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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이렇게 감사합시다

본문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다니엘이 감사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어쩌면 감사를 잘하는지 모든 믿는 무리들에게 귀감이 된다. 입을 열면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일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실망하는 사람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실망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마저도 힘이 빠지고 절망이 된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그렇게 감동이 되고 마음이 착해진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교만하다. 겉모습만 보면 잘 모르지만 속내를 알면 그렇게 좋아할것까진 없다고 말한다. 일이 그렇게 되는 데에는 사악한 음모가 있으며, 부정과 부패가 있으며, 비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을 모르느냐고 일침을 놓는다.
사실 털어서 먼지 없는 사람은 없으므로 딴에는 이런 생각이 일리가 있는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더 넓게 보아야 하며, 이해하는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 일의 당위성이 보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심지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용서와 오래참으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더 겸손한 모습으로 보면 그렇게 된 까닭이 나의 잘못이며 실수인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는 태도는 얼마나 절실하게 우리의 삶에 필요한지 모른다. 감사는 불행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감사는 나를 전진하게 하고 뛰어 오르게 한다. 불평은 나를 거기에 묶어 버린다. 나를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게 한다. 불평하고 원망했으니, 이루어진 모든 것들을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기왕에 그곳까지 왔던 길도 싫어지게 되고, 일은 무산되고 만다. 감사하면 보이는 흠집이나 허물들이 쉽게 가려지지만, 불평하고 원망했으니 못마땅한 것들은 말할것도 없고 좋고 유익한 것들도 무색하게 되어 버려지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 고아들이 몇 명 교회에 다녔다. 하루는 크리스마스가 되어서 더 많은 고아들이 왔는데, 그만 교회에서는 연필 한자루씩만 주었다. 나도 좀 섭섭하긴 했지만, 고아원 아이들은 무척 화가 났던가 보다. 한 아이가 이까짓것, 하면서 돌로 연필을 부러뜨리고 만다. 그러니 덩달아 여러아이가 그짓을 따라하였다. 그리고는 내가 그동안 했던 헌금이 얼만데, 이젠 이교회 않온다 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무서웠다. 그러고는 내심 부러뜨릴 것이면 차라리 날 주지... 했다.
어떤 랍비가 먼길을 가는데 낙타와 닭 한 마리와 장막을 가지고 갔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인가는 보이지 않아서 큰 나무 밑에 장막을 치고 촛불을 하나 켜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만 바람이 불더니만, 촛불을 꺼뜨리고 말았다. 그래서 하는수 없이 저녁기도를 드리고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을 잤다. 어찌나 깊이 잠들었는지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니 이렇게 날이 밝았는데, 닭이 울지 않다니 왠일인가' 하면서 보았더니 닭도 낙타도 다 사라지고 없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하며 간밤에 맹수들이 들이닥쳐서 짐승들을 물어갔구나 하고 생각되었다. 짐승들이 아까운 생각이 들면서 은근히 부아가 오르며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이럴 수 있는가 생각이 든다. 내가 그토록 경건하게 살았는데, 내가 이런 불행을 당하다니 너무 원망이 된다. 그러다 깜짝 놀라서 내가 소위 랍비 주제에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다니 하며 생각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감사해야지 하는데,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에 깊이 잠들어 있는데, 짐승들이 대신 잡혀 갔기 망정이지 만약 내가 봉변을 당했으면 어떻하리 하는 생각이 들자, 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었다. 그래서 이 랍비는 하늘을 향해 두손을 들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했다. 짐승들 덕분에 목숨이 건져진 것이다. 이거야 말로 천만다행 아닌가
이처럼 모든 일에는 원망의 길과 감사의 길이 동시에 있다. 내가 어느길로 가느냐는 순전히 나의 선택이며 나의 책임이다. 우리는 반드시 감사의 길을 걸어야 한다.
오늘 다니엘의 감사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우리도 이렇게 감사해야 하겠다.
본론:
1. 담대한 감사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감사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유다가 망하자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젊고 비전이 많은 나이에 먼 타국에서 쓸쓸히 남은 생애를 보냈으니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었다.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듯이 다니엘은 비록 이방땅이었지만, 극진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다.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였다. 나라는 망했어도 신앙은 망하지 않았다.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않는가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고 민첩한 마음을 주셨다. 이처럼 똑똑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라가 세 번이나 뒤집어 졌지만, 후임 왕들이 다니엘의 청렴함과 지혜 많음으로 보고 계속 등용하였다. 마침내는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고, 또 세 총리중에 으뜸이 되게 하였다.
