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본문
오늘은 주님이 고난을 당하신 날입니다. 갈보리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서 그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손과 발과 옆구리에서 온 몸의 피가 다 쏟아져 "내가 목마르다"고 외치신 고난의 날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이 주님의 고난 일을 맞아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밤에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갈보리 언덕으로 올라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괴로운 고통 속에서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짖는 주님의 처절한 음성을 들으면서 그분의 그 괴로운 고통을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1. 갈보리 언덕
갈보리라고 하면 주님의 십자가를 연상하게 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은 마치 해골 모양 생겼다 하여 이 고개를 '골고다'라고 불렀습니다. 골고다란 말은 해골이란 의미가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개를 아람 말로는 골고다라고 불렀고 라틴어로는 '갈보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이 땅위에 살아가고 있는 이상, 이 갈보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곳이며 우리 생애와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5년 전에 저희 내외가 그 언덕에 올라갔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한 걸름 한 걸음 발을 옮기면서 모진 로마 군병들의 채찍을 맞으시며 올라가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웠고 십자가에 매달리셨던 그 자리에서는 눈물이 통곡이 되었습니다.
약 서너 주전에 동산교회에서는 목사님과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부러워했습니다만 여러분들도 어느 기관에서 주동이 되어 정기적으로 재정을 모아 짧은 기간의 성지순례라도 예루살렘에 한 번 꼭 다녀 오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에 너무나도 분주하여 주님이 고난을 당하신 십자가를 바라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그 영광과 축복만을 바라면서 세속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주님과 함께 져야 할 십자가의 고통은 싫어하고 재물과 명예만을 추구하는 생활로 만족해 왔습니다. 그런 우리가 고난 주간만이라도 갈보리에 올라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탄식하시면서 이처럼 말씀하신 일이 있으셨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주님은 산상보훈에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니라. " 그러나 우리는 될 수만 있으면 이런 복이 자기에게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물질을 얻는 일에만 온 정성을 기우려 왔습니다. 성경에서는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말씀해 주시지만 우리는 제발 그런 즐거움은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고 오직 육신으로 즐거운 인생만을 바라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제법 좋은 믿음을 가진 줄로 착각해 왔으며 매일 우리의 입으로 '주여, 주여'를 수도 없이 불러 왔습니다. 얼마나 뻔뻔스러운 우리의 얼굴들입니까 얼마나 양심에 화인 맞은 강심장의 소유자들입니까
우리의 주님께서 죽으시고 우리의 구원이 탄생한 갈보리, 우리의 주님은 기도하시고 폭도들은 저주의 함성을 퍼부었던 갈보리,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버림을 당하신 대신 우리가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된 갈보리,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 죄를 바라보고 사죄와 구원을 바라보게 된 갈보리, 오늘밤은 이 갈보리에서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천사도 울고 천지 만물이 울어야 했던 그 침통하고 애절한 주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도 함께 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지금 갈보리 언덕 높이 솟은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십니다. 그는 자기를 해롭게 한 원수의 무리들을 위하여 오히려 자비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는 강도에게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몇 시간이 지나 장면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그 밝게 비췬 태양이 자취를 감추어 온 세상이 칠흑같이 캄캄해졌습니다. 12시부터 3시경에 이르도록 사람의 눈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숨기는 어둠이 갈보리를 덮었습니다. 사람마다 물었습니다.
이 어두움이 어찌 된 일이뇨 일식도 아니고 월식도 아닙니다. 때는 한낮이었습니다. 이 어둠은 갈보리 뿐 아니라 모든 언덕과 계곡까지 덮었습니다. 누구라도 장님처럼 더듬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는 어둠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주님을 향하여 욕설을 퍼부었던 무리들도 입을 다물었습니다. 옷을 제비뽑던 로마 군병들도 하늘을 쳐도 보며 손을 놓았습니다. 머리를 흔들며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어 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했던 무리들도 잠잠해졌습니다. 그들은 돌변적인 이변에 기가 꺾였고 공포 속에 잠겼습니다. 성경에는 "저들이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공포에 떨면서 그 자리를 떴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바로 그 때 십자가 위에서 하늘이 찢어질 듯한 비통한 주님의 부르짖음이 어둠을 가르고 모든 사람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인류의 역사가 있어 온 이래 이처럼 애절한 부르짖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 고통의 부르짖음은 지금도 온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으며 우리의 마음속에 애절하게 들려 오고 있습니다.
