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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고난] 자기 십자가

본문

마 10장은 천국건설을 위하여 12주역을 선택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시면서 권면하신 말씀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말씀들을 대강 살펴보면 다읍과 같다. -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 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 하라.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한마디로 전도자들이 당할 고난과 핍박이 어떠함을 예고한 말씀들이다. 이 말씀을 들려 주신 이후에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할 것을 16-33절에 부탁하였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 40- 42절은 복음 전하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푼 자들이 받을 복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많은 고난이 따른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십자가가 있는가 ?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역사가 요세퍼스에 의하면 십자가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예수님 당시에 유다라는 사람이 로마에 대항하여 정치적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혁명은 실패하였다. 로마의 장군 마리우스가 군사를 몰고 와서 이 작은 마을 갈릴리에서 무려 2,000 명을 사로잡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였다. 십자가에 달린 이 비참한 모습을 당시 갈릴리사람들 치고 아니 본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기억하고 있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 골고다 언덕은 해골의 곳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는 우리가 아는대로 세개 만이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독수리의 먹이로 사라진 곳이다. 주님과 함께 골고다에 세워진 십자가들 중에는 어떠한 십자가가 있었던가?
1. 자기 멸망의 십자가 : 십자가 자체가 멸망의 상징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 중 한 강도는 자기 죄를 인하여 십자가를 진 비참한 인생이었다. 이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의 죄를 회개할 줄 몰랐다. 자기의 허물을 깨닫지 못하고 주님을 비방하다가 죽었다. 이 십자가는 자기의 영혼과 함께 육체가 멸망한 인생이 짊어 진 십자가이다.
2. 자기 구원의 십자가 : 이 십자가 역시 강도짓을 하다가 붙잡힌 사람이 달린 십자가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의 죄를 시인하였다. 주님을 비방하는 사람과는 달리 너나 나나 다 자기의 지은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사람의 한 일은 하나도 잘 못된 것이 없다고 변박한 사람이 진 십자가이다. 회개한 사람의 십자가, 주님을 향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 하고 주님을 의뢰한 사람의 십자가이다. 이 사람은 그래도 자기를 구원 하였다. 자기를 구원하기는 하였으나 다른 사람 아무도 구원하지 못하였다. 부끄러운 십자가일 뿐이다.
3. 많은 영혼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 : 이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십자가의 주인공은 스스로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한 바가 없다. 단지 그의 말을 들은 사람이 그 의미를 잘못 알고 붙인 명패이다. 당시의 총독인 빌라도는 이 십자가의 주인공을 심문하였으나 '아무 죄도 그에게서 찾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이 십자가를 잠시 다른 사람이 진 적이 있었다. 그는 구레네 시몬이다. 사람들은 그를 향하여 억지로 십자가를 진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잠시 십자가를 운반하여 주었을 뿐이다. 십자가에서 희생되지는 않았다. 오늘을 살아 가는 우리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지고가는 십자가의 의미는 골고다에 세워진 십자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1. 자기 멸망의 십자가 우리는 고난당하는 모든 것을 십자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난이 모두 십자가는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자기의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십자가가 아니다. 십자가일 수 없다. 베드로는 4:15에서 한가지 고난을 말하는데 그것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 로 받는 고난을 말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가 말한대로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을 것인가? 얼마 전 목사 한 분이 경찰에 입건되었다. 여기 가까운 곳에서 목회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구속이 되었다. 이 분이 교회 종탑에서 허가없이 가스총을 만들다가 발각이 된 것이다. 이분이 가스총을 만들어 사단의 세력을 박멸하는데 쓰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팔아서 수익금을 선교비에 보태고자 하였던지 아니면 성전 건축하는 일에 사용하고자 하였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불의한 일을 행한 목사를 향하여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는 중에 있다고 말할 것인가? 이와같이 자기 죄와 자기의 허물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십자가가 아니다.
