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골고다의 십자가
본문
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27:46)
이는 존 번연(J. Bunyan)이 쓴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의 중심 인물인 기독도가 구원의 길을 찾아가는 장면입니다.
한 남자가 등에 큰 짐을 지고 한 걸음 한 걸음 터벅터벅 힘들게 걷고 있다.
그는 한 번도 그 무자비한 무게로부터 놓임을 받지 못했다. 그 짐은 밤낮으로 그의 동반자가 되었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언덕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그 곳에서 그는 나무로 된 십자가와 그 아래의 빈 무덤을 보게 된다. 그가 십자가에 가까이 가자 기적이 일어난다.
그의 어깨에 거대한 무게로 묶여있던 짐의 끈이 풀리고, 짐이 흘러 내려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던 무덤 안으로 들어가 버리더니다시 보이지 않았다.
기독도의 몸은 가볍게 되었고, 그는 상쾌함을 느꼈으며, 안도의 기쁜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 때 빛나는 세 분이 그에게 다가오신다. 그에게 처음 분이 "너의 죄가 용서되었느니라"고 공포하시고, 두 번째 분은 그의 누더기를 벗겨 버리고 빛 나는 옷으로 갈아 입혀 주셨다. 세 번째 분이 그에게 인을 친 두루마기를 건네주시고 "그 것을 천국의 입구에서 펴보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앞으로 한 주간은 고난 주간이며, 다음 주일은 성금요일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부활절입니다.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전 9시부터 오후3시까지, 장장 6시간 동안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다가 "내가 다 이루었다" 라고 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자고 새고, 눈만 뜨면, 누가 병들어 죽었다, 누가 누구를 죽였다. 누가 어찌어찌 해서 죽었다…라는 세상 인간의 죽음과는 전혀 다른 죽음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50절)', '떠나시다'라는 헬라어 '아페켄'은 '이탈'을 나타내는 전치사 '아포'와 '보내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히에미'가 결합된 합성어로, 본 절을 직역하면 '영혼을 자기에게서부터 보냈다'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선 자발적인 의지로 예수님의 영혼을 포기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임을 당하실 수밖에 없는 수동적 입장에서가 아닌, 능동적으로 영혼을 내어 주셨음을 말함입니다.
골고다 언덕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스스로 택하신 길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도록 처절하게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도우시지 아니 하셨습니다.
헌데 골고다 언덕 멸시, 천대, 고통의 십자가에서도 주님을 돕지 않으셨습니다. 까닭은 인간의 죄를 속량하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음은 그 길밖에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첫째 : 알아야 할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속량해 주시는 구속의 십자가요, 나의 죄를 대신 하여 지신 대속의 십자가이며, 공의의 십자가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와 나, 우리의 죄를 심판하심에 우리들의 죄를 그냥 넘기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려면 누군가가 우리 대신 죄 값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헌데 죄 값이 너무 엄청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치룰 수가 없었지요. 죄 값은 죽음.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선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로 하여금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습니다.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 너와 나, 우리의 죄가 너무나 커서 여호와 하나님께선 우리를 죽여야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도록 사랑하셨습니다. 때문에 차마 죽게 하실 수가 없으셨지요. 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을 우리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골고다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실현하심이며, 증거 하심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함께 이루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되어진 것으로서 약속의 성취입니다.
까닭에 예수님께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거역 할 수 없으셨습니다. 골고다의 십자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지셔야 했고, 지실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45절)" "이에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51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자연도 슬퍼하며 탄식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시고 되어지는 이 일들을 본 로마의 백부장과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이 심히 두려워하며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했습니다. (54절) 인간사의 그 어떤 슬픔이나 고통, 아픔도 예수님의 십자가 슬픔과 아픔, 고통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때문에 이 사실을 바로 알면 우리에게 닥친 어떤 고난, 역경, 환란도 이길 수 있습니다. 대속의 십자가는 우리 삶의 용기요 힘이며 위로입니다.
상의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도, 부활도, 쉽게 믿을 수 있습니다.
골고다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용서, 사랑, 희생, 생명, 구원, 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선 생의 끝에서도 주님을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멸시, 천대, 처절한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고, 인간에게는 그 십자가가 최고의 축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진리를 바로 알아야만 비로소 참 그리스도인 속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골고다의 십자가는 나의 죄와 관계된 것입니다.
둘째 : 믿어야 할 십자가
골고다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는 '네'가 아닌, '내'가 믿어야 하고, '내일'이 아닌 '지금' 믿어야 합니다.
구속의 십자가, 대속의 십자가를 믿어야 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인생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야만이 승리와 성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103:12)"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4)"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21,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야만 죄사함을 받고, 치료, 회복,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민23:19)" 새벽기도 시간, 고통 중에 있는 자매의 헌금을 보고 기도하는 중 제게 주신 말씀입니다.
