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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예수께서 마신 고난의 잔

본문

이제 앞으로 3주 후에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묵상하게 되는 수난 주간을 맞게 됩니다.
다락방에서 제자들을 앞에 놓고 마지막 기도를 해 주신 주님께서는
이제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 城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절기와 시간 上으로는
보름달이 휘황 찬란하게 사방을 비추고 있는 4월 초순의 밤이었습니다.
성벽을 따라 기드론 시내로 내려가는 비탈길을
달빛을 밟아가면서 예수님과 열 한 제자가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기드론 시내라는 조그마한 개천이 하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과 감람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조그마한 개천입니다.
그곳으로 예수님께서는 내려 가셔서
서편 비탈에 자리잡고 있는 겟세마네 동산이라는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자주 습관적으로 들리셨는데,
낮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시다가
저녁이면 그곳에 오셔서 쉬기도 하시고, 기도하신 곳이라고
누가복음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때는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 곳곳에서 수 십만 명도 더 되는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어린양을 끌고 와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자신의 죄와 나라의 죄를 그 어린양에게 짊어지우고,
성전 단 위에서 잡아 가지고 피를 흘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 지내는 어마어마한 행사입니다.
어떤 기록에 보면,
256,000 마리의 양이 한 번에 희생을 당했다고 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대단한 숫자의 양을 잡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양을 잡아서 흘러내리는 피를
하수가 받아서 내려보내는 곳이 이 기드론 시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는 그 시간쯤에는,
아마 검붉은 피가 섞인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달빛에 비쳐 보였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이제 날이 새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될 것이고,
그가 흘린 의로운 피가
짐승의 피를 대신해서 아마 기드론 시내로 흘러내려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짐승을 가지고 드리는 제사는 완전히 끝나고,
영원하고 온전한 제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대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 대 역사를 몇 시간 앞두고,
그 기드론 시내를 건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의 고난의 길에 발을 들여놓으셨습니다.
그 길은
너무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슬픔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걸어가는 그 길, 자기가 당해야 되는 그 고난을 일컬어서
잔이라고 하는 말을 사용합니다.
11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이라고 말을 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 잔은
주로 고난의 잔, 슬픔의 잔, 혹은 저주의 잔을 많이 상징합니다.
지금 주님이
십자가를 져야되는 고난의 잔을 목전에 두고 계셨기 때문에
이 잔을 마시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꼭 해야 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였습니다.
기도로 준비하지 아니하면, 도무지 이 잔을 마실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마태, 마가, 누가를 통해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어떻게 기도하셨는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2:42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 번이나 엎드려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런 내용으로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더욱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니까,
땀방울이 피가 섞여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아무리 힘들게 기도했다 하더라도
아마 이런 기도를 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어느 누구도 땀방울이 피가 되도록 기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인간으로써의 예수님으로는
자기 앞에 있는 십자가의 고통, 그 잔을 마실려고 하니,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쓴잔이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이 임할 때까지
땀이 피가 되도록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여러분!
겟세마네라는 말의 뜻은 기름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감람나무 열매를 따 가지고 그 틀에 넣어 짜면 올리브유가 나오는데,
아마 그런 기름틀 집이 그 동산에 있었나 봐요.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한 번 보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십자가의 잔을 마실려고
그 몸이 으깨지도록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모습을 우리가 봅니다.
고난의 잔, 저주의 잔, 심판의 잔,
그 잔을 내 대신 마시기 위해,
주님은 기름틀에서 깨지는 올리브 열매처럼
온 몸을 던져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이렇게 밤새워가며 기도하셨던 주님은
드디어 그 잔을 고스란히 다 마셨는데,
그러면 이 기도 후에
예수님은 그 잔을 어떻게 마셨는가를 오늘 생각해 보려 합니다.

I. 먼저 예수님은 자기가 마셔야 할 잔을 기꺼이 마셨습니다.
기꺼이라는 말은
"기쁜 마음으로 마셨다" 또는 "자원해서 마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자기를 배신하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접촉을 하고,
이미 자기를 잡기 위해서 행동에 옮기고 있는 것을
환희 내다보고 계셨어요.
