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요나의 감사(1)
본문
오늘은 교회력에 따라 추수감사주일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원래 이 추수감사절은 인간이 만든 절기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절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500여 년 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레위기 23장 9절부터 14절에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 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 되도록... ”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추수감사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다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추수감사절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 비롯되었습니다. 1620년 9월16일 경건한 삶을 추구하던 청교도 102명이 영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영국을 떠나 대서양을 가로질러 식량부족과 폭풍, 등의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같은 해 12월 26일에 미국의 한 이름도 없는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땅에 도착하자마자,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첫째로,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평균 시속 2마일로 오랫동안의 안전한 항해에 감사하고, 둘째로 항해 중 2명이 죽었으나 한 아기가 태어났음을 감사하고, 셋째로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하고, 넷째로 큰 파도에 밀려 여자들이 바다에 빠진 사건이 두 번 있었으나 모두 구출됐음을 감사하고, 다섯째로 신대륙에 접근한 뒤 일부 인디언의 방해로 상륙 못하다가 한 달 만에 플리머스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음을 감사하고, 여섯째로 3개월 항해 중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을 감사하였습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들은 그 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푹신하고 따뜻한 침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겨울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결국 또 한 번의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려서 그들 중, 반 수 이상 죽었습니다. 이듬해 봄이 되어 가지고 왔던 밀, 옥수수 등의 씨를 뿌려야 하는데, 그들 대부분 도시의 지식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농사짓는 법을 몰라서 또 한 차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한 인디언이 찾아와서 이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청교도들은 그 인디언의 지도를 따라 여름 내내 열심히 농사를 지어, 가을에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이때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도운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또 함께 1주일 동안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의 변천과정입니다.
이 추수감사절은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감사를 드렸던 청교도들의 감사정신’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디에서 이러한 감사정신을 배웠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배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감사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감사의 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요나서 2장 1절부터 10절을 중심으로 요 나의 감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주전 760년 경,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을 구원시키고자 요나라는 선지자를 파송하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과거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니느웨를 구원시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풍랑을 일으켜서 도망가는 요나가 탄 배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원인 없는 결과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 죄를 지은 사람이 배안에 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제비를 뽑아서 죄인을 찾아내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제비뽑기에 동참하였는데, 요나가 뽑히어 바다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자마자 큰 물고기가 그를 삼키고 말았습니다. 이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가 그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보여준 행동입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요나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물고기 뱃속에 있습니다. 그가 물고기 뱃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다시 말하면 살아날 가망이 없고 절망의 깊은 수렁 속에서도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요나의 모습을 9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9절에서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절망의 환경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왜 이러한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났는가’, ‘하필이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는가’, ‘왜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하나’하면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절망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감사하는 것을 보면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로 ‘때문에’의 감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편의 사업이 잘 되기 때문에, 자녀가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가족이 건강하기 때문에, 등의 ‘때문에’의 감사를 합니다. 둘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록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녀가 공부를 잘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등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합니다. 여러분들은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감사를 하고 있다면 어떤 종류의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때문에’의 감사를 하십니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하십니까 아니면 감사의 조건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기는 커녕, 오히려 원망과 불평만 하고 있습니까 본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요나의 감사는 ‘때문에’의 감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였습니다. 비록 그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밖으로 나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본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드렸던 요나는 우리들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주신 은혜에 감사하라(과거)
요나는 고래뱃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이제까지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8절과 9절을 보겠습니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 이 말씀을 그냥 읽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과는 달리, 자신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구원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신실하게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비록 물고기 뱃속에서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푸신 은혜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위로부터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마치 돼지가 매일매일 도토리를 먹으면서도 도토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것처럼, 매일매일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는데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토리는 원래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살아갑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흘리지 않으셨다면 우리에게 구원이 길이 열렸겠습니까
또 로마의 핍박 속에서도 주님의 제자들이 목숨 걸고 복음을 증거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이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졌겠습니까 또 누군가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의 소망을 품고 살아갈 뿐 아니라,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 가운데 이 땅에서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전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없는 것을 가지고 고민하지 마시고, 주신 은혜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것을 가지고 염려하지 마시고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182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태어난 지 6주 만에 수술을 받았는데, 잘못되어 평생 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절망하며 실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눈만 없을 뿐이지 그 외의 것은 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원하는 사물을 집을 수 있는 손도 있고,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발도 있고, 맛있는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도 있고, 음식을 먹기도 하고 의사도 표시할 수 있는 입도 있고, 여러 가지 소리와 사람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때부터 그녀는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담아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그녀가 지은 시 중에 많은 것들이 찬송가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 204장이 바로 그녀가 지은 것입니다. 또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하소서.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 피로써 나를 정케 하소서. ” 찬송가 219장과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 찬송가 337장, 그리고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찬송가 434장도 그녀가 지은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하나하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한번은 제가 심한 좌절과 낙심 가운데 빠졌을 때, 찬송가 489장 가사를 생각하다가 여호와 하나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 또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 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리라. 염려 없이 앞만 보고 나가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 저는 “내려주신 복을 세어보아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는 이 가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제가 받은 복을 한번 세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감사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받을만한 어떠한 조건도 없이 죽어 마땅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셨습니다. 또 구원받은 것도 감사한 일인데, 평생 동안 영혼 살리며 살아가도록 목사로 세워주셨습니다.
