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감사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본문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감사가 없는 신앙생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신앙생활의 근본은 감사입니다. 감사가 없는 예배는 거짓 행위입니다. 감사가 없는 기도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찬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가 빠진 예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가 빠진 봉사와 섬김은 자선행위에 불과합니다. 감사함이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신앙생활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감사와 믿음은 정비례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골로새서 2:7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20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인의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사는 믿음의 척도입니다. 감사는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온도계와 같습니다. 감사지수가 올라가면 신앙생활은 성숙해 집니다. 감사지수가 떨어지면 신앙의 수준이 떨어집니다. 감사는 윤활유와 같습니다. 기계에 윤활유가 필수적이듯 신앙생활에 감사는 모든 것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윤활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주변을 보면 감사가 점점 메말라 가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기 자식을 건져주고 죽었는데 빈소에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오늘 내 존재의 근원이신 부모님에 대해서 패륜을 저지르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년 365일 가운데 겨우 어버이날 정도 은혜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봅니다. 요즘 자녀들 가운데 부모가 책망하면 오히려 나한테 해준것이 무엇이 있느냐며 대드는 아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기가 막힌 세대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여한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은 한명도 그런 사람이 없기바랍니다.
로마서 1장 21절 이하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되 여호와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으로 어두워졌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 말세가 되면 벌어질 징조를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말세가 되면 이 세상은 살기가 고통스러워집니다. 그 이유중 하나가 곧, 감사할 줄 모르는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감사하지 않는 자의 안타까움을 표현하셨습니다. 나병에 걸려 죽어가는 10명을 고쳐주셨습니다. 살이 썩어들어가고, 가장 무서운 병을 앓고 있는 그들을 고쳐주었다면 당연히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눅17:17) 오늘 여러분들이 그 아홉에 속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이 세대 속에서 주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진정 회복해야 할 감사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십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이름의 의미는 “씨름하는 자”입니다. 이름 그대로 하바국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왜 공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악한 일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시지 않는지를 묻습니다(1:1-4).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들어서 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5-11). 그러자 하박국이 두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왜 하필이면 택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벨론 같은 악한 나라를 통해서 징계하십니까(1:12-2:1).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시대가 피를 흘리고, 거짓이 난무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교만할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때가 되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한 날이 올 것(2:14)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바로 새 나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3장에서 수년 내에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일으켜 달라고 기도하면서 감사와 찬양을 여호와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던 하박국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에 고백한 찬양의 결론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들었으므로” 무엇을 들었습니까 바벨론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는 소리를 말합니다. 그 결과 하박국 선지자는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게 됩니다. 언젠가 닥쳐올 바벨론의 공격 앞에서 환난의 때를 미리 예견하고 있는 선지자의 몸은 뼈가 썩어가는 고통과 몸이 떨리는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그들에게 있어서 무화과는 중요한 양식입니다. 포도나무는 중요한 음료입니다. 감람나무는 불을 밝히는 기름입니다. 이것들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필수품입니다. 그리고 수고의 땀을 흘린 밭에 식물이 없다는 것은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는 상황입니다. 양이 없고, 소가 없다는 것은 삶의 수단이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이런 경우들이 벌어집니다. 나는 열심히 노력했는데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가진것 마저도 잃을 때도 있습니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는데 오히려 비난과 조롱의 소리가 들려올 때도 있습니다. 학생들도 밤을 새워 열심히 공부했는데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엉뚱한 문제가 나올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때 심정은 어떻습니까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심한 경우라면 죽고 싶은 마음이 들것입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합니다. “비록-찌라도”
저는 아직 소록도 라는 섬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나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전도사님은 나병 환자인데 방문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인간 마지막 섬에 오셨습니다. ‘소록도’ 얼마나 예쁜 이름입니까 소록도는 "아기 사슴섬"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섬에 들어오면 죽습니다.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꼭 가야할 또 하나의 섬이 있습니다. 정말 마지막 섬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그 섬에 가야 합니다. 여러분, 그 섬에 가보셨습니까 그 섬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그 섬의 이름은 "찌라도"입니다. 그들은 비록 살이 썪어가고, 몸이 떨어져 나가도 가장 비참한 상황에 있을 찌라도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을 찌라도, 밭에 식물이 없을 찌라도, 우리에 양이 없을 찌라도-우리의 믿음이 찌라도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직은 초보단계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찌라도의 섬에 들어가 있다면 성숙한 단계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풀무불 속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3:18)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찌라도"의 수준에 이르기를 축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합니다. 비록 없을 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3:18)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씨름 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깨닫습니다. 무엇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환난과 역경 속에 있다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을 보여줍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헬레스코스타라는 지방에는 6백만 유대인들을 비참하게 집단 학살했던 인간 가마솥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졌던 유대인들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돼지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이 가마솥에서 연기로 사라졌습니다. 당시 이 죽음의 현장에는 유대인들의 피맺힌 절규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죄 없이 죽어가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당신은 왜 우리에게 이런 일들을 허용하셨습니까’라는 외침이 수도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연합군이 유대인들이 죽어갔던 수용소를 탈환하여 수용소의 벽을 살펴보다가 한 구석에 희미하게 씌어진 찬송가의 가사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두루마리로 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겠네,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할 수 없겠네!”
