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나사렛 예수의 정신
본문
사순절 연속 설교로 '구레네 시몬'에 이어 오늘은 '나사렛 예수의 정신'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현대인들의 특징은 마음이 강팍하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며 자기만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루에도 여러곳에서 사람들이 주차 문제, 사업문제, 아이들 문제로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고 있는 장면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두가 다 피해의식과 절망감속에 분노하며 살고있다는 증거입니다. 더욱이 중간층의 기반이 없어지고 부자와 가난한자 만이 양분되어 살게 되다보니 이 같은 영적괴리감은 더욱 크게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괴리감속에서 믿는 성도들이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시대적 사명감을 감당하며 은혜안에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바울은 이에 대하여 본문 5절에여러분은 이런 마음을 품으십시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그리하면 이 땅에서 참 평안을 잃지 않고 은혜와 기쁨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잃지 않으려면 마음관리만 잘하면 됩니다.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한 절대로 자신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비젼과 꿈을 이웃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복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지금 IMF로 인해 많은 가정과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이것은 경제가 추락하고 실업자 수가 증가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실업자들에게 고기 몇 마리를 집어주기 보다는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서 그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 물을 던져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나사렛 예수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하며 함께 주의 나라를 확장시켜나가야 합니다.
1.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6절)
첫째, 신앙생활을 하는 첫째 조건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 의식이 뚜렷한 현대인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무리한 요구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분도 계실지는 모르나, 자기부정은 신앙생활 입문에 첫 관문이요, 주님의 제자가 되어 그 뒤를 따르려는 데 첫 조건이 됩니다.
이외에도 무저항, 인욕(忍辱), 애적(愛敵),순결, 은밀정신, 비하(卑下),하좌(下座), 세족(洗足),순명(順命)의 정신,12제자 파송하시며 훈계하신 청빈과 단순의 정신, 이 고귀한 그리스도의 정신을 절대적으로 살려야 합니다.
군 입대 후 처음 병사가 하는 일은 자기가 입고 왔던 옷과 신발들을 전부 벗어 소포로 싸서 붙치고 국가에서 주는 군복으로 갈아입는 일입니다. 하물며 생명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의 제자가 됨에 있어서 옛 사람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즉 자신을 비우지 않고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참된 의미에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라고 하는 겸손한 고백이 있을 때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빛은 인간 이성의 어두운 장막을 뚫고 개인의 영혼 위에 비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치 다메섹 도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빛 앞에 엎드러진 사울이 바울이 되어 고백하기를,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요, 만물의 때만도 못한 자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빛이 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새로운 생명의 빛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따르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은 먼저 철두철미한 자기부정에서부터 새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으며,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했습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 한 자기 부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자기를 비우는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 7절 -8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출생하신 것을 비롯하여 나사렛촌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시어 천대와 멸시로 일생을 보내시며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시며 병자를 고치시고 약자를 도우시며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일생동안 풍찬노숙(風餐露宿)하시며 집없는 생활을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고 하신 것이 그의 생활이기도 합니다.
셋째,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벅찬 말씀을 하시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죄인을 용납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며,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제공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생활에도 자신을 비하시켜서 겸손과 성실로 일관하여야 할 것이며 열심으로 전도하여 영혼을 사랑하며 이웃의 슬픔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이 높이 들어 비쳐 주시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넷째,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몸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인간 세상에 와서 겸손과 봉사로, 무저항주의로 일관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그러했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했습니다. 다니엘이 그러했고, 리빙스톤이 그러했으며, 슈바이처가 그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손양원 목사님이나, 이용도 목사님이나, 길선주 목사님이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손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섬기며, 자기를 비어 주어진 개척의 사명을 완수하여야 하겠습니다.
3. 자기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하반절에 보면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첫째, 주께서는 자기 몸을 비어 낮추실 뿐 아니라 마침내 자기 몸을 인류를 구원하는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상에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인류를 죄악 가운데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주의 피를 희생으로 지불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영생을 위하여 주님께서 대속하셨던 것입니다.