예수님은 오래 전부터
가룟 유다가 그런 일을 할 것을 알고 계셨는데,
만약에 자기가 이 죽음을 피하기를 원했다면,
절대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오시지 않았겠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죽음을 원치 않으셨다면,
가룟 유다가 빤히 알고 있는 곳으로 오실 리가 없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기꺼이 죽으실 준비를 갖추고
가룟 유다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드디어 가룟 유다가 군인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무리 보름달이 환히 비취는 밤이라고 할지라도
그 잎사귀 짙은 올리브 나무가 가리고 있는 그늘에서는
누가 누군지, 금방 분별하기가 어렵겠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지금이라도
자기 몸을 숨긴다든지, 피하기를 원했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자기를 잡으러 온 군인들 앞으로 나서시면서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니까 로마 군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습니다"
"내로라!" 그러자,
군병들이 얼떨결에 뒷걸음을 치더니,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여러분!
이거는 참 놀라운 하나의 사건입니다.
그들이 어째서 엎드려 가지고 일어나지를 못했을까
저들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범하게 나올 줄을
미쳐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당한 충격이었을까요
예, 물론 그런 면도 없잖아 있겠습니다만,
그것 보다는 예수님께서 "내로라!"하고 대답하셨을 때
여호와 하나님으로써 영광이
그 악한 사람들의 마음에 비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로라!"하는 말은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내로라!" 한 말은 I am who I am. 인데,
"바로 나다!"하는 이 말은
예수께서는 자기가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을 듣는 순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그 악한 자들의 마음 속에 비치었어요.
그러므로 그들이 그 영광 앞에 꼬꾸라지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요
어느 누가 감히
예수님의 영광과 여호와 하나님 되심의 권세 앞에서
뻣뻣하게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그 분은 바다를 잔잔케 하신 권세, 죽은 자를 살리신 권세,
이 땅의 어두움 권세를 몰아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 영광과 그 권세를 다 가진 분이 신데,
그 영광이 조금이라도 들어 나기만 한다면,
그 어떤 인간도 그 앞에 뻣뻣하게 서서 그를 대면할 수가 없지요
비록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윤곽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내로라!"하실 때에
그 말씀 속에, 그 모습 속에, 그 얼굴에
여호와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들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만약에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기를 원하셨다면,
"내로라!"하시는 그 한 마디에 쓰러지는 그 사람들을 처리 못했겠어요
또 예수님 말씀대로
하늘에 있는 열 두 군단도 더 되는 그 천사들을 불러서
그 원수들을 주님께서 쫓아버리지 못했겠습니까
그 죽음을 피할 수가 없었을까요
얼마든지 다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영광과 권세를 사용하지 아니하셨으며,
자기가 불러올 수 있는 천사도 동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요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고자 하시는 사랑에 불타고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그 잔을 마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체포 당했습니다.
여러분!
엄밀하게 따지면, 예수님을 체포하고, 예수님을 죽인 사람은
가룟 유다도 아니고, 빌라도도 아니고, 대제사장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체포한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요.
예수님을 죽인 자도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기꺼이 자기 생명을 내놓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를 던져서 잡히게 하셨고,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몇 일 전부터 예수님께서 행하신 행동을 한 번 보세요.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timing에 자기의 죽음을 맞추기 위해서
굉장히 위험한 행동을 과감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이 어린양을 끌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그 날에 맞추어서
자신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하고 그를 환영했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죽음을 부르는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유월절 맞아 가지고,
한 번 큰 대목을 보겠다는 장사꾼들을 전부 쫓아냈어요.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그 당시 대제사장의 돈줄이었는데,
그 돈줄을 다 쫓아냈으니, 얼마나 위험한 행동입니까
이렇게 위험한 행동을 하신 이유가 뭡니까
기꺼이 자기 생명을 우리 위해 내놓기 위해서였습니다.
요한복음 10:11,18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목숨을 빼앗기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기꺼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다시 말씀합니다.
"내 목숨을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느니라"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저주와 심판의 잔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마시는 이 잔은
억지로 마시는 것 아니야!
너를 위해 기꺼이 마시는 거야!
너를 살리기 위해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나는 마시기를 원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오늘 날에 와서는 우리 모두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런 말씀을 들어도
전혀 남의 말처럼 들리는 캄캄한 심령을 갖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밝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저주, 우리의 심판을 홀로 당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기 생명을 내놓고, 그 고난의 잔을 마신 주님,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이 잔을 기꺼이 마시노라" 고 하시는 그 음성을
여러분이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예수님은 이 잔을 혼자서 마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혼자서 그 잔을 다 마셨어요.
