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성숙한 감사의 삶
본문
신앙인의 생활의 매력은 감사입니다.
감사가 없는 신앙생활은 신앙생활도 아니거니와 매력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신앙생활은 추상이 아니고 사실이거든요.
신앙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고 확실한 사건이거든요.
눅17장에 보면 예수님은 감사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문둥병자를 고쳐주었지만 한 사마리아인인 문둥병자였든 그는 예수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했다고 했습니다.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신앙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형식과 의식적인 신앙이냐 진실 된 신앙이냐 는 감사가 증명합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감사는 신앙의 표현이요 수준입니다.
감사는 기도의 응답을 가져옵니다.
감사는 신앙을 자라게 합니다.
감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감사는 육신을 치료합니다.
감사는 정신을 치료합니다.
감사는 영혼을 치료합니다.
예수님께서 감사하는 한 문둥병자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리라"했습니다.
즉 감사는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이 사람만 영혼 구원까지 받는 믿음이었습니다.
감사는 기쁨과 평강의 복을 받습니다.
감사는 신앙이요 인격입니다.
감사는 하늘의 복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감사는 하늘의 복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늘의 복의 창고를 열어 축복된 인생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축복을 받지 못하는 자의 공통점은 감사가 없거나 형식이거나 약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늘 감사하십시오.
환경의 노예가 되지 맙시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환경을 다스리며 지배하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족할 줄 압니다.
늘 자신이 누리고 있는 복을 세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음 주일 우리 행사팀에서 맥추감사주일 행사의 일환으로 2005년 반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감사할 일 20가지 이상씩 적어 오시는 분에게 큰 선물을 드린다고 합니다.
중직자들은 의무적으로 써와야 합니다.
♪ 48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1.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후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늘 감사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감사 잘 하기로 소문난 교인 신앙 좋은 성도입니다.
물질의 복 계속 받습니다.
감사 잘 하기로 소문난 교회 부흥됩니다.
감사 잘 하기로 소문난 가정 복된 가정입니다.
감사가 해결입니다.
감사가 없는 것은 욕심의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감사는 신앙과 비례합니다.
감사의 눈을 뜨면 감사가 끝이 없고 불평의 눈을 뜨면 불평이 한이 없습니다.
망하려면 불평하고 신앙성장 범사의 복을 받으려면 감사하십시오.
감사가 해결입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는 하박국 선지가 말하는 "성숙한 감사생활"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 인생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무진장하게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조금만 잘 안되어도, 어려워도 "여호와 하나님, 왜 나에게 복을 안 주십니까 축복해 주시옵소서"하고 감사하는 말보다 그저 축복만 달라고 하는 염치없는 인생들이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나는 감사할 것이 눈꼽쨉이 만큼도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여!
이 시간 우리 자신들을 십자가 밑으로 가지고 가 봅시다.
나를 위해, 마땅히 지옥가야 할 나를 위해, 마귀의 자식이었든 나를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 살 찢어주시고 피 흘려 죽어 주셨습니다.
이 구속의 은혜를 생각만 해도 만 입을 가지고 감사를 다 할 수 없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죄송한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 가는 장애물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줄을 모르는 것이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저 불신자들이나,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모든 은혜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왔건마는 그걸 모르고 으레 혹은 자연히 있을 것이 있는 줄로만 생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로 병고침을 받고서도 세상 사람들도 아프면 병원에 가서 병고치는 데 뭐.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병원에 안가고 기도로, 안수기도로 고치셔야지.
병원에 가서 우리가 병을 고침 받아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의사들에게 의술을 주셨고, 인간에게 지혜를 주셔서 모든 약물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수술하여 나아도 여호와 하나님이 고쳐 주신 것입니다.
또 무엇을 할 때 내 힘으로 된 줄 아는 사람은 감사를 하지 않습니다.