지옥과 같은 현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글귀를 발견한 이들은 그 벽 아랫면을 보고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기 계십니다(God is here). ”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통, 지옥과 같은 절망과 잔인한 학살 가운데서도 이 모든 것을 넘어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여기 계시다’는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고통을 받고 계시다’는 고백을 드렸던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 놓이더라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죽음마저도 이길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의 기적입니다. 감사는 어떤 고난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게 만듭니다. 감사는 죽음 앞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듭니다. 감사는 바로 우리의 이성과 상식을 뛰어 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의 어둠의 감옥에서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찬송과 기도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어둠 밤에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희망의 감사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 기적은 근원은 어디입니까 바로 19절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곤경에 빠뜨려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우리의 탄식을 찬송으로 바꾸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암사슴 같게 만드셔서 높은 곳에 이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간절한 기대요 소원입니다.
2주전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라는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미 방송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존스 홉킨스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슈퍼맨 이승복 씨의 인간승리입니다. 그는 8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슈퍼를 하면 어렵게 생활하는 부모님은 공부하는 아들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체조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체조학교에 가서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그의 꿈은 대한민국 체조대표 선수가 되어 올림픽에 나가 태극기를 휘날리며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전 미국 올림픽 최고 상비군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많은 대학에서 그를 스카웃트 하려고 제안이 들어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도양양하던 그의 미래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중돌기를 하다가 턱이 먼저 매트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정신이 없었고 별이 반짝이는데 갑자기 GOD 라는 세 글자가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그의 미래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셨습니다. 그후 그는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림픽 체조선수가 되는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잃지 않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을 했습니다. 비록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조차 힘들었지만 체조의 정열을 학업에 쏟았습니다. 누구도 불가능하다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명문 다트머스 의대를 거쳐, 하버드 의대 인턴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세계최고의 병원인 존스홉킨스 병원의 재활의학 수석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그의 모습은 모든 환자들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별명은 ‘슈퍼맨’입니다. 미국의 모든 매스컴이 그의 인생역전을 대서특필했습니다. 비록 그는 올림픽 체조금메달의 꿈을 접었지만 의사로서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합니다.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었어도 새로운 삶을 추구하며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평생을 자신을 비관하며 슬픔과 분노 속에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길을 선택하는 자에게는 불평이 사라집니다. 새로운 꿈과 희망이 생깁니다. 그 속에 놀라운 감사의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
지난 금요일 김복남 전도사님의 간증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학생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드립니다. 질병으로 두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그의 엄마는 가출을 했습니다. 아버지와 단둘이 지하 셋방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은 꿈을 잃지 않고 성경이 너덜거리도록 읽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지혜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몸에 암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누구나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검정고시를 보고 대입수능시험을 쳤습니다.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만류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400점 만점에 392점을 맞았습니다. 서울대 진학을 포기하고 그가 치료받았던 연세대 법대에서 추수한 성적으로 공부를 마치고 지금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현실이 힘들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두 다리가 없고, 암까지 걸리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학생이었지만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지혜주시고 능력 주셔서 승리하는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감사입니까
오늘도 하바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이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자에게 감사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힘이되시고 능력이 되심을 확신하는 자에게 반드시 감사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믿음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승리의 기적을 맛보게 하십니다.
