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본문
오늘도 주님의 날을 맞이해서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 설교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지난 주 저는 지지난 주에 이어서 감사에 관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오늘도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하는데요, 오늘은 다니엘의 감사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드릴 것인가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감사와 관련하여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는 감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눅18장9절 이하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감사입니다.
그 말씀에 보면 바리새인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눅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바리새인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감사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는 잘못된 감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바리새인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를 못하다 보니까 큰 착각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바리새인을 그가 죄인이라고 멸시하고 있는 세리보다도 더 큰 죄인으로 보고 계시는데도,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의인으로 보고 계실 것이라고 믿고 세리를 멸시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저를 저 죄 많은 세리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한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시는 잘못된 감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바리새인은 안식일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 십일조를 드리느냐 못 드리느냐 하는 것과 같이 율법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는 것이 신앙의 기준이었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그 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있는데 그 바리새인은 그 것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의와 인과 신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의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하는 것이고, 인이라는 것은 히브리어로 헤세드, 헬라어로는 아가페라는 단어로서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의와 인과 믿음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고 무시하고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당신의 아들까지 세상에 보내셨는데요....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 방식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고 있으니 그 감사를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리고 선지자를 보내도 깨닫지 못하니까 마지막에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종종 우리 믿는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된 신앙으로 본인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하지만 실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모 교회 집사님이 있는데요, 이 분이 교회에 얼마나 열심인 줄 모릅니다.
기도도 열심이고 봉사도 열심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덕분인지 그 분이 물질의 축복을 받아서 회사도 커지고 집도 좋은 집을 사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그 분이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부러워합니다. 그 분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축복해주셨다고 믿고 여호와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분이 회사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썼는데요... 그들이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최저의 임금만 지급하고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혹독하게 일을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치거나 아파서 일의 능률이 떨어지게 되면 사정없이 내쫒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외국인 근로자들은 그 분을 다 욕합니다.
그 분이 돈을 번 것은 바로 그렇게 해서 번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잘 했는지 모르지만 과연 그 분이 드린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으셨을까요
여기에 건축 일을 하는 분이 있다고 해보세요.
이분이 2개월 정도 걸리는 10억 짜리 공사를 맡으셨는데요, 견적에는 분명히 정품을 쓰겠다고 하고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견적대로 정품을 쓰면 공사를 했을 때 1,000만원의 이익이 남는데요, 정품을 쓰지 않고 비품을 쓰면 1억이 남는다고 해보세요. 그런 경우 이 분은 비품을 쓰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으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죄의식도 없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가정 1, 이 분이 그것을 관행으로 받아들이고 비품을 사용하여 공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익금 일억 중에서 십일조 1,000만원과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감사헌금 4,000만원해서 도합 5,000만원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께 많이 드려도 이 분은 정품을 사용할 때보다도 4,000만원을 더 버는 것입니다.
가정 2, 이 분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거짓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약속한 대로 정품을 써서 공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 안 된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공사를 해주다 보니까 두 달 동안 일하고도 500만원 정도뿐이 남기지 못했습니다. 거기에서 십일조 50만원을 드리고 나니까 감사헌금을 많이 드릴 수 없어서 5만원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도합 55만원을 드린 것입니다.
5,000만원의 헌금과 55만원의 헌금, 너무나 차이가 나는 금액입니다.
55만원은 5,000만원에 비해 약100/1 정도뿐이 되지 않는 적은 금액입니다. 그리고 5,000만원 정도라면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크게 유익되게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거짓으로 속여서 돈을 벌고 많은 헌금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드리는 감사보다도 비록 적은 금액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더라도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좀 전에 말씀드린 상황에 부딪혔을 때 견적대로 공사를 행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감사를 기쁘게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여호와 하나님, 저에게 물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가 죄악 된 관행과 풍습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
할렐루야!
저는 만약에 이 분이 견적대로 하고 진실하게 정직하게 하다 보니까 이익을 남기기는커녕 손해가 나서 여호와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게 되었어도 위와 같이 감사드린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 감사를 어떤 감사보다도 더 귀하게 받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여호와 하나님, 저에게 물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가 죄악 된 관행과 풍습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더욱 더 좋겠지요.
“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손해가 났어도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믿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렇게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감사기도는 더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모든 신앙생활이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감사의 신앙도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바리새인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잘못된 감사를 드리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을 실만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을 실만한 감사 중에 모델이 되는 감사는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감사입니다.