농사를 하는 것도 "내가 부지런해서 했지!" 내 힘으로는 하는 줄 알고,
또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내가 경영의 묘를 살릴 줄 아니까 잘 되지!" 이렇게 내 힘으로 된 줄을 알게 되면 감사한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127: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다 하는 것 같아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여 주시지 않으면 집 짓는 것도 허사요, 성을 지키는 것도 허사요, 인생의 모든 만사가 허사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고전3:6절에 또 보십시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나니" 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자식에게 밥을 주고 옷을 입혀 주기는 해도 여호와 하나님이 자라게 해주셔야지, 자라게 아니하시면 어린애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난쟁이가 왜 난쟁이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자라게 해주지 않으시면 난쟁이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자라게 합니까
아니요 우리는 물을 주는 것입니다.
곡식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라게 안 해 주시면 못 자랍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주도적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을 믿으시면 한 번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감사의 씨를 마음 밭에 뿌리면 행복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반면에 불만의 씨가 뿌려진 곳에는 불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대설교가인 스펄젼 목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따라합시다.
"우리에게 촛불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태양 빛을 주시고, 태양 빛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천당 빛을 비쳐 주시느니라"
할렐루야!
다시 말하면 한 가지를 감사하는 자에게는 두 가지의 감사할 일을 주시고 두 가지를 감사하는 자에게는 더 많은 감사할 일들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흔히 인간들은 큰 빛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은 별빛이 없음을 불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태양 빛이 비치고 있는데도 "왜 나에게 별빛을 안 비춰 주십니까"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갔는데 아프리카 토인들이 토질병 때문에 자꾸 죽어만 갑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가 본국에다 수소문을 해서 물약을 구하다가 병에다 담아 가지고 주면서 "이 약을 쓰고 토질병을 고치거든 예수 믿으세요"하면서 전도를 했는데, 그 약을 먹는 사람마다 깨끗이 토질병에서 나았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안식년이 되어서 본국으로 돌아갔다 와 봤더니 토인들이 제단을 쌓아 놓고, 그, 위에다가 자기가 준 약병을 모두 진열해 놓고는 절을 하면서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고 있더란 것입니다.
선교사가 놀라면서 "이 사람들아, 이게 무슨 짓이냐"고 했더니 "예 선교사님 여기에 들어 있는 약물을 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살아났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약병에다가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선교사님 왈, "이 사람들아, 약병을 보고 감사할 것이 아니라 감사할려면 약을 준 나에게 감사해야지"하면서 불결한 제단을 헐어 버렸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셨는데 무지한 인간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줄을 모르고
태양에게 감사를 하고,
이상한 돌에게 감사를 하고,
또 무슨 고목나무에게 감사를 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이 지상 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인 줄만 알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어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숙한 감사가 있다면 미숙한 감사도 있습니다.
미숙한 감사는 무엇입니까
미숙한 감사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동이 심한 감사합니다.
이것은 어린아이들이 하는 감사와 같습니다.
그래서 미숙한 감사는 내가 무엇을 얻게 되고, 소원이 이루어지고, 행복한 일을 만날 때만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이런 감사는 사업에 성공하거나, 농사지어 수확이 풍성할 때만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또 어려운 병에서 고침을 받거나, 학위를 받거나, 당선이 됐을 때 감사합니다.
물론 이런 감사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야 얼마나 훌륭합니까
이것은 자기가 잘나고 훌륭해서 모든 계획을 바로 세우고, 판단력이 좋아서 과단성 있게 추진시켰으므로 이런 영광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만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것에만 감사할 줄 알게 되면 가진 것을 잃거나,
소원했던 것이 성취되지 않거나,
비방이나 오해를 받게 되면
그때는 감사보다 원망하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환경과 조건이 좋은 데서 드리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미숙한 감사를 하는 사람은 환경과 조건이 나빠지면 원망이 나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아버지, 어머니가 과자나 선물을 한아름 사다가 안겨 주면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하면서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하면 감사합니다.
하지마는, 그렇지 아니하고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고 부모가 거기에 응해 주지 아니하면 감사한 생각조차 갖지를 아니합니다.
자연도 인간이 쓰레기를 주워가고, 깨끗하게 해 주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이와 같이 어린아이들이 갖는 미숙한 감사로 만족해서는 안되고 성숙한 감사를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숙한 감사란 무엇입니까
첫째 성숙한 감사란 어른스런 감사입니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성숙해지면 부모가 무엇을 사다 주지 않아도, 그저 부모의 은혜를 생각만 해도 고마워하는 마음과 감사한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쯤 되면 오히려 부모에게 뭘 사다 드리면서 감사합니다.
