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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그리스도인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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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을 받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아니한 것이 없는, 전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은혜를 감사로 표현하는 사람만이 은혜를 진정 깨닫는 사람이고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고백하고 찬미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신앙을 나무의 뿌리라 한다면 열매는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 있는 믿음의 사람은 그 입술에 감사가 끊이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풍부한 재물과 명예를 가지고 넉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알 때 비로소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기복 적인 감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무언가 얻었을 때 할 수 있는 일반적인 감사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해야할 감사는 조건 없는 감사여야 합니다.
조건 없이 감사하는 것,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음에도 감사하며 더 나아가 어려운 환경에서나 고통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것, 이것은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의(합3:16)말씀을 보면 하박국 선지자는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앗수르가 치러 올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계시하였는데 이 전쟁의 경고와 결과를 생각할 때에 창자가 흔들리며 입술이 떨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그 시련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신앙과 인격이 깊어지게 됩니다.
나무는 가뭄 때에 뿌리가 깊어지고 겨울 찬바람에 단단하여 집니다.
자녀를 출산하는 어머니는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자식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게 됩니다.
남북전쟁 당시 무명의 흑인병사가 드린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저는 출세의 길을 위하여 당신에게 힘을 원했으나 당신은 순종을 배우도록 나약함을 주셨습니다. '
'주님 저는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서 건강을 원했으나 당신은 보다 큰 선행을 하게 하시려고 병고를 주셨습니다. '
'주님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부귀를 청했으나 당신은 내가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
'주님 저는 만민이 우러러 존경하는 자가 되고 싶어 명예를 청했으나 당신은 나를 비참하게 만드시어 당신만을 필요로 하게 하셨습니다. '
'주님 저는 당신에게 내 삶의 즐거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청했으나 당신은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하는 삶의 길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
'비록 내가 당신께 청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으나 당신이 나에게 바라시는 모든 것을 주셨으니 주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 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신앙고백이 성도가 해야할 신앙고백입니다.
이 흑인 병사의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이루셔서 오히려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감사의 찬미인 것입니다.
앞길이 답답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할 지라도 그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고통의 환경에서도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게 됩니다.
구약성서의 욥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환난 중에서 가장 큰 환난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러한 환난의 날을 다 지난 후에 욥은 (욥23:10)에서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백하였습니다.
사도바울도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매를 맞고 발에 착고가 채여 옥에 갖혔습니다.
사도바울에게는 참으로 억울하고 고달픈 밤이었지만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그 환난의 밤에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사슬이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감사는 기적을 일으키게 됩니다.
본문(합3:17)에 기록된 말씀에는 무엇이 없어도 드리는 감사인데 성도가 마땅히 해야할 감사의 조건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농경사회에서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 밭의 곡식, 우리의 양, 외양간의 소는 큰 재산입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고 우리의 양을 모두 잃었을 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성도의 감사를 말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광야를 지나는 동안 흑암과 공허가 앞을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할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은 넓어집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의 마음은 좁아집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남의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믿으며 환난과 고통 중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야말로 우리의 삶을 온통 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은총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길은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로 시작되는 삶입니다.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감사하는 법을 가르치기 바랍니다.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감사의 사람은 넓은 마음을 가지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면서 감사하는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성도는 모든 것을 잃는다 하여도 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와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나의 삶에 있어 무언가 특별히 주어진 것이 없어도 지금 이 시간 주일을 지키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재앙을 부르지만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통로가 됩니다.
한 해군 장교가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집은 불타 없어졌고 모든 것이 다 폐허로 변해 있었습니다.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분노와 증오심으로 불평과 원망을 터뜨렸고 곧 전신마비로 인하여 장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의사는 이 환자를 진단해 본 결과 그의 병은 심리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처방을 약으로는 찾지 못하였고 다만 하루에 세 번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와 성경을 읽을 것을 권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환자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에 다니는 그의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학교에서 배급한 빵을 아버지를 위하여 먹지 않고 고이 싸서 아버지에게 드릴 때 그것을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온 몸의 마비가 풀리면서 아버지는 온전하여 졌고 그 후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를 드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가져옵니다.
여러분 삶이 마비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합3:18)에 보면 하박국 선지자는 즐거워 기뻐하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없어도, 환난이 와도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존재이기에 나는 만족한다하는 고백입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푸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생명을 가졌기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때 모든 것에서 자유 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적인 것,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게 되면 언제나 비교의식 속에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것 없어도 찬송이 울려나오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자녀들의 밝은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높은 은혜를 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본문(합3:19)의 말씀에는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사슴처럼 높은 곳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높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종종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게되면 저공 비행을 할 경우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내리고 구름이 앞을 가려 도무지 창 밖을 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창공높이 정상 궤도에 올라가게 되면 언제나 빛 가운데 하늘을 비행하게 되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은혜의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어떠한 환난의 어려움이 와도 그것에 메이지 아니하고 은혜로 자유롭게 됩니다.
높은 곳이라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말합니다.
은혜 받기 위해서는 성전에 올라가야 합니다.
새벽에도 올라가고, 낮에도 올라가고, 저녁에도 올라가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거듭난 삶은 낮은 데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삶입니다.
교회는 벌레 같은 인간을 허물벗게 하고 믿음의 날개를 붙여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먹으며 살 수 있는 하늘의 시민으로 바꾸어 주는 곳입니다.
높은 곳에 오르게 하는 것은 믿음이고 성령의 능력입니다.
교회는 신앙인 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곳입니다.
높은 곳에 오는 사람은 불평이 없습니다. 언제나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우리들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의 집은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것이 하늘나라에 있기에 소망도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낮은 곳에서 세상 것만 바라보며 불평불만하지 마시고 높은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보면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시는 성도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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