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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빌라도의 비겁

본문

오늘 종려주일을 맞아 빌라도를 통해서 교훈 받고자 합니다. 빌라도 하면, 곧 이어 따라 붙는 대명사가 '비겁자'입니다. 빌라도의 비겁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준 모습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난 수요일날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가 예배 중에 항상 고백하는 '사도신경' 중에 예수님 외에 유일하게 이름이 나오는 사람이 '본디오 빌라도'로 2000년 동안 수억의 교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악인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불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빌라도는 무슨 비겁을 나타냈습니까
1. 빌라도의 비겁은 양심의 소리대로 따르지 않는 데 있었습니다.
유대 당국은 일상적인 소송문제는 자치적으로 취급할 수 있으나 사형선고만은 로마 총독만이 선고하고 집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 최고 회의인 산헤드린 공의회는 예수님을 결박하여 빌라도에게 끌고 온 것입니다. 사실은 산헤드린에서 판결된 고소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죄목으로는 로마 총독이 사형시킬 수 없는 줄 알기에 저들은 마치 로마의 반역자처럼 서류를 조작하여 고소를 한 것입니다. 사형시켜 달라는 죄목은 세 가지였습니다. (1)예수님이 백성들을 미혹했다는 것입니다. 즉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 사회질서를 파괴했다는 죄입니다. (2)예수님이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지했다는 것입니다. 즉, 정치질서를 파괴했다는 죄였습니다. (3)예수님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사칭함으로 로마 황제 가이사를 항거하는 반역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마귀의 방법을 동원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사형시키려고 광분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바로 종교적인 시기심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가장 경계할 일은 시기심입니다. 그 시기심을 이용하여 사탄이 얼마나 많은 교회들을 어지럽히는지 모릅니다. 때로 노회 일을 하면서 분쟁이 되고 있는 교회를 가서 보면 무슨 큰 문제보다 지도자끼리의 시기심이 그 밑바닥에 깔리어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마침내 이러한 터무니없는 고소장을 받은 빌라도는 그 죄목대로 예수님을 심문하기 시작합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네 말이 옳도다. " 예수님의 태도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빌라도는 오랜 세월동안 군대 지휘관으로, 혹은 총독으로 재임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왔습니다. 그가 상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강하고 거친 사람들이요, 혹은 온갖 정치범이나 강력범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어느 사람을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간파해낼 만큼 동물적인 본능을 가진, 숙련된 수사관이었습니다. 빌라도는 그러한 예리한 눈으로 아무리 뜯어보아도 예수님은 범죄자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분일 뿐 아니라, 그가 늘 정보로 들었던 범상치 않은 분임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다시 묻기를 "이 여러 증인들이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고 있는 데 당신은 답변할 말이 없느냐"라고 했습니다.
반대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12절에 보면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아니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4절에 보면 빌라도는 기이히 여겼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통 죄를 짓고 검사 앞에 끌려온 사람들은 증거물을 제시하는 데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극구 부인하며 자기는 대단히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보십시오. 온갖 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끌려온 사람들이 '자기는 절대로 돈을 받은 적이 없다. '고 하나같이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많은 증거를 대면 그 때야 마지못해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야말로 전혀 죄가 없으신 분이요, 자기가 무죄함을 말씀하시기 시작하면 빌라도 같은 사람이 백 명이 심문한다 할지라도 당해내겠습니까 그럼에도 예수님은 왜 침묵하셨을까요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를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군중들의 어리석음과 빌라도의 비겁을 아시기 때문이요, 더 나가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이 길만이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길이기에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오직 침묵으로만 일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태산같은 침묵, 온갖 유대 지도자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광분하고 있음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는 예수님의 호수같이 깊은 평안이 담겨 있는 눈동자를 보면서 '세상에 이런 분도 있다니' 빌라도는 큰 감동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빌라도는 종교 지도자들과 적의(敵意)에 가득한 얼굴로 몰려온 군중들을 향해 단호하게 외칩니다. 눅23:13 "그대들은 이 사람이 백성을 그릇 인도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으나 그대들이 보는 대로 내가 그대들이 있는 데서 친히 심문해 보았는데 그대들의 고소를 입증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 분명히 이 사람은 무죄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양심의 소리였습니다. 처음에는 양심의 소리를 따라 행동한 빌라도였습니다. 