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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고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53:4-9, 막 8: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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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십자가 사53:4-9, 막 8:31~38




영국의 신학자인 S. 러더프드는 “새에게 그 날개는 무거운 것이나 그것 때문이 날아가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간다. 신자는 그 십자가가 짐이 되나 그것이 그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여 전진케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십자가는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용어 중 하나입니다. 그러면서도 십자가는 가장 부담스러운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는 희생이요, 고난이며, 때론 죽음까지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입성(入城)하신 주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의 입성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고 해서 '종려주일(Palm Sunday)'이라 부르고 예수님의 고난이 시작되는 주일이라고 해서


'고난 주일(Passion Sunday)'이라고 부르는데 예수님이 당하실 그 고난에 대한 예언이 아주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오늘 구약 본문의 내용이고, 신약 본문에는 십자가에 대한 성도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1.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유일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구약 본문 사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고 있는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당하신 고초를 여러 가지 말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찔리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상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채찍에도 맞으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6절 하반부에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고초를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온 세상 인류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 하시는 죽으심을 당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시어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요한은 요일4:7-13.18-20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했습니다.


월남 전쟁이 한참 치열할 때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바람에 고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미군들은 고아들을 위해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고아원 안에서 원인 모를 폭탄이 터져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한 아이가 몹시도 다쳤습니다. 급히 수술을 해야 생명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수혈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전시 중이라서 다른 곳에서 피를 구해 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고아원 아이들 가운데서 그 아이와 같은 혈액형을 가진 아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얘들아, 저 아이는 지금 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피가 부족하단다. 너희 가운데 저 아이를 위해서 자기의 피를 좀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겠니?"


아이들은 아무도 선뜻 나서지를 않았습니다. 잠시 뒤에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제가 하겠습니다." 그 아이는 즉시 부상당한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그의 팔에는 굵은 주사 바늘이 꼽혔습니다. 그 즉시 긴 관을 통해서 그의 붉은 피가 뽑혀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물끄러미 자기의 피가 뽑혀 나가는 것을 바라보던 그 아이는 갑자기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군의관은 깜짝 놀라서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왜 우니? 주사 바늘이 아프냐?"


아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군의관은 또 "그러면 왜 우니? 무서워서 우니?" 물의니 아이는 아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군의관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아서 통역관을 불러서 그 아이가 갑자기 우는 이유를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누던 통역관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의 피가 곧 다 뽑혀 나가서 자기는 얼마 있지 않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아이는 자기가 죽을 줄 알면서도 옆에 있는 아이에게 자기의 피를 뽑아 주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군의관은 그 사실을 알고 너무나도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죽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옆에 있는 이 아이에게 너의 피를 주려고 했느냐?"


그 아이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얘는 내 친구이니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친구인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 주신 것입니다. 찬송가 144장의 4절 가사입니다. "아름답다 예수여 나의 좋은 친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믿고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얻게 되는 사랑과 은총의 십자가입니다.


예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얻게 된 결과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 5절 하반부에서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 우리는 허물과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지불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우리는 심각한 죄의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으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범죄 하여 불 뱀에 물려 죽을 때 장대에 구리 뱀을 만들어 달게 하고, 그것을 보는 자는 살리라 했는데, 인자도 나무에 달릴 것을 말씀했습니다. 믿는 자들이 바라보면 사는 길이 바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저주의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8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더 나가서 1:22-24에서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14을 통해 십자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선언하십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느니라."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 즉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십자가이기에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한 영국인이 요크셔 해안에 아름다운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해안 한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바다를 향해 불쑥 나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영국인은 딸을 데리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이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야, 위를 올려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다보아라." 아버지의 말대로 딸은 하늘이 비춰지는 바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번엔 저 앞을 내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했습니다.


"내 딸 도로시야, 이처럼 높고 한없이 깊고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이처럼 높고 깊고 끝없이 광활하다면 우리는 그 한가운데서 살고 있군요." 하고 똑똑히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이 말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와 환경이라도 십자가의 사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야 말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이 십자가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시다.


3.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올 것을 보여주는 십자가입니다.


신약 본문 막8:33에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수제자 베드로가 졸지에 사단이라고 불립니다. 그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지혜로 답변했을 때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 고백을 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제쳐둔 채 인간적 생각이 앞섰을 때 주님을 실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예수의 사역을 돕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방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사단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앞세울 때 제자라고 할지라도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 막8:34에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해야 따를 수 있습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내 생각을 주님의 뜻에 굴복 시켜야 하고, 날마다 옛 사람이 죽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 때 아픔과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주인에게 두 마리의 소가 있는데 한 마리는 약하고 힘이 없고 또 한 마리는 강하고 힘이 세다면 어느 소에 무거운 짐을 지울까” 물론 강하고 힘이 센 소에 무거운 짐을 지웁니다. 나의 십자가가 유난히 무겁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질 만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나에게 적절한 십자가를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결국은 예수께서 이미 보여 주신대로 부활의 영광, 승천의 영광, 하늘 보좌 우편의 영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지금은 십자가가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그 결과는 너무 값진 영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십자가를 세워 놓고 보면 더하기표가 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등에 지면 곱하기표로 변합니다. 기독교는 더하기의 종교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하는 곱하기의 종교입니다.


100만원에 100만원을 더하면 200만원이지만, 100만원에 100만원을 곱하면 10억 원이 됩니다. 이제 더하기의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해타산적인 사람은 희생의 십자가를 지지 않습니다. 곱하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못 박는 십자가를 집니다. 이 십자가는 이미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 포함된 십자가입니다. 죄인 된 나를 위해 주님이 십자가를 질 때 죄인 된 나는 죽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알이 되는 희생의 십자가입니다.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남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과 수치 받음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자가 사명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그로 인하여 수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사명의 십자가를 짐으로 곱하기의 기적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도 그런 기적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1.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유일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2.믿고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얻게 되는 사랑과 은총의 십자가입니다.


3.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올 것을 보여주는 십자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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