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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고난의 의미

본문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과거 출애굽 구원사역을 이루신 것같이 바벨론 포로에서도 구원하는 은총을 베푸실 것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그 간의 완악한 성품을 꾸짖으시고 책망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강팍하고 완악함을 이렇게 책망합니다.
본문48:4 -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 목의 힘줄이 무쇠가 된 것처럼 결코 여호와 하나님말씀에 겸허이 고개 숙이지 않고 순종하지 아니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범하면서도 수치심을 느껴 얼굴의 표정이 변하지도 아니합니다. 마치 얼굴에 놋을 씌운 것처럼 죄악에 대해서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계획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그 약속을 재확인을 시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분노를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가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 8 -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이는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 모태에서 부터 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오래 참으시사 너희를 연단하여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다고 했습니다. 궤휼하고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고난의 풀무에서 연단하여 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고난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고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고난중에서 연단하여 택하여 주십니다. 어떤 사람도 평생을 살아가면서 고난과 환난을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재정적 어려움, 경제적 어려움, 건강적 어려움,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난과 어려움, 자연재해로 인한 어려움, 여러 가지 형태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와는 달리 성도들에 있어서 고난과 환난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1.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오늘 본문 10상 -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고난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이 당한 고난도 여호와 하나님의 허락 하에 주어진 것입니다. (욥1:12) 사도 바울이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세 번 기도한 바 있는데, 이 가시의 고난도 바로 그를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고난의 은총이었습니다. (고후12:8-9)
히12:6 -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당하는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의 경륜의 뜻이 있어 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이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은 몇 가지 의미와 뜻이 있으신 고난입니다. 고난을 위한 고난을 주시는 일이 결코 없으십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고난은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불순종하는 자에게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주십니다.
요나의 고난이 바로 그러한 고난입니다. 니느웨성에 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하셨지만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낫을 피하여 다시스로 내려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나는 결국 큰 고난을 당하고 니느웨에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어긋 갈 때에 고난의 풍랑이 닥쳐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 주는 고난입니다.
그리하여 시119:67 - 다윗은 고백하기를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고난 당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2) 믿음을 성숙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욥42:5 - 욥은 모든 고난을 겪고 난 후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한번 아프고 나면 한가지씩 배운다고 하며 성장하는 청소년에게는 “성장통”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성장통이란 청소년들이 발육하는 과정에서 따르는 아픔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참 발육하는 청소년들에게는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아프면서 성숙해지고, 청소년들은 아프면서 발육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도 여러 가지 고통을 겪으면서 성숙해집니다.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꼬씨는 “고난의 의미”라는 글에서,
병들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병들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있다.
병들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말이 있다.
병들지 않으면 가까이 갈 수 없는 장소가 있다.
병들지 아니하면 우러러 볼 수 없는 얼굴이 있다.
병들지 아니하면 나는 인간이 될 수조차 없다. 라고 했습니다.
병들이 심각성에 빠질 때에 지금까지 드려보지 못했던 기도를 드릴 수 있고, 지금까지 믿어보지 아니했던 기적을 믿게 되고,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말씀을 듣게 되며 지금까지 가까이 가지 못했던 여호와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지금까지 귀로만 듣던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며, 내가 신이 아니고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시119:71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신앙을 성숙시켜 주십니다.
3) 순수한 믿음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욥은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아오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기공사가 금을 연단하여 순도를 높여 귀중한 귀금속을 만드는 것같이 여호와는 우리를 고난으로 연단하여 믿음의 순도를 높여 그의 귀중한 도구로 만드십니다. 고난의 연단은 우리의 믿음의 순도를 높여 줍니다.
그리하여 말3:3 -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레위 족속들이 연단 받은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 의로움 제물을 드리는 순수한 제사장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7)고 했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여 주님오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약1:12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고난은 성도들의 믿음의 순도를 높여 강인하고 생명력 있는 믿음으로 승화시켜 줍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깊이 내려 든든히 서게 해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는 고난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고난을 통하여 겸손하여 우리를 순종하는 믿음으로 거듭나게 하고 뿌리깊은 믿음과 성숙한 체험적인 믿음이 되게 하고 믿음의 순도를 높여 순수한 정금같은 믿음이 되게 하여 주님이 오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 고난당하는 자의 자세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뜻하지 아니한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한 것이든 아니면 의를 위한 자처하는 고난이던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어 주시는 고난이든 고난이 없는 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나에게 고난과 환난이 닥쳐왔을 때 어떠한 자세를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는 자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성경에서 찾아보기로 합시다.
1) 기도하라고 합니다.
약5:13 - “너희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희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합니다.
시50:15 -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환난당한 성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영웅들은 모두 환난과 고난 중에 낙망하지 않고 주께 부르짖어 기도한 자들입니다. 다윗은 나의 환난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라고 했고, 시18:6 -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라고 했습니다.
요나는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2:2)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고통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것 역시 그 백성들이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출3:7-18)
기도는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위안을 받기 위한 것도 위로를 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실지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이 됩니다. 고난 당하는 성도가 해야 할 일은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2) 낙망하지 말고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과 환난이 닥쳐올 때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공이란 어려움을 극복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사업에도 목회에도 직장생활에도 운동선수에게도 그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을 인내하고 극복하는 자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 청소년들에게 인내심이 없다는 지적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러한 점을 염려하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이것은 목표를 이루고 성공의 길로가는데 치명적인 문제가 됩니다.
약1:12에 있는 말씀과 같이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여기서 참는 다고 하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적극적으로 시험을 극복하고 나가는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위기와 고비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바라보며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장애자 송명희 시인은 그가 그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 것을 그 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고통을 생각하면 나의 고통을 참을 수 있고, 주 예수 하신일을 생각할 때 나의 하는일 피곤치 않으며, 주 예수 낮아진 모습 기억하니 높은데 있는 내 모습 부끄럽고, 주 예수 당하신 고난 느껴볼때에 내게 있는 고난이 자랑스럽게 보이며, 주 예수 찔리신 고난을 생각하면 나를 괴롭게 하는 가시가 괜찮아진다. 주 예수 하신 기도를 들으면 나의 기도부족이 발견되고, 주 예수 흘리신 보배피는 나의 무익함을 깨닫게 하시며 주 예수 짊어진 십자가를 바라보니 주를 위한 나의 짐이 가벼워진다. 주 예수 부활하심을 믿을 때 나의 소망이 넘쳐서 견고해지고, 주 예수 나와함께 다니시니 나에게 있던 두려움 사라진다. ”라고 썼습니다.
고난과 환난이 있습니까 고난의 주님을 바라보십시요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의 짐을 가볍게 되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고난 당하거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요 그리고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 원합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가 우리를 얼마만큼 사랑하는가 하는 것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 더욱더 확실해집니다.
인류역사상 이보다 더 큰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떠한 고난도 환난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롬8:28 -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그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감당할 시험밖에는 우리에게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길과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그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롬8:35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그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9 -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라고 합니다.
여기서 은같이 아니했다는 것은 무자비하게 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풀무가운데서 택하셨다는 것은 고난의 풀무가운데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진노중에 사랑을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고난의 풀무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마 24:22에 보면 마지막때에 큰환난의 날이 있을 것을 예고하시면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못할 것이나 그 택하신 자를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고난을 통하여 연단시키시고 그의 크신 사랑으로 고난의 날을 감하시고 단축시키시는 이심을 믿으시기 원합니다.
또한 본문 11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를 위하여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시험에 연단에서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기 때문에 시험중에 쓰러지지 않도록 고난의 시간을 감하여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여 반드시 구원해 준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떠한 고난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믿으며 낙망하지 말고 기도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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