2. 버림받은 그리스도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말이 있다면 그것은 버림받는다는 말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가장 신뢰받을 처지에 있는 사람이 어느 한 쪽을 버렸을 때 그 아픔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힘없고 병들고 가난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불도 피우지 못한 추운 방에서 신음하면서 연상 여보를 불렀습니다. 남편을 찾는 듯 했습니다. 아내가 병들고 바라볼 것이 없게 되자 죽을 때까지 한 몸 같이 살자던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 여인은 버림받은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부르면서 버림받은 슬픔으로 한없이 슬피 울었습니다. 텅빈 집안을 방황하며 눈물을 흘리며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엄마를 한없이 불렀습니다. 그는 배고프고 춥고 낙심해 있었습니다. 저녁 너울이 지고 어둠이 찾아 왔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 가장 도움을 받아야 했던 절박한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돌보아 주지 아니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같은 일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갈보리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아들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무슨 잘못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수제자인 베드로로부터도 버림을 당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신 부르짖음은 어찌하여 베드로가 나를 버렸나이까의 부르짖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시고 배척을 당하시는 그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만큼은 항상 주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에게 고난이 닥쳐오면 그는 습관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때마다 응답을 받으시고 새 힘과 새 능력을 받아 복음을 계속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이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무엇보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위로를 받으셔야 할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그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누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라고 노래했습니다.
시편 121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자 굴속에 들어간 다니엘을 지키셨습니다. 극렬히 불붙는 풀무 불 속에 들어간 다니엘의 세 친구를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고난을 당하시는 당신의 친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두신 채 등을 돌리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으신 것입니까 사 53:6절 말씀에서 이사야는 메사야의 고난에 대하여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고후 5:21절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죄인이 받을 저주를 스스로 받으사 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갈보리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갈보리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몸에 모아졌으며 주님은 그 죄 값을 치루시기 위해 고난을 받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밖에 나가 모든 살인자, 모든 간음자, 모든 죄인들을 데려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의 죄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 얹혀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죄를 심판하게 하신다면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하시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분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죄를 벌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 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죄를 홍수로 벌하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하늘에 사무쳤을 때 유황불을 비오듯 그 도시에 쏟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벌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것보다 더 엄청난 죄의 심판이 갈보리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버리시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이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그 아들에게 내리신 것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예수님은 다만 나와 여러분을 사랑하심으로 끝까지 그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 모진 고통과 수욕과 여호와 하나님의 버리심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아, 갈보리에서 보이신 이 놀라우신 주님의 사랑이여, 우리는 이 주님의 사랑을 지금 무엇으로 보답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과 나는 모두 다 범죄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범죄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바라보실 수가 없어서 그 아들을 외면하신 것입니다. 이 때 주님은 자신이 겪는 고통이 말할 수 없이 괴로워서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애절하게 부르짖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 철저하게 버리심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롬 8: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분이 행하신 일에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그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을 뿐 아니라 그 죄에 대한 모든 형벌을 남김없이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만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죄는 모두 살아지며 모든 죄에서 해방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사랑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살려내기 위해 세상에서 비상을 든 잔을 마셔 줄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이 바로 여러분을 위하여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당신 대신 누가 무서운 방울뱀을 품속에 안고 물려 죽을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이 바로 여러분을 위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인생의 전성기인 청춘 시절에 누가 자기 생명을 송두리 채 포기하고 죽어 줄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어느 날엔가 저와 여러분은 영광 중에 우리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말입니다. 그 때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히셨던 못 바국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 우리 주님으로부터 다시 한 번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오랜 옛날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가슴을 억누르는 큰 감격으로 세세무궁토록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아직도 주님께 나오기를 꺼리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경종을 울려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너무나도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에도 분명한 한계선이 있습니다. 끝까지 믿지 않는 자들에겐 영원한 형벌이 있을 뿐입니다. 어느날엔가 은혜의 문이 닫혀질 날이 오게 됩니다. 미련한 처녀들 모양 여러분은 밖에서 문을 열어 달라고 아우성 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내일이라도 홀연히 죽음의 날이 와서 여러분의 영혼을 거두어 가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지금 아직까지 모든 죄인들을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말씀은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에는 이 말씀이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는 말씀도 없고 오라는 초청도 없으며 더 이상의 기회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서 들려 오는 주님의 그 처절한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새로운 결정을 내리셔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고백했습니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고통을 당하신 그 분을 위해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갈보리 언덕
갈보리라고 하면 주님의 십자가를 연상하게 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은 마치 해골 모양 생겼다 하여 이 고개를 '골고다'라고 불렀습니다. 골고다란 말은 해골이란 의미가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개를 아람 말로는 골고다라고 불렀고 라틴어로는 '갈보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이 땅위에 살아가고 있는 이상, 이 갈보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곳이며 우리 생애와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5년 전에 저희 내외가 그 언덕에 올라갔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한 걸름 한 걸음 발을 옮기면서 모진 로마 군병들의 채찍을 맞으시며 올라가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웠고 십자가에 매달리셨던 그 자리에서는 눈물이 통곡이 되었습니다.