"자기가 당하는 괴로움은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진 괴로움이니라. 그러나 괴로워하지 말고 괴로움을 해결 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리스도의 대속, 사랑, 용서, 희생, 화목의 십자가를 믿어야만 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믿으라함은 나무로 만든 형틀을 믿으라함이 아니라 그 나무 형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골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순간부터 인생은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라 3일후 일어날 '눈물 끄-읕'으로 가는 과정이요, 새로운 생을 갖는 절차입니다.
내 구속 자는 내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나를 십자가의 보혈로 사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시요.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최근 바나 리서치 그룹(BRG)이 미국 기독교인 4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중생체험33%, 예수님께서 죄없는 삶을 사셨음을 믿는 사람이 53%였다고 합니다.
미국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믿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나타냄입니다
십자가는 최악의 형벌이었으나 최고 최상의 복을 주는 십자가임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십자가를 믿어야만 내게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셋째 : 져야 할 십자가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짐은 내가 죄인임을 밝힘이요, 동시에 내가 죄 사함 받았음을 증거함이며,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짐은 내가 기독교인임을 증명하는 생활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못함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음이요 성령 충만치 못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증거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며,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자기 십자가를 짐입니다.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아니지면 내가 이 땅에서 실제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축복만 강조하고 십자가를 지는 훈련을 시키지 않음입니다. 이는 오직 된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공생애,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최고의 사랑은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자가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의 여호와 하나님을 알되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주님, 독생자 외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먼저 알고, 믿고, 그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기독교인은 복만을 좇아 다니는 종교인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려고 십자가를 찾아 다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왜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왜 교회에 옵니까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러 오는 것입니다. 설교가 짧다, 길다, 재미없다, 재미있다, 잘한다, 잘못한다, 누구 때문에 교회에 오고 누구 때문에 교회에 안나온다 이는 모두 인간 중심의 교인 생활이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진리를 증거하면 밤을 새워도 '아멘', 짧아도 '아멘' 잘해도, 못해도, 재미없어도, 재미있어도, '아멘'이어야합니다.
신앙의 난간에 걸터앉으면 유두고처럼 떨어져 죽습니다. 십자가는 짐이 아니라 생이요, 삶이며, 영원이요, 영생이며, 성령 받은 사람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교회가 교회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는 지되 죄의 짐은 지지 않아야 됩니다. 지금 십자가 지는 고통은 내일의 축복입니다. 십자가를 짐은 오늘 죽고 내일 사는 것입니다. 오늘 죽고, 내일 살자.
이는 존 번연(J. Bunyan)이 쓴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의 중심 인물인 기독도가 구원의 길을 찾아가는 장면입니다.
한 남자가 등에 큰 짐을 지고 한 걸음 한 걸음 터벅터벅 힘들게 걷고 있다.
그는 한 번도 그 무자비한 무게로부터 놓임을 받지 못했다. 그 짐은 밤낮으로 그의 동반자가 되었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언덕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그 곳에서 그는 나무로 된 십자가와 그 아래의 빈 무덤을 보게 된다. 그가 십자가에 가까이 가자 기적이 일어난다.
그의 어깨에 거대한 무게로 묶여있던 짐의 끈이 풀리고, 짐이 흘러 내려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던 무덤 안으로 들어가 버리더니다시 보이지 않았다.
기독도의 몸은 가볍게 되었고, 그는 상쾌함을 느꼈으며, 안도의 기쁜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 때 빛나는 세 분이 그에게 다가오신다. 그에게 처음 분이 "너의 죄가 용서되었느니라"고 공포하시고, 두 번째 분은 그의 누더기를 벗겨 버리고 빛 나는 옷으로 갈아 입혀 주셨다. 세 번째 분이 그에게 인을 친 두루마기를 건네주시고 "그 것을 천국의 입구에서 펴보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앞으로 한 주간은 고난 주간이며, 다음 주일은 성금요일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부활절입니다.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전 9시부터 오후3시까지, 장장 6시간 동안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다가 "내가 다 이루었다" 라고 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자고 새고, 눈만 뜨면, 누가 병들어 죽었다, 누가 누구를 죽였다. 누가 어찌어찌 해서 죽었다…라는 세상 인간의 죽음과는 전혀 다른 죽음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50절)', '떠나시다'라는 헬라어 '아페켄'은 '이탈'을 나타내는 전치사 '아포'와 '보내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히에미'가 결합된 합성어로, 본 절을 직역하면 '영혼을 자기에게서부터 보냈다'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선 자발적인 의지로 예수님의 영혼을 포기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임을 당하실 수밖에 없는 수동적 입장에서가 아닌, 능동적으로 영혼을 내어 주셨음을 말함입니다.
골고다 언덕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스스로 택하신 길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도록 처절하게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도우시지 아니 하셨습니다.