또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를 주셔서 가정을 꾸리게 하셨습니다. 또 안식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스위트 홈인 가정을 주시고, 두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침대와 필요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동차도 주셨습니다. 또 끼니때마다 밥 굶지 않도록 먹을 것을 주시고, 언제든지 들이마실 수 있는 공기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복을 하나하나 세어보니까 정말 많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하나하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받은 복과 주신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라(현재)
요나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요나는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3절을 보면 그가 처한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 또 5절을 보겠습니다.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 그는 깊은 바다 가운데 던져졌습니다. 큰 파도와 물결이 그를 덮었습니다.
바다풀이 그의 몸을 감쌌습니다. 그는 지금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4절) 고난 속에서도 다시 성전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생긴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불순종하여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다시 한번 사명을 회복하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절망의 터널 속에 빠졌지만, 그 속에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너무나 먼 다리, 가장 길었던 날, 등의 귀한 작품을 발표한 소설가 코넬리어스 라이언(Cornelius Ryan)이 말년에 5년 동안 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는 남편이 남긴 작품들을 모아 가장 긴 밤이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그 책에서 남편은 아침마다 일어나면 매일 똑같이 “오 여호와 하나님, 오늘 나에게 새로운 한 날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짤막한 감사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인은 “당신 지금 암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뭐가 그리 좋아서 ‘오늘 나에게 새로운 한 날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렇게 기도합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죽음이 내 앞에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데 간밤에도 죽지 않고 오늘 새로운 하루를 살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오. 당신은 미처 생각하지 못할 것이오. 나에게 하루가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며, 사랑하는 아내를 또 다시 볼 수 있고, 나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르는 가장 길었던 날의 단 한 페이지라도 쓸 수 있다는 것, 또 한편으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내 가까이 계셔서 내가 병과의 싸움에서 이겨갈 수 있는 힘을 주신 것, 이 모든 것이 감사한 일이 아니겠소” 부인은 남편이 감사기도를 드리는 그 순간만큼 행복하게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실 인생의 행복은 감사하는 순간 이루어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
그렇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요, 감사하는 사람이 믿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시편 50편 14절에서 “감사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 드리며”, 에베소서 5장 20절에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감사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감사를 드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감사가 있는 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시지만, 원망과 불평이 있는 곳에는 꼭 마귀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를 놓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고 나서 5,000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나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때가 되었습니다. ”라고 감사를 드리자, 죽은 나사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감사가 있는 곳에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과 시기가 있는 곳에는 꼭 마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나서 백성들로부터 인기를 얻게 되자, 사울 왕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사울 왕에게 임하여 결국 다윗 꽁무니만 쫓다가 인생 다 보내고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또 향유담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죽으심을 준비한 마리아에게 불평불만을 토로한 가룟 유다에게 마귀가 들어가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버리고 나중에는 목매달아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감사가 있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만, 원망과 불평이 있는 곳에는 꼭 마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감사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부르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존 헨리 죠엣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예방주사와 같고, 항생제와 같고, 방부제와 같다. ”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많은 문제들을 미리 예방할 수 방법은 지금 처해진 상황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면 비록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지금의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처럼 현재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래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섭리를 믿고 감사하라(미래)
큰 물고기 뱃속에 있는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섭리하실 것을 믿고 감사를 하였습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 또 6절과 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 요나는 스올, 즉 지옥과 같은 절망의 상태에서 부르짖었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덩이에서 건져 주셨고, 자기의 기도가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합니다. 시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지나간 과거시제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직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셨지만 그는 역사하신 것으로 믿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아직까지 응답받은 것은 아니지만,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신 것으로 믿고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가 아직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지만, 구출해 주신 것으로 믿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의 모습을 배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감사한 그의 모습을 배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면, 어떠한 경우,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전능하신 주님, 구원의 주님, 사랑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나를 도와주시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결국에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전에 제가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멕시코 어떤 마을에 가면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다고 합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끓는 뜨거운 온천물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를 닮은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굴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세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자기들을 안내하던 멕시코 가이드에게 물었답니다.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까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온천과 냉천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겠군요” 그랬더니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천만에요. 이곳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땅에서 쏟아나는 것은 괜찮은데, 이왕이면 비누까지 주시지. 찬물과 더운물만 주고 비누는 왜 안 주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합니다. ”
