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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아!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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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일이면 부활절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매년 설교할 때마다 부담스러
운 날은 오늘입니다. 부활절 전에 반드시 십자가를 설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십자가에 대한 설교는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십자가 본질 자체가 역설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죄인들이 쓰는 형틀이면서 구원의 도구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 존재자체도 다양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또 어떤 분은 매일 예수님 언제 오시나 재림만 기다립니다.
같은 예수님을 믿어도 다릅니다.
그러나 시작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출발입니다. 부활도 십자가를 통과해야 합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기적도 장난입니다. 부활도 우화입니다. 재림하신다는 예수님! 만화이야기입니다.
즉 십자가가 기초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애매하고 중요한 십자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참 어렵습니다.
오늘 저는 십자가를 만나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놓으신 한 분의 집사님의 글을 읽으려고 합
니다. 함께 많은 은혜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저는 아주 평범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아니 크리스천이란 말을 하기에는 부끄러운 신앙 인이었다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일요일에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교회에 끌려 다니는 것이 제 신앙 생활
의 전부였으니까요.
제가 교회에 디닌지는 오래되었지만 그 동안에 세례도 받고 집사라는 직분도 얻었지요
그러나 세례 받을 때 구주를 영접하겠다고 입술로 시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에 대
해 의심을 하였고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든지 제가 확신을 갖지 못하면 온전히 행하지 못하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에 구원에 대
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저로서는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으며 목사님 얼
굴을 보는 것 조차도 많은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되도록 핑계를 대어 예배에 빠지려고 노력했습
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지켜보던 제 아내는 저의 믿음을 세워달라고 간곡히 기도를 드렸고 특히 초등학교3
학년인 딸 한나와 아내의 2주간의 새벽기도 때문인지 제 마음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온전하게 믿음생활을 해보자 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교회도 옮기자고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같은 동네에서 교회를 옮긴다는 것 그
것도 10년 동안 다닌 교회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야 신앙생활을 소홀히 해서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아내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
므로 많은 고민을 하게되었지요.
하지만 저는 고집을 부려 교회를 옮기지 않으면 절대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자신이
이뤄놓은 것 보다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아내는 저의 제안에 동의하게 되었고
새로운 신앙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일 예배와 찬양예배는 될 수 있으면 꼭 참석하겠다고 아내와
약속하였기에 예배에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
그 시점에서 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믿음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는 주님 저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제 안에 주님이 거하셔서
저를 제어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만 되풀이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저녁 찬양예배 시간에 찬양을 부르면서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콧
물까지 흘렸습니다.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아내가 기쁜 어조로" 한나 아빠 은혜받았다" 고 하면서 무
척 좋아했습니다. 아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저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찬양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지만 제가 눈물을 흘릴 줄이야
이러한 참으로 놀라운 현상을 경험하고 나니 마음속에 잔잔한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2월 마지막 주 “십자가가 밥 먹여준다” 라는 제목의 목사님 설교 중에서 제가 가장 갈급해
하던 구원의 확신을 얻게되었습니다.
스미스라는 사람이 아들을 희생하고 1200명 승객의 목숨을 건진 사건 - 여기서 저는 순간 아! 바로
그것이다. 내가 이제껏 의심하고 확신을 갖지 못한 것이 한번에 해결되다니 목사님 감사합니다. 저 이
제 구원을 알겠어요 이제는 믿음을 확고히 할 수 있어요 하고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제까
지 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과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치 열차에
탄 사람이 아무 일 없이 다리를 건넌 것처럼) 정말 정말 명쾌한 비유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몇 일의 시간이 지나고 확신반 첫날에 신앙의 기초가 되며 가장 중요한 구원의 확신을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진정 마음속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다시 태어난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저에겐 얼마나 소
중한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요즈음 제 아내가 저를 보면 얼굴이 예전과 달라 보인다고 합니다.
예전에 뭔가에 눌리고 쪼들리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밝고 웃는 얼굴로 변했다고요
저도 약간은 내가 변해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임하게 되고 아내와 대화도
많아지게 되더라구요 (전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편이라 아내와 별로 대화를 하지 않았음-아내의 가장
큰 불만) 그리고 아내와의 대화 중에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니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니 하는 신앙적인 말이 많이
나오게 되고요.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니까 일도 잘 풀리는 것 같아요 .
요즘 저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신앙의 초기인데 이 정도이니 믿음이 성숙되고 정말 그리스도의 향기
가 느껴질 정도의 신앙이 성숙되면 그 기쁨은 얼마나 클까요
오랫동안 신앙의 방황을 확신으로 깨워주신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또한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신 연동교회 남성 셀 여러분 정말 감사하고, 묵묵히 나의 믿음을 위해
기도해준 아내(김선영) 에게 정말로 사랑한다고 전하면서 할렐루야 !!!!!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는 경험할 때 아는 것입니다..
그 경험은 어떻게 해야 압니까 노력해야 합니다. 구원을 경험하는 것을 노력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더 알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십자가를 오해하고 계십니다.
저도 십자가에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예전에 자치기라고 하는 놀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조그만 나무를 올려놓고 긴 나무로 멀리 치는 놀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십자가 모양을 때렸다고 저희 어머니에게 얼마나 혼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보면 놀랩니다.
가수 조영남씨도 그랬다고 그랍니다. 동신 교회를 다녔는데 고난주간에 찬양을 했다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목소리가 멋있습니까
"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즐겁게 웃으면서 부르다가 장로님들에게 엄청나게 혼났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사실 십자가는 기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성경도 증명합니다. 복음서에 부활, 재림이야기, 십자가 어떤 것이 많이 쓰였습니까
사실 성경의 3분의 1이 십자가 이야기입니다.
