는 고아들, 부랑아들을 모아서 산에서 움막을 치고 그 사업을 시작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이 불쌍한 고아들을 위하여 내가 무슨 일이든 해야 되겠다. " 결심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건강함 몸과 믿음을 가지고 그 일을 시작하였다. 산과 들을 다니며, 칡뿌리와, 도라지, , 씀바귀나물을 캐서 먹이고, 산에서 샘물을 떠다가 아이들을 키웠다.
이 장로님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행복한 감사의 신앙을 심어 주었다. 그 하찮은 것들을 먹으면서 찬송하고, 아픈 아이들을 업고 산에 오르내리면서 큰 소리로 찬송했다. 아이들이 그 밝고 감사하는 믿음으로 잘 자라서 목사, 교육가, 변호사가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장로님의 사업을 축복하셨다. 지금은 5만평의 대지 위에 아름다운 복지관을 지어 현재 삼남 지역 선교의 센타역할을 하고 있다. 그 복지 타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걸려 있다.
" 첫째, 감사한 마음으로! 둘째, 즐거운 마음으로! 셋째, 믿는 마음으로! 넷째,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믿음이 만들어낸 기적적인 이야기이다. 감사하는 곳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우리 교회가 금년 한해 동안 추구해야 할 신앙의 지표가 삶의 변화이다. 이 변화의 내용 하나가 바로 감사이다.
감사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이 시간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요나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함께 듣기를 원한다.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2세가 나라를 다스리던 때에, 가드헤벨 사람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셨다. (주전 850에서 800년 사이) 적국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요나는 이 명령을 그대로 순종할 수가 없었다. 적국의 수도 깊숙히 들어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고 전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적국에 대한 민족적인 감정도 문제가 되겠지만, 그로 인하여 어떤 어려움을 당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 때로는 우리들의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욥바 항구로 내려가 배에 올라 배 밑창으로 내려가서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여 도망가는 요나의 가는 길이 순탄할 리 없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큰 풍랑으로 그 배의 진로를 막으셨다. 파선의 위기를 만난 선원들이 마침내 제비를 뽑아 문제의 사람 요나를 찾아낸다.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한 자신을 고백하고 바다에 던질 것을 요구한다. 선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 요나를 구해볼려고 노력하였으나 풍랑은 점점 더 거세어져 갔다. 요나를 바다에 던지자 비로소 바람은 잔잔해 졌다. 여호와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준비하여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주야를 지내면서 기도하는 요나를 다시 토해 내게 한 여호와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요나의 삶, 깊이 역사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깨우치시는 영적인 교훈이 있다.
 첫째는 감사이다.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희생의 제물을 바치겠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상황이 어떤 때일까 모든 일이 순탄하고, 만사 형통할 때이다. 내 계획대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나를 거역하거나, 대적하는 사람이 없을 때이다. 그렇다면 요나의 지금 상황은 전혀 찬양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감사하며 찬양하기는커녕, 여호와 하나님께 항의하며 이렇게 대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여호와 하나님,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면 가시겠습니까 제가 왜 니느웨를 갑니까 그 놈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민족을 얼마나 괴롭혀 왔는지 잘 알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장차 이 민족을 정복하고 멸망시킬 자들이 저 앗수르 니느웨 놈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그 곳에 가서 '너희들 40일 후에 망한다'고 하면 코방귀나 끼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그 놈들이 나를 가만 둘 것 같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정말 저를 사랑하십니까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저 때문에 이토록 심한 풍랑으로 많은 사람들까지 죽을 고생시키시더니, 이제 저를 큰 물고기 뱃속에 집어넣으시니 속이 시원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 정말 기분 좋으십니까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러나 요나에게서 이런 불평의 소리가 전혀 없었다. 그 캄캄한 고난의 자리에서 오히려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 하셨다. '요나의 표적'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3일 동안의 무덤에 있었던 것을 가리킨 말씀이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3야 동안 요나의 체험은 사실상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의 체험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 속에서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는 요나의 신앙은 치하할 만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불평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도 요나처럼 감사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신다. 이 감사가 모든 것을 바꾸는 힘이기 때문이다.
 둘째, 믿음이다.
감사는 믿음의 산물이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감사할 수 없다.
