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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고난이 스승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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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원치 않는데도 우리와 동행하기 원하고, 우리는 오라고도 하지 않는데 찾아 오는 불청객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고난이라고도 하고 역경이라고도 합니다. 학생은 학생나름대로, 청년은 청년 나름대로, 가정주부는 가정주부 나름대로… 우리 모두는 고난의 동참자들입니다. 고난에서 면제 된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도 말하기를 “우리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올라감 이라”. 우리 가운 데 어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고난 가 운데 신음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는 큰 고난을 겪지 않더라도 고난이라는 불청객을 언제 맞이할는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손대는 일마다 제데로 풀려가지 않고, 사람 마다 나에게서 등을 돌린 것같이 보이고, 여호와 하나님조차도 우리를 외면하는 것같이 보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런 역경 가운데서 우리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모든 사람이 똑같이 아픔과 슬픔을 겪는 것은 아니지만 고난, 고통의문제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그 “고난의 풀무”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풀무” 이것은 바로 고난의 상태, 상황, 그 모습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으로 바벨론 포로의 현장속에서 있는 뜨거운 고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를 깨닫고 바른 길로 가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연단하여 거룩한 자들로 세우시기 위해 그들에게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는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된 성도들이 범죄하면 고난을 통해 연단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이 스승의 주일인데 보이는 스승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스승도 있습니다. 곧 고난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가장 값지고 좋은 것들을 배우기 때문에 고난이 주는 유익이 얼마나 큰지요... 그런 의미에서 분명히 고난은 스승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고난을 당할때 어떤 점에서 우리의 스승이 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깨닫게 하는 유익이 있습니다.
고난에는 세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1)자신의 죄때문에 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실수와 허물로 자신이 잘못함으로 당하는 여러움입니다.
2)사탄이 주는 고난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등한히 함으로 사탄이 마음에 틈을 타고 들어와서 어려움을 주는는 고난입니다. 3)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이 있습니다. -실수와 잘못도 없지만 그
리고 신앙생활도 잘하고 있지만 찾아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함께 생각해 볼려고 하는 고난의 성격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을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고난은 자극적인 것입니다. 평범한 생활에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극이 심각하고 아프게 찾아오는 것이 고난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주는 고난은 우리를 망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절망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는 고난입니다마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은 유익을 주시기 위해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때릴때 선한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매를 때립니다. 교육적인 목표가 없이 징계하고 매질을 가한다면 그것은 아이를 학대하는 것이죠! 잘못된 것을 바로 고쳐주기 위해서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징계합니다.
거짖말을 하면 거짖말을 고치기 위해서,남의 것을 훔치는 버릇이 있으면 그 잘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매를 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부모의 징계가 먼저 사랑이 전재되어 하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도 성도들에게 고난을 주시고 징계하시는 것이 사랑하기 때문에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이렇게 나두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잘못된 문제를 지적하고 그 문제를 바로 잡아주어야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은혜받는 신앙생활을 할수 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고난을 당할때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이 없는가 자신을 살필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 없이 찾아 오는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이주시는 고난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볼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나는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에 최선을 다하며 모든 면에 여호와 하나님중심으로 주님을 바라 보고 있는지 자신을 볼수 있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속에서 자신을 보지 아니하고 문제만을 바라보고 해결할려는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모든 것을 자세하게 묻습니다. 아픈것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좋은 진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우리에게 말씀으로 우리의 상태를 진단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많은 경우에 말씀을 통해서, 주의 종들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권면하고 가르치고 인도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하고,신앙생활을 회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으로 아멘! 아멘!.... 하고 그 말씀을 받더니 충만한 은혜 생활을 함으로 모든 것에 여호와 하나님이 축복 하시는 것을 봅니다.
저는 목사의 딸로 태어나서 광고 사업하는 남편을 만나서 친구와
동업을 부부를 알고있습니다.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대형광고탑을 제작하여 세워 놓았고 돈도 많이벌렸습니다. 열심히 기도해서 이룬 사업이었습니다. 살만큼 물질도 모았고 가정도 행복했는데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예배생활 기도생활 물질생활 모든 것에 그들은 마치 여호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세상속에 폭 빠져서 살아갔습니다.
