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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부활신앙인의 삶(고전 15 : 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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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신앙인의 삶(고전 15 : 50-58)




부활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죽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죽음의 힘은 강합니다. 죽음의 그늘이 한번 덮으면 누구든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생명의 문제를 다루는 과학자들도 죽음이 찾아오면 여지없이 끌려가야만 합니다. 죽음이 찾아오면 그 어느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고 끌려갔습니다. 불로초를 먹은 사람도 죽음이 찾아왔을 때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죽음은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참으로 죽음은 우리에게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하게 찾아옵니다.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을 이겨본 사람이 없습니다.




I.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의 원리


그러나 죽음을 이긴 사건이 한 번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그것입니다. 부활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역사적,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은 부활의 첫열매입니다. 부활은 인간의 죽음을 영원히 극복하게 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이며, 우리는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그 믿음 안에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부활에 대하여 말할 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죽으면 그만이지 부활이 어디 있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순히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무지 때문에 부활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 우리는 부활체를 입습니다. 썩을 자가 썩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죽을 자가 죽지 않을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왜 우리에게 부활의 몸체가 필요한 것일까요? 만일 우리가 달나라에 가서 살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달나라는 지구와 달라서 그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장비와 도구가 필요합니다. 우주선, 우주복, 우주식량, 산소통이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무중력 상태에서 걸을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달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처럼 부활체라는 것도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알맞은 조건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부활은 모든 사람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 부활합니다. 문제는 영원히 사는 환경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천국이라는 환경과 지옥이라는 환경으로 나누어집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 모두 영원히 살지만, 사는 조건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기억할 것은 믿는 자가 부활되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힘입어 죽은 심령이 부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의 심령이 부활할 때 영원한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II. 부활신앙인의 삶의 자세


이처럼 영광스러운 부활을 소망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중요한 권고를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견고하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이 견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초석입니다. 이 초석이 견고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두번째는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부활신앙의 방향성을 상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락가락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도전에도 흔들리지 말고, 역사학자들이 역사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도전에 대해서도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부활신앙 위에서 죽음의 권세에 대하여 담대하게 외칩니다. 첫째 외침은, “사망아 너의 이김이 어디 있느냐?” 지금까지는 죽음 네가 인간의 생명을 다스리고 주장했지만, 그리스도의 부활로 너는 더 이상 이길 수 없지 않느냐? 더구나 예수의 부활을 믿는 우리의 생명을 더 이상 다스릴 수 없게 되었도다. 우리는 부활의 은혜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둘째 외침은,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은 쏘는 것입니다. 사망은 우리를 찌르고 괴롭히고 찢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는 이러한 공격을 다 막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외침은,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 사망이 부활속에 삼키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망이 부활 속에서 소멸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망이 부활에게 완전히 정복당했다는 것입니다. 즉 사망과 부활을 연관시켜 한 마디로 말하자면, 부활은 “사망을 사망시킨 사건”, “죽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 “저주를 저주시킨 사건”, “절망을 완전히 절망시켜버린 것”입니다.




III. 부활신앙인의 열매


이러한 부활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사는 방식이 다릅니다. 부활의 신앙이 있는 자는 첫째, 우리에게 이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는 범사에 감사합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을 부활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시각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둘째,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에는 얼마나 힘쓰고 사십니까? 그러나 주의 일에는 얼마나 힘쓰십니까? 부활의 신앙에 확고히 서 있는 자는 감정에 상관없이, 조건에 관계없이, 환경에 관계없이 주의 일에 힘쓰며 살아 갑니다. 주의 일에 항상 힘쓰는 사람치고 부활의 신앙에 서 있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만큼 부활의 신앙은 우리를 충성된 일군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 안에서 감사와 충성스런 헌신이 여러분의 삶속에서 날마다 부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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