복음서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바울도 복음을 이야기 할 때마다 십자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원래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형틀이었습니다.
그런데 4세기 경 콘스탄틴 대제가 환상 중에 십자가를 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십자가가 있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십자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모태신앙을 가진 분! 참 불쌍한 분들입니다. 믿음 생활하기 어렵습니다.
십자가 설명은 잘합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의미를 알지 못해요,
참 힘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은혜 받고 있을 때" 나도 왕년에 해봤어" 눈만 뜨고 있습니
다. 어! 다음주에 계란 받아야지! 다 압니다.
그러나 다행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언제가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모님의 눈물의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확신반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믿는 분이 복음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된 묵은 닭이 알을 낳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일인지 모릅니다.
참 놀라운 것은 토요일 남자들이 모이는데요. 개인적으로 구원의 확신을 물어 보거든요.
그런데 남자 분들이 아멘 아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준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저는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놀랍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십자가라고 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
사실 예수님을 만나는 상황이 다릅니다. 나이도 성별도 다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고백이 같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구나! 그렇구나!" 바로 십자가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찬송가 141장을 불러 봅시다. "왠말인가 나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신앙은 출발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그 십자가에 달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관심이 항상 마음에 크게 작용합니까
과연 여러분은 그런 갈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장소가 문제입니다.
여전히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처럼 십자가에 가까이 있어야 합니
다. 그래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모른다면 십자가에
가까이 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십자가가 중요할까요
1. 고통의 대가를 지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믿으십니까 그래요 그런데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죄를 지불하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고통입니다.
고통을 대신 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과연 무엇입니까 바로 내 고통을 대신 진 표
상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당해야 할 고통을 아십니다. 그래서 대신 지신 것입니다.
23절을 보시면 로마 군병들이 예수를 어떻게 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몇 년 전에 전자 침을 맞아 본적이 있습니다. 침을 꽂아 놓고 전기를 통하게 하는 것입니
다. 그것도 얼마나 아픈지. 그때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나를 위
해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셨을까 주님께서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나는 더욱 자유로와 지
기 때문에 고생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고통에 대하여 다윗은 시편에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나는 물같이 쏟아졌습니다. 내 모
든 뼈는 다 어그러졌습니다. 내 마음은 촛밀 같이 녹아 내렸습니다. 내 힘은 질그릇 같이 말
랐습니다. 내 혀는 이틀에 붙었습니다. '(시22:14) 더 이상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십
자가의 그 고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고
통을 감수해야 했습니까 그것은 내가 받을 고통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왜 찔렸습니까 예수님이 왜 상했습니까 예수님이 왜 징계를 받았습니까 내가
받아야 될 징계입니다. 내가 받아야 될 고통입니다. 내가 받아야 될 아픔입니다. 이 모든 것
을 예수님이 대신 져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우리가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로 십자가는 우리의 수치를 담당한 대가 지불입니다.
23절을 보세요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취하여서 네 깃으로 나누었다. '고 했습니다. 발가벗
겼습니다. 수치심을 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수치심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매질
을 당했습니다. 얼굴엔 사람들이 뱉은 가래침이 묻고, 뺨을 맞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나
중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발가벗겨져서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이
것이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그때 주님의 모습은 그랬습니다. '나는 벌레요 나는 사람이 아니
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시22:6)
왜 이렇게 수치를 예수님이 당하셔야 했습니까 죄는 수치심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셨습니다. 이것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먹게되
면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먹고 죽었습니까 아니요 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히려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벗은 몸을 보게 된 것입니
다. 그리고 그 수치심 때문에 숨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아이가 태어나면 얼마나 잘해줍니까 기죽을까봐 애를 씁니다.
그런데 애는 어떻습니까 점차 수치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 창피하고 두려워요.
결국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수치심을 없앤 것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마귀는 수치심을 갖게 만듭니다. 교회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수치심을 갖게 만듭니다.
어떻게 니가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느냐 그런 마음을 갖게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고 나면 얼굴이 두꺼워 지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얼굴이 두꺼워 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말씀 드렸지만 저는 부끄럼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학교에서 손들고 질문을 했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면 가슴이 쿵쿵 뛰어 견딜 수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선생님에 대해서는 제가 정복하지 않았
습니까 저희교회 선생님이 참 많습니다. 이상하게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율전 초등학교 신우회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선생님출신과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복음을 만나고 나서 제가 확실히 변한 것은 수치심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전철에서 전도를 한적도 많습니다. 시골에서 할머니들에게 걸인 전도도 해보았습니다.
너무나도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 때문입니다.
자! 성도 여러분! 저를 따라 해보세요. 뻔뻔해지자.
예!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수치심이 우리의 수치심을 해방시켰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셋째 십자가는 우리를 위해 다 이루신 곳입니다.
30절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
고 영원히 돌아가시니라. ' '다 이루었다 하시고'는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구약의 말씀을 다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주기 위해 끝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가 완성입니다. 그곳으로 나가면 됩니다.
한평생 맹인으로 살았던 분이 계십니다. 찬송가를 많이 쓴 패니 크로스비입니다. 그의 가사
가 496장에 써있습니다.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거기 흘린 보혈로 정케 하옵소서. '
작가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십자가에 가서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찬송이 이어집니다.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 내가 왜 죄인이라고 하는지 마음에 와 닿지 않죠 십자가에 가까이 와봐야 압
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펴놓고 십자가의 길을 한 번 따라가 보십시오.
금주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십자가에 가까이 하는 것은 여러분
의 몫입니다. 십자가 아래서 예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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