세상적인 걱정이 없으니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멀어졌고 나름대로 멋있는 인생을 살아가 고있을때 사소한 문제로 동업하는 친구와 사이가 벌어져서 일에 열심히 떨어졌습니다. 제주도에 큰 광고사업을 맡았는데 갑자기 부도가 났습니다. 그일을 따기 위해서 로비활동도 많이 했고 물질도 많이 투자 했는데 부도가 나버렸습니다, 그들이 하루는 눈물을 흘리면서 제게 찾아왔습니다. 기도해 달라는 것이엇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물질보다 더욱중요한 것은 당신들의 신앙이 다시금 회복하는 것입니다. 옛날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십시다. 물질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단신들을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더 중요한 믿음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주시는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다시금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권면했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들이 그렇게 인생을 살아왔다고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전에 신앙을 되찾아서 열심히 믿음 생활에 질력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사업도 점점회복하고 있음을 곁에서 지켜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보다도 영혼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크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이 사람에게 찾아온 이 고난이 얼마나 힘이 들고 고통스러운 고난이었겠습니다까 그러나 그 영혼이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바로 세우기 위해서 그리고 회개 하고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징계하시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저는 여러분들이 지금 어떠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난 잘모릅니다. 혹시라도 남 모르는 여러움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자신들의 모습을 기억하시고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2.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스승입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관심이 뒤따릅니다. 무관심은 사랑이 떠났다는 증거입니다. 관심의 표현은 다양하지만 좀힘들어도 그것이 나를 향한 관심의 표현이라면 그것을 고맙게 받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면 관심을 갖습니다. 생일을 챙겨주기도 하고 결혼기념일을 챙겨 주기도 하고 외모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이 말을 하면 이런 행동을 하면 저이가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 이런 관심을 진지하게 갖게 되면 절대로 사랑하는 자에게 함부로 행하지 아니하죠 사랑하면 어떤 무습으로 든지 관심을 갖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직업이 무엇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관심 보다는 당신이 믿음으로 살면서 당신의 직업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당신의 가정 생활이 여호와 하나님의 질서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이지 당신이 대저택에 사느냐 아니면 전세 단간방에 사느냐가 아닙니다.
그는 당신의 자동차가 6년 묵은 중고차냐 아니면 번드르르한 최신형이냐에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교만과 탐심이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주의를 기울이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절대로 이런 것들은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다만 여호와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는 우리의 인간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있는가 아니면 잠자고 있는가
아니면,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이같은 관심이 충족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 징표라고 하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를 내리는 것입니다. 잘못하고 있는 대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는 것은 사랑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히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히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로 대우하시기에 징계하고 계십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하니님의 징계는 없습니다. 버려진 자들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나 관심은 무관한 것입니다. 그들은 제멋대로 살고 방향없이 살다가 멸망당하고 말 인생들이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주시는 고난하고는 상관이 없이 삽니다. 그럼으로 우리에게 고난이 임하는 것은 나를 아직도 아들로 여겨주고 있고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이시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아들을 자신의 뜻으로 징계하여도 자식의 위치에서 공경하거든 하물며 영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징계하실진대 어찌 우리가 더욱 복종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가정의 문제, 질병, 사업의 부진 그리고 물질의 궁핍등이 당신을 괴롭게 하고 있습니까 낙심하지 말고 계속 아버지를 섬기십시오. 그리하면 언젠가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이 오셔서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우리는 다른 사란들을 위해서 돈도 빌려줄수가 있고, 시간도 투자할수 있고 희생과 적당한 헌신을 할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주기 까지 사랑하는 그런 사랑은 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다 이해 하지 못하고, 또한 그 사랑을 받고 살고 있으면서도 실감나지 아니하고, 금방 그 사랑이 식어 버리는 지도 모릅니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주시기 까지 사랑했다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는 찾아 볼수 없는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사랑을 누가 받았습니까 내가 받았습니다, 그럼으로 여호와 하나님앞 에서 나의 존재는 이렇게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들입니다. 있으나 마나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무가치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땅에서는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는 존재들입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징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사랑한고 하면서 징계가 없으면 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칭찬만 해주는 사랑, 품어만 주는 사랑,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징계없는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들은 버릇없는 아이들이 되고 맙니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불량한 아이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사랑하면 반드시 거기에는 징계가 뒤따라야 합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한 것을 지적해 주고 바로 잡아 주어야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에게 임하는 고난이 있으면 아하! 여호와 하나님이 아직 나를 버리시지 아니했구나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계시는 구나 생각하시고 깨닫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사탄이 주는 고난도 고통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도 고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에 차이가 있습니까 사랑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보면서 징계하십니다. 힘들때는 힘을 주시면서 고난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슬플때는 위로를 주시면서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의 믿음의 수준과, 신앙의 열정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도에 맞추어서 고난을 주십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구구법을 외우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국민하교 학생들에게 미적분을 푸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수준에 맞는 고난을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로 신앙이 약한 사람에게 감당할 그 이상의 것을 주시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크고 주님의 사랑을 잘알고 여호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만한 고난을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고난을 만날때 항상 깨달아야 하는 것은 그 고난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징표이구나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복괸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고난은 우리를 더욱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로 성숙하게 만드는 스승입니다.