그가 끝까지 그런 양심대로 행동했다면 기독교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추앙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19:12에 보면 유대 지도자들과 이들의 사주를 받은 군중들이 외치기를 "이 사람을 놓아준다면 빌라도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자입니다. "라고 하자, 점점 자기 출세욕이 발동하여 양심을 저버리고 야욕을 따라 행동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십자가에 못박히게 내어준 것은 너무나 비겁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양심을 따라 역사상 참으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욕심을 따라 넓은 길로 감으로 영원히 악한 자로 성경에 기록되는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어느 때는 양심을 따라 좁은 길을 택하느냐, 아니면 욕심을 따라 넓은 길을 택하느냐의 갈림길에 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우리는 과감하게 양심을 따라 좁은 길을 택하십시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길을 친히 인도하셔서 복된 길로 인도할 줄 믿으십시오. 언제도 마씀 드렸지만, 미국 그랜 브란드 대통령이 청소년 때, 한번은 가까운 친구 뿌란 그린과 영화관으로 구경을 가다가 교회당 옆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랜 브란드는 그 날이 주일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양심에는 교회를 가야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영화관을 가자고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랜 브란드는 양심에 따라 교회에 들어가고 친구는 영화관으로 가서 악한 내용의 영화를 보고 영향을 받아 점점 범죄에 빠지더니 나중에는 사형수가 되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죄수가 사형언도를 받던 날이 바로 그랜 브란드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언제나 양심을 따라 좁은 길을 택하는 자들이 됨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빌라도의 비겁은 군중의 압력 때문에 예수님을 택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빌라도는 큰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를 죽이라"는 함성이 법정 뿐 아니라 온 도시를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라도가 "나는 저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발견할 수 없다. "라고 선언하자, 군중들은 대제사장과 그의 부하들에게서 일당을 받고 고함을 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마, 사람들은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5만원을 받기로 하고 우선 반만 받은 후에 얼마나 고함을 지르냐에 따라 나머지를 받기로 약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너나 없이 경쟁적으로 목이 터져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을 것이요, 그러다 보니 군중들의 소리에 스스로 휘말려서 나중에는 무엇엔가 분노에 가득 차서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군중들의 분노의 감정을 어느 정도 풀어주기 위해서 눅23:16에 보면 군중들 앞에서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사납게 매질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후에 예수님을 풀어놓으려고 했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군중들은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을 보자, 피에 굶주린 이리처럼 더 사나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책자에 보면 빌라도가 쓰기를 저는 가끔 시민 폭동에서 노한 군중을 목격하여 왔으나 이번처럼 격렬한 폭동을 본 적인 없었습니다. 마치 지옥의 모든 유령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온 것 같았다고 밖에는 더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중들은 걸어다닌다기 보다는 갑자기 땅에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것 같았는데 총독 청사의 입구에서부터 시온산까지 이르는 군중들은 넘실거리를 파도를 따라 움직이는 소용돌이처럼 보였고 가지가지 해괴한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것 같았다. 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아마, 빌라도는 큰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서 그 동안 갖은 노력을 다해 쌓아온 이 총독의 자리가 일시에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으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죄수로 끌려온 예수님, 그 분 혼자만이 침착하고 조용하게, 아니 평화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온갖 참혹한 전투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일어선 빌라도는 사색이 되어 있는 데, 군중들이 자기를 죽이라고 살인적인 고함을 치든지, 심한 매로 때리든지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소개한빌라도 보고서에서도 세상에 이처럼 사람에게 평온을 주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고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향해 "오, 주여 내가 망하게 되었나이다. 내가 어찌하여야 옳습니까"했어야 옳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 엄청난 은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비상한 빌라도는 그 위기를 세상의 수단을 통해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는 살인강도 바라바와 예수님을 함께 세워 놓고 "유월절에는 죄수 하나를 사면하는 것이 관례인데, 내가 이 예수와 바라바 중에 누구를 놓아주랴"고 외쳤습니다.
빌라도의 생각에는 '아무리 예수란 사람이 미워도 잔인한 살인강도 바라바에 대한 미움보다는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는가'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국 군중들은 "예수를 놓아주고 바라바를 사형에 처하소서. "라는 대답이 나올 줄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군중들은 더욱 큰 소리로 외치기를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군중들은 선을 버리고 악을 택했습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군중들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 주님은 바라바보다도 더 악한 위치로 전락되셨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완악해질 수 있습니까 왜 그런 수치, 그런 모욕적인 자리까지 떨어지셨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서 이십니다. 빌라도는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자,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했습니다. 완전히 대세에 밀려 진리의 길에서 돌아선 것입니다.