감사와 찬송은 하늘의 문을 여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어둠의 밤에 희망의 찬송을 울리게 만듭니다. 감사는 고난의 자리에 기쁨과 감격의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골로새서 2:7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20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인의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사는 믿음의 척도입니다. 감사는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온도계와 같습니다. 감사지수가 올라가면 신앙생활은 성숙해 집니다. 감사지수가 떨어지면 신앙의 수준이 떨어집니다. 감사는 윤활유와 같습니다. 기계에 윤활유가 필수적이듯 신앙생활에 감사는 모든 것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윤활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주변을 보면 감사가 점점 메말라 가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기 자식을 건져주고 죽었는데 빈소에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오늘 내 존재의 근원이신 부모님에 대해서 패륜을 저지르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년 365일 가운데 겨우 어버이날 정도 은혜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봅니다. 요즘 자녀들 가운데 부모가 책망하면 오히려 나한테 해준것이 무엇이 있느냐며 대드는 아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기가 막힌 세대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여한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은 한명도 그런 사람이 없기바랍니다.
로마서 1장 21절 이하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되 여호와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으로 어두워졌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 말세가 되면 벌어질 징조를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말세가 되면 이 세상은 살기가 고통스러워집니다. 그 이유중 하나가 곧, 감사할 줄 모르는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감사하지 않는 자의 안타까움을 표현하셨습니다. 나병에 걸려 죽어가는 10명을 고쳐주셨습니다. 살이 썩어들어가고, 가장 무서운 병을 앓고 있는 그들을 고쳐주었다면 당연히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눅17:17) 오늘 여러분들이 그 아홉에 속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이 세대 속에서 주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진정 회복해야 할 감사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십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이름의 의미는 “씨름하는 자”입니다. 이름 그대로 하바국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왜 공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악한 일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시지 않는지를 묻습니다(1:1-4).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들어서 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5-11). 그러자 하박국이 두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왜 하필이면 택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벨론 같은 악한 나라를 통해서 징계하십니까(1:12-2:1).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시대가 피를 흘리고, 거짓이 난무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교만할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때가 되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한 날이 올 것(2:14)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바로 새 나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3장에서 수년 내에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일으켜 달라고 기도하면서 감사와 찬양을 여호와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던 하박국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에 고백한 찬양의 결론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들었으므로” 무엇을 들었습니까 바벨론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는 소리를 말합니다. 그 결과 하박국 선지자는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게 됩니다. 언젠가 닥쳐올 바벨론의 공격 앞에서 환난의 때를 미리 예견하고 있는 선지자의 몸은 뼈가 썩어가는 고통과 몸이 떨리는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그들에게 있어서 무화과는 중요한 양식입니다. 포도나무는 중요한 음료입니다. 감람나무는 불을 밝히는 기름입니다. 이것들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필수품입니다. 그리고 수고의 땀을 흘린 밭에 식물이 없다는 것은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는 상황입니다. 양이 없고, 소가 없다는 것은 삶의 수단이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이런 경우들이 벌어집니다. 나는 열심히 노력했는데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가진것 마저도 잃을 때도 있습니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는데 오히려 비난과 조롱의 소리가 들려올 때도 있습니다. 학생들도 밤을 새워 열심히 공부했는데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엉뚱한 문제가 나올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때 심정은 어떻습니까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심한 경우라면 죽고 싶은 마음이 들것입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합니다. “비록-찌라도”
저는 아직 소록도 라는 섬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나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전도사님은 나병 환자인데 방문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인간 마지막 섬에 오셨습니다. ‘소록도’ 얼마나 예쁜 이름입니까 소록도는 "아기 사슴섬"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섬에 들어오면 죽습니다.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꼭 가야할 또 하나의 섬이 있습니다. 정말 마지막 섬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그 섬에 가야 합니다. 여러분, 그 섬에 가보셨습니까 그 섬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그 섬의 이름은 "찌라도"입니다. 그들은 비록 살이 썪어가고, 몸이 떨어져 나가도 가장 비참한 상황에 있을 찌라도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을 찌라도, 밭에 식물이 없을 찌라도, 우리에 양이 없을 찌라도-우리의 믿음이 찌라도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직은 초보단계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찌라도의 섬에 들어가 있다면 성숙한 단계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풀무불 속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3:18)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찌라도"의 수준에 이르기를 축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합니다. 비록 없을 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3:18)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씨름 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깨닫습니다. 무엇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환난과 역경 속에 있다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을 보여줍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헬레스코스타라는 지방에는 6백만 유대인들을 비참하게 집단 학살했던 인간 가마솥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졌던 유대인들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돼지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이 가마솥에서 연기로 사라졌습니다. 당시 이 죽음의 현장에는 유대인들의 피맺힌 절규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죄 없이 죽어가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당신은 왜 우리에게 이런 일들을 허용하셨습니까’라는 외침이 수도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연합군이 유대인들이 죽어갔던 수용소를 탈환하여 수용소의 벽을 살펴보다가 한 구석에 희미하게 씌어진 찬송가의 가사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두루마리로 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겠네,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할 수 없겠네!”
