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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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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는 고난 주간입니다. 특히 금요일은 성금요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날입니다. 저희교회는 성금요일에 금식과 성찬식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the passion of the christ 영화를 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것을 설교하기 위해 금주 개봉하는 날 영화를 보았습니다. 돈을 아끼려고 조조에 갔는데도 엄청나게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내용이 어떠했느냐 한마디로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는 영화가 아닙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 크리스천들이 보는 영화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번 성 금요일 날 교회에서 보세요. 그리고 꼭 부탁드립니다. 그 후에 주변에 안 믿는 분들을 한 분과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십시오. 저희는 설교를 대신하여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우리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이 너무 리얼해서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오죽 했으면 미국에서 영화를 보다가 사람이 죽기까지 했겠습니까 왜 이렇게 이것이 쇼크일까요
그것은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의 사건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그렇습니다. 모든 영화의 초점을 예수님의 고난에 맞추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전개 방식이 예수님이 평소 선포하신 말씀을 역으로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보여 줍니다.
그 곳 갈보리의 인간들이 얼마나 악한지 알려 줍니다.
그 곳 갈보리의 마귀의 유혹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곳 갈보리는 예수님의 피로 얼룩진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의 장소임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내가 거기에 있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은 갈보리 십자가 사건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1.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그의 생애의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절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여 아버지가 주신 자를 구원코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길은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습니다. 예수님도 너무나 힘들어 하셔서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셨습니다. 그중에 예수님이 제일 힘들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영화의 처음 장면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시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 외로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마귀는 외로움을 가지신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자고 있습니다. 외로움!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외로움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포기치 않고 그 길을 가십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십자가를 지는 사건을 너무나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얼굴을 찡그리며 마음을 아파하지 않고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감히 “저도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아! 십자가! 우리가 입으로 올릴 수 없을 만큼 너무 잔인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왜 일을 감당하시냐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이 십자가였기 때문입니다. 이 귀한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보게 됩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나 죄를 싫어하시는 지 십자가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마귀와 예수님의 치열한 영적 전쟁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죄를 해결하려고 하는 예수님과 사람들을 통해 철저히 예수님을 유린하는 마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를 없애려고 애를 쓰시는가 보여 주는 장소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구약시대 때 살면 죄 때문에 즉사 할 사람들입니다.
구약의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지성소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시는 곳을 의미하며, 분리되어 휘장이 내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면 자기의 죄 문제가 해결되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없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씩 속죄일에 지성소로 피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1년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때 그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그 피를 힘입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직접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야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정말 죄를 싫어하십니다.
잠언 15장 26절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속죄함을 받지 아니하고서는 나갈 수 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열어 준 것이 십자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선행이나 봉사가 아닙니다.
딱 하나!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 죄를 단번에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움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 외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십자가만을 붙드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의 용서를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23:34절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도대체 이런 기도가 어떤 배경 속에서 나왔는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정말 지독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죄를 애를 쓰고 찾습니다. 그러나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아주 잔혹하고 고통스럽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탁월한 장면이요. 이영화의 힘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계속 “그냥 예수님을 죽였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양 옆에 두 강도가 달려 있었습니다. 한 강도는 예수님을 비웃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명은 그렇게 괴롭히고 있는 로마병정과 대제사장들을 향해 기도하는 예수님의 기도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이들은 자기가 하는 것을 모릅니다. 저희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이 장면입니다.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이렇게 기도를 할 수 있는가 강도는 예수님이 메시야 인지 알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강도에게도 구원을 베풀어 줍니다. 바로 인간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용서가 십자가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중에 알게 됩니다. 아! 여호와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 7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에게 은혜를 준 것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여호와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이 영화는 90%이상이 예수님의 피의 사건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것이 용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피로 인해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바로 강도도 그랬고, 간음한 여인도. 똑똑한 니고데모도, 남편 여섯 있는 사마리아여인도. 5간음한 여인도, 그리고 바로 우리들도 십자가의 피의 용서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4.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는 이렇게 미워하시지만 사람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라고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친구! 이것보다 더 다가오는 단어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친구로 지내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고난만을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영화가 두렵습니다. 그리고 죄책감을 갖게 합니다. 어떻게 자리를 앉아야 하는지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여기서 인간은 예수님에게 철저한 원수로 나타납니다. 정말 마귀의 자녀임을 실감나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손을 뻗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차라리 찬구라고 하지 마시지” 그것이 편한데 그런 마음을 갖게 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왜 하늘에 계시지 왜 그렇게 힘들게 내려 오셨습니까”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을 끝내고 “다 이루었다”고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제 스스로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부담스러운 사랑 때문 입니다. 십자가!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은 십자가의 도만 전했으며,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 십자가! 너무나 큰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제 말씀을 바치려고 합니다.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이 영화는 내가 바로 가기에 십자가 아래 있음을 알게 합니다. 내가 돌을 던지며 침을 뱉는 사람의 하나임을 알게 합니다. 저는 이것이 이 영화를 전 세계에 요동치게 만드는 원인이라 생각이 됩니다.
찬송가 136장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 찬양 아시지요
이 찬송의 저자는 야곱과 라헬이라는 흑인 부부였습니다. 이들은 서로 몹시 사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인 야곱이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가족은 헤어졌습니다. 다행히 야곱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됩니다. 그리고 노예라는 어려움 속에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어려움을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 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이 찬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곡은 흑인 영가입니다. 고달픈 노예생활을 십자가에서 부르고 있는 곡입니다. 이것이 구전되어 찬송가가 된 것입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이 벅차십니까 십자가를 생각하십시오.
십자가 아래에 가보십시오.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거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용서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너무나 큰 사랑이 있습니다. 거기에 여러분들이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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