이렇게 되자 다니엘을 시기하는 본토 출신 신하들이 생겨났다. 이방 포로 주제에 최고 관리라니 말이나 될 법한가 그러나 어찌 청렴했든지 도무지 흠이 있거나 그릇함이 없었다. 대적들은 고민 끝에 다니엘의 신앙에서 흠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뭘 모르고 기독교인들의 신앙에서 흠과 책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떠한 계략도 믿는자의 마음을 바꿀수는 없을뿐더러 말씀에서 지혜를 얻는 사람을, 기도에서 힘을 얻는 사람을 이겨낼 방도는 세상에 아주 없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조그마한 약점이라도 발견되면 결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괴롭힌다. 그 약점을 이용해서 내가 승리하는데 사용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약점을 감싸주고 오히려 도와 주려고 한다. 그러나 생존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야 자기가 승리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들이 여전히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우리 주님은 세상을 이미 이기셨다. 이점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해야 한다.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16:33)
이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에 나가서 담대하게 신앙인이라 말하지 못한다. 세상의 핍박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렇지 말아야 한다. 다니엘과 요셉과 심지어는 모르드개같은 신앙의 선진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 사람들은 드러내놓고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밝히며 살았다. 또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형통하고 복받았다고 증거하였다. 여기에 비밀이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오히려 강점인 것을 강조해야 한다.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면 여호와 하나님도 도와주시지 않는다.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 힘이 솟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 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8:38)
세상사람들은 예수믿는게 무슨 약점이라도 되는양 달려들어 해하려 하지만, 오히려 예수 믿는게 강점인줄 모르고 달려드는 것이므로 도리어 망하게 된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서면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편이 되신다.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가 쓴 책 Courage to Be 라는 책이 있다. '존재에의 용기'라는 책인데, 신앙이란 용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하는 용기. 인간의 이성적 비판 이런 것 다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치고 일어나는 용기, 여기에 다니엘이 있었던 것이다.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했다. 눈치를 살피며 잠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더 두려워 했다. 그래서 그는 승리하였던 것이다. 담대하며 감사하라.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다.
2. 습관을 따라 감사
-전에 행하던 대로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위기에 부딛혀서 '아이쿠, 이거 큰일 이구나. 옳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지. 틀림없이 나를 어여삐 여겨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도록 하실 것이야' 하지 않았다. 다니엘의 감사는 위기모면용이 아니었다. 그의 감사는 일상 생활용이었다. 그는 항상 감사했다. 그는 날마다 감사했다. 감사생활이 몸에 습관이 되어서 베어있었다. 그래서 그의 감사가 의미있고 힘이 있다.
평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정작 감사할만한 일이 벌어져도 감사할줄 모른다. 왠지 쑥스럽고 계산이 복잡해진다. 그러니 위험이 닥쳤다면 감사는커녕 원망이 나올밖에 없다. 그래서 감사가 생활화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교육을 미국 가정에서는 잘 하는 것 같다. 어느 미국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뜰에 있는데, 아버지는 사다리를 놓고 지붕을 고치고 있고, 아들은 정원에서 놀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애야 저기있는 망치좀 집어서 이리로 가져다 주련' 한다. 그래서 아들이 '네'하고 망치를 가져다 사다리 위에 있는 아버지 손에 쥐어 준다. 망치를 받아든 아버지는 다시금 지붕 고치는 일에 몰두하는데 아들은 내려가지 않고 아버지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묻는다. '아빠 뭐 잊어버린거 없으세요' 아빠는 일에 몰두한 채, '뭐, 없는데' 그러자 아들은 다시 한번 '아빠 뭐 잊어버린 것 있잖아요'한다. '왜그러니 아빠 지금 바쁘단다' '아빠 제게 뭐 하실 말씀 있잖아요' 그때서야 아빠는 '아, 아 미안하다. 망치 가져다 주어서 정말 고마웠어' 그러면 아들은 'You're welcome. that's my pleasure'한다.
이처럼 감사는 어려서부터 일상생활에서 습관화 되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도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3. 기도하며 감사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기도하며 감사했다. 그저 지나가는 한마디 말로 감사합니다 하지 않고, 더 구체적으로 기도하면서 감사했다. 또 기도하니 감사가 되더라는 말이다. 기도하기 전에는 근심이요, 고민이었는데 기도하다보니 은혜를 깨닫게 되고 이만하기 다행이지 싶고, 새롭게 깨닫는 지혜도 생겨서 이 난관을 극복하는 길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기도하며 감사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다니엘은 그래도 지금까지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부끄럽지 않게 여호와 하나님 섬기며 살게 하셨으니, 이제라도 이몸 불러 가시면 훌훌 털고 일어설 준비가 되었던 것일게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수십번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정권이 바뀔때마다 갖은 음모속에 시달렸을텐데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니 이와같은 기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다니엘의 입에서 감사가 절로 나온 것이다.
그저 그만하기 다행이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까지 완벽하게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성사되는 일이 어디 있는가 이런 초월적인 지혜는 오직 기도에서 나온다. 우리는 기도할 때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그래서 감사가 되고 평강이 찾아오는 것이다. 기도없이는 심오한 감사가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기도하면서 감사의 제목을 찾고 위로와 힘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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