골로새서2:6,7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믿음과 감사는 정비례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평과 원망한다. 감사의 분량은 곧 믿음의 분량이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 어떤 이들은 세상은 온통 마귀가 주관하는 마귀의 세상인 것처럼 믿는다. 그것은 마귀의 속임수 일뿐이다. 금식기도하시는 예수님에게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한 사탄의 말을 예수님은 단호히 물리치셨다. 세상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요즈음 인간 복제문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인간이 마음대로 선택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들이 저질러온 죄악이다. 임신 상태에서 남,녀를 구별하고 선별하여 유산과 출산을 결정하는 것도 죄악이다.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발달해도 생명 자체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여호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잔꾀를 부리는 것은 어떤 재앙을 만들어낼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다"(고전6:12)
아담과 하와가 사탄에게 속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여호와 하나님처럼 된다는 사탄의 말은 거짓이었다. 세상에 마귀가 활동하고는 있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통제 속에 있다. 사탄은 사람을 시험할 수 있지만, 그 시험의 수위를 조절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욥의 경우를 보자. 욥을 넘어뜨리려는 그 간악한 사탄의 권모술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조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10:13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허락하신다.
또 피할 길을 내신다" 하셨고, 야고보서1:2에는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다. 또 약1:12에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실까 구원받은 성도를 사랑하시어 더 온전하게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기한 전에 떨어지는 열매를 기뻐하시지 않는다. 설익은 신앙 인격이 아니라, 성숙한 인격의 열매를 기뻐하신다.
사과는 가을이 되면 고운 빛깔로 잘 영글어 익는다. 한 낮에는 뜨거운 뙤악 볕이 따갑도록 온 몸을 달구고, 밤에는 온몸이 시리도록 차거운 기온이 반복되는 동안 사과의 껍질은 붉게 채색이 되고, 안으로안으로 속살을 다지면서 단단하게 영글어 가는 것이다. 그래야 겨우 내내 갈무리를 해도 상하지 않게 된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여호와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설익은 인격을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겸손하게 만드신다.
마태복음11;28-30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진정한 마음의 쉼은 주님과 같이 멍에를 메고 그 온유한 마음과 겸손함을 배울 때 얻어진다. 이 온유와 겸손한 주님의 마음은 주님과 멍에를 같이 멜 때 배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울가 주님과 함께 매어야하는 멍에는 무엇인가 십자가이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라 하셨다. 십자가는 죽음이다. 조그만 일에도 펄펄뛰는 자아의 죽음이다. 거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 그리스도의 성품인 온유와 겸손은 고통의 십자가를 함께 지면서 배어서 얻는 것이다.
교회 건축을 앞두고 금식기도를 하신 목사님이 있었다. 20일을 금식기도 하는 동안 자아가 죽는 겸손의 마음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자아의 죽음으로 통곡하는 눈물의 기도를 알기 시작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비로소 알기 시작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할 수 있었다.
E-Land 박성수 사장의 간증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1975년부터 80년도까지 5년간 대학 캠프스와 교회에서 무보수로 사역을 했다. 젊은이들을 키워서 장차 여호와 하나님의 일군으로 길러 내어 헌신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동안 2년간이나 기도했던 결혼 대상자를 놓치고, 또 다른 자매를 위하여 2년간 기도했으나 역시 놓치고 말았다. 낙심이 되어 6개월간이나 여호와 하나님과 등을 돌린 적도 있었는데, 33세가 되어서야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 후에 박사장도 불치병을 앓았고, 아내도 반신불수가 되어 여러 해 누워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었으나, 많은 아픔들을 겪어야만 했다. 그 많은 아픔을 겪고 난 이후에서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진정한 위로자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고통으로 연단 하신 것이다. 그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정금 같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에 시작한 사업이 E. Land 라는 의류 사업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들어서 쓰시기 위하여 먼저 겸손한 사람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셨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시키시기 위하여 그를 깊은 고통의 수렁에서 낮아지게 하셨고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 물론 그가 지금 완전한 자라고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겠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십자가를 지는 과정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우게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사소한 정말 사소한 것까지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까지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뿐만 아니라, 우리가 앉고 서고 하는 것까지도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이 믿음 속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 속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감사할 수 있다.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요나를 주의하여 보라. 그는 마치 맑은 새벽 공기를 들이쉬며 상쾌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분명 큰 물고기 뱃속에 있다. 죽음의 고통 중에 있다.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답답하고 어두운 곳이다. 온몸이 끈적거리고 퀴퀴한 냄새가 뒤범벅이 되어 있는 곳에서, 바로 이곳에서 자신의 완고한 고집을 다 꺾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새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풀무 불같은 고난 속에서 요나를 정금 같이 연단하고 계셨던 것이다. 누가 이 여호와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알겠는가 믿음의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여호와 하나님의 그 섬세하고 오묘한 사랑의 손길을 알 수 있겠는가
고난 중에서도 드릴 수 있는 감사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무조건 감사해야하는 것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에 대한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요나는 지금 큰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의 분명한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하는 요나의 길목에 서서 길을 가로막으시고 큰 풍랑으로 뒤덮으시며, 마침내 바다에 던지게 하시고, 큰 물고기 뱃속을 집어넣어 죽음의 고통을 거치게 하시면서 마침내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셨다. 이 숭고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그 극악한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하며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다. 이 믿음이 여러분에게 일어나게 되기를 바란다.
