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감사로 삽시다
본문
"영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행복하게 살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 동안 행복하기를 원하면 결혼을 하라. 한 달을 행복하기를 원하면 새 집을 사고 일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진실한 인간이 되라. "예수 믿는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은 "진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진실하게 사는 사람이 결국 승리합니다.
지난 주일의 공동의회 결과가 오늘 주보에 나왔습니다. 교회 마당 이곳 저곳에서축하합니다! 하고 인사 나누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수집사, 안수권사직을 맡는 것이 정말 축하 받을 일인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가고 있을 때 옆에 섰던 사람들 중 누가 예수님을 향하여 축하합니다!하고 인사할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은 오히려 흉칙하고, 혐오스러우며, 참기 어려운 고통이요 질고입니다. 안수를 받고 교회의 중직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오늘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으로 선택된 것이요,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구레네의 시몬과 같이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끝까지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부활한 후에야 비로소 축하합니다!라는 인사가 걸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뽑힌 사람들에게 보내는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는 마치 오늘날 한국 교회의 잘못된 직분 의식이나 교권주의, 혹은 명예욕의 발로처럼 느껴집니다. 차라리 충성하십시요, 좋은 일군이 되십시요, 최선을 다 하십시요... 하는 격려의 인사가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것이 중직자의 태도요 중직을 맡은 지도자의 바른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불란서의 수학자이며 사상가인 파스칼(Blaise Pascal)은 인간을 세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육체에 속한 인간, 정신에 속한 인간, 그리고 사랑의 질서에 속한 인간입니다. 육체에 속한 인간은 욕심의 사람이며, 정신에 속한 인간은 만족의 사람이고, 사랑의 질서에 속한 인간은 영적인 사람으로 만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사에 이르는 사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감사주일로 지키는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요엘서의 말씀은 "감사의 노래"입니다. 이 감사의 노래를 좀더 살펴보면,
21절, 땅이여, 두려워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절,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23절,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요엘 선지자의 감사의 노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은 감사로 살아야 합니다. 감사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사는 데 필수적인 용기요 힘입니다. 요엘 선지서는 단 3장밖에 안되는 짧은 예언서입니다. 짧지만 그 내용과 사상은 심오하고 깊어서 베드로, 바울, 사도 요한 등이 요엘 선지서의 예언을 인용하였습니다. 심지어 구약의 대선지자인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이도 요엘과 같은 맥락의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요엘 선지서의 메시지는 그림과 같이 분명하고 활기에 찬 표현으로 그의 이름대로 여호와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의 예언의 첫 단계는 비가 오지 않는 한발과 메뚜기, 황충 재앙을 여호와 하나님의 채찍과 사랑의 매로 보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에서 사랑의 징계는 회개를 촉구하고, 회개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셋째 단계에 이르러서는 오순절에 임하였던 성령의 약속과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예언하고 이에 감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 중동 지역에서 흔히 있었던 가뭄과 황충의 재앙을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과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적 행위로 보는 것은 그의 깊은 역사적 통찰력과 신앙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황충은 마치 구름 떼처럼 몰려와서 처음에는 푸른 잎, 다음은 나뭇가지, 다음은 나무 뿌리, 심지어 물기가 있는 것은 모조리 먹어 치우고 지나갑니다. 이토록 초장을 폐허로 만드는 사건을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로 보고, 그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IMF라는 경제적 위기에 도덕적인 타락, 그리고 교권주의 남용과 종교인들의 패싸움 등을 보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무슨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이러한 삶의 현장에서 맞는 감사절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저 연례적인 행사로 생각하고 지낸다면 또 한 번의 감사절이 우리 신앙생활에 무슨 의미와 뜻을 더할 것인지 스스로 반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본문 25절에서 힘주어 외칩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은 감사요, 삶의 증거도 감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높은 도덕 생활의 동기도 감사로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부모님께 감사, 선생님께 감사, 교회 앞에 감사, 어른들께 감사, 심지어 자녀들에게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감사합니까 나는 다음 세 가지를 감사하고자 합니다.
I.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를 감사해야 합니다
징계의 매는 사랑의 증거입니다. 히브리서 12:6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고 하셨습니다. 지난 날 우리 민족에게 있었던 아픔과 고통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로 알아야 합니다. IMF의 고통이나 계속되는 홍수와 태풍의 피해 등은 마치 이스라엘에게 황충으로 징계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징계의 시간을 주시는 줄 알아야 합니다.