품질 좋은 금은 불속에 여러번 들어 갔다가 나온 금이라야 값어치가 있습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에미 카메켈이 고난을 다루고 있는 그의 책에서 의미깊은 예화를 이야기 것이있습니다. 그가 한번은 인도의 대장장이에게 “당신이 금을 연단할때 이것이 순금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지혜로운 그 대장장이는 대답하기를
“예,금속에서 내 얼굴을 볼수 있을때까지 연단합니다. 불순물이 여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방법은 그속에 미치는 내 얼굴이 얼마나 정확하게 잘 보이느냐를 가지고 결정합니다”하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격에 자기 자신의 형상을 비추어보십니다. 고난이란 연단을 통하여 찌꺼기는 없애고, 깍을 것은 깍고 버릴것은 버리도록 하신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그 인격에서 찾으십니다. 이일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실때가 많이 있습니다. 병을 주시고 마음에 진통을 겪게하시며 어려움을 통하여 괴로룸을 당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들어 보세요
(사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테니슨의 시집 “용광로”에 보면 우리의 인격을 쇠붙이에 비유하여 시를 쓴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쇠붙이를 벌겋게 용광로 속에 달구어서 원하는 형태로 두들겨 찬물에 담금니다.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았을때는 다시금 달구고, 두들겨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냅니다. 이것을 우리의 인격을 만드는 것과 연관시켜 보십시요
타오르는 공포를 뜨겁게 달구어 숙명이라는 매로 두들겨 때립니다. 그 다음에는 눈물에 담그었다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수 있을때까지 고난을 통하여 연단하십니다.
이렇게 고난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격을 형성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강한 자로 그리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들로 이세상을 승리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작은 일에 넘어지고 하챦은일에 쉽게 요동하며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강한자들로 남아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편안하게 좋은 환경 속에서 적당히 예수 믿어서는 강한 이세상을 이길수가 없습니다. 환란과 역경과 어려움을 통해서 주님을 찾고 믿을때 그 신앙은 흔들리지 아니하는 견고한 신앙을 가질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격도 그렇습니다.
사람마다 인격이 가장 고상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점이 좋으면 또 다른 면에서 냄새나고 문제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모나고 페여진 우리의 인격을 더욱 여호와 하나님의 인격을 닮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다듬으시는데 고난을 통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겸손을 배웁니다. 성격이 과격한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어서 온유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없신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그러한 자리 가장 밑바닥의 자리에 들어가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그 어려움을 경험하는 가운데 많은 연약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도록 하시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 그럼으로 여러분! 고난은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로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인격자들로 그리고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 만드시는 가장 아름다운 도구인것을 깨달으시고 여러분들이 당하는 고난이 있을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로 온전케 되어 지기 위해서 더욱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신 고난을 잘 인내하시고 참고 견디어 나갈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한것들로 채우실줄을 믿습니다.
고난은 아픈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욱 유익을 주는 도구입니다. 고난중에 주님의 사랑과 그리고 나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깨닫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라며 더욱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성숙해 지는 믿음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은 가장 우리 인생의 멋진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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