2. 십자가는 무엇인가 ? 십자가는 주님 때문에 애매히 받는 고난이다.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면서 주님 때문에 공연히 시비에 휘말릴 때가 많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주님 때문에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고난 받는 성도들을 향하여 우리가 애매하게 고난을 당할 때, 주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이것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가르쳤다. (벧전 2:19) 행 14:22를 보면 바울이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면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 말씀은 적어도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당하는 시련'을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는 것과 로마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것 등등 자기들과 짝하지 않기 때문에 당하는 시련들을 열거하자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직장에서 까다로운 주인이나 상사를 만나서 괴로움을 받을 때가 있다. 아무리 까다로운 주인이라 하여도 양심에 꺼리는 것을 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이 아닐 때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도 이런 일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는 직장상사가 세금을 포탈할 목적으로 이중장부를 만들도록 요구할 때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도저히 따를 수 없어 불이익을 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난다고 하면 이것을 십자가로 말해도 좋을 것이다. 여러분 중에서 이러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주의 말씀을 기억하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급이 크다'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를 하였다. 단순히 기도를 하였다는 죄목으로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다. 그의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뜨거운 풀무에 던져졌다. 십자가는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여러가지 불이익을 말한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능욕을 말한다. 단순히 예수를 믿는 다는 것 때문에 당하는 시련들을 두고 우리는 십자가라고 말할 수 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유 없이 핍박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게 될 때 그것이 곧 주님의 십자가인 줄 믿고 참고 기다리기 바란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현재의 고난이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하거나 우리의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한다고 가르쳤다. (롬 8:18, 고후 4:17)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가르치시면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며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고 가르쳐 주셨다.
3.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主)를 따르자. (마 10:38) 여러분에게 있는 십자가는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이란 무엇인가 ? 지금 여러분이 괴로워 하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 때문이며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오고 있는가 조용히 생각해 보라. 그 원인이 나에게 있는가 아니면 남에게 있는가 ? 나의 괴로움이 만일 그리스도 때문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즐겁게 참아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발견될 때에는 부끄러움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마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 속에서 '우리의 온갖 참된 삶은 만남이다. ' 라는 말을 기록하였다. 우리가 서로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다. 만일 우리의 만남이 불행하다면 그것은 서로가 저의를 가지고 있었고, 서로를 이용만 하려는 나쁜 습성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만일 부버의 견해처럼 "당신이 있기에 내가 존재합니다. "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우리는 날마다 행복할 것이다. 왜 불행한가 ? 그것은 무게를 자기에게 두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마침내 십자가를 지셔야 할 때 마냥 괴로워하셨다. 그래서 나온 기도가 '아버지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셨다. 나의 존재는 당신 때문이라는 뜻이다. 결국은 내가 사는 것이 아버지 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그의 서신 어느 곳에서나 예수중심 여호와 하나님 중심을 말하고 있다. - 나의 나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라. -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그리스도라. -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나니 ...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오늘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는 다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의인의 죽음이요 대속이요 속량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십자가는 나 자신이 담당해야 할 책임이다. 결코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를 우리더러 지라고 명하지 않으셨다. 각기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이 십자가는 물질적인 고통이나 일반적인 고난이 아니다. 병들어 고생을 하는 것 가난과 억압이 십자가일 수는 없다. 어떤 이는 순종하지 않는 자기의 자식이 십자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니다. 그것은 결코 십자가일 수 없다. 십자가는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렸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곧 포기를 의미한다. 희생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에 자기의 남은 생을 온전히 포기하였다. 백세에 얻은 아들을 요구하실 때에도 아브라함은 아들을 포기하였다. 모세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포기하였다. 십자가는 자기 죽음이다. 자기 십자가에 자기가 죽는 것이지 남이 대신 죽어 주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자기 신뢰, 자기 교만, 자기 안일, 자기 편리,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상실이다.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과연 자식을 사랑한 것인가 아니면 자기를 사랑한 것인가? 참 사랑은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준 자기와의 싸움은 비참하기까지 하다.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을 떠났다가 아버지를 떠나가게 되었다. 형들의 미움을 사서 애급에 팔려갔고 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도 원망하지 아니하였다. 형들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찾아보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하고 모함을 하였어도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훗날 요셉이 총리대신이 되어 형들을 만났을 때에도 요셉은 형들을 향하여 보복하지 않았다. 형들은 자기들이 행한 일이 있어서 두려워 하였으나 요셉은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구하려고 나를 먼저 애급에 보내주셨다고 말함으로 형님들을 위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주와 함께 누릴 영광을 말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고난받는 것은 즐거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와 함께 고난받는 것은 참으로 그 안에서 쉬는 것이다. 예수를 이용하여 영광을 취하려 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자들은 또 누구인가? 오늘 우리들의 문제는 자기 십자가를 외면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자. 기왕에 질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담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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