그러자 군중들을 보십시오. 더욱 미친 듯이 소리치기를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복을 버리고 영원한 저주를 택한 것입니다. 완전히 돌아버린 군중들이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맹세가 수 천년 동안 이루어질 줄 누가 알았습니까 돈 몇 푼에 자기와 자기 후손들의 장래까지 다 팔아먹은 너무나 어리석은 군중들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조건으로 한 유대인들의 맹세가 저주를 불러들이어 2000년 동안 나라를 빼앗기고 세계 곳곳에서 추방당하고 학살당하였으며 지금도 이스라엘 땅은 피로 얼룩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예수님 옆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 하나는 순간적으로 예수님을 택하면서 "예수님이시여, 당신이 하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라고 고백함으로 영원한 복의 문을 여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예수님이냐, 바라바냐 십자가의 좁은 길이냐, 욕망의 넓은 길이냐, 복이냐, 저주냐의 갈림길에서 여러분들은 아무리 대세가 넓은 길을 주장함으로 잘못하면 혼자가 되는 입장일지라도, 앞길에 손해와 고난이 보인다 할지라도 십자가를 택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가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빌라도의 비겁은 출세욕 때문에 성령의 지시를 무시한 데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빌라도가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아내에게 전갈이 오기를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빌라도의 보고서에는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는 빌라도의 발치에 엎드려 울면서 호소하기를 조심하십시오. 조심하십시오. 저 사람에게 손을 대지 마십시오. 그는 거룩한 분입니다. 어젯밤, 저는 환상 중에 그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물 위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 바람의 날개를 타고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오, 빌라도여, 악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아내인 제 애원을 듣지 않으신다면 로마 중의원으로부터 받을 저주가 두렵고 가이사에게 당할 괴로움이 두렵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그 아내를 통해서 지시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 지시를 무시하고 자기 출세를 위해 예수님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군중들에게 내어준 것입니다. 빌라도는 그만큼 출세지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서기 26년부터 36년까지 정확하게 10년 간 유대 땅의 총독으로 재위했습니다. 유명한 역사가 요셉푸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잔인한 총독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지나치게 로마에게 아부했고 로마 황제숭배를 강요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였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세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가 있었던 사람, 그래서 그는 다른 총독들은 보통 한 5, 6년이면 떠났는데 이 사람은 10년 동안 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분명히 죄가 없는 줄 알았으며, 자기 권한으로 얼마든지 예수님을 풀어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을 방면함으로 분노한 군중들이 민란을 일으킨다면 자기 출세에 막대한 지장을 받을 것 같으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하늘의 지시보다 출세욕이 더 강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빌라도는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승승장구 출세하여 로마정부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결국은 사마리아 학살사건 때문에 로마의 정부가 그를 소환합니다. 중앙정부로부터 빌라도가 소환을 받자 이제는 자기의 정치생명이 끝났다고 판단한 빌라도가 자살을 합니다. 이것이 출세지향적으로 달려가던 빌라도의 비참한 종말인 것입니다.
만약에 그가 성령의 지시대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대로 나갔다면 그 위기에서 벗어나 복된 길, 은혜의 길로 나갔을 것입니다. 과연, 그의 아내 크라우디 아프로그는 후에 아주 훌륭한 신자가 되었다고 교회사는 전해주고 있습니다. 같은 집에서 살던 부부였으나 한 사람은 예수님과 십자가와 성령을 따라 사는 길이 옳은 길인 줄 알면서도 출세욕 때문에 저주의 길을 갔으나 부인은 좁은 길을 택함으로 영원한 복된 길을 갔던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한 마디로 순간 순간 결단의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냐 세상이냐 성령이냐, 악령이냐 좁은 길이냐, 넓은 길이냐 그 선택에 따라 용단이냐, 비겁이냐 복된 삶이냐, 저주의 삶이냐 판가름지는 줄 믿으시고 이번 고난 주간에 우리는 새로운 결단을 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1999년 4월, 미국의 유명한 신문인유에스 투데이지(誌)에는 17세난 소녀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읽은 기억이 있으시겠지만, 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나 총기난사사고 때, 학생 25명이 죽어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두 명의 범인 중에 한 사람이 캐시버넬이라는 17세된 소녀 앞에 총을 겨누고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옆에 있었던 소녀가 살아 나와 목격자가 되어서 이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총기를 든 범인이 소녀에게 한 질문은 "너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느냐"였습니다. 아마도 여호와 하나님 안 믿어요 이 한 마디면 살아날 수 있었던 상황 속에서 이 소녀는 침착하게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범인은 총부리를 더 가까이 겨누면서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치기를 "여호와 하나님은 없단 말이야. "라고 하자, 캐시는 침착하게 한번 더 대답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세요. 당신도 여호와 하나님의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범인의 총구는 불을 뿜기 시작했고 소녀는 피투성이가 되어 그 자리에 쓰러져 생명을 거두었습니다. 너무나 어리석은 믿음의 태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사건의 마지막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미국의 크리스찬 10대들이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요라는 쓴 T셔츠를 입은 소년소녀들이 거리를 나가서 전도하기 시작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푸로리다 한 도시에서는 2,500명의 10대 크리스찬들이 모여서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캐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고백 집회를 열기 시작했고 이 집회는 도시마다 불을 당기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과 군중들에 참담하게 배척을 당하셨고 비겁한 빌라도에 매질과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살인강도 바라바보다 더 천박한 자리에 내려가셨고 결국 모든 고난 속에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은혜 만분지 일이라도 갚기 위해, 이번 고난주간 동안 우리는 빌라도의 비겁을 따르지 말고 캐시처럼 어떠한 손해, 어떠한 위험이 온다 할지라도 오직 주님을 따라 좁은 길로 가기로 결단하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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