어릴 때는 부모에게 매를 맞으면 아프고 원망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는데, 성숙한 사람이 되고 보니 그 모두가 부모님의 사랑이었던 것을 깨닫고 오히려 어렸을 때 꾸중들은 것을 감사하고 매맞은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성숙한 감사의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성숙한 감사생활이란 어떠한 환경과 어떠한 조건에서도, 어떠한 역경에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둘째. 참된 감사, 성숙한 감사는 쓰라린 환경 속에도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이런 감사는 생활 환경이나 물질적인 영향에 대해서 좌우되지 않는 성숙한 감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런 성숙한 감사, 어른스러운 감사를 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믿음"으로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박국의 기도를 읽었는데, 하박국 선지자야말로 성숙한 감사를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불의와 불법이 만연하던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던 요시야 왕이 므깃도에서 애굽과의 전쟁을 벌이다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어 왕이 된자들은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에서 떠나 불의와 불법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 온 사회에 불법이 만연하고, 우상숭배가 서슴없이 자행되었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선지자는 어찌하여 불의하고 부정한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떳떳하게 잘 살아가는지 도무지 자신의 신앙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박국선지자의 또 하나 이해할 수가 없었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 보다 더 죄가 많고 사악한 민족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지 즉 바벨론을 사용하여 유다를 망하게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신앙의 난제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유명한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자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든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속한 문제요, 중요한 것은 어떤 환난과 심판 가운데서도 의로운 자는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 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런 구원 진리에 감사함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구원 진리를 발견한 선지자는 이전까지의 신앙 난제와 의혹으로 인한 원망과 불평을 삼가 하고, 이제 본문에서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16절을 함께 읽기를 원합니다.
…............................................................................................
무슨 소리를 듣고 떨렸을까요
전쟁에 망하리라는 소리를 듣고 떨렸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보면 하박국의 믿음과 차원 다른 성숙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17-18절을 읽기를 원합니다...
....................................................................................................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무화과나무도 말라서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도 소출이 없고, 밭에는 식물이 없고, 우리에는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고, "없고 없는" 그런 형편에서도 하박국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이 열리고, 거기에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보여졌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선지는 여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땅의 것은 다 잃어버렸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붙들었으니 감사하옵나이다"하면서 성숙한 감사를 하였습니다.
사람이 망하는 것은 달리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나갈 때에 신앙먼저 나가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돈이 나갈 때에 여호와 하나님마저 잃어버리면 망합니다.
그래서 돈이란 왜 돈이라 했습니까
돈이란 돌고 돌고 돈다고 해서 돈입니다.
따라합시다. "돈이란 돌고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에 돈이다"
그래서 돈이란 돌고 돌고 도는 것이 돈인데 돌다가는 마지막에는 믿음을 지키는 사람에게 돌아오는데 제 친구 돈까지 데리고 돌아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돈이 나갈 대에 믿음마저 나가 버리면 망하지만, 돈이 나갈 때도 믿음을 붙잡고 참고 기다리면 그 돈이 새끼를 쳐 가지고 돌아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많은 재물을 잃어버렸어도 그저 감사하고 단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은 신앙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돈은 나가도 주님만 안 나가시면 잠을 잘 수가 있거든요,
돈 좀 나갔다고 잠 못 자는 자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저 주여, 하면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오늘 어떠한 역경 중에서도 평안한 잠을 잘 수 잇는 믿음을 주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돈은 나가도 신앙만 붙들고 있으면 돈은 또 들어옵니다. 믿습니까
돈이 돌고 돌다가 믿음 좋은 성도의 집에 들어오면 제일 편합니다.
왜냐하면 돈을 자꾸만 좋은 일, 선한 일에 활용하니까요.
그러니다시 돌고 돌다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믿는 사람에게 새끼를 쳐서 다시 가자 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 팔았어도 여호와 하나님만 붙들고 있으면 또 돌아오는 것이 돈입니다.