혹 우리 중에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 중에 있는 자가 있습니까 경영과 사업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가족의 건강에 고통이 있습니까 자녀와 집안에 근심이 있습니까 질병이나 가난 속에서 불안한 자가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으로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시편 94:12에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책망하고, 종아리를 때리는 부모님이 있을 때가 자식으로서는 참 좋은 때입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책망할 자가 없으면, 버린 자식이요 고아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2. 회개할 마음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온 백성으로 금식하고 울며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2:15 이하에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면서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하고 기도하도록 권합니다. 강단에서 회개를 촉구하고 변화를 외치지만 강팍한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회개하는 마음을 주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또 다른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축복 즉 회개의 축복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깊이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감사요 수준 높은 은혜입니다. 이런 사람이 쓸모있는 사람이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마라나타"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식사 기도를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죄송하지만 우리 아빠를 빨리 하늘나라로 데려가 주세요. 하고 기도했더랍니다. 예기치 못한 기도에 가족들이 아멘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기도한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는 이 세상이 너무 힘드니까 천국에 가서 편히 사시도록 그랬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난 아빠는 앞으로는 아빠가 천국 가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 일을 많이 하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깁니다.
어린 아들의 단순한 기도에 인생을 생각하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나태했던 신앙생활을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축복 받는 지름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요엘서 2:28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神)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회개하는 자가 있습니까 마음의 변화가 있습니까 이 시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은혜인줄 알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3.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회개하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시면서 모든 이방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회복할 희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는 때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니라...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3:14). 회개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넘치는 구원으로 다가오십니다. 이 세상과 다음 세상의 구원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십니다.
여호와의 구원의 축복은 3차원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세상에서 물질적인 풍요를 주십니다.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농사가 잘 되고 과일이 풍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업이 번창하고 경제가 성장하며 기술이 향상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여호와의 전에서 생명 샘물이 흘러나와 민족의 가슴을 윤택하게 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마음의 평안과 만족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고 진급이 잘 되고, 수출이 호조를 보여도, 무시를 당하거나 오해를 받거나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풍요한 물질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충만하고 행복한 가정과 교회, 사회를 만들어 주신다는 약속은 더욱 높은 은혜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영혼의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죄사함을 받아 구원 얻는 것이 영적인 축복입니다. 무엇보다 인생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에 인생됨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영혼은 영원한 천국의 소유자입니다. 이것이 궁극적이고 완전하며 절대적인 축복입니다. 추수감사절입니다. 이날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도 인생 황혼기에는 건망증이 아주 심했다고 합니다. 친구나 동료, 심지어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무엇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이 질문에 대해 뉴턴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고 대답합니다.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로 삽시다. 이것이 오늘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에게 드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지난 주일의 공동의회 결과가 오늘 주보에 나왔습니다. 교회 마당 이곳 저곳에서축하합니다! 하고 인사 나누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수집사, 안수권사직을 맡는 것이 정말 축하 받을 일인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가고 있을 때 옆에 섰던 사람들 중 누가 예수님을 향하여 축하합니다!하고 인사할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은 오히려 흉칙하고, 혐오스러우며, 참기 어려운 고통이요 질고입니다. 안수를 받고 교회의 중직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오늘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으로 선택된 것이요,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구레네의 시몬과 같이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끝까지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부활한 후에야 비로소 축하합니다!라는 인사가 걸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뽑힌 사람들에게 보내는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는 마치 오늘날 한국 교회의 잘못된 직분 의식이나 교권주의, 혹은 명예욕의 발로처럼 느껴집니다. 차라리 충성하십시요, 좋은 일군이 되십시요, 최선을 다 하십시요... 하는 격려의 인사가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것이 중직자의 태도요 중직을 맡은 지도자의 바른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불란서의 수학자이며 사상가인 파스칼(Blaise Pascal)은 인간을 세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육체에 속한 인간, 정신에 속한 인간, 그리고 사랑의 질서에 속한 인간입니다. 육체에 속한 인간은 욕심의 사람이며, 정신에 속한 인간은 만족의 사람이고, 사랑의 질서에 속한 인간은 영적인 사람으로 만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사에 이르는 사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감사주일로 지키는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요엘서의 말씀은 "감사의 노래"입니다. 이 감사의 노래를 좀더 살펴보면,