사람의 마음이 이렇습니다. 죄인 인간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우리의 감사가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불러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입속에서 나온 말대로 우리 인생이 결정됩니다.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실을 통해 누에가 자기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입에서 나오는 내용 그대로 우리 인생이 결정됩니다. 민수기 14장 26절부터 30절을 보면 말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 무슨 말입니까 말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으신 대로 역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맹세하면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들은 대로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고백한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원망과 불평을 한 사람들은 그들의 말대로 한 사람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입술이 매사에 감사하는 입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원망과 불평불만 보다는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직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아직까지 크나큰 변화가 없어도, 그래도 변화될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6절에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 ”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아직까지 응답되지는 않았어도 응답된 것으로 믿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부끄러운 과거이지만, 그 일로 인하여 깨달은 것이 많았고 또 그 분에게는 좋은 일이기 때문에 개인양육 성경공부를 인도하다가 종종 소개하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 1999년 초였던 것 같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재정부에서 저에게 넘겨준 빈 헌금봉투를 하나하나 살펴가며 기도를 하는데, 그 중에 감사헌금 봉투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대충 이러한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동생 영주권 나오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OOO” 감사헌금을 드린 그 분이 동생 영주권 취득을 위해 저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였던 적이 있고 심방 갈 때마다 제가 기도해 준 적이 있기 때문에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드디어 동생 영주권이 나왔구나 그런데 굉장히 빨리 나왔네. ’라고 생각하며 그 댁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여보세요”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할렐루야! 축하합니다. 동생 영주권 나왔다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목사님! 아닌데요. 아직 동생 영주권 나오지 않았어요. ” 저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어 “동생 영주권 나오게 해주셔서 감사한다고 감사헌금을 드리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예, 그것은 동생 영주권을 주실 것으로 믿고 미리 감사한 거예요. ” 정말 목사보다 믿음이 훨씬 좋은 분이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몇 개월도 되지 않아 동생 영주권이 나왔습니다. 할렐루야! 만약 영주권이 안나왔으면 제가 이 이야기를 소개하지 않습니다. 동생은 영주권을 신청하기에 점수도 부족했지만, 영어 시험도 치르지 않았지만, 정말 기적적으로 영주권이 나온 것입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린 그 분의 믿음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고 믿습니다. 아직까지 응답을 받지는 않았지만, 응답받은 것으로 믿고 감사한 그 분의 믿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역사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큰 물고기 뱃속에 있는 요나처럼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습니까 그래도 섭리하실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바라보시고 역사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아무 희망도 없는 요나는 이처럼 지금까지 공급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고, 지금 처해진 상황에서도 감사했고, 또 앞으로 섭리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감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0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감사의 고백을 들으시고 고래뱃속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죽어가면서도 고백한 감사를 들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결코 공짜가 없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가져옵니다.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요나의 감사’가 요 ‘나의 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추수감사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다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추수감사절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 비롯되었습니다. 1620년 9월16일 경건한 삶을 추구하던 청교도 102명이 영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영국을 떠나 대서양을 가로질러 식량부족과 폭풍, 등의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같은 해 12월 26일에 미국의 한 이름도 없는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땅에 도착하자마자,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첫째로,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평균 시속 2마일로 오랫동안의 안전한 항해에 감사하고, 둘째로 항해 중 2명이 죽었으나 한 아기가 태어났음을 감사하고, 셋째로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하고, 넷째로 큰 파도에 밀려 여자들이 바다에 빠진 사건이 두 번 있었으나 모두 구출됐음을 감사하고, 다섯째로 신대륙에 접근한 뒤 일부 인디언의 방해로 상륙 못하다가 한 달 만에 플리머스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음을 감사하고, 여섯째로 3개월 항해 중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을 감사하였습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들은 그 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푹신하고 따뜻한 침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겨울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결국 또 한 번의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려서 그들 중, 반 수 이상 죽었습니다. 이듬해 봄이 되어 가지고 왔던 밀, 옥수수 등의 씨를 뿌려야 하는데, 그들 대부분 도시의 지식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농사짓는 법을 몰라서 또 한 차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한 인디언이 찾아와서 이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청교도들은 그 인디언의 지도를 따라 여름 내내 열심히 농사를 지어, 가을에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이때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도운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또 함께 1주일 동안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의 변천과정입니다.