지난주일 설교 시간에 예수님의 감사 두 가지를 소개하였는데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는 5,000넘는 사람들을 먹여야 하는데 음식은 어린 소년의 도시락 하나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전도대로 파송한 제자들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갖가지 기적이 나타났는데도 불가하고 지혜롭고 좀 한다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고 어린아이들이나 믿었습니다”라는 보고를 들으시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 하면서 감사한 것입니다.
오늘은 다니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감사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감사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 사자 굴의 기적이라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럼, 다니엘의 감사가 어떤 감사였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감사를 기쁘게 받으셨을까요
오늘 봉독한 말씀 10절 말씀을 다시 한번 봉독하겠습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다니엘을 죽이려는 음모가 궁궐에 있는 신하들 중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니엘이 그들에게 무슨 잘못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니엘은 그들에게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니엘이 그들에게 미움을 받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다니엘이 그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적당히 놀아주고 적당히 죄도 짓고 해야 하는데 다니엘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고, 우직할 정도로 충성스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니엘의 다른 신하들에게 미움 받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습니다.
두번째는 그가 바벨론 사람이 아니고 바벨론 나라에 의해 정복당한 유대나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민족적 편견을 갖고 다니엘이 총리라는 최고의 자리에서 자기들을 다스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이 정말 다니엘이 미움을 받아야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까 다니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억울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음모라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지는 것임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때 다니엘은 무엇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을까
성도 여러분은 다니엘이 무엇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다니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지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자 굴에서도 자기를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죽을 것을 각오하고 기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을 것을 각오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상황에서 무엇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을까요
첫째로는 지금까지 자기 생명을 지켜주시고 바벨론의 최고의 자리인 총리에까지 오르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자기를 죽이려고 함정을 파는 악한 자와 같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시편52편에 보면 다윗도 악한 자가 자기를 죽이려고 할 때, 자기가 자기를 죽이려는 악한 자와 같이 되지 않았음을 감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52:8~9 오직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무슨 말씀입니까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그런 악한 사람이 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은 존재가 되었는데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영히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는 바르게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헤치려는 악한 사람들을 대하게 될 때 그들로 인해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는 자기가 그들과 같은 악한 사람이 되지 않았음을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죽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상 다니엘이 했음직한 감사를 세 가지 생각해보았는데요.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그런 상황이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믿음을 따라 행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다니엘의 감사를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이시간 다니엘의 감사와 같은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던 손양원 목사님의 감사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 반란 때 사랑하는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을 공산당 학생들에게 잃게 됩니다. 두 아들은 당시 고2와 고3학생이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들이, 그것도 장남과 차남 두 아들이 동시에 억울하게 죽은 것을 생각하면 부모 된 자로서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다음과 같은 10가지의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1)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하는 자식이 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 두 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자기를 죽이려는 공산당 친구들에게 예수님 믿으라고 전도하다가 그들의 쏜 총에 죽은 것입니다.
2) 허다한 성도 중에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보배로운 아들들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3) 3남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남, 차남을 드리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4) 아들 하나 순교해도 귀한 일인데 두 아들이 순교의 재물이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병들어 죽어도 복인데 전도하다가 총살당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6) 미국 가려고 준비 중인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감사합니다.
7) 나의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을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 손 양원 목사님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린 대로 두 아들을 쏘아 죽인 학생이 경찰에 붙잡혔을 때 경찰서를 찾아가 그 학생을 풀어줄 것을 탄원하고 그 학생을 자기의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8)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많은 천국 아들 열매를 맺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9) 이 같은 역경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마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10) 오 주여 나에게 분수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주신 것을 감사하오며 영광을 돌립니다. 36년간 부모님이 눈물로 드린 새벽기도의 결정입니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 23년간 기도해주셔서 열매를 거두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10가지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때 장례식에 참석한 성도들이 모두 다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두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한국 교회의 지표가 될 여호와 하나님의 종을 쓰러뜨리려고 하였던 사단의 궤계가 완전히 박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10가지 감사를 하나하나 말씀드릴 때 천국에서는 승리의 나팔이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믿음으로 승리하는 감사를 드릴 때 그 감사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살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불평과 원망을 우리 마음 가운데 심어주려고 하는 사단의 궤계는 박살나고, 그 자리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쏟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사자 굴의 기적은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정말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감사를 드린 자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감사와 같은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손양원 목사님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그 가슴에 품게 하셨습니다. 은사 중의 가장 귀한 은사인 사랑의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손양원 목사님에게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칭호와 한국 교회의 성자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정말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감사를 드린 자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도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시고, 믿음과 말씀을 따라 사시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시고,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림으로서,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 설교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지난 주 저는 지지난 주에 이어서 감사에 관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오늘도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하는데요, 오늘은 다니엘의 감사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드릴 것인가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감사와 관련하여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는 감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눅18장9절 이하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감사입니다.