21절, 땅이여, 두려워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절,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23절,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요엘 선지자의 감사의 노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은 감사로 살아야 합니다. 감사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사는 데 필수적인 용기요 힘입니다. 요엘 선지서는 단 3장밖에 안되는 짧은 예언서입니다. 짧지만 그 내용과 사상은 심오하고 깊어서 베드로, 바울, 사도 요한 등이 요엘 선지서의 예언을 인용하였습니다. 심지어 구약의 대선지자인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이도 요엘과 같은 맥락의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요엘 선지서의 메시지는 그림과 같이 분명하고 활기에 찬 표현으로 그의 이름대로 여호와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의 예언의 첫 단계는 비가 오지 않는 한발과 메뚜기, 황충 재앙을 여호와 하나님의 채찍과 사랑의 매로 보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에서 사랑의 징계는 회개를 촉구하고, 회개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셋째 단계에 이르러서는 오순절에 임하였던 성령의 약속과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예언하고 이에 감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 중동 지역에서 흔히 있었던 가뭄과 황충의 재앙을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과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적 행위로 보는 것은 그의 깊은 역사적 통찰력과 신앙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황충은 마치 구름 떼처럼 몰려와서 처음에는 푸른 잎, 다음은 나뭇가지, 다음은 나무 뿌리, 심지어 물기가 있는 것은 모조리 먹어 치우고 지나갑니다. 이토록 초장을 폐허로 만드는 사건을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로 보고, 그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IMF라는 경제적 위기에 도덕적인 타락, 그리고 교권주의 남용과 종교인들의 패싸움 등을 보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무슨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이러한 삶의 현장에서 맞는 감사절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저 연례적인 행사로 생각하고 지낸다면 또 한 번의 감사절이 우리 신앙생활에 무슨 의미와 뜻을 더할 것인지 스스로 반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본문 25절에서 힘주어 외칩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은 감사요, 삶의 증거도 감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높은 도덕 생활의 동기도 감사로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부모님께 감사, 선생님께 감사, 교회 앞에 감사, 어른들께 감사, 심지어 자녀들에게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감사합니까 나는 다음 세 가지를 감사하고자 합니다.
I.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를 감사해야 합니다
징계의 매는 사랑의 증거입니다. 히브리서 12:6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고 하셨습니다. 지난 날 우리 민족에게 있었던 아픔과 고통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로 알아야 합니다. IMF의 고통이나 계속되는 홍수와 태풍의 피해 등은 마치 이스라엘에게 황충으로 징계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징계의 시간을 주시는 줄 알아야 합니다.
혹 우리 중에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 중에 있는 자가 있습니까 경영과 사업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가족의 건강에 고통이 있습니까 자녀와 집안에 근심이 있습니까 질병이나 가난 속에서 불안한 자가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으로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시편 94:12에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책망하고, 종아리를 때리는 부모님이 있을 때가 자식으로서는 참 좋은 때입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책망할 자가 없으면, 버린 자식이요 고아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2. 회개할 마음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온 백성으로 금식하고 울며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2:15 이하에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면서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하고 기도하도록 권합니다. 강단에서 회개를 촉구하고 변화를 외치지만 강팍한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회개하는 마음을 주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또 다른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축복 즉 회개의 축복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깊이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감사요 수준 높은 은혜입니다. 이런 사람이 쓸모있는 사람이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마라나타"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식사 기도를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죄송하지만 우리 아빠를 빨리 하늘나라로 데려가 주세요. 하고 기도했더랍니다. 예기치 못한 기도에 가족들이 아멘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기도한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는 이 세상이 너무 힘드니까 천국에 가서 편히 사시도록 그랬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난 아빠는 앞으로는 아빠가 천국 가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 일을 많이 하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깁니다.
어린 아들의 단순한 기도에 인생을 생각하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나태했던 신앙생활을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축복 받는 지름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요엘서 2:28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神)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회개하는 자가 있습니까 마음의 변화가 있습니까 이 시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은혜인줄 알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3.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회개하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시면서 모든 이방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회복할 희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는 때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니라...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3:14). 회개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넘치는 구원으로 다가오십니다. 이 세상과 다음 세상의 구원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십니다.
여호와의 구원의 축복은 3차원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세상에서 물질적인 풍요를 주십니다.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농사가 잘 되고 과일이 풍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업이 번창하고 경제가 성장하며 기술이 향상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여호와의 전에서 생명 샘물이 흘러나와 민족의 가슴을 윤택하게 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마음의 평안과 만족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고 진급이 잘 되고, 수출이 호조를 보여도, 무시를 당하거나 오해를 받거나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풍요한 물질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충만하고 행복한 가정과 교회, 사회를 만들어 주신다는 약속은 더욱 높은 은혜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영혼의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죄사함을 받아 구원 얻는 것이 영적인 축복입니다. 무엇보다 인생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에 인생됨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영혼은 영원한 천국의 소유자입니다. 이것이 궁극적이고 완전하며 절대적인 축복입니다. 추수감사절입니다. 이날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도 인생 황혼기에는 건망증이 아주 심했다고 합니다. 친구나 동료, 심지어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무엇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이 질문에 대해 뉴턴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고 대답합니다.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로 삽시다. 이것이 오늘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에게 드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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