차 팔았어도 믿음만 붙들고 있으면 더 좋은 것 살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박국의 성숙한 감사요, 차원 높은 신앙인의 감사인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목적이 돈 버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근본 목적이 돈을 벌고 쌀을 수확하는 그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사업을 하는 것이나 돈을 버는 것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때에, 인생 최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흉년이 있을 수도 있으니 경제불황은 손해를 끼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있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는 예수 믿는 사람은 경제불황 가운데서도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불황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그 때는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은 어떤 환경, 어떤 곤경에서도 어른스럽고 성숙한 감사가 터져나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축복 받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벌써 구원받고 영생을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비록 육신적으로는 가난하지마는 내 영혼이 혼란과 무질서와 파멸에서 영생의 은혜를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언제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을 놓고도 감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무덤 속에 송장을 놓고도 먼저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 내일 죽게 되었는데도 감사해서 기도하고 찬미를 부를 수가 있었습니다.
감사 찬미를 불렀더니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도 풀리면서 전도의 문이 열리고, 축복의 문도, 척척 열려진 걸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을 약하게 하고, 심지어는 신앙까지 잃게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의 모습은 환난 중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기 어려울지라도 변치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며 힘이 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되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 신뢰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지금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하박국선지와 같이, 예수님과 같이, 사도 바울과 같이, 청교도들과 같이 성숙한 감사생활을 하시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과 성공과 번영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맥추절은 반년동안 받은 은혜가 크므로 은혜를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각자가 받은 은혜를 감사는 성도가 됩시다.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배은망덕하는 자로 다시 더 계속하는 은혜를 바라지 못합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성숙한 감사의 삶의 살기로 결단하고 결심했으면 합니다.
"감사는 하늘의 복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늘의 복의 창고를 열어 축복된 인생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 아니 하실 지라도의 신앙을 주시옵소서.
죽음이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돕지 아니 하실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는 차원 있는 감사의 신앙을 주옵소서.
나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십니다.
사슴 같은 우리의 발이 되어 어떠한 어려움을 만나도 해쳐갈 수 있게 하소서.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가 오늘 우리의 감사가 되게 하소서.
감사가 없는 신앙생활은 신앙생활도 아니거니와 매력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신앙생활은 추상이 아니고 사실이거든요.
신앙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고 확실한 사건이거든요.
눅17장에 보면 예수님은 감사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문둥병자를 고쳐주었지만 한 사마리아인인 문둥병자였든 그는 예수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했다고 했습니다.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신앙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형식과 의식적인 신앙이냐 진실 된 신앙이냐 는 감사가 증명합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감사는 신앙의 표현이요 수준입니다.
감사는 기도의 응답을 가져옵니다.
감사는 신앙을 자라게 합니다.
감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감사는 육신을 치료합니다.
감사는 정신을 치료합니다.
감사는 영혼을 치료합니다.
예수님께서 감사하는 한 문둥병자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리라"했습니다.
즉 감사는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이 사람만 영혼 구원까지 받는 믿음이었습니다.
감사는 기쁨과 평강의 복을 받습니다.
감사는 신앙이요 인격입니다.
감사는 하늘의 복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감사는 하늘의 복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늘의 복의 창고를 열어 축복된 인생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축복을 받지 못하는 자의 공통점은 감사가 없거나 형식이거나 약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늘 감사하십시오.
환경의 노예가 되지 맙시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환경을 다스리며 지배하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족할 줄 압니다.
늘 자신이 누리고 있는 복을 세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음 주일 우리 행사팀에서 맥추감사주일 행사의 일환으로 2005년 반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감사할 일 20가지 이상씩 적어 오시는 분에게 큰 선물을 드린다고 합니다.
중직자들은 의무적으로 써와야 합니다.
♪ 48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1.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후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늘 감사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감사 잘 하기로 소문난 교인 신앙 좋은 성도입니다.
물질의 복 계속 받습니다.
감사 잘 하기로 소문난 교회 부흥됩니다.
감사 잘 하기로 소문난 가정 복된 가정입니다.
감사가 해결입니다.
