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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진정한 감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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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사막에서 길을 잃고 보름을 헤매다가 집 한채를 발견하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이 집은 선교사님의 집이었는데, 마침 집으로 돌아오던 선교사님이 남자를 발견하고 집안으로 들여 간호를 해주었고, 하루가 지나서야 남자는 깨어났습니다.
남자는 일주일간을 선교사님의 집에 머물면서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런 뒤 선교사님께 감사를 하며 목적지의 방향을 묻고는 선교사님이 가리킨 방향으로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뒤뜰에 말이 묶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선교사께로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저 죄송하지만 말을 빌려 틀 수 있을까요 돌아오는 길에 반드시 돌려 드리겠습니다. " 남자의 부탁에 선교사님은 쾌히 승낙을 합니다. "예 빌려드리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알아 두셔야 될 것이 있습니다. " "뭔데요"의아해하며 물어보는 남자의 물음에 선교사님은 심각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 말은 다른 말들과 달라서 신앙훈련을 철저히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가고, '아멘'이라고 하면 섭니다. 절대 이것을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
선교사님의 말을 다 들은 남자는 뭐 그렇게 쉬운 일을 걱정하는가라고 생각하며 말을 타고 출발을 했습니다. 남자가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자 말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남자가 다시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자 말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달리다 산 모퉁이를 도는 순간 저기 앞쪽에 절벽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급하게 말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워~워~" 그래도 말이 서지 않자 남자는 "아멘"하면 선다는 선교사님의 말을 기억해냈습니다. 그리고 다급하게 "아멘"하고 소리쳤습니다. 천만 다행하게도 절벽의 끝 부분을 10센티미터 정도 앞에 두고 말이 멈추어 섰습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그래서 남자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땀을 닦으면서 별 생각 없이 말했습니다. "휴~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 다음 순간 이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 까요 물론 하나의 조크이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속에서 "과연 무엇이 참되고 진정한 감사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무턱대고 감사하는 것이 감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때나 감사하는 것이 감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살전 5:18절 말씀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우리는 "이유 불문하고 무엇이나 아무때나 감사하라"는 말씀으로 받아 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억지를 요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마음에 불만이 가득해도 그것을 억지로 억누르며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요, 위선입니다. 이런 억지 감사를 드리는 마음을 뒤집어 벗겨 보면 순수하게 감사한 마음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억지 감사라도 드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상히 여기셔서 주실지도 모르는 축복"에 마음이 가 있습니다. 엉큼한 계산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진정한 감사일까요 물론 슬플때도 감사해야 합니다. 실패했을 때도 감사해야 해야 합니다. 속이 상할때도 감사해야 합니다. 병이 들어도 감사해야 하고 가족 중 누군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억울한 감정을 억누르며 감사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불만이 가득한데도 볼멘 소리로 감사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무작정 아무 생각도 없이 드리는 그런 감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통쾌하고 시원한 감사의 고백을 봅니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16~17절은 현재 하박국선지자와 이스라엘이 처해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상황은 한마디로 철저함 그 자체입니다.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잔인하게 짓밟는 소리가 들려오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황무함 그대로의 허망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18~19절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마음은 기쁨과 감사의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이 기쁨과 감사의 믿음이 미래를 향한 확신으로 고백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박국"의 이 기쁨과 감사가 무작정의 감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의문과 불만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억누르고 감사하는 억지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하박국을 처음부터 읽어보면 하박국 선지자가 처음부터 이런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박국의 마음은 온통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그렇게 내버려 두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해 일말의 불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마지막에 이런 감사와 기쁨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었을까요 상황이 바뀐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계획이 철회된 것도 아닙니다. 바벨론은 분명히 쳐 들어와 남 왕국 유다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포로도 잡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은 아무것도 거둘 수 없는 황폐한 땅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박국의 마음은 기쁨과 감사가 가득합니다.
어찌된 일 일까요 그것은
1.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는 주전 약 607년경이었습니다. 그때 남쪽 왕국 유다의 사람들은 마치 자기 세상을 만난 듯이 자신감에 넘쳐 있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자신들까지 위협해 오던 북쪽의 제국 앗시리아가 바벨론에 멸망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외부의 위협이 싹 제거되자 백성들은 그 동안 요시야왕이 주도한 신앙부흥운동도 다 집어 치우고 서로가 제 욕심만을 채우며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이 독세하면서 겁탈과 강포로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떵떵거리면서 사는 자들이 늘어가게 됩니다.