헌데 골고다 언덕 멸시, 천대, 고통의 십자가에서도 주님을 돕지 않으셨습니다. 까닭은 인간의 죄를 속량하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음은 그 길밖에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첫째 : 알아야 할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속량해 주시는 구속의 십자가요, 나의 죄를 대신 하여 지신 대속의 십자가이며, 공의의 십자가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와 나, 우리의 죄를 심판하심에 우리들의 죄를 그냥 넘기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려면 누군가가 우리 대신 죄 값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헌데 죄 값이 너무 엄청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치룰 수가 없었지요. 죄 값은 죽음.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선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로 하여금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습니다.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 너와 나, 우리의 죄가 너무나 커서 여호와 하나님께선 우리를 죽여야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도록 사랑하셨습니다. 때문에 차마 죽게 하실 수가 없으셨지요. 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을 우리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골고다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실현하심이며, 증거 하심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함께 이루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되어진 것으로서 약속의 성취입니다.
까닭에 예수님께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거역 할 수 없으셨습니다. 골고다의 십자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지셔야 했고, 지실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45절)" "이에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51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자연도 슬퍼하며 탄식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시고 되어지는 이 일들을 본 로마의 백부장과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이 심히 두려워하며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했습니다. (54절) 인간사의 그 어떤 슬픔이나 고통, 아픔도 예수님의 십자가 슬픔과 아픔, 고통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때문에 이 사실을 바로 알면 우리에게 닥친 어떤 고난, 역경, 환란도 이길 수 있습니다. 대속의 십자가는 우리 삶의 용기요 힘이며 위로입니다.
상의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도, 부활도, 쉽게 믿을 수 있습니다.
골고다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용서, 사랑, 희생, 생명, 구원, 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선 생의 끝에서도 주님을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멸시, 천대, 처절한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고, 인간에게는 그 십자가가 최고의 축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진리를 바로 알아야만 비로소 참 그리스도인 속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골고다의 십자가는 나의 죄와 관계된 것입니다.
둘째 : 믿어야 할 십자가
골고다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는 '네'가 아닌, '내'가 믿어야 하고, '내일'이 아닌 '지금' 믿어야 합니다.
구속의 십자가, 대속의 십자가를 믿어야 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인생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야만이 승리와 성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103:12)"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4)"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21,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야만 죄사함을 받고, 치료, 회복,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민23:19)" 새벽기도 시간, 고통 중에 있는 자매의 헌금을 보고 기도하는 중 제게 주신 말씀입니다.
"자기가 당하는 괴로움은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진 괴로움이니라. 그러나 괴로워하지 말고 괴로움을 해결 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리스도의 대속, 사랑, 용서, 희생, 화목의 십자가를 믿어야만 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믿으라함은 나무로 만든 형틀을 믿으라함이 아니라 그 나무 형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골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순간부터 인생은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라 3일후 일어날 '눈물 끄-읕'으로 가는 과정이요, 새로운 생을 갖는 절차입니다.
내 구속 자는 내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나를 십자가의 보혈로 사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시요.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최근 바나 리서치 그룹(BRG)이 미국 기독교인 4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중생체험33%, 예수님께서 죄없는 삶을 사셨음을 믿는 사람이 53%였다고 합니다.
미국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믿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나타냄입니다
십자가는 최악의 형벌이었으나 최고 최상의 복을 주는 십자가임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십자가를 믿어야만 내게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셋째 : 져야 할 십자가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짐은 내가 죄인임을 밝힘이요, 동시에 내가 죄 사함 받았음을 증거함이며,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짐은 내가 기독교인임을 증명하는 생활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못함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음이요 성령 충만치 못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증거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며,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자기 십자가를 짐입니다.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아니지면 내가 이 땅에서 실제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축복만 강조하고 십자가를 지는 훈련을 시키지 않음입니다. 이는 오직 된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공생애,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최고의 사랑은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자가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의 여호와 하나님을 알되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주님, 독생자 외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먼저 알고, 믿고, 그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기독교인은 복만을 좇아 다니는 종교인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려고 십자가를 찾아 다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왜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왜 교회에 옵니까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러 오는 것입니다. 설교가 짧다, 길다, 재미없다, 재미있다, 잘한다, 잘못한다, 누구 때문에 교회에 오고 누구 때문에 교회에 안나온다 이는 모두 인간 중심의 교인 생활이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진리를 증거하면 밤을 새워도 '아멘', 짧아도 '아멘' 잘해도, 못해도, 재미없어도, 재미있어도, '아멘'이어야합니다.
신앙의 난간에 걸터앉으면 유두고처럼 떨어져 죽습니다. 십자가는 짐이 아니라 생이요, 삶이며, 영원이요, 영생이며, 성령 받은 사람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교회가 교회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는 지되 죄의 짐은 지지 않아야 됩니다. 지금 십자가 지는 고통은 내일의 축복입니다. 십자가를 짐은 오늘 죽고 내일 사는 것입니다. 오늘 죽고, 내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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