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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라마 사박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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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저희집 아이들이 열심히 시청하고 있는 T. V 프로그램 하나가 있어서 몇번 저도 시청했는데 그 설원의 배경과 함께 음악도 감미롭고 무엇보다도 한 여인이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데 이쪽 남자와 마음을 결정하고 끝나는가 하면 사태는 반전되어 다시 다른 남자와 사귀게 되는데 버림받은 남자는 때로는 몸져누워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는 것이 너무 애처롭게 보입니다. 여러분도 보셨습니까 겨울연가를…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일 비참한 것 중 하나는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이는 친구나 애인으로부터 버림받고 어떤이는 평생 몸담고 있던 직장으로부터 떠나라는 말을 듣습니다. 월남이 패망하고 수많은 보트피플들이 작은배에 올라타고 여기저기 떠돌 때 그들은 어느 국가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비참한 것이 있습니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1장에 보면 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들과 아내의 비참한 모습이 나오는데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가죽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두며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창21:14-16)
여러분은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아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내가 더 이상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가장 사랑받아야 할 자식이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내가 서야 할 기반을 잃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2000년 전 갈보리 산위에서 버림받은 한 아들의 절규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의 삶을 사시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지만 비난과 배척으로 생애를 마감하셨습니다.

 첫번째 예수님을 배반 한 무리들은 군중들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조차 없이 언제나 분주한 삶을 사셨습니다. (막6:31)
병든자, 배고픈자, 소외되고 버림받은 세리와 창기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자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나귀타고 입성할 때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여!" 외치던 군중들은 사흘 후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은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던 사람들이요 저들은 배를 신(神)으로 여기던 사람들이였습니다. 오늘날도 교회를 찾아나오는 목적이 경제적인 부요함이 유일한 목적인 사람들은 나에게 유익이 없을 때 언제라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치고 돌아설 것입니다.
두 번째 배반자는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며 사랑을 받은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풍랑이는 바다위에서 바람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권세를 보았고 죽어 사흘이나 되어 냄새나는 나사로의 무덤앞에서 죽은 시체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외칠 때 베로 동인 나사로가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버렸습니다.
왜 떠났습니까 제자가 된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건을 영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결정적인 사건 앞에서 그 신앙은 모래성이 되고 맙니다.
요한복음 6:63에 주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6절에 제자들의 반응은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했습니다.
누가복음14:25이하에도 주님은 제자됨의 조건 3가지를 제시하셨습니다. "
1.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2.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이 말을 듣고 많은 제자들이 주님 곁을 떠났습니다.
마가복음14:50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실 때 검과 몽치를 들고 군병들이 들이닥치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다 떠났습니다.
51절에는 한 청년이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누릴 예루살렘의 영광만 기다렸을 뿐 고난과 핍박이 오자 모두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제자들처럼 은혜는 사모하나 나에게 어떤 부담스런 일들 앞에는 언제나 도망가지 않습니까
최근 우리 교회 식당에 놀라운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목장이 부부목장으로 바뀌면서 식사배식에서 설거지까지 우리 남정네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교회에서는 자연스런 일인데 한국 교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진기자도 놀라워 인터넷 홈페이지 노은앨범에 그 모습을 올리지 않았습니까
빌립보서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했습니다.
 셋째로 주님은 하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기도하실때는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아버지여 이제까지 저와 함께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시작하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도 (요11:41) 그랬고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난 다음 자신과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때도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17:1)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십자가에 매달려 외치신 가상칠언 중 4번째 기도는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기도하십니다. 왜 아버지라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불렀을까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사랑하는 아들의 신분이 아니라 죄값을 치뤄야 하는 죄인의 신분이였기 때문입니다.
죄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습니다.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는 용인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구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멧세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고 제사장을 보내여 울타리를 벗어난 양을 찾듯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나서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너희가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말2:2) 솔로몬 왕은 잠언에서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잠1:24)했습니다.