감사가 없는 것은 욕심의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감사는 신앙과 비례합니다.
감사의 눈을 뜨면 감사가 끝이 없고 불평의 눈을 뜨면 불평이 한이 없습니다.
망하려면 불평하고 신앙성장 범사의 복을 받으려면 감사하십시오.
감사가 해결입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는 하박국 선지가 말하는 "성숙한 감사생활"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 인생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무진장하게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조금만 잘 안되어도, 어려워도 "여호와 하나님, 왜 나에게 복을 안 주십니까 축복해 주시옵소서"하고 감사하는 말보다 그저 축복만 달라고 하는 염치없는 인생들이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나는 감사할 것이 눈꼽쨉이 만큼도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여!
이 시간 우리 자신들을 십자가 밑으로 가지고 가 봅시다.
나를 위해, 마땅히 지옥가야 할 나를 위해, 마귀의 자식이었든 나를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 살 찢어주시고 피 흘려 죽어 주셨습니다.
이 구속의 은혜를 생각만 해도 만 입을 가지고 감사를 다 할 수 없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죄송한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 가는 장애물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줄을 모르는 것이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저 불신자들이나,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모든 은혜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왔건마는 그걸 모르고 으레 혹은 자연히 있을 것이 있는 줄로만 생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로 병고침을 받고서도 세상 사람들도 아프면 병원에 가서 병고치는 데 뭐.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병원에 안가고 기도로, 안수기도로 고치셔야지.
병원에 가서 우리가 병을 고침 받아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의사들에게 의술을 주셨고, 인간에게 지혜를 주셔서 모든 약물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수술하여 나아도 여호와 하나님이 고쳐 주신 것입니다.
또 무엇을 할 때 내 힘으로 된 줄 아는 사람은 감사를 하지 않습니다.
농사를 하는 것도 "내가 부지런해서 했지!" 내 힘으로는 하는 줄 알고,
또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내가 경영의 묘를 살릴 줄 아니까 잘 되지!" 이렇게 내 힘으로 된 줄을 알게 되면 감사한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127: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다 하는 것 같아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여 주시지 않으면 집 짓는 것도 허사요, 성을 지키는 것도 허사요, 인생의 모든 만사가 허사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고전3:6절에 또 보십시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나니" 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자식에게 밥을 주고 옷을 입혀 주기는 해도 여호와 하나님이 자라게 해주셔야지, 자라게 아니하시면 어린애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난쟁이가 왜 난쟁이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자라게 해주지 않으시면 난쟁이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자라게 합니까
아니요 우리는 물을 주는 것입니다.
곡식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라게 안 해 주시면 못 자랍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주도적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을 믿으시면 한 번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감사의 씨를 마음 밭에 뿌리면 행복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반면에 불만의 씨가 뿌려진 곳에는 불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대설교가인 스펄젼 목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따라합시다.
"우리에게 촛불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태양 빛을 주시고, 태양 빛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천당 빛을 비쳐 주시느니라"
할렐루야!
다시 말하면 한 가지를 감사하는 자에게는 두 가지의 감사할 일을 주시고 두 가지를 감사하는 자에게는 더 많은 감사할 일들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흔히 인간들은 큰 빛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은 별빛이 없음을 불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태양 빛이 비치고 있는데도 "왜 나에게 별빛을 안 비춰 주십니까"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갔는데 아프리카 토인들이 토질병 때문에 자꾸 죽어만 갑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가 본국에다 수소문을 해서 물약을 구하다가 병에다 담아 가지고 주면서 "이 약을 쓰고 토질병을 고치거든 예수 믿으세요"하면서 전도를 했는데, 그 약을 먹는 사람마다 깨끗이 토질병에서 나았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안식년이 되어서 본국으로 돌아갔다 와 봤더니 토인들이 제단을 쌓아 놓고, 그, 위에다가 자기가 준 약병을 모두 진열해 놓고는 절을 하면서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고 있더란 것입니다.