둘째, 주께서는 우리에게 이 십자가의 희생의 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을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 종점이 자기 희생의 길이었습니다. 사도가 그러하였고, 오늘까지의 수많은 순교자가 그러했습니다. 구속에 감격하여 살아온 많은 성도가 그러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면 성공과 축복만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희생과 고달픔이 먼저 올 때가 많으며 괴로움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그 언덕너머에 영원한 안식과 영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의인이 죄인이 되신 것이요, 주인이 종이 되신 것이요, 영광을 버리고 부끄러움을 입으신 것이요, 왕자가 거지로 변신하신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Incarnation 철학으로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저는 종종 이렇게 생각하곤 합니다. 언제나 자기변신이 가능한 사람이 되자! 바울 사도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어디 가서든지 예수님처럼 아주 간단하게 자기 변신을 했습니다.
즉 상대방에게 자기를 맞추는 사람이었습니다.
4. 자기를 희생하는 마음입니다
아마도 사람의 마음 중에 가장 고상한 마음은 희생정신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철인이 말하는대로 인생에게 있어서, "얼마나 고난을 감내하느냐 보다는, 얼마나 희생을 치루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 예수님은 단순히 고난을 감내하신 분이 아니라, 기꺼이 희생을 치루신 분이십니다.
본문 8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 으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예수믿고 누리게 된 구원이 우리 편에서는 값없는 선물인 은혜이지만,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나무에 매달려 죽게하신 엄청난 희생이 치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희생의 정신을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가급적 자기를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3D 기피 현상이 초래된 것입니다.
요즘 회사나 일터에서 희생정신을 이야기하면 그는 전근대적인 사람으로 따돌려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할 말이 있습니다.
아무런 대가를 치루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Ministry that costs nothing accomplishes nothing〕 (J. H. Jowett)
결 론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 출발이 자기부정이며, 그 노정이 자기비하이며, 그 종점이 자기희생입니다. 결과는 무엇을 가져오겠습니까 한때 구라파 천지를 마음대로 뒤흔들던 불란서의 영웅 나폴레옹이 센트 헤레나로 유형가서 죽기 전에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검을 가지고 구라파를 정복하려 하였으나 내가 최후에 얻은 것은 나를 파묻을 한 평의 무덤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를 못박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던 나사렛 예수의 사랑은 오늘날 땅끝에서부터 땅끝까지 온 세계를 정복하고 말았구나"고 한탄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 하신대로 결과는 망하고 마나 십자가의 뒤를 따라 그의 사랑 안에서 사는 성도에게는 자기 부정과, 자기 비하와, 자기 희생을 통하여 영원한 영생을 가져옵니다.
또한, 참 신앙은 영생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1절-12절 말씀에 "주와 함께 죽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앞에는 영생과, 영광과, 부활과, 승리가 있으니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주께서 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갑시다. 우리의 기도가 속히 응답이 안온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길이 십자가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회적인 괴리감속에서 믿는 성도들이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시대적 사명감을 감당하며 은혜안에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바울은 이에 대하여 본문 5절에여러분은 이런 마음을 품으십시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그리하면 이 땅에서 참 평안을 잃지 않고 은혜와 기쁨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잃지 않으려면 마음관리만 잘하면 됩니다.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한 절대로 자신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비젼과 꿈을 이웃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복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지금 IMF로 인해 많은 가정과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이것은 경제가 추락하고 실업자 수가 증가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실업자들에게 고기 몇 마리를 집어주기 보다는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서 그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 물을 던져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나사렛 예수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하며 함께 주의 나라를 확장시켜나가야 합니다.
1.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6절)
첫째, 신앙생활을 하는 첫째 조건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 의식이 뚜렷한 현대인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무리한 요구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분도 계실지는 모르나, 자기부정은 신앙생활 입문에 첫 관문이요, 주님의 제자가 되어 그 뒤를 따르려는 데 첫 조건이 됩니다.
이외에도 무저항, 인욕(忍辱), 애적(愛敵),순결, 은밀정신, 비하(卑下),하좌(下座), 세족(洗足),순명(順命)의 정신,12제자 파송하시며 훈계하신 청빈과 단순의 정신, 이 고귀한 그리스도의 정신을 절대적으로 살려야 합니다.
군 입대 후 처음 병사가 하는 일은 자기가 입고 왔던 옷과 신발들을 전부 벗어 소포로 싸서 붙치고 국가에서 주는 군복으로 갈아입는 일입니다. 하물며 생명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의 제자가 됨에 있어서 옛 사람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즉 자신을 비우지 않고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참된 의미에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라고 하는 겸손한 고백이 있을 때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빛은 인간 이성의 어두운 장막을 뚫고 개인의 영혼 위에 비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치 다메섹 도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빛 앞에 엎드러진 사울이 바울이 되어 고백하기를,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요, 만물의 때만도 못한 자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빛이 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새로운 생명의 빛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따르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은 먼저 철두철미한 자기부정에서부터 새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으며,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했습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 한 자기 부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자기를 비우는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 7절 -8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출생하신 것을 비롯하여 나사렛촌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시어 천대와 멸시로 일생을 보내시며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시며 병자를 고치시고 약자를 도우시며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일생동안 풍찬노숙(風餐露宿)하시며 집없는 생활을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고 하신 것이 그의 생활이기도 합니다.