하박국은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세상에서는 악한 사람들이 더 잘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악한 인간들이 대부분인 이 백성들을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두시느냐"는 불만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여호와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 내용이 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 질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답변을 주십니다. 이런 불합리한 세상을 내버려두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능하셔서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는 중"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때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앗시리아를 멸망시키고 강력한 제국으로 떠오른 바벨론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이 답변은 하박국으로 하여금 또 다른 의문과 불만을 갖게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이방민족이 심판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악하면 악했지 더 선량한 백성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벨론이 이스라엘의 심판자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다시 여호와 하나님께 묻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시 답변하십니다.
바벨론은 심판자가 아니라 다만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고, 이후에는 바벨론까지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제서야 하박국의 의문이 풀리고 불만이 말끔히 씻깁니다. 그러니까 하박국의 기쁨과 감사는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기쁨이요 감사였습니다. 그렇기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날 수밖에 없고 변질될 수 없는 진정한 감사였습니다.
감사의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감사냐 모르는 감사냐"하는 것입니다. 이것의 여부에 따라 내 감사가 "생명을 가진 감사인가 아닌가"가 결정됩니다. 살아 있는 감사 진정한 감사는 감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의 싹을 틔웁니다.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삶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구구절절이 느끼게 하고 체험하게 합니다.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감사를 기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산 제사를 드리는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는 결론으로서의 감사였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깊은 맛이 베어 있어야 합니다. 그저 때가 되면 잠깐 가졌다가 그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는 그런 감사가 아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묵직한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추수의 감사를 드리는 주일을 맞았습니다. 과연 오늘 여호와 하나님 앞에 드리는 내 마음의 감사는 얼마나 숙성시킨 감사입니까 일년을 종합하는 오늘의 이 감사를 드리기 위해 나는 과연 얼마 전부터 여호와 하나님 앞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까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 오늘 아침에 지난 주 주보에 끼어있던 추수감사절 헌금봉투를 발견하고는 아차! 싶어서 대충지갑을 열어 적당한 금액을 넣어 봉하고는 그럴싸한 감사의 제목을 생각하지는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무엇이 감사한 것입니까 그리고 왜 감사합니까 실패한 것이 왜 감사합니까, 병들거나 다쳐서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생을 한 것이 왜 감사의 제목이 됩니까 오히려 생각하면 더 속상하지는 않습니까 왜 예수 믿는 내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이렇게 힘겨워야만 하는지 솔직히 불만스럽고 은근히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마음에 자리하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요한 것은 내 입술에 걸린 감사의 말 한마디보다 그런 아픔속에서 불안과 괴로움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나누게 되는 깊이 있는 대화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과 대답 속에서 얻게 되는 결론입니다.
하박국의 마음도 그러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두려움 속에 있었던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창자가 흔들린다"고 말합니다.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있다"고 집안에 있는데도 떨린다고 두려워합니다. 그럼에도 다시 그가 기쁨을 회복하고 또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대화 속에서 그 결론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들려주신 결론은 2:14절입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이 악이 선을 이기는 것 같고 사람들은 제멋대로 인 것 같고, 이방 나라가 여호와 하나님 백성의 나라를 심판하는 것 같은 멋대로의 세상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물이 바다를 덮는 것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이 모든 무질서와 불의와 불공평한 것들을 덮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이 하박국의 의문과 불만의
결론이었고, 이 결론에서 그 무엇도 꺾을 수 없는 하박국의 기쁨과 감사가 배어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설익은 감사는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의문과 불만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 결론으로 얻은 감사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의심을 두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만을 억누르고 드리는 억지 감사가 아닙니다. 충분한 여호와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불만의 결론을 도출된 감사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例)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필 화가인 김준호씨는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에 진학하여 공부하다가 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런데 군복무 19개월이 되던 어느날 부대에서 관물대 위에 올라가 물건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떨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척추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추를 크게 다쳐 전신마비 환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신체장애를 탓하지 않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의 감사의 이유는 네가지입니다.
 첫째,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하고 믿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둘째, "군대에서 다쳤기 때문에 치료비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셋째, "원호병원에 입원하는 중에 당시 병원의 실습생이었던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고,
넷째, "남들이 하지 못하는 구필 화가가 된 것"이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가장 처절한 위기에 처박혔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위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그런 위기에 두셔야만 했던
결론을 찾았습니다. 그 결론이 그에게 감사의 제목이 되었고 살아있는 그의 감사는 그의 삶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지금 "인당"이라는 화명으로 붓을 입에 물고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1981년도에는 세종 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데,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늘 고백합니다. 어떤 환경에 내던져지고 어떤 일을 만나든지 그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갖고 결론으로서의 감사를 갖게 되는 사람은 절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꺾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힘을 얻어 일어나고 능력을 얻어 승리합니다. 하박국은 결론으로 고백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19절) 이것이 진정한 감사의 힘입니다. 이런 감사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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