주님은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마23:37-38) 사도 요한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요5:40)했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습니까
죄인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에 도둑이 극성을 부렸습니다. 소도 훔쳐가고 애써 지은 농작물도 거둬갔습니다. 왕은 이 나라에 도둑을 뿌리뽑겠다는 결심으로 온 나라에 방을 붙였습니다. 오늘부터 도둑질하다 붙잡힌자는 도둑질 한 손을 자르겠다 몇일 후 한 도둑이 체포되어 왕 앞에 끌려나왔습니다. 고개를 들라 ! 외치는 말에 죄인이 얼굴을 들 때 왕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죄인은 다름 아닌 하나밖에 없는 왕의 아들이였기 때문입니다. 왕 앞에 꿇어앉은 아들은 손목이 잘리우는 두려움가운데 아버지 왕을 애원의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왕은 순간 번민이 되었습니다. 공의와 사랑가운데 망설이던 왕은 왕좌에서 내려와 자기 손목하나를 칼로 내리쳤습니다. 선혈이 낭자하게 끊어진 손목하나를 내 밀며 이 자를 풀어주라고 명령했습니다.
오늘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은 아버지라 부를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온 인류의 죄값을 치뤄야 할 죄인의 몸이였기 때문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말은 아람어로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뜻입니다. 피 맺힌 절규소리를 듣던 군중들은 아무도 그 주님의 기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어떤이들은 저가 엘리야를 부른다고 했고 어떤이들은 마취역할을 하는 신 포도주를 해융에 묻혀 입가에 대주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하며 비아냥 거렸습니다.
주님이 절규하시던 때는 제구시로 우리나라시간은 오후3시가 되는 때입니다. 갑자기 대낮에 어두움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이 사라진 것입니다. 조롱하는 소리가 그쳤습니다. 군중들의 광기어린 외침도 조용해졌습니다. 무서운 침묵속에 사람들은 두려움 가운데 하나 둘 갈보리 산을 떠나갔습니다. 이것은 진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이였습니다. 빛되신 주님의 죽음을 암시하는 자연의 징조앞에 모든이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또한 그 때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구약시대는 지성소를 가리우는 휘장은 1년에 한번 대 제사장만이 어린양의 피를 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였습니다. 죄가 있는자는 즉사했습니다. 아무나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곳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히브리서10:19-20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지 않고는 누구도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분이 버림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영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원전 부터 예수님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사이엔 교제가 단절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고통을 견디시고 있는 순간 사랑하는 아버지는 이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여러분은 사랑하는 아들의 십자가의 절규를 끝내 외면하시는 공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이로부터 버림받은 아픔을 가지신 분이 계십니까
주님은 그 아픔을 몸소 체험하셨기에 그들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거절당한 비참함을 아시기에 그분은 우리의 외로움을 감싸주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2:18에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
주님의 버림받음은 우리의 버림받음과 다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 때문에 이 버림받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 기도하시면서 ...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너무 값없이 받습니다. 철없는 자식이 내가 이 땅에 태여나기 위해 어머니가 얼마나 처절한 산고의 고통을 치뤄야 하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을 아무런 감각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내가 받아야 고통이였습니다.
내가 외쳐야 할 절규였습니다.
내가 당해야 할 버림받음이였습니다.
죄를 죄인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저와 우리를 위해 주님은 그렇게 비참한 죽음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사랑을 깨닫고 난 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5:6-10)
사랑하는 여러분!
버림받으셨습니까 친구. 애인. 형제. 심지어 나를 낳아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어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면 외롭지 않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모든 고난을 짊어지신 주님이 열어놓으신 성전의 휘장가운데 들어오십시오.
나의 모든 죄를 낱낱이 기억하시며 죄를 미워하시는 두렵고 떨리기만 했던 심판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는 여호와 하나님, 그 사랑의 품이 우리를 안아주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이 놀라운 비밀, 이 기쁨, 이 영광을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버림당하시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사랑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사랑은 환영하고 소중하게 그 분을 영접하는 자에게만 구원의 생명으로 여러분을 인도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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