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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감사할 수 있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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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처지에도 감사하며 살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복입니다. 그러나 남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가운데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늘 불평불만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는 연중 행사로 두 차례의 感謝節 주일이 있습니다. 여름에 지키는 麥秋 감사절과 늦가을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우리의 가장귀한 생명을 되찾아 구원받은 은혜가 감사하고 머리털 보다 더 많은 죄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용서받은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감사하고 살아야할 이유이지만 우리는 늘 불평하고 살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감사절을 통하여 감사생활을 고취하는 뜻으로 농사짓지 않지만 두 차례의 감사절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어떻게 하면 감사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이 무엇인지 오늘 신구약의 본문말씀에 의지하여 찾아봅시다.
1) 여호와 하나님은 욕심을 버려야 감사할 수 있다 하십니다. (8-10, 17상)
8-10절까지는 富하려는 자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 알 것이니라. 富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윤(沈淪)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이 누구이겠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부하려고 열망하고 있습니다. 잘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하려 하는'은 원어에는 '불로메노이'( )는 '의도하다' '갈망하다' '결정하다' 라는 뜻이니 부자가 되려는 강한 욕구를 갖고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미 부자 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합니다. '마음을 높이지'는 헬라어로 '휩셀로프로네인'( )입니다. 신약에서 이곳에 단 한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 뜻은 '자랑하다' '교만하다'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교만'을 뜻하는 'to be arrogant'로 '착상' '가상'을 뜻하는 'to be conceit' '거만' '오만' 을 뜻하는 'to be haughty'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직 부자 되지 않아서 부자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나 이미 부자 되어 있으나 더 부자 되기를 원하여 욕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잘 살기를 희망하는 것도 없으면 되겠습니까 그러나 희망을 넘어 욕심을 가지게 되면 그때부터 마음의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어집니다. 왕상21장에 보면 이스라엘나라 임금 아합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일국의 왕입니다. 없는 것이 없이 부귀와 영화를 누립니다. 이스라엘사람 나봇이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그 포도원은 이 사마리아왕 아합의 궁궐에 가깝게 있었습니다. 왕이 이 포도원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봇을 불러서 그 포도원을 자기에게 주어 나물 밭을 삼게 하면 그 대신에 더 아름답고 큰 포도원을 주던지 돈을 달라하면 나봇이 요구하는 데로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내열조의 유업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왕에게 주는 것이라도 금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합은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앓아 눕게 되었고 마음에 근심하면서 식사도 하지 아니 하였습니다. 왕이면 됐지 뭐 그것 때문에 식음을 전패하고 앓아 눕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욕심을 가지면 이렇게 됩니다. 악한 왕아합의 악한 왕비 이세벨은 나봇을 여호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거짓 죄목을 씌워 죽이고 그 포도원을 빼앗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왕상21:19) 라는 책망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받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야고보1:15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長成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말이 옳습니다.
욕심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세네카는 "만일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그 사람의 욕심을 줄여주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소유를 늘리는데 너무 집착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것이 선이며 풍부가 곧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이라도 욕심의 풍선을 한없이 팽창시키고 있습니다.
터질 순간이 임박한 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먼 인간이 되어 있습니다. 절제할 줄 알아야합니다. 이러한 탐심이 초래하는 가장 큰 부작용은 감사하는 마음을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욕심과 감사는 반비례하는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비행기나 배에는 순한속도(Cruising speed)가 있고 자동차에도 경제속도가 있습니다. 그것에 따를 때 가장 안전하고 흔들리지 않고 기름도 절약됩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순항속도 경제속도가 필요합니다. 욕망의 속도를 최고로 내는 것은 행복과 멀어지며 감사와는 담을 쌓는 일입니다. 달리고 감사하고 일하고 감사합시다. 수입을 거두고 감사합시다. 그 동안 농사로서 거둔 것이 아니라도 우리에게는 수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일조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 하면서 산 것을 감사하고요, 못한 분들은 감사로서 십일조를 하시기 바랍니다. 농경사회 때는 우리교회가 보리 농사지어 맥추 때 감사절을 지키면서 보리 열 가마니 거두었으면 한 가마니를 십일조로 감사하였습니다. 활동과 생활사이에 만족과 감사로서 여호와 하나님과 연결된 삶을 사는 것이 축복 받는 생활입니다. 우리 성도는 욕심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노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요 백성입니다.