그 말씀에 보면 바리새인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눅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바리새인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감사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는 잘못된 감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바리새인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를 못하다 보니까 큰 착각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바리새인을 그가 죄인이라고 멸시하고 있는 세리보다도 더 큰 죄인으로 보고 계시는데도,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의인으로 보고 계실 것이라고 믿고 세리를 멸시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저를 저 죄 많은 세리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한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시는 잘못된 감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바리새인은 안식일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 십일조를 드리느냐 못 드리느냐 하는 것과 같이 율법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는 것이 신앙의 기준이었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그 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있는데 그 바리새인은 그 것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의와 인과 신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의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하는 것이고, 인이라는 것은 히브리어로 헤세드, 헬라어로는 아가페라는 단어로서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의와 인과 믿음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고 무시하고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당신의 아들까지 세상에 보내셨는데요....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 방식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고 있으니 그 감사를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리고 선지자를 보내도 깨닫지 못하니까 마지막에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종종 우리 믿는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된 신앙으로 본인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하지만 실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모 교회 집사님이 있는데요, 이 분이 교회에 얼마나 열심인 줄 모릅니다.
기도도 열심이고 봉사도 열심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덕분인지 그 분이 물질의 축복을 받아서 회사도 커지고 집도 좋은 집을 사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그 분이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부러워합니다. 그 분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축복해주셨다고 믿고 여호와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분이 회사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썼는데요... 그들이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최저의 임금만 지급하고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혹독하게 일을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치거나 아파서 일의 능률이 떨어지게 되면 사정없이 내쫒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외국인 근로자들은 그 분을 다 욕합니다.
그 분이 돈을 번 것은 바로 그렇게 해서 번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잘 했는지 모르지만 과연 그 분이 드린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으셨을까요
여기에 건축 일을 하는 분이 있다고 해보세요.
이분이 2개월 정도 걸리는 10억 짜리 공사를 맡으셨는데요, 견적에는 분명히 정품을 쓰겠다고 하고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견적대로 정품을 쓰면 공사를 했을 때 1,000만원의 이익이 남는데요, 정품을 쓰지 않고 비품을 쓰면 1억이 남는다고 해보세요. 그런 경우 이 분은 비품을 쓰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으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죄의식도 없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가정 1, 이 분이 그것을 관행으로 받아들이고 비품을 사용하여 공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익금 일억 중에서 십일조 1,000만원과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감사헌금 4,000만원해서 도합 5,000만원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께 많이 드려도 이 분은 정품을 사용할 때보다도 4,000만원을 더 버는 것입니다.
가정 2, 이 분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거짓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약속한 대로 정품을 써서 공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 안 된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공사를 해주다 보니까 두 달 동안 일하고도 500만원 정도뿐이 남기지 못했습니다. 거기에서 십일조 50만원을 드리고 나니까 감사헌금을 많이 드릴 수 없어서 5만원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도합 55만원을 드린 것입니다.
5,000만원의 헌금과 55만원의 헌금, 너무나 차이가 나는 금액입니다.
55만원은 5,000만원에 비해 약100/1 정도뿐이 되지 않는 적은 금액입니다. 그리고 5,000만원 정도라면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크게 유익되게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거짓으로 속여서 돈을 벌고 많은 헌금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드리는 감사보다도 비록 적은 금액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더라도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좀 전에 말씀드린 상황에 부딪혔을 때 견적대로 공사를 행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감사를 기쁘게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여호와 하나님, 저에게 물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가 죄악 된 관행과 풍습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
할렐루야!
저는 만약에 이 분이 견적대로 하고 진실하게 정직하게 하다 보니까 이익을 남기기는커녕 손해가 나서 여호와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게 되었어도 위와 같이 감사드린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 감사를 어떤 감사보다도 더 귀하게 받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여호와 하나님, 저에게 물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가 죄악 된 관행과 풍습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더욱 더 좋겠지요.
“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손해가 났어도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믿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렇게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감사기도는 더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모든 신앙생활이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감사의 신앙도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바리새인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잘못된 감사를 드리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을 실만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을 실만한 감사 중에 모델이 되는 감사는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감사입니다.