이 추수감사절은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감사를 드렸던 청교도들의 감사정신’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디에서 이러한 감사정신을 배웠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배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감사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감사의 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요나서 2장 1절부터 10절을 중심으로 요 나의 감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주전 760년 경,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을 구원시키고자 요나라는 선지자를 파송하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과거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니느웨를 구원시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풍랑을 일으켜서 도망가는 요나가 탄 배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원인 없는 결과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 죄를 지은 사람이 배안에 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제비를 뽑아서 죄인을 찾아내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제비뽑기에 동참하였는데, 요나가 뽑히어 바다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자마자 큰 물고기가 그를 삼키고 말았습니다. 이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가 그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보여준 행동입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요나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물고기 뱃속에 있습니다. 그가 물고기 뱃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다시 말하면 살아날 가망이 없고 절망의 깊은 수렁 속에서도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요나의 모습을 9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9절에서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절망의 환경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왜 이러한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났는가’, ‘하필이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는가’, ‘왜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하나’하면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절망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감사하는 것을 보면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로 ‘때문에’의 감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편의 사업이 잘 되기 때문에, 자녀가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가족이 건강하기 때문에, 등의 ‘때문에’의 감사를 합니다. 둘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록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녀가 공부를 잘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등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합니다. 여러분들은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감사를 하고 있다면 어떤 종류의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때문에’의 감사를 하십니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하십니까 아니면 감사의 조건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기는 커녕, 오히려 원망과 불평만 하고 있습니까 본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요나의 감사는 ‘때문에’의 감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였습니다. 비록 그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밖으로 나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본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드렸던 요나는 우리들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주신 은혜에 감사하라(과거)
요나는 고래뱃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이제까지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8절과 9절을 보겠습니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 이 말씀을 그냥 읽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과는 달리, 자신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구원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신실하게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비록 물고기 뱃속에서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푸신 은혜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위로부터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마치 돼지가 매일매일 도토리를 먹으면서도 도토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것처럼, 매일매일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는데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토리는 원래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살아갑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흘리지 않으셨다면 우리에게 구원이 길이 열렸겠습니까
또 로마의 핍박 속에서도 주님의 제자들이 목숨 걸고 복음을 증거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이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졌겠습니까 또 누군가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의 소망을 품고 살아갈 뿐 아니라,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 가운데 이 땅에서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전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없는 것을 가지고 고민하지 마시고, 주신 은혜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것을 가지고 염려하지 마시고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182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태어난 지 6주 만에 수술을 받았는데, 잘못되어 평생 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절망하며 실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눈만 없을 뿐이지 그 외의 것은 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원하는 사물을 집을 수 있는 손도 있고,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발도 있고, 맛있는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도 있고, 음식을 먹기도 하고 의사도 표시할 수 있는 입도 있고, 여러 가지 소리와 사람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때부터 그녀는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담아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그녀가 지은 시 중에 많은 것들이 찬송가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 204장이 바로 그녀가 지은 것입니다. 또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하소서.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 피로써 나를 정케 하소서. ” 찬송가 219장과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 찬송가 337장, 그리고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찬송가 434장도 그녀가 지은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하나하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한번은 제가 심한 좌절과 낙심 가운데 빠졌을 때, 찬송가 489장 가사를 생각하다가 여호와 하나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 또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 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리라. 염려 없이 앞만 보고 나가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 저는 “내려주신 복을 세어보아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는 이 가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제가 받은 복을 한번 세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감사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받을만한 어떠한 조건도 없이 죽어 마땅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셨습니다. 또 구원받은 것도 감사한 일인데, 평생 동안 영혼 살리며 살아가도록 목사로 세워주셨습니다.