셋째,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벅찬 말씀을 하시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죄인을 용납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며,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제공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생활에도 자신을 비하시켜서 겸손과 성실로 일관하여야 할 것이며 열심으로 전도하여 영혼을 사랑하며 이웃의 슬픔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이 높이 들어 비쳐 주시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넷째,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몸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인간 세상에 와서 겸손과 봉사로, 무저항주의로 일관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그러했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했습니다. 다니엘이 그러했고, 리빙스톤이 그러했으며, 슈바이처가 그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손양원 목사님이나, 이용도 목사님이나, 길선주 목사님이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손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섬기며, 자기를 비어 주어진 개척의 사명을 완수하여야 하겠습니다.
3. 자기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하반절에 보면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첫째, 주께서는 자기 몸을 비어 낮추실 뿐 아니라 마침내 자기 몸을 인류를 구원하는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상에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인류를 죄악 가운데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주의 피를 희생으로 지불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영생을 위하여 주님께서 대속하셨던 것입니다.
둘째, 주께서는 우리에게 이 십자가의 희생의 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을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 종점이 자기 희생의 길이었습니다. 사도가 그러하였고, 오늘까지의 수많은 순교자가 그러했습니다. 구속에 감격하여 살아온 많은 성도가 그러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면 성공과 축복만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희생과 고달픔이 먼저 올 때가 많으며 괴로움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그 언덕너머에 영원한 안식과 영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의인이 죄인이 되신 것이요, 주인이 종이 되신 것이요, 영광을 버리고 부끄러움을 입으신 것이요, 왕자가 거지로 변신하신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Incarnation 철학으로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저는 종종 이렇게 생각하곤 합니다. 언제나 자기변신이 가능한 사람이 되자! 바울 사도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어디 가서든지 예수님처럼 아주 간단하게 자기 변신을 했습니다.
즉 상대방에게 자기를 맞추는 사람이었습니다.
4. 자기를 희생하는 마음입니다
아마도 사람의 마음 중에 가장 고상한 마음은 희생정신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철인이 말하는대로 인생에게 있어서, "얼마나 고난을 감내하느냐 보다는, 얼마나 희생을 치루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 예수님은 단순히 고난을 감내하신 분이 아니라, 기꺼이 희생을 치루신 분이십니다.
본문 8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 으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예수믿고 누리게 된 구원이 우리 편에서는 값없는 선물인 은혜이지만,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나무에 매달려 죽게하신 엄청난 희생이 치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희생의 정신을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가급적 자기를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3D 기피 현상이 초래된 것입니다.
요즘 회사나 일터에서 희생정신을 이야기하면 그는 전근대적인 사람으로 따돌려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할 말이 있습니다.
아무런 대가를 치루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Ministry that costs nothing accomplishes nothing〕 (J. H. Jowett)
결 론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 출발이 자기부정이며, 그 노정이 자기비하이며, 그 종점이 자기희생입니다. 결과는 무엇을 가져오겠습니까 한때 구라파 천지를 마음대로 뒤흔들던 불란서의 영웅 나폴레옹이 센트 헤레나로 유형가서 죽기 전에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검을 가지고 구라파를 정복하려 하였으나 내가 최후에 얻은 것은 나를 파묻을 한 평의 무덤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를 못박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던 나사렛 예수의 사랑은 오늘날 땅끝에서부터 땅끝까지 온 세계를 정복하고 말았구나"고 한탄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 하신대로 결과는 망하고 마나 십자가의 뒤를 따라 그의 사랑 안에서 사는 성도에게는 자기 부정과, 자기 비하와, 자기 희생을 통하여 영원한 영생을 가져옵니다.
또한, 참 신앙은 영생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1절-12절 말씀에 "주와 함께 죽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앞에는 영생과, 영광과, 부활과, 승리가 있으니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주께서 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갑시다. 우리의 기도가 속히 응답이 안온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길이 십자가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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