2)여호와 하나님은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두어야 감사할 수 있다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늘 읽은 말씀을 통하여 재물은 정함이 없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정함이 없다'는 헬라어로 '아델로테티'( )는 불확실성을 뜻하는 말로 신약에서 이곳에서만 사용된 말입니다. 재물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게 됩니다. 그러기에 못 믿을 것이 재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눅12:13-21에 부모가 남긴 유업 때문에 다투고 있는 자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여호와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富饒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 이 부자는 소출이 자기의 것인양 생각하고 영원히 자기가 소유 할 것이라는 착각을 합니다.
그는 영혼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혼이 물질로 살아간다고 착각합니다. 그는 그에게 부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 즉 농사를 지을 때 비를 주시고 태양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도 모르고 농사를 짓는 동안에 수고한 일꾼이 있는 것도 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돌아온 소출이 가난한 이웃과 나눔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니 그는 어리석은 자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잠언 23:5에서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재물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재물이 많아지면 영원히 제 것인 줄 알고 교만하여 집니다. 가진 것 위에 더가지려고 온갖 수단과 계획을 짜내고 그리하여 얻어지면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온갖 손가락질을 다 받아 가면서 守錢奴노릇을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부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질의 노예가 되면 안됩니다. 그렇게 애를 쓰고 모아놓은 재물이 나갈 때는 날개를 치며 나갑니다. 형제지간을 갈라놓고 나갑니다. 사람을 미치게 하거나 죽이고 나갑니다.
돈이 있다가 없어지더라도 욥과 같은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합니다. 욥이 잘살았으나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고 몸에 병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욥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욥은 욥기1:21 "주신 자도 여호와 시오 취하신자도 여호와 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어다" 하였으며 22절에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오늘 구약 본문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도 물질적인 것에 동요되지 않는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가운데 감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였습니다. 갈대아인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산과 들이 황폐화된 가운데 이 노래가 나온 것입니다. 그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았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소망이 되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이 만족이었습니다.
3)여호와 하나님은 선한 일에 힘쓰고 나눠주기를 좋아해야 감사가 나온다고 하십니다.
18절 말씀을 보세요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합니다. 우리는 물질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합니다. 좋은 일에 선한 사업에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돈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자기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면 자기의 영혼을 망칩니다.
마틴 루터는 "자신의 소유를 봉사하는데 사용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칼빈도 "재물은 사랑의 계명에 따라 써야한다"고 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가능한 한 돈을 많이 벌어라. 가능한 한 많이 저축하라. 가능한 한 많이 나눠라"고 했습니다.
잠언3:27"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하였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호 록펠러가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53세의 나이로 중한 병이 들어 이제는 더 살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렸습니다. 이 많은 재산을 교육사업을 위하여 자선사업을 위하여 나눠주고 자기는 세상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그는 죽지를 않습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아십니까 98세를 살았습니다. 건강하게 되는 비결이 나눠주는데 있었습니다.
'나눠주기를 좋아하며'는 헬라어로 '유메타도투스'( )라고 하는데 '대가 없이 주다'혹은 '인색하지 않게 주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에서 '동정하는'은 '코이노니쿠스'( )는 '함께 나누다' '공감하다' '교제하다'의 뜻을 갖습니다. 따라서 이 말들은 그리스도인 부자들은 그들이 갖고있는 물질뿐만 아니라 그들이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까지도 없는 자들과 함께 나누고 서로 교제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러할 때 감사가 나옵니다.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을 때 기쁨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오늘우리가 받은 말씀을 통하여 감사할 수 있는 비결을 찾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높이지 않는 것입니다. 재물에 소망 두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두며 사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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