지옥과 같은 현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글귀를 발견한 이들은 그 벽 아랫면을 보고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기 계십니다(God is here). ”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통, 지옥과 같은 절망과 잔인한 학살 가운데서도 이 모든 것을 넘어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여기 계시다’는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고통을 받고 계시다’는 고백을 드렸던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 놓이더라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죽음마저도 이길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의 기적입니다. 감사는 어떤 고난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게 만듭니다. 감사는 죽음 앞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듭니다. 감사는 바로 우리의 이성과 상식을 뛰어 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의 어둠의 감옥에서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찬송과 기도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어둠 밤에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희망의 감사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 기적은 근원은 어디입니까 바로 19절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곤경에 빠뜨려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우리의 탄식을 찬송으로 바꾸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암사슴 같게 만드셔서 높은 곳에 이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간절한 기대요 소원입니다.
2주전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라는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미 방송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존스 홉킨스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슈퍼맨 이승복 씨의 인간승리입니다. 그는 8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슈퍼를 하면 어렵게 생활하는 부모님은 공부하는 아들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체조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체조학교에 가서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그의 꿈은 대한민국 체조대표 선수가 되어 올림픽에 나가 태극기를 휘날리며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전 미국 올림픽 최고 상비군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많은 대학에서 그를 스카웃트 하려고 제안이 들어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도양양하던 그의 미래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중돌기를 하다가 턱이 먼저 매트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정신이 없었고 별이 반짝이는데 갑자기 GOD 라는 세 글자가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그의 미래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셨습니다. 그후 그는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림픽 체조선수가 되는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잃지 않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을 했습니다. 비록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조차 힘들었지만 체조의 정열을 학업에 쏟았습니다. 누구도 불가능하다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명문 다트머스 의대를 거쳐, 하버드 의대 인턴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세계최고의 병원인 존스홉킨스 병원의 재활의학 수석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그의 모습은 모든 환자들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별명은 ‘슈퍼맨’입니다. 미국의 모든 매스컴이 그의 인생역전을 대서특필했습니다. 비록 그는 올림픽 체조금메달의 꿈을 접었지만 의사로서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합니다.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었어도 새로운 삶을 추구하며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평생을 자신을 비관하며 슬픔과 분노 속에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길을 선택하는 자에게는 불평이 사라집니다. 새로운 꿈과 희망이 생깁니다. 그 속에 놀라운 감사의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
지난 금요일 김복남 전도사님의 간증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학생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드립니다. 질병으로 두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그의 엄마는 가출을 했습니다. 아버지와 단둘이 지하 셋방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은 꿈을 잃지 않고 성경이 너덜거리도록 읽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지혜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몸에 암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누구나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검정고시를 보고 대입수능시험을 쳤습니다.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만류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400점 만점에 392점을 맞았습니다. 서울대 진학을 포기하고 그가 치료받았던 연세대 법대에서 추수한 성적으로 공부를 마치고 지금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현실이 힘들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두 다리가 없고, 암까지 걸리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학생이었지만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지혜주시고 능력 주셔서 승리하는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감사입니까
오늘도 하바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이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자에게 감사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힘이되시고 능력이 되심을 확신하는 자에게 반드시 감사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믿음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승리의 기적을 맛보게 하십니다.
감사와 찬송은 하늘의 문을 여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어둠의 밤에 희망의 찬송을 울리게 만듭니다. 감사는 고난의 자리에 기쁨과 감격의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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