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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순종 그리고 감사

본문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기만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각 사람마다 어쩌면 그렇게도 사연들이 많은지, 기가 막히고 가슴 절이는 사건들이 많다. 모든 인생이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들 앞에 능수능란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의 전문가처럼 말이다. 이럴땐 이렇게 저럴땐 저렇게. 또 남들보다 한치 앞만 내다볼 줄 안다면 그것이 얼마나 나를 편하고 쉽게 해 주겠는가. 사고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만,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든지 닥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럴 때 당신에게는 그 위기를 해쳐나갈 용기와 지혜가 있는가 오늘 소개할 사람도 참 사연이 많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유대나라 사람 다니엘로 총명한 사람이었으며 앞길이 유망했다. 믿음도 출중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가 그 위에 임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인생은 그리 평탄치를 못했다. 어느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포로로 끌려가서 이방 나라의 내시가 되었다. 그리고 타국에서 조국멸망의 비보를 접한다. 그는 조국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이방나라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이방생활도 평탄치 못했다. 수없이 많은 정적들로 인해서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충성스럽고 지혜로웠으며, 청렴했다. 왕들은 이러한 성품을 좋아했고, 그는 무려 3명의 왕이나 모셨다. 다들 전 왕을 몰아낸 자들이었다. 왕들은 비명에 갔지만, 다니엘은 남아있었다. 이는 그의 청렴을 나타낸다.
무엇이 그를 계속되는 환난 가운데서도 정적들로 가득한 이방나라 조정에서 그토록 출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였는가 오늘 본문말씀에서 그 비밀을 캐내어 보자.
본론
1. 그는 순종의 사람이었다. (1: 8-9)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9 여호와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단1:8-단1:9)
그는 비록 포로의 신세였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였다. 그러나 타국에서 모든 말씀에 순종하기는 어려웠다. 어느정도로 어려웠는가 하면, 순종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는데 있다. 조국 이스라엘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방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은 계속해서 그의 정적들에게 약점을 제공하는 빌미가 되었다. 순종이나 충성, 또는 청렴하다는 도덕적 성취는 두려움과 욕심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것이며, 또 이런것들의 가치를 무시하는 자들에게 쉽게 공격당하는 경향이 짙다. (요즘 허준이라는 드라마도 그렇지 않는가)
우리가 주위를 조금만 둘러 보아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상황은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마련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쉽게 무시해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왜냐면 우리는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여호와 하나님의 부탁을 간단하게 거절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작정했다면, 비록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장사는 이 세상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내가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대로 순종한다고 선언한다면, 어느 누가 막을 것인가
(다니엘 1장을 소개)
신학자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주를 믿는 동시에 모두 순종의 학교에 입학한다. "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가장 빠른 길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다.
2. 그는 감사의 사람이었다. (10)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오늘 다니엘 6장의 말씀은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의 이야기다. 느브갓네살의 총애를 받던 다니엘은 그 뒤를 이은 왕 벨사살의 총애도 받았고, 또 그 뒤를 이은 다리오왕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다리오왕은 120도를 나누어 각 도에 방백을 세우고, 그 방백을 다스릴 3명의 총리를 세우는데, 그 위에 총리중 가장 총명한 자로 모두를 주관하게 하였는데, 그가 바로 다니엘이었다. 그러니, 120방백과 다른 두 총리는 다니엘을 시기하였다. 이방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그를 미워 하였다.
이 바벨론 사람들이, 이 이방사람, 이 노예 출신을 가만둘 리가 없지요. 그래서 헐뜯고 음모하고 갖은 방법을 했지만 오늘 본문대로 허물이 없는 사람이요. 전혀 허물이 없는 사람이고 충성된 사람이라서 다른 일로써는 고소할 수 없음을 알고 신앙문제를 들고나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올무를 걸었습니다. 이제부터 30일 동안 누구든 왕 외에 신이든 사람이든 누구에게 무엇을 구하는 자가 있으면 그는 다리오 왕에 대한 역적이다 이말이요. 이 사람을 잡아서 사자 굴에 집어넣읍시다 그랬어요. 이런 금령을 만들었는데 오늘 본문대로 다리오 왕이 그 조소에 어인을 찍었습니다. 결재를 했다 그 말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은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집에 돌아가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했어요. 아주 중요한 깊은 의미가 있는 내용입니다.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진실되게 살았습니다,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충성되게 살았는데 왜 사자굴 입니까 원망하자면 원망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내가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진실되게 살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원망할만 하죠. 그러나 그는 율법적 비판을 극복합니다. "상관없습니다. 지금까지 산 것으로 만족합니다. " 이렇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대로 '어인을 찍은 것을 알고도' 이 말은 이제 내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그대로 사자 굴에 끌려가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그 운명을 다 알고, 알고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했다는 거죠. 폴 틸리히라고 하는 신학자의 '커리지 투 비(Courage to Be)'라고 하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존재의 용기' 이 책에서 말합니다. 신앙이란 용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하는 용기. 인간의 이성적 비판 이거 다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치고 일어나는 용기, 여기에 다니엘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의 감사 내용을 가만히 보면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는 전에 행하던 대로 그랬어요. 오늘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에요. 감사라는 것은 엑시던트(Accident)가 아닙니다. 우연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감사는 체질이 되야 되고 성품이 되야 됩니다. 오랜 동안 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오래 가면 성품이 되는 거예요. 이런 면에서 우리는 체질적으로 감사를 할 줄을 몰라. 고마웠다는 말 한 마디를 할 줄 모르는 것이 큰 약점입니다. 큰 흠집입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그저 고맙다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이게 체질이 되고 습관이 되고 문화가 되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야 앞으로 큰 일을 당해도 또 감사할 수가 있는 것이죠. 어느 순간에 돌발적으로 이런 위대한 감사가 있을 수 없는 것이에요. 여러분 잘 생각하십시오. 조그마한 일에도 원망 없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해야 되요. (어느 미국 가정의 감사)
영어에서 '띵크(Think)', '땡크(Thank)'라는 말은 어원이 같답니다. 생각한다, 감사한다, 그 뿌리가 같다는 것이올시다. 그렇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무엇부터 생각하느냐, 무엇을 먼저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어느 각도에서 생각하느냐가 문제입니다. 환경이 달라져야 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이 달라져야 감사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감사하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감사하게 되는 것이요. 겸손한 사람은 감사할 수 있어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어요. 사랑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어떤 여건에서도 감사, 감사할 수 있는 것이올시다.
유명한 토마스 에디슨, 발명왕, 여러분이 잘 아십니다. 그는 어느 날 긴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는 발명을 위해서 온 시간을 바치는 사람이라 여행 중에서도 기차 안에다가 자그마한 실험실을 만들어 놓고 또 거기서 연구를 하고 있었어요. 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그만 약병 하나가 떨어지면서 이게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그만 연구실이 불이 났어요. 그간에 연구해 왔던 자료, 몽땅 타버리는 시간입니다. 자기 몸도 위험하게 됐을 때 차장이 달려와서 그를 차창 밖으로 내던졌어요. 결국은 생명을 보전했습니다 만은 그 때 다쳐서 귀가 멀었습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인 귀머거리가 됐습니다. 그는 한 평생 많은 연구를 했고 많은 발명을 했습니다. 발명왕이라는 이름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기를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느냐고. 그는 말합니다 "나는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나는 못 들으니까 내가 하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다고요.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감사가 습관이 된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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