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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여호와를 인한 기쁨과 감사

본문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악이 관영하고 불의가 득세하는 것을 보면서 좌절하기도 합니다. 또 우리가 어려움 중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때로는 여전히 고난 가운데 머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음을 교훈 해 주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는 바벨론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무서워하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2:4)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여호와를 인하여 우리 성도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기 때문에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이다.
1. 없을지라도
(합 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본절은 하박국이 몹시 두려워 떠는 모습을 묘사해 줍니다. 이는 하박국이 바벨론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에 앞서 닥치게 될 환난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체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박국은 ‘무리가 치러 올라오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극도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견디며 기다리는 인내심이 나타납니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본절은 앞에서 암시된 하박국의 위대한 신앙이 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라는 이런 표현은 이스라엘의 농경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하박국은 생존권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열거합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유다의 땅은 어떻게 될까요 그 농작물의 소출과 목축업은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먹을 것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결과는 자연 재해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내 스스로의 잘못도 아니고 내 신앙의 부족의 탓도 아닌데도 크게 망하게 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추수 감사절은 미국의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미국정착을 위해 절반에 가까운 인명 손실을 보면서도 첫 수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
바벨론 사람들은 피정복자의 농작물과 가축을 멸절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극히 어려운 상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박국은 이런 극한 상태에 들어갈지라도 즐거워하겠다는 것입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이는 성도에게 있어서 진정한 즐거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무엇에 있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발견됩니다. 이것이 참된 즐거움의 실체입니다.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여기 ‘즐거워한다’는 말은 시편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로 신뢰와 소망하는 것에 대해 확신을 나타내는 데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하박국은 생존권이 박탈될 정도의 현실적인 위기에 빠졌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신앙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박국은 여호와 하나님을 ‘구원’이라고 외칩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현재의 위기 가운데서 신적 임재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 있어서 실제적인 큰 ‘힘’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힘의 원천 이상이십니다. 그는 힘 자체이십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하박국의 모든 것이었다.
(합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본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힘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 ‘힘’(, 하일)은 ‘견고하다’, ‘강하다’의 뜻을 지닌 동사로 ‘능력’, ‘부’, ‘군대’를 의미합니다. 진정 여호와 하나님은 그 어떤 점에서도 결코 성도가 부족함이 없도록 풍성한 은혜와 축복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자체가 우리에게 큰 힘이므로 어떤 환경도 개의치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여호와 하나님은 선지자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여 위험한 처지에서라도 신속히 이동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힘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그는 안전하여 높은 곳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박국 선지자의 궁극적 승리이자 믿음의 승리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서 특히 아낙네들에게는 한(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한은 ‘억울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원하는 일들이 정상적으로 풀려 나가지 않고 억울하게 풀려 나갈 때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대개의 사람들은 억울한 일,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한을 품게 됩니다. 이것은 죄요, 죄의 형벌입니다.
대학 수학 능력 고사를 치룬 학생들이 자살하는 사례는 지금 우리 사회의 잘못된 가치관의 실제를 그 예입니다.
3. 기쁨과 감사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에게 좋은 일, 기쁜 일 뿐만 아니라, 슬픈일, 힘들과 외로운 일, 억울한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면 왜 우리 성도들이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해야 할까요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성도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면에서 감사의 생활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원망과 불평, 한숨과 눈물 그리고 배은 망덕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의 힘이시며 능력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위대한 모범적인 신앙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이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바벨론의 대왕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따라서 금신상에 예배를 강요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치 않고, 금신상에 절하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로 그들은 뜨거운 풀무에 던져짐을 당하게 되지만 원망치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단 3: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치 않는 저들은 풀무에서도 상처하나 받지 않고 살아 나왔고, 왕으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게 되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억울한 일, 도저히 감사치 못할 일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자. 이것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자기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요 전능자기 때문입니다.
(습 3:17)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힘과 기쁨의 원인이 됩니다. 어느 정도로 좋아하고 즐거워하는지 그 기쁨과 감사를 이기 못하여 잠잠하지 않고 찬송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범죄자들의 그 가정 배경이 많은 경우에 불우한 것이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만약에 우리가 영적으로 고아여서 의지 할 데 없이 홀홀 단신으로 아무도 나의 배경과 후견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낙망해 하고 좌절하며 불행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감사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자녀가 건강하게 자라듯이 우리 성도들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과 감사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는 진정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감사는 절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절망하기 쉽습니다. 절망은 문제 해결에 있어서 어려움 그 자체보다도 더 큰 방해물이 됩니다. 믿음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감사는 희망을 갖게 하고 절망을 극복하게 만듭니다. 비록 우리가 죽는다 할지라도 낙망하지 않는 것은 죽음 후에도 영원한 소망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사단은 자신이 그 동안 사람들은 유혹시키기 위하여 사용하였던 모든 연장들을 양탄자 위에 펼쳐놓고 팔기 위하여 경매에 부치며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은으로 만들어진 쐐기가 유난히 반짝이며 눈길을 끌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사단에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단이 말하기를 그것은 자기가 가장 아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무기로 바로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인간들을 미혹하고, 타락시키는 수 없이 많은 도구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는 ‘절망’이라는 것입니다.
중국 속담 “배가 뒤집히지도 않았는데 투신하려 합니다. ”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절망’이라는 도구에 낙심하여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사단의 ‘절망’이라는 도구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항상 마음속에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단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기뻐하며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시 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욥은 극한 고통에서도 입술로 범죄치 않았습니다.
요셉은 극한 불행을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바라보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발명가 에디슨은 많은 기계를 발명하여 인류 세계에 크게 공헌한 대 발명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발명하기 전 벌써 젊은 날에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행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그 불행을 유익하게 이용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내가 귀머거리가 됨을 감사하는 것은 연구에 몰두할 때 잡음이 들리지 않아서 많은 도움이 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R. 크릴리 “감사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다른 속박을 풀어 주십니다. ”
결 론
나는 한이 맺혀 있을까 아니면 불행으로 좌절을 안고 있을까 나는 왜 이리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새로운 인생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풀무에서 건져 내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신앙의 결단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고 고백을 해 봅시다.
하박국 선지자는 “... 내 창자가 흔들렸고... 내 입술이 떨렸고... ,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할 정도로 극한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없을지라도”라고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나의 신앙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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