선교사가 놀라면서 "이 사람들아, 이게 무슨 짓이냐"고 했더니 "예 선교사님 여기에 들어 있는 약물을 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살아났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약병에다가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선교사님 왈, "이 사람들아, 약병을 보고 감사할 것이 아니라 감사할려면 약을 준 나에게 감사해야지"하면서 불결한 제단을 헐어 버렸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셨는데 무지한 인간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줄을 모르고
태양에게 감사를 하고,
이상한 돌에게 감사를 하고,
또 무슨 고목나무에게 감사를 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이 지상 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인 줄만 알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어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숙한 감사가 있다면 미숙한 감사도 있습니다.
미숙한 감사는 무엇입니까
미숙한 감사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동이 심한 감사합니다.
이것은 어린아이들이 하는 감사와 같습니다.
그래서 미숙한 감사는 내가 무엇을 얻게 되고, 소원이 이루어지고, 행복한 일을 만날 때만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이런 감사는 사업에 성공하거나, 농사지어 수확이 풍성할 때만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또 어려운 병에서 고침을 받거나, 학위를 받거나, 당선이 됐을 때 감사합니다.
물론 이런 감사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야 얼마나 훌륭합니까
이것은 자기가 잘나고 훌륭해서 모든 계획을 바로 세우고, 판단력이 좋아서 과단성 있게 추진시켰으므로 이런 영광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만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것에만 감사할 줄 알게 되면 가진 것을 잃거나,
소원했던 것이 성취되지 않거나,
비방이나 오해를 받게 되면
그때는 감사보다 원망하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환경과 조건이 좋은 데서 드리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미숙한 감사를 하는 사람은 환경과 조건이 나빠지면 원망이 나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아버지, 어머니가 과자나 선물을 한아름 사다가 안겨 주면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하면서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하면 감사합니다.
하지마는, 그렇지 아니하고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고 부모가 거기에 응해 주지 아니하면 감사한 생각조차 갖지를 아니합니다.
자연도 인간이 쓰레기를 주워가고, 깨끗하게 해 주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이와 같이 어린아이들이 갖는 미숙한 감사로 만족해서는 안되고 성숙한 감사를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숙한 감사란 무엇입니까
첫째 성숙한 감사란 어른스런 감사입니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성숙해지면 부모가 무엇을 사다 주지 않아도, 그저 부모의 은혜를 생각만 해도 고마워하는 마음과 감사한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쯤 되면 오히려 부모에게 뭘 사다 드리면서 감사합니다.
어릴 때는 부모에게 매를 맞으면 아프고 원망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는데, 성숙한 사람이 되고 보니 그 모두가 부모님의 사랑이었던 것을 깨닫고 오히려 어렸을 때 꾸중들은 것을 감사하고 매맞은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성숙한 감사의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성숙한 감사생활이란 어떠한 환경과 어떠한 조건에서도, 어떠한 역경에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둘째. 참된 감사, 성숙한 감사는 쓰라린 환경 속에도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이런 감사는 생활 환경이나 물질적인 영향에 대해서 좌우되지 않는 성숙한 감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런 성숙한 감사, 어른스러운 감사를 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믿음"으로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박국의 기도를 읽었는데, 하박국 선지자야말로 성숙한 감사를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불의와 불법이 만연하던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던 요시야 왕이 므깃도에서 애굽과의 전쟁을 벌이다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어 왕이 된자들은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에서 떠나 불의와 불법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 온 사회에 불법이 만연하고, 우상숭배가 서슴없이 자행되었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선지자는 어찌하여 불의하고 부정한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떳떳하게 잘 살아가는지 도무지 자신의 신앙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박국선지자의 또 하나 이해할 수가 없었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 보다 더 죄가 많고 사악한 민족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지 즉 바벨론을 사용하여 유다를 망하게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신앙의 난제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유명한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자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든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속한 문제요, 중요한 것은 어떤 환난과 심판 가운데서도 의로운 자는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 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런 구원 진리에 감사함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구원 진리를 발견한 선지자는 이전까지의 신앙 난제와 의혹으로 인한 원망과 불평을 삼가 하고, 이제 본문에서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16절을 함께 읽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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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를 듣고 떨렸을까요
전쟁에 망하리라는 소리를 듣고 떨렸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보면 하박국의 믿음과 차원 다른 성숙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17-18절을 읽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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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무화과나무도 말라서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도 소출이 없고, 밭에는 식물이 없고, 우리에는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고, "없고 없는" 그런 형편에서도 하박국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이 열리고, 거기에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보여졌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선지는 여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땅의 것은 다 잃어버렸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붙들었으니 감사하옵나이다"하면서 성숙한 감사를 하였습니다.