또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를 주셔서 가정을 꾸리게 하셨습니다. 또 안식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스위트 홈인 가정을 주시고, 두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침대와 필요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동차도 주셨습니다. 또 끼니때마다 밥 굶지 않도록 먹을 것을 주시고, 언제든지 들이마실 수 있는 공기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복을 하나하나 세어보니까 정말 많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하나하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받은 복과 주신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라(현재)
요나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요나는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3절을 보면 그가 처한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 또 5절을 보겠습니다.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 그는 깊은 바다 가운데 던져졌습니다. 큰 파도와 물결이 그를 덮었습니다.
바다풀이 그의 몸을 감쌌습니다. 그는 지금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4절) 고난 속에서도 다시 성전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생긴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불순종하여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다시 한번 사명을 회복하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절망의 터널 속에 빠졌지만, 그 속에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너무나 먼 다리, 가장 길었던 날, 등의 귀한 작품을 발표한 소설가 코넬리어스 라이언(Cornelius Ryan)이 말년에 5년 동안 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는 남편이 남긴 작품들을 모아 가장 긴 밤이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그 책에서 남편은 아침마다 일어나면 매일 똑같이 “오 여호와 하나님, 오늘 나에게 새로운 한 날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짤막한 감사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인은 “당신 지금 암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뭐가 그리 좋아서 ‘오늘 나에게 새로운 한 날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렇게 기도합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죽음이 내 앞에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데 간밤에도 죽지 않고 오늘 새로운 하루를 살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오. 당신은 미처 생각하지 못할 것이오. 나에게 하루가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며, 사랑하는 아내를 또 다시 볼 수 있고, 나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르는 가장 길었던 날의 단 한 페이지라도 쓸 수 있다는 것, 또 한편으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내 가까이 계셔서 내가 병과의 싸움에서 이겨갈 수 있는 힘을 주신 것, 이 모든 것이 감사한 일이 아니겠소” 부인은 남편이 감사기도를 드리는 그 순간만큼 행복하게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실 인생의 행복은 감사하는 순간 이루어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
그렇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요, 감사하는 사람이 믿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시편 50편 14절에서 “감사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 드리며”, 에베소서 5장 20절에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감사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감사를 드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감사가 있는 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시지만, 원망과 불평이 있는 곳에는 꼭 마귀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를 놓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고 나서 5,000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나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때가 되었습니다. ”라고 감사를 드리자, 죽은 나사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감사가 있는 곳에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과 시기가 있는 곳에는 꼭 마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나서 백성들로부터 인기를 얻게 되자, 사울 왕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사울 왕에게 임하여 결국 다윗 꽁무니만 쫓다가 인생 다 보내고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또 향유담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죽으심을 준비한 마리아에게 불평불만을 토로한 가룟 유다에게 마귀가 들어가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버리고 나중에는 목매달아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감사가 있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만, 원망과 불평이 있는 곳에는 꼭 마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감사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부르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존 헨리 죠엣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예방주사와 같고, 항생제와 같고, 방부제와 같다. ”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많은 문제들을 미리 예방할 수 방법은 지금 처해진 상황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면 비록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지금의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처럼 현재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래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섭리를 믿고 감사하라(미래)