세상 모든 인류의 죄를 질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구원자로 지명하여 보내신 분은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죄를 다 씻어내기 위해서 피를 흘릴 수 있는 자격자는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일컬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외아들이라고 합니다. 독생자라고 합니다.
오직 그 분만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잔, 저주의 잔, 심판의 잔을 마실 수 있습니다.
아무도 그 잔을 대신 마시거나 함께 나누어 마실 수 없는 잔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마 이 잔을 자기도 좀 나누어 마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자기가 예수님을 좀 거들어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자기가 제자 중에 제일 대표가 되는 사람으로써
어떻게 내가 예수님 혼자
그 잔을 마시도록 내버려 둘 것이냐 하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누가복음 22:33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가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가 대뜸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가고,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왜 예수님 혼자 갑니까 나도 따라 가요!
예수님이 마시는 잔 나도 좀 같이 마시겠습니다"
베드로는 아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봐요.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는 어려운 위기를 만나자
자기도 모르게 칼을 뽑아 가지고 함부로 휘둘렀지요
예수님은 이제 드디어 그 잔을 마실 순간을 맞으시는데,
그렇게 됐다면,
베드로 자신도 기꺼이 같이 따라 가서 함께 마셔야 했는데,
그런데 베드로 자기도 따라서 마시기는 고사하고,
예수님이 마시려는 것까지 가로막고 나서는 꼴이 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나무랐지요
"칼을 집에 꽂아라!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그러고는 순순히 잡히시는 주님을 보고는
제자들은 다 도망갔어요. 베드로도 도망갔어요. 다 도망갔어요.
이 때 다른 제자들은 어딘가 다 도망가서 완전히 숨어버렸는데,
그러나 도망을 가던 베드로는
아무래도 양심상 그대로 도망갈 수가 없어요.
"다른 제자는 다 도망가고 안 나타날지 몰라도
나만이라도 그래도 주님 곁에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고는
도망가다가는 다시 돌아왔어요.
그리고는 체포되어서 끌려가는 예수님의 뒤를 멀직하니 따라 갔습니다.
가 가지고, 바로 옆에서,
예수님이 심문을 당하는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
예수님을 심문하는 소리를 다 듣고 있습니다.
마당에는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거기에 앉아서 불을 쬐고 있었어요.
그 때 누군가 와서 베드로의 얼굴을 찬찬히 보더니,
"아니, 아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본 얼굴인데,
당신도 나사렛 예수의 제자가 아닌가" 이렇게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너무나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그는 "아니라"고 부인했지요
베드로는 무려 세 번이나 거듭해서 그런 추궁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마지막에는 너무 급하니까,
맹세하고 저주하면서 "아니라"고 했습니다.
맹세하고 저주하면서 까지 아니라고 하는 베드로의 그 모습에서
우리가 뭐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아무도 예수님의 잔을 나누어 마실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대목입니다.
물론 베드로의 가슴에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어요. 의리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위험을 무릎쓰고
예수님이 심문 당하는 옆자리까지 왔었습니다만,
그러나 그 잔은
베드로가 마실 수가 없어요.
예수님 만이 마시는 잔입니다.
제자들도 그 잔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마시는 잔이요,
그것은 저주의 잔이요, 심판의 잔이요,
그것은 어느 인간도 대신할 수 없는 잔이에요.
우리가 가끔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과 그 어린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과 그 어린양께 있도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의 잔을 대신 마셔야 되는,
홀로 마셔야 되는 유일하신 우리의 구원자 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잔은 나 혼자 마셔야 돼! 네가 거들려고 해도 안 돼!
너의 죄를 용서받을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잔을 혼자 마시는 것으로 만족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에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죄를 다 용서 받게 하시기 위해
우리 주님이 홀로 이 잔을 다 마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세 번째 예수님은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이 잔을 마셨습니다.
예수님은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이 잔을 고스란히 다 마셨어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일 처음으로 끌려간 곳은
안나스라고 하는 대제사장 집으로 끌려갔습니다.
이 안나스는 정말로 악질적인 인간입니다.
우리 나라로 말하면 매국노나 똑 같은 놈이에요.
그 당시 이스라엘 나라는 로마 제국의 속국이었습니다.
