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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감사 중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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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리고 결석없는 주일로 지킵니다.
온 성도가 한 자리에 모여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주일이 되었으면 해서 추수감사주일인 오늘을 결석없는 주일로 정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 옆사람 “감사합니다. ”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지만 감사절을 지킬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가 항상 감사의 조건을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찾는 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경이 좀 좋으면 감사하고, 환경이 안 좋아서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불편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처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보면 감사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우리는 불평할 조건들만을 찾아서 불평하고, 감사의 조건을 찾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추수감사주일과 결석없는 주일을 맞이해서 범사에 감사했던 어느 무명의 성도가 지은 시 한편을 여러분과 함께 읽어 보고자 합니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계획한 일들이 틀어져 안 된 것도 감사합니다.
저의 교만이 꺾이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아내와 남편이 힘들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어려움의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인간된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힘겨웁게 느껴지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눈물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마시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여, 저의 작은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주심을 찬송합니다. "
이 무명의 시인은 자기 자신이 병들어도 감사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모든 계획이 틀어져도 감사, 자의 가족들이 짐이 되어도 감사, 날마다 먹고 사는 것이 힘겨워도 감사, 날마다 순간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마시게 하심도 감사,
그러니 좋은 것에만 감사가 아니라 불행스러운 일들 앞에서도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정말 감격스러운 감사는 바로 이런 감사아니겠습니까
삶이 호화롭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사람이 그것 때문에 감사하는 것 보다 이렇게 불행스러운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감사가 더 감동적인 감사요, 이런 감사가 진정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보십시오. 본문은 유명한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감사중에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 하박국 선지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화과도 없습니다. 포도도 없습니다.
감람나무 열매도 없습니다. 밭에 곡식들도 없고, 우리에 양도 없고, 소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라! 고 했습니다.
왜요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살아가는데 그래도 기본적으로 먹고 살 것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나라에서 무화과 포도 감람열매는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식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것은 없어도 살수는 있습니다.
또 양과 염소도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러나 그런것이 없어도 살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밭에 식물이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밭의 식물은 먹고 살 곡식을 말합니다.
우리 나라는 논농사를 짖기 때문에 논 밭 이라고 말하지만 이스라엘 나라는 논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전부가 밭입니다. 이 밭에다 밀과 보리를 심어서 이 밀과 보리를 찧어서 가루로 만들어서 빵을 만들어서 먹고 삽니다.
그러니 여기서 말한 밭의 식물은 밀과 보리인 곡식을 말합니다.
그러니 사실 과일이나 열매는 없어도 괜찮고, 양과 소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밭에 곡식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이 곡식은 있어야 먹고 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것까지 없어도 감사하리라는 것입니다.
왜요 여호와 하나님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박국 선지자가 그런 극빈한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기뻐 할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는 그의 삶속에서 불평의 조건을 본 것이 아니라 감사의 조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없는 무화과를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없는 포도나, 없는 감람나무 열매나, 없는 밭의 곡식이나, 없는 양이나, 없는 소를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으니 그 여호와 하나님으로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중에 감사는 무슨감사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감사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박국 선지자처럼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곡식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 떼가 없다고 하더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기뻐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 받은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할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오늘 날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감사의 기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분들이 감사는 한결같이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사도는 일평생 살면서 얼마나 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는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수없이 매를 맞고. 수없이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많은 위험을 당해서 여러차례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먹지 못하고 굶주린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몸도 건강치 못했습니다. 늘 병으로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바울사도에게는 감사의 조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독교 역사상 바울 만큼 감사의 생활을 한 신앙인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의 편지를 살펴보면 감사의 말씀이 대단히 많습니다.
(몬 1:4) 내가 항상 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행16장에 보면, 또한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려서 점치는 여자에게서 귀신을 쫒아내버렸습니다. 그러니 그 여자가 점을 칠수 없게되자 그 점치는 여자의 주인이 영업을 방해했다고 해서 고소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매를 실컷 얻어 맞고 착고에 채인체로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어떻게 했습니까
매를 많이 맞고 발이 착고에 채워진채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밤이 깊도록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을 했습니다.
찬송이라는 말은 감사라는 말과 의미상 같습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찬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사도는 어떻게 이렇게 매를 맞고 착고에 채인채로 감옥에 같혀서도 감사할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정말 쉬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로 다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울사도 자신을 구원해 주신 그 구원의 은혜 때문에 평생토록 감사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던 것입니다.
바울사도만 아니라,
우리주위에는 이토록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감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어떤 글에서 읽어 보았는데 어떤 목사님이 부흥회때 강사 한 분을 초청했답니다. 그런데 그 강사님은 자동차 사고로 화상을 입어서 38번이나 수술한 몸을 가진 사람이었답니다. 그 분의 얼굴은 보기 흉했습니다. 코가 없었습니다. 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눈은 윤곽만 겨우 남았고, 그것도 한쪽만 시력이 남아 있었습니다.
눈썹도 없었고, 머리카락은 조금만 남아 있었습니다. 손도 오그라졌습니다.
참으로 징그러울 정도로 보기에 흉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분이 강단에 올라갔을 때 장내가 조용했습니다. 이 분의 첫마디는 "대단히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못생긴 저를 흉칙한 괴물처럼 된 저를 강사로 불러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 첫마디부터 은혜를 충만히 받았다고 합니다.
왜요 도저히 감사할 조건이 아닌데도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자신에 대하여 많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한쪽 눈이 남아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그 눈으로 길을 걸을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말할 수 있는 음성이 남아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귀가 떨어져 나갔지만 고막이 상하지 않아 말을 들을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또한 두 다리가 성해서 걸어 다닐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비록 없다고 하더라도 뇌를 상하지 않아서 감사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결혼을 해준 아내가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결국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감사는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겉사람은 이토록 만신창이가 되어 꼴불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인생살이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어려운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질도 없고, 몸은 늙어가고, 자녀들은 커가고, 날마다 수 많은 스트레스가 밀려오고 아무리 애쓰고 몸부림을 처도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힘만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들이 직면해 있는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신앙의 눈으로 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참으로 값진 것을 주시려고 하실 때는 결코 쉽게 주시지 않습니다. 그 값진 것을 '시련'이란 보자기에 싸서 주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시련'이란 보자기만 보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그 보자기 속에 싸여있는 값진 '보화'를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을 가지고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구원을 주셨으니 구원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이 어려운 시대를 잘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골2:7절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뭘하라고요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그런 고난스러운 가운데서도 감사함을 넘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믿음에 굳게 섰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굳게 설때 나에게 가진 것은 별로 없을지라도 나를 구원해주신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내가 구원받았다는사실 하나 때문에 감사할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116장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6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자,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가하고 평화로운 상황이 아닙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감사할 형편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낙심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악조건 가운데서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었때문이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간구를 들으시고 나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감격적인 감사였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감사가 풍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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