 셋째, 구원이다.
우리는 우리의 감사보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그럴듯한 조건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것을 해결 해 주시면 내가 무엇을 하겠습니다. "
"이 번이 이 한 건만 잘 처리되면 제가 크게 한 번 봉사하겠습니다. "
"건강하게만 해 주시면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
그러나 이 조건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응답하지 않으셨다고 판단할 때는 그 기도와 기대가 불평과 원망으로 바뀌고, 심지어 적대감까지 갖는 경우를 보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조건적인 약속이 신실하지 못함을 아시면서도 은혜 베푸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요나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보다 우리의 감사가 더 우선이라는 것이다.
고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드리는 요나의 기도는 이렇게 매듭지어지고 있다.
"구원은 오직 주님에게서만 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이 요나에게 이루어지고 있다.
"주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니, 물고기가 요나를 뭍에다가 뱉어 냈다. "
마침내 수삼 년 같은 3일 동안의 물고기 뱃속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구원을 요청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응답하여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아니시다. 구원받은 이후에 다시 배반하지 않을 정도로 성숙시킨 다음에 구원하신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려 하다가 둘 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경력 있는 구조대원들은 물에 빠진 사람이 완전히 힘이 빠질 때까지 구조를 시작하지 않는다. 완전히 힘이 빠졌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구조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은혜를 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작전이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충분히 회개하고 영적으로 성숙하여 배반하지 않을 상황임을 아시고 여호와 하나님은 물고기를 명하셨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 욥을 알고 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인정하신 의인이었다. 뜻밖에 고난을 받게 되었으나, 그 가운데서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순전을 지켰다. 그는 친구들의 정죄를 받으면서도 조금도 기죽지 아니하고 줄기차게 설전을 계속한다.
욥기32:1,2의 말씀이다.
"욥이 끝내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므로, 이 세 사람은 욥을 설득하려고 하던 노력을 그만 두었다. 욥이 이렇게 ,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잘못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리므로"
욥기 4장부터 31장까지 장장28장의 내용이 모두 욥과 친구들의 끈질긴 설전의 내용이다. 이 설전이 끝나지 않자 젊은 엘리후가 끼어 들었다.
32장부터 37장까지 장장 여섯 장의 분량으로 욥에게 말한다. 욥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한다. 38장부터 41장까지 4장에 걸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신다. 욥은 한마디도 대답지 못한다. 엘리후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열장이나 계속되는 동안에 욥은 침묵한다. 욥은 그의 무죄 주장을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서야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욥42:5,6)
여호와 하나님은 욥에게 그와 설전을 벌였던 친구들을 용서하고 위하여 축복의 기도를 드리는 일까지 하도록 하셨다.
욥기42:10의 말씀이다.
"욥이 주께, 자기 친구들을 용서해 주시라고 기도를 드리고 난 다음에, 주께서 욥의 재산을 회복시켜 주셨는데, 욥이 이전에 가졌던 모든 것보다 배나 더 돌려 주셨다"
보라. 환경의 회복보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은 욥의 영적인 상태가 준비되기를 기다리셨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하는 노래를 부르며 여호와 하나님께 나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 마음에 원한이나 불평의 요소가 남아 있다면,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가 덜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침묵하며 욥을 기다리셨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로 성숙될 때까지 그의 변화를 기다리시며, 그의 회복의 때를 지연시키셨다. 만약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연장되는 것이 우리의 성장과 성숙을 기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내라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우리를 위한 영광스런 응답을 준비하고 기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는 복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 개인과 가정, 교회와 민족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복된 계획이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각 가정단위의 선교를 금년에 시작한다.
한 가정이 한 교회를! 우리 가정이 한 선교사를! 세우고 섬기는 일을 하게 된다. 생각만 해도 기쁜 이 일을 계획하고 결의하도록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 드린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그 폭을 달리 하게 될 것이다. 우리 가정의 신앙적인 구조와 축복의 폭이 달라질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연단하신 우리들의 신앙의 성숙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이루도록 하셨다.
성도 여러분들의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은혜의 문이 활짝 열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요나의 감사하는 믿음을 통하여 위대한 구원을 보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 우리들의 신앙과 삶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시고 준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을 받게 하실 것을 믿는다.
우리모두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아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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