자기 민족을 배경으로 하고, / 또 로마 제국에 아부해 가지고
대제사장 직을 얻어냈어요.
안나스라는 사람이 9년 동안 대제사장직을 가지고 행사를 하면서
그 9년 동안
자기 네 아들들도 다 대제사장을 만들고,
자기 사위도 대제사장으로 만들어 가지고
못된 짓을 다 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것을 허용해 주고서는
뒷거래로 부정축재하고, 이러는 아주 못 된 사람인데,
종당에는 어떻게 황제의 눈에 벗어났는지
그나마 면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제사장직을
자기 사위 되는 가야바가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안나스 이 사람은 면직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한 예수님을
먼저 안나스에게로 데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아마 자기에게로 데리고 오라 그랬나 봐요.
사실은 그렇게 할 권리도 없는 사람이
예수님을 불러 가지고 심문을 할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비공식 청문회지요
이것은 유대나라 법에 의해서 봐도 불법입니다.
자기가 불법적으로 청문회를 주도할려고 하니, 그게 잘 됩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서
자기 사위되는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그를 호송시켰습니다.
예수님이 가야바에게로 끌려갔습니다.
새벽녘인데 가야바는 산헤드린 공의회를 공식으로 소집했습니다.
72명의 공의회원들이 모여서 재판을 열었습니다.
주후 30년 4월 5일, 그 때가 보름이었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날이 밝지도 않은 새벽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재판은 역사상에 남아 있는 유명한 불법 재판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유대나라는 탈무드라는 법전이 있습니다.
그 당시로는 이 법전은
세계에서 재판 절차가 가장 잘 되어 있는 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법전은
인권을 전적으로 존중하는 정신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어요.
그 법전에 의하면,
재판을 열어도 해가 뜨고 나서 열어야 되고,
또 해가 지고 나서는 속개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해가 뜨고, 해가 지기 전
낮 시간에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운 밤의 재판은 공정하다고 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새벽녘에 재판에 붙였으니까,
얼마나 불법적인 재판이요
뿐만 아니라, 유대나라에는 혐의자를 앞에 놓고,
이 사람을
기소하느냐 불기소하느냐 형을 주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증인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증인 두 사람만 정확하게 증언하고 나오며는
그 사람은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두 사람이 와서
"아, 이 사람, 도둑질하는 것, 내가 봤습니다. 예, 얼굴도 똑 같습니다.
맞습니다. 옷도 검은 옷이요, 신발은 바로 샌달, 저런 것 신었습니다.
맞습니다. 음성도 똑 같아요"
두 사람만 정확하게 일치된 증거를 대면,
그 사람은 기소가 되고, 형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증인이 그 재판을 좌우하는 거나 마찬가지요.
그런데, 여러분! 보세요.
예수님이 재판을 받는 모습을 보세요.
저들은 거짓 증인들을 막 동원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동원된 증인들이
이 사람은 이 말을 하고, 저 사람은 저 말을 하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그러나 한 사람도 제대로 신빙 할 만한 증언을 한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내세운 두 증인은
그런 대로 그럴듯한 증거를 내놓는 듯 했습니다.
"아, 우리가 들으니까
예수가 말하기를 예루살렘 성전을 헐어라.
40년 동안 지은 이 성전을 헐어라!
나는 3일 만에 짓겠다고 하는 말을 했습니다.
아, 이거는 마땅히 성전을 모독하는 죄가 아닙니까"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을 보면,
이 두 사람마저도
서로 말이 틀렸어요. 일치가 안 되는 거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기소할 수가 없지요
나중에는 가만히 보니까,
분위기 전체가 예수님의 무혐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야바라는 대제사장이 이제는 안절부절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이 사건을 바로 처리하지 못하면,
자기의 입지가 대단히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고,
그는 위기 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래 가지고 정면 돌파를 시작했습니다.
재판장이 예수님에게 물었어요.
마태복음 26:63에 보면
"내가 너로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지금 재판장이 유도 심문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에게 맹세하고 네 양심상,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렇다면 똑똑히 네 입으로 대답해라" 그 말입니다.
여러분! 원 세상에!
혐의를 받고 있는 당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 가지고
유죄를 선고하려고 시도하는 이런 재판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은 설령 본인의 실토가 있었다 하더라도
본인의 진술 그것만 의존해서 유죄를 선고하는 것은
절대로 합법적인 재판이 성립 안 됩니다.
