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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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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말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말일 것입니다. 저는 천국 방언을 가르쳐 준다면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바로 이 말이 천국 방언이라고 강조하신 어느 목사님의 가르침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이 한마디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놓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말을 듣는 이들의 마음은 웬지 모르게 즐겁고 평안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 말은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모난 마음을 다스리며, 각박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라는 말 한마디와 그 말을 담아 나타내는 행동이 있는 곳에는 참으로 놀라운 사랑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렇게 감사가 귀한 것일진대, 어찌 우리가 만물의 주인이 되시며, 나의 삶을 선히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어찌 감사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더욱 복내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세상을 향해, 내 이웃을 향해 감사하며, 감사를 표현하며 사시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감사하고 고마운 일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불평 불만 원망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고, 염려 근심 걱정 시련을 벗어날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사실 불평 원망을 하고자 하면 끝이 없습니다. 이것이 누구 탓이냐 논해봤자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감사의 제목을 잊지 않고, 고마운 대상을 찾아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산다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삶의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감사의 조건을 헤아려 보면 그것도 끝이 없습니다. 감사와 기쁨과 찬양으로 살려고 하면, 이 세상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고 복된지 모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가 굳이 일년 중 한 주일을 감사 주일로 정해 지키는 것은, 이 감사는 우리가 일부러 지켜 나가고 키워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뜰 앞의 잡초는 누가 돌보아 주지 않아도 저절로 잘 자랍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화초는 정성을 다해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 속의 불평 불만 원망은 내가 키우지 않아도 저절로 내 속에서 쑥쑥 잘 자랍니다. 하지만 감사, 고마움의 아름다운 삶의 자세는 일부러 키워 나가고, 돌보고 가꾸어야만 내가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추수 감사의 계절을 필요로 합니다.
특별히 현대는 감사를 모르는 시대입니다. 잃은 사람은 억울해서 감사가 없고, 얻은 사람은 더 얻지 못해 감사가 없습니다. 적으면 모자라서 걱정이요, 많으면 지키느라고 걱정입니다. 이래저래 감사가 없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은 괴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 참 적절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갈 때 감사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사는 길이겠습니까 우선 우리 삶을 항상 통째로, 전체적으로 볼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나오는 요셉이나 모세같은 신앙의 위인들의 삶을 보면, 그들의 유년기는 행복했습니다. 청년 혹은 중년기는 매우 불행했습니다. 그러나 노년기는 다시 축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 모두는 한결같이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한 때, 인생의 한 때를 살았습니다.
그들은 감사가 아니라, 하늘을 원망하고 탄식할 수 밖에 없는, 이 세상 그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처하면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을 버려도 괜챦다고 생각될 수 있는, 참으로 모진 한 때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위인들은 그 모진 한 때를 만나도 결코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과 내일을 바라보며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갔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가, 그것은 그 모진 한 때가 인생 전체에 있어서 그야말로 한 때임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 삶은 총체적으로 볼 때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선한 분이시며, 나를 향하신 놀라운 뜻과 계획과 미래가 분명히 준비되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몸이 허할 때 한약을 지어 먹습니다. 그런데 한약이 어떻게 효험이 있습니까 물론 약 한가지 한가지가 다 귀합니다.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한약은 그 모든 약재를 모아 함께 끓여졌을 때, 중탕이 되었을 때 효과를 발휘합니다.
때로는 극약이라는 비상도 중요 약재로 쓰여진다고 합니다. 비상 자체로 있을 때는 독이지만, 중탕으로 끓여져 여러 약재와 혼합이 될 때, 중병을 고치는 귀한 치료제가 된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로마서 8장의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 안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오늘이 지금 이 순간이 힘들고 어렵고 괴롭더라도,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기에도 함께 하시고, 이 자리에서도 나를 도와 주시는 가운데, 결국 합력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는 계기로 삼으신다는 확실한 믿음 안에서 우리는 어떤 고난도 시련도 감사함으로 이겨 나갈 수 있는줄 믿습니다.
중국 선교 사역을 마치고 은퇴해 귀국하는 선교사에게 어느 신도가 감사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수를 놓은 액자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출국 인사를 하는 자리에 이 선교사는 그 액자를 들고 나와서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 이 수를 놓은 작품을 보십시오, 하면서 그 작품의 뒷면을 펼쳤습니다.