사람이 망하는 것은 달리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나갈 때에 신앙먼저 나가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돈이 나갈 때에 여호와 하나님마저 잃어버리면 망합니다.
그래서 돈이란 왜 돈이라 했습니까
돈이란 돌고 돌고 돈다고 해서 돈입니다.
따라합시다. "돈이란 돌고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에 돈이다"
그래서 돈이란 돌고 돌고 도는 것이 돈인데 돌다가는 마지막에는 믿음을 지키는 사람에게 돌아오는데 제 친구 돈까지 데리고 돌아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돈이 나갈 대에 믿음마저 나가 버리면 망하지만, 돈이 나갈 때도 믿음을 붙잡고 참고 기다리면 그 돈이 새끼를 쳐 가지고 돌아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많은 재물을 잃어버렸어도 그저 감사하고 단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은 신앙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돈은 나가도 주님만 안 나가시면 잠을 잘 수가 있거든요,
돈 좀 나갔다고 잠 못 자는 자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저 주여, 하면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오늘 어떠한 역경 중에서도 평안한 잠을 잘 수 잇는 믿음을 주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돈은 나가도 신앙만 붙들고 있으면 돈은 또 들어옵니다. 믿습니까
돈이 돌고 돌다가 믿음 좋은 성도의 집에 들어오면 제일 편합니다.
왜냐하면 돈을 자꾸만 좋은 일, 선한 일에 활용하니까요.
그러니다시 돌고 돌다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믿는 사람에게 새끼를 쳐서 다시 가자 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 팔았어도 여호와 하나님만 붙들고 있으면 또 돌아오는 것이 돈입니다.
차 팔았어도 믿음만 붙들고 있으면 더 좋은 것 살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박국의 성숙한 감사요, 차원 높은 신앙인의 감사인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목적이 돈 버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근본 목적이 돈을 벌고 쌀을 수확하는 그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사업을 하는 것이나 돈을 버는 것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때에, 인생 최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흉년이 있을 수도 있으니 경제불황은 손해를 끼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있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는 예수 믿는 사람은 경제불황 가운데서도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불황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그 때는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은 어떤 환경, 어떤 곤경에서도 어른스럽고 성숙한 감사가 터져나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축복 받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벌써 구원받고 영생을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비록 육신적으로는 가난하지마는 내 영혼이 혼란과 무질서와 파멸에서 영생의 은혜를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언제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을 놓고도 감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무덤 속에 송장을 놓고도 먼저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 내일 죽게 되었는데도 감사해서 기도하고 찬미를 부를 수가 있었습니다.
감사 찬미를 불렀더니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도 풀리면서 전도의 문이 열리고, 축복의 문도, 척척 열려진 걸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을 약하게 하고, 심지어는 신앙까지 잃게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의 모습은 환난 중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기 어려울지라도 변치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며 힘이 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되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 신뢰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지금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하박국선지와 같이, 예수님과 같이, 사도 바울과 같이, 청교도들과 같이 성숙한 감사생활을 하시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과 성공과 번영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맥추절은 반년동안 받은 은혜가 크므로 은혜를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각자가 받은 은혜를 감사는 성도가 됩시다.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배은망덕하는 자로 다시 더 계속하는 은혜를 바라지 못합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성숙한 감사의 삶의 살기로 결단하고 결심했으면 합니다.
"감사는 하늘의 복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늘의 복의 창고를 열어 축복된 인생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 아니 하실 지라도의 신앙을 주시옵소서.
죽음이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돕지 아니 하실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는 차원 있는 감사의 신앙을 주옵소서.
나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십니다.
사슴 같은 우리의 발이 되어 어떠한 어려움을 만나도 해쳐갈 수 있게 하소서.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가 오늘 우리의 감사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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