지난주일 설교 시간에 예수님의 감사 두 가지를 소개하였는데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는 5,000넘는 사람들을 먹여야 하는데 음식은 어린 소년의 도시락 하나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전도대로 파송한 제자들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갖가지 기적이 나타났는데도 불가하고 지혜롭고 좀 한다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고 어린아이들이나 믿었습니다”라는 보고를 들으시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 하면서 감사한 것입니다.
오늘은 다니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감사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감사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 사자 굴의 기적이라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럼, 다니엘의 감사가 어떤 감사였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감사를 기쁘게 받으셨을까요
오늘 봉독한 말씀 10절 말씀을 다시 한번 봉독하겠습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다니엘을 죽이려는 음모가 궁궐에 있는 신하들 중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니엘이 그들에게 무슨 잘못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니엘은 그들에게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니엘이 그들에게 미움을 받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다니엘이 그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적당히 놀아주고 적당히 죄도 짓고 해야 하는데 다니엘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고, 우직할 정도로 충성스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니엘의 다른 신하들에게 미움 받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습니다.
두번째는 그가 바벨론 사람이 아니고 바벨론 나라에 의해 정복당한 유대나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민족적 편견을 갖고 다니엘이 총리라는 최고의 자리에서 자기들을 다스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이 정말 다니엘이 미움을 받아야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까 다니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억울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음모라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지는 것임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때 다니엘은 무엇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을까
성도 여러분은 다니엘이 무엇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다니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지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자 굴에서도 자기를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죽을 것을 각오하고 기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을 것을 각오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상황에서 무엇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을까요
첫째로는 지금까지 자기 생명을 지켜주시고 바벨론의 최고의 자리인 총리에까지 오르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자기를 죽이려고 함정을 파는 악한 자와 같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시편52편에 보면 다윗도 악한 자가 자기를 죽이려고 할 때, 자기가 자기를 죽이려는 악한 자와 같이 되지 않았음을 감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52:8~9 오직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무슨 말씀입니까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그런 악한 사람이 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은 존재가 되었는데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영히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는 바르게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헤치려는 악한 사람들을 대하게 될 때 그들로 인해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는 자기가 그들과 같은 악한 사람이 되지 않았음을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죽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상 다니엘이 했음직한 감사를 세 가지 생각해보았는데요.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그런 상황이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믿음을 따라 행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다니엘의 감사를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이시간 다니엘의 감사와 같은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던 손양원 목사님의 감사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 반란 때 사랑하는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을 공산당 학생들에게 잃게 됩니다. 두 아들은 당시 고2와 고3학생이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들이, 그것도 장남과 차남 두 아들이 동시에 억울하게 죽은 것을 생각하면 부모 된 자로서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다음과 같은 10가지의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1)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하는 자식이 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 두 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자기를 죽이려는 공산당 친구들에게 예수님 믿으라고 전도하다가 그들의 쏜 총에 죽은 것입니다.
2) 허다한 성도 중에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보배로운 아들들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3) 3남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남, 차남을 드리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4) 아들 하나 순교해도 귀한 일인데 두 아들이 순교의 재물이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병들어 죽어도 복인데 전도하다가 총살당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6) 미국 가려고 준비 중인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감사합니다.
7) 나의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을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 손 양원 목사님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린 대로 두 아들을 쏘아 죽인 학생이 경찰에 붙잡혔을 때 경찰서를 찾아가 그 학생을 풀어줄 것을 탄원하고 그 학생을 자기의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8)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많은 천국 아들 열매를 맺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9) 이 같은 역경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마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10) 오 주여 나에게 분수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주신 것을 감사하오며 영광을 돌립니다. 36년간 부모님이 눈물로 드린 새벽기도의 결정입니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 23년간 기도해주셔서 열매를 거두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10가지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때 장례식에 참석한 성도들이 모두 다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두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한국 교회의 지표가 될 여호와 하나님의 종을 쓰러뜨리려고 하였던 사단의 궤계가 완전히 박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10가지 감사를 하나하나 말씀드릴 때 천국에서는 승리의 나팔이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믿음으로 승리하는 감사를 드릴 때 그 감사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살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불평과 원망을 우리 마음 가운데 심어주려고 하는 사단의 궤계는 박살나고, 그 자리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쏟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사자 굴의 기적은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정말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감사를 드린 자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감사와 같은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손양원 목사님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그 가슴에 품게 하셨습니다. 은사 중의 가장 귀한 은사인 사랑의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손양원 목사님에게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칭호와 한국 교회의 성자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정말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감사를 드린 자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도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시고, 믿음과 말씀을 따라 사시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시고,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림으로서,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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