다른 증거가 있어야지요.
지금 가야바가 유도 심문을 하는 것은 / 이것은 파렴치한 행동입니다.
이건 꼭 뭐와 같으냐 하면, 이런 경우와 흡사합니다.
여러분!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어떤 피고가 지금 재판석에 섰다고 합시다.
아무 물증도 확보하지 못했고, 또 아무 증인도 없지만,
재판장은 "저 놈이 틀림없이 죽였다"하는 심증은 가요.
그런데 증거가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피고!
나는 자네가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네.
그러나 도무지 증거를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네.
그렇지만, 나는 너를 석방할 마음이 추호도 없어.
그러니까, 내가 제발 부탁하는데,
너, 내 앞에서 네가 그 사람을 죽였다고 양심 선언할 수가 없겠나
내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양심 선언 좀 해 줘!"하는 말과
똑 같은 겁니다.
여러분!
세상에 이런 재판이 있을 수 있어요 없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이와 같은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기가 대답함으로 해서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을 빤히 아시면서도
대답을 하셨어요.
마태복음 26:64
"네가 말하였느니라" "내가 하나
님의 아들이니라" 그 말이지요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지금 예수님이 대답하신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고 너희가 나를 죽일 터이지만,
나는 부활해서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때가 되면,
내가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재림할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하자마자,
대제사장이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냐"하면서,
옷을 찢고 법석을 떨고,
결국은 사형을 언도했고,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집단 폭행을 했어요.
여러분!
이런 불법 재판이 어디 있어요
모든 것이 불법이요!
하나에서부터 마지막까지 불법이었습니다.
밤에 재판한 것도 불법이요,
약식으로 처리한 것도 불법이요,
증인도 없으면서 유도 심문을 한 것도 불법이요,
집단 폭행한 것도 불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묵묵히 그 잔을 마셨습니다.
변명도 안 하시고, 항의도 안 하시고, 그 잔을 마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요.
"억울해도 나는 괜찮아!
네가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축복을 누릴 수 있게만 된다면,
나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그 잔을 마시는 주님을 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당하신 이 모든 것은
내가 당할 억울함인데, 주님이 대신 당하셨어요.
우리 손에 있는 죽음의 잔을 빼앗아서 자기가 마신 주님이십니다.
진노의 잔은 자기가 마시고,
축복의 잔은 우리에게 들려주신 주님입니다.
죽음의 잔은 자기가 마시고,
영생의 잔을 우리 손에 들려주신 주님이십니다.
기꺼이 마시고, 홀로 마시고, 억울해도 마시고,
그 잔을 마신 우리 주님이 우리의 구원자 되십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주님의 그 모습을 보면서도
여러분의 마음에 아무런 감격이 없습니까
여러분!
그 놀라운 사랑 앞에 여러분의 가슴이 뜨겁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처럼 내가 마셔야 될 그 쓴 잔을
대신 마셔 주셨다는 사실 앞에 여러분이 얼마나 감격하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마음은 얼음장처럼 굳어있는 가슴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에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그 얼어붙은 냉냉한 가슴을 녹여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마음에는 고민이 생겨야 할 겁니다.
어떤 고민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쓰디쓰고 지독한 잔을
홀로, 기꺼이,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다 마셔 주셨는데,
그렇다면,
나는 내 남은 생을 어떻게 살까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보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에게 기쁨이 되는 삶을 살수 있을까
여러분!
이런 고민 없습니까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주님께 드립니다" 하고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런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해서 구원받은 존재인데, 되는대로 세상을 삽니까
어떻게 하면 될까
어떻게 하면 주님께 조금이라도 이 은혜를 보답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아직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분 계십니까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
내 대신 쓴잔, 고통의 잔, 저주의 잔을 마셨다"는 말씀이
아직도 마음에 잘 들어오지 아니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시간, 여러분에게 말씀 드립니다.
예수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끝까지 예수 믿지 아니하면,
주님이 마신 그 저주의 잔을 여러분이 결국은 마셔야 됩니다.
주님이 마신 그 심판의 잔을 여러분이 반드시 마셔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결국은 영원히 망합니다.
그러므로
내 대신 그 잔을 마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 분을 여러분의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사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이런 놀라운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고난 주간에는
우리 모두가
나 위해 죽어주신 주님을 기념하면서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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