약 서너 주전에 동산교회에서는 목사님과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부러워했습니다만 여러분들도 어느 기관에서 주동이 되어 정기적으로 재정을 모아 짧은 기간의 성지순례라도 예루살렘에 한 번 꼭 다녀 오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에 너무나도 분주하여 주님이 고난을 당하신 십자가를 바라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그 영광과 축복만을 바라면서 세속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주님과 함께 져야 할 십자가의 고통은 싫어하고 재물과 명예만을 추구하는 생활로 만족해 왔습니다. 그런 우리가 고난 주간만이라도 갈보리에 올라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탄식하시면서 이처럼 말씀하신 일이 있으셨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주님은 산상보훈에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니라. " 그러나 우리는 될 수만 있으면 이런 복이 자기에게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물질을 얻는 일에만 온 정성을 기우려 왔습니다. 성경에서는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말씀해 주시지만 우리는 제발 그런 즐거움은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고 오직 육신으로 즐거운 인생만을 바라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제법 좋은 믿음을 가진 줄로 착각해 왔으며 매일 우리의 입으로 '주여, 주여'를 수도 없이 불러 왔습니다. 얼마나 뻔뻔스러운 우리의 얼굴들입니까 얼마나 양심에 화인 맞은 강심장의 소유자들입니까
우리의 주님께서 죽으시고 우리의 구원이 탄생한 갈보리, 우리의 주님은 기도하시고 폭도들은 저주의 함성을 퍼부었던 갈보리,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버림을 당하신 대신 우리가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된 갈보리,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 죄를 바라보고 사죄와 구원을 바라보게 된 갈보리, 오늘밤은 이 갈보리에서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천사도 울고 천지 만물이 울어야 했던 그 침통하고 애절한 주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도 함께 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지금 갈보리 언덕 높이 솟은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십니다. 그는 자기를 해롭게 한 원수의 무리들을 위하여 오히려 자비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는 강도에게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몇 시간이 지나 장면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그 밝게 비췬 태양이 자취를 감추어 온 세상이 칠흑같이 캄캄해졌습니다. 12시부터 3시경에 이르도록 사람의 눈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숨기는 어둠이 갈보리를 덮었습니다. 사람마다 물었습니다.
이 어두움이 어찌 된 일이뇨 일식도 아니고 월식도 아닙니다. 때는 한낮이었습니다. 이 어둠은 갈보리 뿐 아니라 모든 언덕과 계곡까지 덮었습니다. 누구라도 장님처럼 더듬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는 어둠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주님을 향하여 욕설을 퍼부었던 무리들도 입을 다물었습니다. 옷을 제비뽑던 로마 군병들도 하늘을 쳐도 보며 손을 놓았습니다. 머리를 흔들며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어 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했던 무리들도 잠잠해졌습니다. 그들은 돌변적인 이변에 기가 꺾였고 공포 속에 잠겼습니다. 성경에는 "저들이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공포에 떨면서 그 자리를 떴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바로 그 때 십자가 위에서 하늘이 찢어질 듯한 비통한 주님의 부르짖음이 어둠을 가르고 모든 사람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인류의 역사가 있어 온 이래 이처럼 애절한 부르짖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 고통의 부르짖음은 지금도 온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으며 우리의 마음속에 애절하게 들려 오고 있습니다.
