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도 감사했습니다
본문
성경은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것을 받아 누리면서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감사합니다. 성경 안에는 참으로 희한한 감사도 있습니다. 욥이라고 하는 성도는 자기 재산도 다 잃고 자녀도 다 잃고 건강마저 잃고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지병을 앓으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오늘의 성경에 나오는 요나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몸으로 잘 살 때는 감사할 줄 모르고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줄도 모르더니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삼일 동안 죽을 고생을 다하고 그 곳에서 오히려 감사 찬송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도 감사했습니다. "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의 성경에 나와있는 대로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
1. 요나는 영혼이 피곤할 때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성경 7절에서 보면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피곤하고 괴로우면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영혼이 피곤할 때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의 육체가 피곤한 것과 영혼이 피곤한 것은 별개입니다. 육체가 피곤하다고 영혼까지 피곤한 것은 아닙니다. 육체가 피곤하여 기진맥진할 때에도 영혼은 힘이 솟구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6은 말씀하기를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고 하였습니다. 또 시편 73:26에서는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여호와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 했습니다. 영혼의 침체가 영혼의 피곤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성경이 말씀한 대로 물고기 뱃속에 삼켜져서 죽음과 싸운 3일간 요나의 영혼은 피곤했습니다. 더 이상 싸울 의욕마저 잃어버린 상태를 영혼의 피곤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할 의욕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경우를 가리켜서 영적 피곤이라고 합니다. 엘리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만한 의욕을 상실해 버린 때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은 의욕마저 사라져 버린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영혼이 피곤해서 쓰러지게 된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던 요나는 복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영혼이 피곤하고 죽고 싶도록 괴로움이 많은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십시오.
2.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베푸신 은혜를 저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의 성경 8절에서 말씀하기를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헛된 것들이 많습니다. 세상의 정욕도 헛되고 세상의 권세와 명예와 재산과 어떤 우상도 다 헛된 것입니다. 헛된 것들을 숭상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립니다.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자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에서 해방될 때와 광야에서 헤매며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때를 추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대로 이어가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쳐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17:13은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24:20에서는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고 했습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께 받은 모든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였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가룟 유다는 돈궤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돈궤는 아무에게나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성이 있어야 하고,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가장 측근이라는 이점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유다가 왜 예수님을 배반했을까요 헛된 돈을 더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
3.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오늘의 성경 9절에서는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은, 주님이 고난 받으시고 무덤 속에 계신 상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무덤 속에서 사흘 동안 묻혀 계시면서도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믿으셨기에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비록 기막힌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는 목소리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요나의 감사제는 숨막히는 고통 속에서 드리는 제사였기에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오늘의 성경에서는 요나가 목소리로만 감사제를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하며 노래했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28:20에 나와있는 아곱의 서원을 근거로 한 것 같습니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께 서원하였습니다. 거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는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서원한 야곱은 라반의 집에 들어가 20년 동안이나 살면서 대가족을 이루고, 거부가 되도록 이 서원을 갚은 일이 없습니다.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는 서원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요나도 평탄할 때에는 자기가 무엇을 여호와 하나님께 서원했는지를 기억조차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다가 실컷 얻어맞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죽을 지경에 이르니, 주님께 서원을 갚겠다고 다시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도 죽을 병에 걸리면 "살려만 주시면 -게 하겠습니다. "고 서원합니다. 직장이 없을 때는 "더도 말고 밥 먹을 자리만 주시면 -게 하겠습니다. "고 서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서원한 대로 다 허락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요나처럼 어려운 처지가 되어서만 서원을 생각하지 말고, 형편이 좋을 때에 서원을 생각해서 갚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깊은 바다 속 물고기에게 삼킨 몸인데 무슨 배짱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서원을 갚겠다는 것입니까 도저히 불가능한 가운데서 가능성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요나는 지금이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면 자기가 살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감사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고난을 받으면서도 주님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1. 요나는 영혼이 피곤할 때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성경 7절에서 보면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피곤하고 괴로우면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영혼이 피곤할 때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의 육체가 피곤한 것과 영혼이 피곤한 것은 별개입니다. 육체가 피곤하다고 영혼까지 피곤한 것은 아닙니다. 육체가 피곤하여 기진맥진할 때에도 영혼은 힘이 솟구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6은 말씀하기를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고 하였습니다. 또 시편 73:26에서는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여호와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 했습니다. 영혼의 침체가 영혼의 피곤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성경이 말씀한 대로 물고기 뱃속에 삼켜져서 죽음과 싸운 3일간 요나의 영혼은 피곤했습니다. 더 이상 싸울 의욕마저 잃어버린 상태를 영혼의 피곤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할 의욕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경우를 가리켜서 영적 피곤이라고 합니다. 엘리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만한 의욕을 상실해 버린 때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은 의욕마저 사라져 버린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영혼이 피곤해서 쓰러지게 된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던 요나는 복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영혼이 피곤하고 죽고 싶도록 괴로움이 많은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십시오.
2.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베푸신 은혜를 저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의 성경 8절에서 말씀하기를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헛된 것들이 많습니다. 세상의 정욕도 헛되고 세상의 권세와 명예와 재산과 어떤 우상도 다 헛된 것입니다. 헛된 것들을 숭상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립니다.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자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에서 해방될 때와 광야에서 헤매며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때를 추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대로 이어가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쳐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17:13은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24:20에서는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고 했습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께 받은 모든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였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가룟 유다는 돈궤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돈궤는 아무에게나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성이 있어야 하고,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가장 측근이라는 이점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유다가 왜 예수님을 배반했을까요 헛된 돈을 더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
3.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오늘의 성경 9절에서는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은, 주님이 고난 받으시고 무덤 속에 계신 상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무덤 속에서 사흘 동안 묻혀 계시면서도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믿으셨기에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비록 기막힌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는 목소리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요나의 감사제는 숨막히는 고통 속에서 드리는 제사였기에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오늘의 성경에서는 요나가 목소리로만 감사제를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하며 노래했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28:20에 나와있는 아곱의 서원을 근거로 한 것 같습니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께 서원하였습니다. 거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는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서원한 야곱은 라반의 집에 들어가 20년 동안이나 살면서 대가족을 이루고, 거부가 되도록 이 서원을 갚은 일이 없습니다.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는 서원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요나도 평탄할 때에는 자기가 무엇을 여호와 하나님께 서원했는지를 기억조차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다가 실컷 얻어맞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죽을 지경에 이르니, 주님께 서원을 갚겠다고 다시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도 죽을 병에 걸리면 "살려만 주시면 -게 하겠습니다. "고 서원합니다. 직장이 없을 때는 "더도 말고 밥 먹을 자리만 주시면 -게 하겠습니다. "고 서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서원한 대로 다 허락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요나처럼 어려운 처지가 되어서만 서원을 생각하지 말고, 형편이 좋을 때에 서원을 생각해서 갚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깊은 바다 속 물고기에게 삼킨 몸인데 무슨 배짱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서원을 갚겠다는 것입니까 도저히 불가능한 가운데서 가능성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요나는 지금이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면 자기가 살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감사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고난을 받으면서도 주님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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