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TOP
DOWN

[종려주일]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본문

오늘은 고난 주일이다. 오늘부터 시작하여 이번 한 주간을 고난 주간이라고 한다.
이 고난 주간 동안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절정을 이룬다. 마침내 금요일 오후 3시에 십자가 위에서 온 세상의 죄를, 아니 나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신다.
이 고난 주간의 마지막 피크를 이루고 있는 것이….
성만찬장에서(목요일 밤) 함께 한 제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대제사장 안나스, 가야바의 집 뜰과 빌라도의 관정, 골고다 언덕, 무덤으로 향하는 동안.... 성만찬장의 제자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주의 십자가 곁의 요한을 끝으로.... 주님의 운명 후에는 그 요한 마저도 떠나고 만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디".... 그 고난의 절규가 골고다 언덕을 메아리칠 때....
주의 십자가 곁에까지 따라간 주님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성경에 나타난 사람으로는 겨우 5명에 불과하다(본문25-27).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나를 대신하여 속죄를 이루시기 위해 가신 길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가야할 고난의 길인 것이다. 그 길을 주님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곤욕을 감수하셨다(사53:7)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오늘 이 시간 우리 각자는 자신을 돌아보야한다. 그 날,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내가 주를 따르는....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하였다(마26:35)"....
모든 제자들이 "죽기까지 따르오리"라고 주님 앞에서 신앙고백을 하며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고백과 다짐은....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勿論(물론) 주님은 이를 아셨기에....
그 주님이 가신 고난의 길은 외로운 길이였고, 죽기를 다짐하던 3년간이나 함께 했던 이들의 버림에서 더 큰 아픔의 고통을 겪으셔야 했다.
이제 성경의 기록을 중심으로....
성만찬장에서 함께 했던 제자들이....
주의 발자취를 어디까지 따르고 있는지를 살펴 보고져 한다.
1. 만찬장 - 가룟 유다.
요한복음 13:30절/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예수님이 왕위에 오르시면 재무 장관은 따 놓은 당상인데....
수난을 예고하시던 주님이 잔을 나누시며....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기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는(마26:29) 결정적 말씀으로.... 예수 왕국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의 실속을 채려 은 30을 챙긴 것이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바로 실속을 챙길 수 있는 데까지.... 주를 따른 것이다.
챙길 이속이 없으면.... 완전 안면 몰수하고 선생까지 팔아먹는 것이다.
2. 겟세마네 동산
①. 8명의 제자-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동참치 못함
②. 3명의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 겟세마네 동산 기도에 동참했으나 잠자다.
겟세마네 동산 기도 후....
주님이 체포당하심, 여기에서 제자들이 다 도망치게 된다(마26:56).
베드로는 멀찍이(마26:58), 요한은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로(요18:15) 그 집 뜰에 들어갔다.
주님이 잡히시던 그 밤에....
체포되시는 그 모습에 두려움과 공포로.... 줄행랑을 친 제자들도 있고,
베드로처럼.... 인간적 대응으로 칼을 막 휘두르는 제자도 있었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베드로, 요한을 제외한 9명의 제자는 여기까지 주를 따르고, 도망을 친 것이다.
고난을, 환난을, 핍박을 겪어 보기도 전에.... 두려움과 공포에 싸여 줄행랑을 쳤다.
3. 제사장의 뜰
마태복음 26:75절/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주님의 그 말씀대로.... 베드로는 "죽기까지 따르오리"의 신앙고백, 다짐과는 달리....
조그만 계집 아이 앞에서 주를 부인, 욕하고, 저주하는.... 실로 엄청난 자신의 모습에 놀라게 되고.... 통곡하게 된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죽기까지 따르오리".... 베드로의 신앙고백, 다짐이 참으로 무용지물임을 보게 된다.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이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내 신앙고백, 내 결심과는 달리....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내 삶의 모습에서....
통곡의 울부짖음이 있게 됨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 나약한 내 모습을 확인한 순간....
가룟 유다처럼.... 그 고통을 죽음으로 잊으려는 사람이 있고,
베드로처럼....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통회하며, 철저한 실패자의 모습으로 다시 그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여기서 우리 모두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철저한 실패자의 모습.... 주님은 이미 다 아시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는 분임을 꼭 기억해야 한다(눅22:32).
4.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
요한복음 19:25-27절/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사랑하시는 제자"....
사도 요한이다. 그는 제자 중 가장 나이 어린 제자이다.
성만찬장에서 주의 품에 의지하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냐고 묻던 제자이다(요21:20).
또한 주를 운명하시기까지 따랐던 제자이다. 제자들 중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까지 주의 발자취를 따른.... 마지막 제자가 된다.
"모친,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
3명의 마리아와 살로매.... 4명이다. 이모인 살로매는 세베대의 아내로 야고보, 요한의 어머니이다. 다시 말해서 요한과 예수님은 이종4촌이 된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남자 제자들과는 달리.... 여자 제자들이 오히려 많이, 그리고 더 멀리 주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 성경의 기록으로만 살핀다면.... 별다른 할 일도 없는 여자 제자들이다.
남녀 제자를....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구분한다면.... 목회자와 평신도로 구별이 될 것이다.
