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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고난도 영광도 그리스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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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편한 것, 쉬운 것을 좋아합니다. 다시 말하면 공짜를 좋아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은 다 싫어하죠. 그래서 어른들은 수고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고 출세하려고 합니다. 또 아이들은 힘써 공부하지 않으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공짜 심리가 인생을 망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비근한 예를 들어보죠. 최근 강원도 정선에 카지노가 생겼다죠. 주말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데에 의하면 따는 사람은 거의 없고 수백만원, 심지어는 수천만원씩 잃고 온다고 합니다. 벼락부자 되려다 깡통 차는 격이죠.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카지노에서 벼락부자 될 확률은 벼락 맞을 확률과 같다. ”
가만히 보면 정말 가치 있는 것 치고 수고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수고하지 않고 얻으려는 것은 스스로 속는 겁니다. 성경도 분명히 말씀합니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우주의 법칙이요, 인생의 법칙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고하고 고난받지 않으면 축복도 영광도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구원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값없이 은혜로 된 것이기는 합니다. 우리가 그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잘 따져 보면 여기서도 동일한 법칙이 적용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므로 우리 스스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수고한 것은 아니라도 예수님의 수고와 희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구원도 공짜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 생활을 절대 공짜로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해서 ‘고난 없는 신앙 생활’은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됩니다. 혹시 누구라도 고난없는 신앙을 이야기하면 그것은 값싼 복음이요, 심하면 거짓 복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수복의 신앙) 나쁠 게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수난의 신앙) 이것이 겸비되지 않으면 초보 신앙이요 참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수난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이 참 신앙이요 성숙한 신앙입니다. 단순히 안일한 형통의 축복만 추구하면 오히려 신앙이 변질되기 쉽고, 진정한 축복과 영광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수난의 신앙을 재정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풍성한 축복과 영광을 얻으시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면 또한 후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
여기서 ‘권세’란 간단히 말해서 신분이란 뜻입니다. 신분에는 항상 특권이 따릅
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 자녀로서 갖가지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습니다. 또 여호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특권 중에 중요한 한 가지가 또 있습니다. 17절(상).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여호와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 ” 즉 여호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진노의 자식이요,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다만 믿음만 보시고 양자로, 그리고 후사로 삼아 주셨습니다.
로마서가 쓰여질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양자 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자가 되면 친자와 동일한 법적 권리를 가집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네로 황제입니다. 그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친자가 아니라 입양된 양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하자 없이 황제가 되어서 온갖 특권을 다 누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천한 죄인이요, 진노 받을 자였지만 이제는 어엿한 여호와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살며, 이 세상을 떠날 때는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천국을 기업(상속 재산)으로 받게 됩니다.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영생 복락, 새 예루살렘의 황금길, 보석집, 생명수 강, 생명 나무, ... 우리가 상상 할 수도 없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우리는 영광의 후사인 동시에 고난의 후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할 게 있습니다. 후사 곧 상속자는 영광만 상속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고난도 함께 상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상속하는 것처럼 예수님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17절(하).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러니까 우리는 ‘영광의 후사’인 동시에 ‘고난의 후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고난과 멀리 할래야 멀리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고난이나 당하라는 게 아니죠.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해야지 자기 잘못이나 죄악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코 예수님이 물려주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고난의 종류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벧전2:19~21, 골1:24 참조)
1) 당연한 고난 : 벧전2:20(상). 자기의 실수나 죄악 때문에 당하는 고난 징계 - 회개함으로 변화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를 얻게 됩니다.
예 탕자의 고난(눅15: )
2) 애매한 고난 : 벧전2:19. 아무 잘못 없이 당하는 고난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핍박이나 어려움 - 믿음으로 인내하면 주님이 위로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예 욥의 고난, 다니엘의 고난, 요셉의 고난, ...
예 오늘 우리 중에도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다가 가난한 경우,
직장에서 말단에 머무는 경우, 사업하다 손해보는 경우, ... - 결국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보상해 주십니다. 이런 고난도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런 고난을 우리가 예수님과 더불어 당하는 게 마땅합니다.
3) 자원하는 고난 : 스스로 선택하고 수고하는 고난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 골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여기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십자가 고난이 불완전하다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 구원은 완전하지만 그 복음이 전파되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믿어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그 일을 완수할 사명을 현재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 사명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게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지 않는다고 우리 개인에게 큰 일 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사명을 위해 자청해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최고 성숙한 경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여기까지 도달해 주기를 기대하십니다.
예 사도 바울 - 로마 시민권자에 부잣집 아들이요 학벌 좋은 청년으로 출세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오로지 복음과 교회를 위해 수고했습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뭐가 생겨서도 아니고, 오직 주님을 사랑하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스스로 자원한 고난이었습니다.