2. 버림받은 그리스도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말이 있다면 그것은 버림받는다는 말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가장 신뢰받을 처지에 있는 사람이 어느 한 쪽을 버렸을 때 그 아픔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힘없고 병들고 가난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불도 피우지 못한 추운 방에서 신음하면서 연상 여보를 불렀습니다. 남편을 찾는 듯 했습니다. 아내가 병들고 바라볼 것이 없게 되자 죽을 때까지 한 몸 같이 살자던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 여인은 버림받은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부르면서 버림받은 슬픔으로 한없이 슬피 울었습니다. 텅빈 집안을 방황하며 눈물을 흘리며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엄마를 한없이 불렀습니다. 그는 배고프고 춥고 낙심해 있었습니다. 저녁 너울이 지고 어둠이 찾아 왔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 가장 도움을 받아야 했던 절박한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돌보아 주지 아니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같은 일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갈보리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아들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무슨 잘못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수제자인 베드로로부터도 버림을 당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신 부르짖음은 어찌하여 베드로가 나를 버렸나이까의 부르짖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시고 배척을 당하시는 그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만큼은 항상 주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에게 고난이 닥쳐오면 그는 습관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때마다 응답을 받으시고 새 힘과 새 능력을 받아 복음을 계속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이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무엇보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위로를 받으셔야 할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그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누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라고 노래했습니다.
시편 121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자 굴속에 들어간 다니엘을 지키셨습니다. 극렬히 불붙는 풀무 불 속에 들어간 다니엘의 세 친구를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고난을 당하시는 당신의 친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두신 채 등을 돌리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으신 것입니까 사 53:6절 말씀에서 이사야는 메사야의 고난에 대하여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고후 5:21절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죄인이 받을 저주를 스스로 받으사 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갈보리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갈보리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몸에 모아졌으며 주님은 그 죄 값을 치루시기 위해 고난을 받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밖에 나가 모든 살인자, 모든 간음자, 모든 죄인들을 데려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의 죄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 얹혀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죄를 심판하게 하신다면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하시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분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죄를 벌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 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죄를 홍수로 벌하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하늘에 사무쳤을 때 유황불을 비오듯 그 도시에 쏟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벌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것보다 더 엄청난 죄의 심판이 갈보리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버리시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이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그 아들에게 내리신 것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예수님은 다만 나와 여러분을 사랑하심으로 끝까지 그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 모진 고통과 수욕과 여호와 하나님의 버리심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아, 갈보리에서 보이신 이 놀라우신 주님의 사랑이여, 우리는 이 주님의 사랑을 지금 무엇으로 보답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과 나는 모두 다 범죄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범죄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바라보실 수가 없어서 그 아들을 외면하신 것입니다. 이 때 주님은 자신이 겪는 고통이 말할 수 없이 괴로워서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애절하게 부르짖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 철저하게 버리심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롬 8: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분이 행하신 일에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그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을 뿐 아니라 그 죄에 대한 모든 형벌을 남김없이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만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죄는 모두 살아지며 모든 죄에서 해방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사랑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살려내기 위해 세상에서 비상을 든 잔을 마셔 줄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이 바로 여러분을 위하여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당신 대신 누가 무서운 방울뱀을 품속에 안고 물려 죽을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이 바로 여러분을 위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인생의 전성기인 청춘 시절에 누가 자기 생명을 송두리 채 포기하고 죽어 줄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어느 날엔가 저와 여러분은 영광 중에 우리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말입니다. 그 때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히셨던 못 바국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 우리 주님으로부터 다시 한 번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오랜 옛날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가슴을 억누르는 큰 감격으로 세세무궁토록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아직도 주님께 나오기를 꺼리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경종을 울려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너무나도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에도 분명한 한계선이 있습니다. 끝까지 믿지 않는 자들에겐 영원한 형벌이 있을 뿐입니다. 어느날엔가 은혜의 문이 닫혀질 날이 오게 됩니다. 미련한 처녀들 모양 여러분은 밖에서 문을 열어 달라고 아우성 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내일이라도 홀연히 죽음의 날이 와서 여러분의 영혼을 거두어 가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지금 아직까지 모든 죄인들을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말씀은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에는 이 말씀이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는 말씀도 없고 오라는 초청도 없으며 더 이상의 기회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서 들려 오는 주님의 그 처절한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새로운 결정을 내리셔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고백했습니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고통을 당하신 그 분을 위해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