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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고난, 회복, 환희

본문

오랬동안 암으로 고생하던 권사님의 암수치가 제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선을 넘나들던 의사의 선고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됨을 인하여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적인 큰 은혜를 입었다면, 그 기쁨이야말로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입니다. 또한 이런 경험을 하고 난 사람의 신앙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발전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 생활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는 그가 신앙의 기쁨을 누리고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은 성도들의 신앙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인 것입니다.
한편, 성도의 신앙 생활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 안일함과 나태함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애쓰고 힘쓰는 자가 차지할 것을 성경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부지런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고난에서 해방
(시 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대의 비극과 수치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 없는 이방의 포로로 잡혀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받은 듯이 보였고, 그들은 수치와 천대 속에서 포로생활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한가닥 희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될 때 그들이 풀려 날 것에 대한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이끌어 내어 마침내 구원을 베푸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에 대하여 마치 자신들이 꿈을 꾸는 듯 해방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향은 절대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만 가능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한 웃음과 찬양이 우러나오는 때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도움을 체험하며 그것을 누리며 즐기는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얼굴과 삶에 어두움과 비참함이 드리워져 있고 혀에서 악한 말과 거짓말이 나온다면, 진정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인가를 의심케 하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시 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해방은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적이고 놀라운 권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웃음과 찬양이 그 입에 가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사실을 목격한 이방인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도우셨다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성도가 믿는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일은 어떤 면에서 당연할지 몰라도, 이방인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더욱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성도의 삶을 보고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과연 살아계시구나"라고 할 정도의 삶의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도 주변의 사람들이 꺼리는 교회가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필요한 교회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교회가 칭송받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교와 구제와 사회봉사를 하는 데, 돌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2. 환희의 노래
(시 126: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저의 박사학위 논문의 서문에 '저의 비천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사 큰 일을 행하셨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음을 인하여 감사하고, 죽을 자리에서 살려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 가지의 고백이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삶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의 성도들이 기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 커다란 문제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들의 삶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넘치고 활기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소극적이며 수동적이며 폐쇄적인 삶이 아니라, 적극적이며 능동적이며 진취적인 화평을 도모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성도들의 기쁨의 원천이 어디에서 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기쁨은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과 그가 행하신 놀랍고 신비하신 일, 곧 그의 백성된 우리를 영원한 형벌에서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셨다는 구속의 은총에 근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구원해 주셨고, 그 일로 우리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사람들은 모든 환경과 사물을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자신의 능력 한계를 넘어 선 일일 경우에는 단념해 버리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은 초월적인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이적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초월할 뿐더러, 그 이상의 것들을 보게 하시며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포로 된 자들을 일으켜서 시냇물이 흐르듯 번성하게 하십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약한 자를 통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와 참 행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모든 성도들에게 나타내 보이십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3. 씨 뿌리는 자의 기쁨
(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며, 그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편, 이것을 역설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서 눈물과 아픔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기를 위해서 많은 일에 욕심을 내고 땀을 흘려 일하며 애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삶 속에 비록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다가올지라도, 장래에 다가올 큰 기쁨을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을 참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기쁨의 그 날이 오기를 소망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개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는 여러 가지 근심이 있으나, 추수 때에는 기쁨으로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기간 동안에 많은 시련과 고통을 당했지만, 그들의 앞에는 영광스러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괴로움, 시련과 고난, 낙심과 절망감을 믿음으로 극복하는 자는 결코 하늘의 상급을 잃지 않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에서 5세 어린 아이의 최종 수영시험을 보는데, 옷을 입은 채 수영장에 뛰어들게 하여 헤엄쳐 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비상사태시에 대처할 능력을 배양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수영지도 교사가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도 평소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훈련된 자만이 고난 중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시 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행복이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기 때문에, 그저 우연히 얻어지거나 요행으로 채워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통회하며 눈물을 흘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감수하고 노력하는 수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노력과 투자는 결코 헛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실패도 없을 것입니다. 참된 행복은 눈물을 흘려야 하며, 씨를 뿌려야 하며, 애써 가꾸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노동의 신선함과 부지런함에 대하여 깊이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잠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유럽의 선진국들이나 구미를 가보면, 잘 정돈된 집이나 길거리 및 삼림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할 없게 만드는데, 그것은 모두가 그들이 자연을 가꾸고 노력한 대가로 주어진 것임을 알고는 다시 한번 더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참된 기쁨과 행복은 요행이나 행운처럼 그냥 평안히 앉아서 거저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려야 하고 그것을 잘 가꾸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괴테는 "눈물의 빵을 먹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인생을 알 수 없다. "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 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성경에 '부지런'이라는 단어는 37번, '열심'은 28번씩이나 사용되었습니다. 그만큼 성경은 우리들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 론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대사를 행하신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고, 이 일을 행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지난 날 우리의 암흑과 고통을 씻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더 큰 기도의 응답을 얻고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된 응답을 얻기 위하여 힘써 주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의 심정으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여호와 하나님 주신 복을 누리는 그 날이 오기를 바라보며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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