거기에는 이리저리 엉망으로 실이 엉켜 있었습니다. 지저분했습니다. 무엇이 새겨져 있는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작품을 다시 돌려 앞면을 보이니, 거기에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글씨가 색색으로 예쁘게 새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는 이렇게 고별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이 이 작품의 뒷면처럼 이리저리 엉키고 성켜 의미도 목적도 모르는채 하루하루 산다고 실망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에는 분명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분명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깨닫게 되면 이 작품의 앞면처럼 질서정연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오늘 우리 삶에 이루어지고 있는 줄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많은 이들이 아멘으로 화답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큰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먼 역사의 앞날까지도 내다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한 때의 고난과 어려움도 이겨 나갈 수 있고, 진정한 감사의 자세로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뒤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화가가 말합니다. “이 작품은 내 일생 최고의 걸작품이 될걸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친구는 응답합니다. “내가 보고있는 이 작품은, 크기는 하지만 멋이 없고 권태로운 그림일 뿐인걸. ” 그 말을 들은 화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내가 잊었군. 자네가 그림을 볼 때는 그림의 현재 상태를 볼 뿐이지. 하지만 내가 그림을 볼 때는 그림의 완성된 상태를 보고 있다네. ”
그렇습니다. 우리는 현재 상태의 시련과 고난만 보고 실망하고 낙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삶은 여호와 하나님이 준비하신 상급이라는, 완성된 작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 점점 더 아름다워져 가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내일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꿈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여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감사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이 시편 말씀처럼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감사의 제사로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살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둘째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 일로 인한 감사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 성도님들, 많은 이들이 참 힘들어 하십니다. 많은 이들의 수입이 줄어들었고, 실직 당하거나 부도를 맞은 이들도 계십니다.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도 계시고 남에게 알려지기 부끄러운 마음 깊은 상처를 안고 씨름하는 분도 계십니다.
개인적인 문제 뿐 아닙니다. 사회적으로도 지금 참 어렵고 답답한 일들이 많습니다. 세상은 전쟁의 소문으로 참 편하지 않습니다. 우리 남북 관계도 냉각된 상태입니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풍년은 오히려 쌀값 하락을 가져왔고, 일부 고위 공직자들의 추한 모습들이 우리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들려오는 소식들이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리면 안될줄 믿습니다. 세상의 어둠에 빠지면 그것은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만일 우리 마음에 감사가 없다면, 그것은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만, 우리는 가장 값진 것, 가장 중요한 것을 아직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찬송가 중에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참 귀한 찬송입니다. 정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믿음만 있다면, 초막이면 어떻고 궁궐이면 어떻습니까 그 어디나 천국이 될 줄을 저는 믿습니다.
경제 불황으로 우리가 잃은 것은 황금과 재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전쟁의 소문으로 우리가 잃은 것은 세상의 평화입니다. 그러나 하늘로서 나리는 평화를 잃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도층 인사의 비리로 우리가 잃은 것은 사회 정의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를 잃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 버렸어도 여전히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으며, 그와 같은 삶을 인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고,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품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시장에 나가서 과일 하나 사든지, 넥타이, 머리핀 하나 살 때도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고릅니까 얼마나 많이 다리품을 팔아 겨우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 삽니까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같은 사람이 마음에 들어서 택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선택의 축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을만한 자격도 아름다움도 귀함도 없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나를 택해주신 것을 우리는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 나를 불러주신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늘 감사하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 아무리 감사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죽은 사람 살려준 것보다 더 큰 감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은 나를, 나의 영혼을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다시 살리셔서 천국 시민되게 해 주신 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찬양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박국 선지자가 찬양합.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고, 우리에 양이 없어도, 나는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찬송하고 기뻐하리로다. ” 참으로 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이 감사가 오늘 우리의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잃어버려도 이 믿음만 있으면 여전히 감사하고 여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면서 천국의 삶을 앞당겨 사시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 그 감사의 방법을 몇가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진정한 감사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둘째는 말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의 말은 우리를 감사의 땅으로 인도하고, 불평과 원망의 말은 불평의 땅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셋째는 재물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으므로, 그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너는 빈 손으로 네게 보이지 말지니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밥상을 받을 때, 조촐하지만 제일 먼저 정갈하게 떠낸 밥과 따끈한 국으로 보아온 밥상과, 비싸고 좋은 음식들이지만, 남들이 다 먹고 남긴 것을 모아다가 다시 데워서 보아온 밥상이 있다면 우리는 어느 밥상을 받겠습니까
나 쓸 것 다 쓰고, 나 할 것 다 하고, 맨 나중에 적선이나 하듯 체면 치례로 헌금 한 물질을 여호와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사실 물질과 관계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참 어렵고 부담됩니다. 혹 시험드는 성도가 있을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바른 헌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우리는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감사 헌금은 맨 나중에 남는 찌끄러기가 아니라, 맨 처음에 거둔 맏물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자 축복받는 지름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몸으로 봉사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내 몸은 주님의 피 값을 주고 사신 몸이니,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감사하면서, 무엇이든 어떻게든 교회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봉사하며 살기로 다짐하는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감사를 회복하시는 이번 귀한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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