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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본문

성경에서 우리가 만나는 빌라도는 그리 악한 사람으로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는 어찌하든지 고소당하고 계신 예수님을 살려 보려고 애를 쓴 사람으로 보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아 빌라도 앞에 끌고왔습니다. 그들은 세가지 죄목을 붙여 예수님을 고소합니다.
 첫째는 성전을 헐면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는 등의 이상한 말로 백성을 미혹케 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세를 내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거짓된 고소였으며 셋째는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범죄 여부를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법적 심판의 결과에 의하면 예수님은 전혀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무죄하심을 선언합니다.
18:38"...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19:6"....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19:12"...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
그는 예수님에 대한 심판의 무거운 짐을 벗어 보려고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내기도 했고, 유월절이면 죄수 중 하나를 방면하는 것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풀어 주려고도 했으며 ,그래도 안되자 예수님을 데려다 채찍질하고 가시 면류관을 씌운 후 그 비참한 모습을 유대인들에게 보게 함으로 예수님에 대한 동정심이 일어나게 해 보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모든 시도는 결국 헛것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으로 이상한 것은 왜 빌라도가 이처럼 예수님을 살려 보려고 애를 썼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는 결코 식민지의 한 인물을 위해 이렇게 까지 노력할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는 매우 천박하고 성질이 난폭하며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조심성이 없이 문제를 많이 야기시키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글라디오라는 아구스도의 외손녀와 결혼을 함으로 단순한 스페인 용병의 신분에서 이처럼 유대총독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이르게 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이전 총독들이 유대인들의 종교적 감성을 건드리지 않으려 애를 쓴 것과는 달리 사사건건 유대인들과 부딪힘으로 초기부터 유대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물이 어찌된 영문인지 예수님에 대하여 이토록 호의적이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에게 유대인들은 그저 하찮은 자들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그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된 동기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요
한 세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1. 그는 본래 성격이 이 세상의 일반 역사가들이 설명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고상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 총독으로 더 고상하게 보고 싶어해야 할 쪽은 성경의 기자들이기 보다는 세상의 일반 역사가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옳을 수 없어 보입니다.
2. 예수님을 만난 빌라도가 예수님께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매우 그럴듯한 설명입니다. 그리스도의 면전에 선 인생이 어찌 그분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도 그가 그토록 예수님을 방면시키려 했던 주된 이유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3. 자기 아내 글리디오가 예수님을 심문하던 그 날 아침 자신이 꾼 꿈을 가지고 심각하게 경고를 한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합당한 설명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오늘날 꿈을 믿고 그랬을 것이라고 한다면 이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시는 많은 미신이 온 나라 안에 가득차 있던 시절입니다.
그의 아내인 글라디오는 빌라도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마27:19"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빌라도의 처가 어떤 꿈을 꾸었나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해 내려 오는 이야기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소리질러대는 통에 진땀을 빼는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하지요 만일 그런 꿈이었다고 한다면 영락없이 사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도신경이 얼마나 오랜 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외어지고 있습니까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고백되어 졌고 앞으로도 계속하여 주님 오실 날 까지 이것은 변함없이 고백되어질 것입니다. 그는 자기 아내가 준 충고를 끝까지 이행하지 못한 연고로 세상이 다시 없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그토록 살리고 싶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지울 수 없는 죄를 지은 자로 정죄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예수님 보다 자신의 정치적 명예와 성공을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하자 유대인들이 소리지릅니다.
19:12"....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놓게 됩니다. 결국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정치적 명예와 성공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살기 위하여 그는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자신이 하는 행위가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 주님을 죽이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행위는 그의 영원한 죽음을 초래하고 말았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빌라도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1. 신앙의 문제에 있어 중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성공이, 물질이 ,명예가 더욱 더 소중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예수님을 떠나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죄인들이 편에 서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편에 서지 않는다면 반드시 우리는 예수님을 해치는 자리에 서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자리가 어디입니까 중간이시라고요 믿음에 있어서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속히 주님의 편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2. 갑작스런 결단의 순간,선택의 순간이 있음을 알고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어제와 같이 시작된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 하루가 빌라도에게 그토록 중요한 날이 될 줄 그 자신도 몰랐습니다. 그의 한 순간의 선택이 그의 생 전체를 평가하게 될 줄 그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빌라도의 선택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고 그는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치욕적인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빌라도의 선택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이 책임을 회피하기로 한 것입니다. 자신은 이 순간 아무 역할도 하지 않기로 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판결하지 않고 군중들로 판결을 하게 합니다. 이 역사적 자리에서 도망치기 위함입니다. 그는 자신의 손을 씯었습니다.
"나는 이 무죄한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그는 손을 씻으며 선언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씻었다고 할지라도 그의 죄악이 사라질 수 없었습니다. 손을 천번 만번 씻는다 할지라도 그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마음에는 끊임없이 다음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는 결국 아무 일도 행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말았음을 봅니다.
그러나 진정 그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었습니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어 보십시오.
19:10"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그의 입이 그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모든 책임은 바로 빌라도 너에게 있다고..... "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에 대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큰 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예수를 어떻게 하랴"하며 그저 고민하면서 그를 만나보기도 하지만 다시 세상의 눈치가 보이는 이런 식의 삶에 대하여 성경은 결코 바르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선택을 요구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세상 것을 잃더라도 예수를 믿으므로 영생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세상 것으로 만족하고 살 것인가
만일 여러분이 빌라도의 입장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 그 선택의 문제를 곰곰히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이 예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빌라도에게 이것이 그 날 그의 가장 중요한 선택이 되었듯이 오늘 이 시간 이것이 여러분에게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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