3 우리의 현재 고난은 장차 주어질 영광의 작은 씨앗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바울이 바보인가요 그가 아이큐가 낮은 백치였나요 사실은 가장 똑똑한 사람입니다. 앞뒤를 다 재보고 결단한 것입니다. 18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여기서 ‘생각건대’ 즉 ‘생각한다’(헬-로기조마이)는 단어는 ‘계산하다’ ‘리스트를 작성하다’ 등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계산 할 것 다 계산하고 확신한 후 결단한 것임을 암시해 줍니다. 다시 말하면 확실한 투자 가치를 본 것입니다. 장차 여호와 하나님이 주실 영광과 비교해 볼 때 여기서 고난 받고 헌신하는 게 훨씬 이익이란 겁니다. (cf. 요12:24 한알의 밀 - 많은 열매- 30배, 60배, 100배 - 이런 투자가 어디 있나요)
바울은 그런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성도들이 그것을 잘 못 보니까 안타까워서 기도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엡1:18~19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딤후4:8 “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 ” 천국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질 상급, 면류관을 본 것입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많은 성경 인물들이 그랬습니다.
예 세상의 일반적인 삶 ... - 대입 수험생 “고난을 넘어 환희로!”
예 모세 -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여러분, 과연 천국의 영광과 하늘의 면류관이 얼마나 대단할까요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업습니다. 성경을 통해 상상은 하지만 그것으로도 태부족일 겁니다. 다만 어느 정도로 대단할까 조금은 추정할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계4:10~11. 24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고 면류관을 던져드립니다. 왜 그랬을까요 천국의 영광이 너무도 황홀한데, 거기 온 것만도 황송한데, 정말 은혜인데, 뭘 잘 했다고 면류관까지 ... 양심 상 차마 받지 못하는 겁니다. 물론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잠시 고난 받고, 작은 것으로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장차 우리에게 주실
영광과 비교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씨앗이 되어 큰 영광을 얻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1%의 오차도 없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여러분, 이런 원리를 몰라서 그렇지 알기만 하면 사람들이 엄청 몰려들 겁니다. 벼락 맞을 확률만 있어도 카지노로 어디로 몰려드는데 ... 그렇죠 그래서 믿음이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성도들 중에도 이런 원리를 몰라서, 눈이 열리지 않아서 주춤거리는 모습을 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립니다. 고난 없는 안일과 축복만을 구합니다. 더 높고 풍성한 경지가 있는데 말입니다.
4 미래의 축복과 영광을 위해 고난을 자원하는 성도가 됩시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성숙한 성도로서 주님을 위한 고난에 동참합시다.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증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노라 입술로 얼마나 자주 고백합니까 그것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증거를 보여 줘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요14:21)이고, 둘째는 교회를 위해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 자신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엡1:23)
어차피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을 당하며 살게 마련입니다. 고난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이 고난을 받으며 사는냐 하는 것입니다. 그저 세상에서 육신의 일을 위해서 살다가 죄 지으며 당연한 고난만 당하다 인생을 마치면 비참합니다. 심하게 말하며 둥물적인 삶에 불과합니다. 무엇이 남겠습니까 다 사라지고 맙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모았던 세상의 재물과 권세도, 그리고 즐거워하던 향락도 ... 우리는 주님으리 말씀대로 살다가 고난받으며 주님을 증거 증거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이 내게 주신 것들(시간, 재능, 지위, 재능 등)을 가지고 교회와 복음을 위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모든 것은 사라져도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남아 우리 인생의 존귀함 내내 증거해 줄 것입니다.
예 비행기 타고 갈 때 ... 짐을 따로 부칩니다. 도착해서 짐을 찾을 때 ... 얼마나 반가운지 ... 부친 만큼만 나옵니다. 우리가 인생 산 대로 주님 앞에서 평가받고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세월 많은 선배들의 눈물어린 고난과 헌신을 통해 지금의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동안 이 교회를 통해 지역 사회와 이 민족, 그리고 세계 각처로 전파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더욱 효과적으로 힘있게 그 사명을 감당하기를 소원합니다. 이를 위해 수년 전부터 새로운 예배당 건축을 준비해 왔습니다. 이제 그 시작이 두달도 채 만지 않았습니다. (그 자세한 안내는 다움 주일에 있을 것입니다. ) 이 일은 우리에게 많은 고난을 요구합니다. 협소한 공간에서 교회 생활을 더 열심히 할 것을 요구합니다. 시간 바쳐 뜨겁게 기도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어렵지만 물질의 헌신도 요구합니다. 이것은 안 해도 그만입니다. 안 한 다고 누가 잡아가지 않습니다. 불이익을 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원하는 가운데 행할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는 소원합니다. 그리고 감히 부탁드립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동참할 것을!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이 넉넉히 이루어주시고,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그후에는 이 교회를 통해 이루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우리 모두에게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이 세상과 저 천국에서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부디 이 약속을 붙들고 다 함께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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