12제자.... 참으로 대단한 존재이다. 그러나, 주의 발자취를 따르는.... 신앙고백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오히려 여자 평신도들이 더 고백적인 삶을 살았다.
5. 무덤
요한복음 19:41-42절/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새 무덤"....
이 무덤은 아리마대 요셉 자신의 무덤이다. 요셉은 부자로 자신의 무덤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 바위를 파서 만든 것이다(마27:60).
①. 아리마대 요셉
요한복음 19:38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그는 부자요, 예수의 제자이다(마27:57).
또한 존귀한 공회원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이다(막15:43).
마가복음 15:43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당돌히"....
톨마오(tolmaw)란 단어.... "위험을 무릅쓰다, 용기를 내다, 대담하다"의 뜻.
"두려워하여 은휘"하는 모습과 대조된다(요19:38). 겁이나 숨어 있던 그가.... 주의 시신을 거두는 문제는 공회원인 자기의 몫임을 깨닫고.... 용기를 내어 빌라도를 찾아가 주의 시신을 달라고 했다.
아리마대 요셉 편에서 보면....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낸 것이고....
빌라도 편에서 보면.... 참으로 당돌한 일이다. 나사렛 당으로 몰려 죽을 일이기 때문이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주의 12제자들처럼.... 성만찬장에 함께 할 정도로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저들은 사도의 반열에 서는 참으로 대단한 존재들이지만 요셉은 그렇지 못했다.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은 주님 앞에서 충성 다짐을 하는 대단한 결의를 보인 신앙고백자들이다.
그러나, 요셉의 그런 모습은 성경에 없다. 오히려 "두려워 은휘하고 있는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회 앞에서 떠벌리며 고백하는 자들의 신앙만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비록 "두려워 숨을 정도"로.... 볼품 없는 신앙이지만.... 그 신앙 속에도 위대한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이.... "
이것이 반복되며 뒤로 물러가기만 한다면 침륜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의 선택에서 빗나가지 않으면.... 요한까지도 떠나버린 그 곳에까지 주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게 된다.
②. 니고데모
요한복음 19:39절/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예수께 밤에 나왔던 니고데모"....
그는 공회원이다. 그러므로 남들 몰래 주님을 찾아왔다.
예수를 시인하면 출교를 결의한 시국이니, 남 몰래 주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러던 니고데모가 몰약과 향품을 가져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부족함이 없게 장례를 치루게 되었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남의 눈을 피해서 겨우 주를 찾는 니고데모....
오늘 우리 주위에도 많다. 부모, 부부, 자식의 눈을 피해.... 주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 사람의 눈에 보기엔 젖이나 먹는 어린 아이의 믿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의 니고데모가.... 모든 제자들이 다 떠나간 그 자리에서....
주의 시신에 향품을 넣어....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부족함이 없게 장례를 치루게 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믿음이지만....
있으나 마나 한 그런 사람들의 믿음 속에도 모든 제자들이 감당 못한 믿음의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③.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마가복음 15:47절/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두 마리아"....
성경의 기록대로 추정을 한다면....
주님의 운명을 지켜본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실신 상태로 이모와 요한이 모시고 간 것이다. 그래서, 주의 십자가 곁에 있었던 5명 중 2명의 마리아만 남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이속을 챙길 수 있는 자리까지의 가룟 유다의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있습니다.
주께서 잡히시던 그 밤에 도망쳐버린 9명의 제자들의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있습니다.
제사장 뜰까지 좇은 베드로의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있습니다.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까지 좇은 요한과 모친과 이모의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있습니다.
마지막 무덤까지 좇은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 막달라 마리아,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의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있습니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과연 나의.... "주의 발자취를 따름"은 어디까지일까요....
우리 모두 이 고난 주간에 자기 자신을 한 번 살펴봅시다.
세상에 있는 나를 사랑하시되....
십자가에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주님....
나를 대신하여 대속의 속죄 제물이 되신 주님....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만의 대답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신앙고백이요, 다짐이었습니다. 과연 나는 어디까지 주를 좇을 수 있을까요....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그 "주의 발자취를 따름"은.... 신분의 고하도, 직분의 문제도, 남녀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누가 얼마만큼 "주를 사랑하는가"의 문제이었습니다. 또 얼마나 최후 선택에서 올바르게 하느냐의 문제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겁쟁이 믿음이요,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다니는 믿음이지만....
그러나, 그 믿음이 무덤까지 주를 좇는 아름다운 결실을 이루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눈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은 당신의 양떼를 먹이고 칠 사람으로.... "사랑하느냐"로 그 기준을 삼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
나의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디까지일까요....
이 말은 곧 내가 얼마만큼 "주를 사랑하느냐"가 될 것입니다.
이번 고난 주간을 지나며....
우리 모두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어디까지 주를 따르는지, 얼마만큼 주를 사랑하는지....
저의 경험으로는.... 참으로 묘하게도 고난 주간에 씰랭이거리가 생기더군요.
악에게 지지 아니하고, 선으로서 악을 이기는....
승리의 삶이.... 이번 고난 주간에 주를 따르는 여러분의 자국마다에 쌓여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