큰 물고기 뱃속에 있는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섭리하실 것을 믿고 감사를 하였습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 또 6절과 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 요나는 스올, 즉 지옥과 같은 절망의 상태에서 부르짖었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덩이에서 건져 주셨고, 자기의 기도가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합니다. 시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지나간 과거시제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직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셨지만 그는 역사하신 것으로 믿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아직까지 응답받은 것은 아니지만,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신 것으로 믿고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가 아직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지만, 구출해 주신 것으로 믿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의 모습을 배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감사한 그의 모습을 배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면, 어떠한 경우,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전능하신 주님, 구원의 주님, 사랑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나를 도와주시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결국에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전에 제가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멕시코 어떤 마을에 가면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다고 합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끓는 뜨거운 온천물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를 닮은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굴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세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자기들을 안내하던 멕시코 가이드에게 물었답니다.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까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온천과 냉천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겠군요” 그랬더니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천만에요. 이곳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땅에서 쏟아나는 것은 괜찮은데, 이왕이면 비누까지 주시지. 찬물과 더운물만 주고 비누는 왜 안 주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합니다. ”
사람의 마음이 이렇습니다. 죄인 인간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우리의 감사가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불러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입속에서 나온 말대로 우리 인생이 결정됩니다.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실을 통해 누에가 자기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입에서 나오는 내용 그대로 우리 인생이 결정됩니다. 민수기 14장 26절부터 30절을 보면 말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 무슨 말입니까 말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으신 대로 역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맹세하면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들은 대로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고백한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원망과 불평을 한 사람들은 그들의 말대로 한 사람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입술이 매사에 감사하는 입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원망과 불평불만 보다는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직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아직까지 크나큰 변화가 없어도, 그래도 변화될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6절에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 ”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아직까지 응답되지는 않았어도 응답된 것으로 믿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부끄러운 과거이지만, 그 일로 인하여 깨달은 것이 많았고 또 그 분에게는 좋은 일이기 때문에 개인양육 성경공부를 인도하다가 종종 소개하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 1999년 초였던 것 같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재정부에서 저에게 넘겨준 빈 헌금봉투를 하나하나 살펴가며 기도를 하는데, 그 중에 감사헌금 봉투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대충 이러한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동생 영주권 나오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OOO” 감사헌금을 드린 그 분이 동생 영주권 취득을 위해 저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였던 적이 있고 심방 갈 때마다 제가 기도해 준 적이 있기 때문에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드디어 동생 영주권이 나왔구나 그런데 굉장히 빨리 나왔네. ’라고 생각하며 그 댁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여보세요”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할렐루야! 축하합니다. 동생 영주권 나왔다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목사님! 아닌데요. 아직 동생 영주권 나오지 않았어요. ” 저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어 “동생 영주권 나오게 해주셔서 감사한다고 감사헌금을 드리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예, 그것은 동생 영주권을 주실 것으로 믿고 미리 감사한 거예요. ” 정말 목사보다 믿음이 훨씬 좋은 분이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몇 개월도 되지 않아 동생 영주권이 나왔습니다. 할렐루야! 만약 영주권이 안나왔으면 제가 이 이야기를 소개하지 않습니다. 동생은 영주권을 신청하기에 점수도 부족했지만, 영어 시험도 치르지 않았지만, 정말 기적적으로 영주권이 나온 것입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린 그 분의 믿음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고 믿습니다. 아직까지 응답을 받지는 않았지만, 응답받은 것으로 믿고 감사한 그 분의 믿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역사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큰 물고기 뱃속에 있는 요나처럼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습니까 그래도 섭리하실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바라보시고 역사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아무 희망도 없는 요나는 이처럼 지금까지 공급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고, 지금 처해진 상황에서도 감사했고, 또 앞으로 섭리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감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0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감사의 고백을 들으시고 고래뱃속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죽어가면서도 고백한 감사를 들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결코 공짜가 없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가져옵니다.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요나의 감사’가 요 ‘나의 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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